☆☆ 울뜨레야 8월 영적 독서 및 묵상자료 ☆☆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루카 12,49~53).
묵 상
연중 제20주일 복음에 앞선 루카 복음서 12장 35-48절에서는 재림이 임박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으니, 늘 깨어 있으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인 49-83절에서는 그러기 전에 넘어야 할 산, 즉 ‘받지 않으면 안 될 세례’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나마 좋으랴?”(12, 49). 구약에서는 하느임의 말씀(예레 20, 9) 또는 엘리야 예언자의 말(집회 48,1)을 ‘불’이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하느님 나라 선포를 ‘불’이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이 ‘불’이 아직 타오르지 않는 것을 놓고 예수님이 탄식한 이유로 보아서, 그 49절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러 오셨고, 그 선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지기를 열망하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어서 50절에서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12,50)의 의미는 예수님 자신은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야 하고, 당신 죽음을 예감하고 예고하면서 그분의 인간적인 초조함을 드러내고 계시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이어 우리는 복음서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들리는 51절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런 말씀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왔다니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지요. 51-53절은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 파견의 기사 가운데 병행기사가 있습니다(마태 10,34-35). 비슷한 내용의 말씀이 마르 13,12에도 있지요. 묵시문학계에서는 역사의 종말이 가까워올수록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붕괴현상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가정 분열은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한 가지 전조일 수도 있겠습니다.
메시아는 평화를 주는 분으로 선포되어 왔습니다. 평화는 복지, 질서, 일치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평화와 구원의 시대가 밝아오기 전에 다툼과 분열과 불화의 시기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꾸르실료 체험을 통하여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적의 편인가?”라는 물음에 답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꾸르실리스따들에게 우리는 무엇과 일치할 것이며,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물어 오는 복음이 아닐까요?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만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윤대인 안드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