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영적 독서 및 묵상

2013. 9. 13. 오후 12:12:55

글자

 “되찾은 양, 은전, 아들의 비유”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32).

묵 상

연중 제24주일 복음에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서 왜 죄인들,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리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되찾은 양의 비유’, ‘되찾은 은전의 비유’, ‘탕자의 비유’를 차례로 제시하면서 그들에게 구원을 위해서는 회개해야 하며, 구원을 위해 회개하는 자들을 기쁨으로 초대하십니다. ‘잃은 양’에서 양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생활의 중대한 한 부분이며 재산목록 1호로서, 그들은 고원 지대에서 양을 치고 살아갑니다. 대개 목자 3~·4명이 한조가 되어 마을 공동으로 양들을 칩니다. 만약 양을 잃으면 1명이 나서서 끝까지 찾아야 하며 죽은 것이라도 찾아내지요. 마을에서는 잃어버린 양을 학수고대하다 양을 찾아서 데리고 오면 박수를 친다고 합니다. 이 비유는 유다인의 목양 방식을 소재로 나왔습니다. (요한 10,16 참조). 그런 양을 찾아내어 어깨에 메고 와 제자리에 데려다 놓은 목동은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되찾은 은전의 비유’가 “또”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은 두 비유가 동일한 요점을 두 가지 예로 설명하기 위해서 연결시킨 것을 말합니다. 당시 유다 여인에게 있어서 은전 10닢은 결혼반지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다 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때 결혼 지참금 형식으로 은전 10닢을 줄에 꿰어 주는데 여인은 그것으로 자신의 머리를 장식하곤 하였답니다. 오늘날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한 장신구이겠지만 은전 10닢은 여인의 지참금이기 때문에 귀중한 재산이며 비상금이 되겠지요. 또한 당시 팔레스틴의 집 구조는 어두워서 낮에도 등불을 가져야만 무엇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은전 한 닢을 무엇 때문에, 왼손은 등불을 들고 오른 손은 비를 가지고 쓸어가며 그렇게 찾는 것일까요? 그것은 생사의 문제이므로 반드시 찾아야 된다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고 찾아야겠다는 바로 이것이지요. 아무튼 돈을 찾게 되자, 그 기쁨을 혼자 간직하지 못하고 이웃과 친구들을 불러 함께 나눕니다. ‘되찾은 아들’이야기로 작은 아들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만족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집을 떠납니다. 자신의 상속 받을 몫을 다 챙겨 갔기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남깁니다. 집 떠난 그는 세상적인 것, 쾌락, 여행 등을 만끽하지만 곧 가진 것은 하나도 없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때서야 자신을 구해줄 사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집으로 돌아가자, 아버지의 집으로.’ 아버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굶어 죽지 않으려고 집에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이어 생각이 하늘과 아버지로 바뀌어질 때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지요. 아버지가 지난 일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하지 않은 채 두 팔을 벌려 껴안고 입을 맞추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죽었다가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며 잔치를 벌려 기쁨을 나눕니다. 큰 아들은 밭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에서 음악소리와 떠들썩한 소리를 듣습니다. 아우가 몸성히 돌아왔다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에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12장을 보면 분명히 그도 유산을 상속 받았는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안주었다고 투덜거립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명령과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함으로써, 하늘과 아버지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아버지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에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상의 세 가지 비유는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라시는 하느님의 기쁨의 초대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들에게 또박또박 되풀이되는 “나와 함께 기뻐하라!”라는 말씀을 우리 삶의 근본이 되게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윤대인 안드레아 / 前 서울대교구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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