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뜨레야 1월 영적 독서 및 묵상자료 ☆☆
"산상 설교"
(마태 5,1∼12)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빵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묵 상
얼마 전 신문에서 ‘사라지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고용 불안정 시대를 꼬집는
내용의 글이었는데, 현장 노동자들이 안정된 직장에서 기쁘게 자신의 일을 지속하여 진정한 달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또 그런 여건이 조성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달인’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학문이나 기예에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나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모 방송국이 인기리에 방영 중인 “생활의 달인”은 이처럼 ‘남다른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일상에서 찾아내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인이라는 비범함을 일상이라는
평범함에서 발굴하는 기획이 흥미를 끄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흥미의 차원을 넘어서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달인의 모습은
다른 진실을 감추고 있다. 달인이라고 불리는 이들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는 달인들은 대개 빠른 시간 내에 주어진 작업량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기술을 보여준다. 속도와 정확성은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미덕이기도 하다.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한다면 그는 능력자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근면과 성실, 그리고 협동이라는 달인의 기준은 고용 안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대에나 통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비로 비정규직이라고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달인을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이다.
위의 내용을 시작으로 글을 이어가며 ‘생활의 달인’들이 늘 웃으며 일할 수 있도록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평론이었다. 나도 이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시청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들의 웃음과 미소가 더욱 인상적이었다. 달인이 되기까지 무수한 고통과 인내의 세월을
오히려 웃음과 미소로 뿜어내는 진실한 일꾼들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들의 미소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간 인상적으로 읽었던 글로 묵상을 마무리해야겠다.
민초들 만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하고, 힘없고, 의지할 곳이라고는 하느님밖에 없는 백성, 항상 억압받고 이용당하면서도
하느님만을 믿기에 자기 양심을 속일 줄 모르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겸손하고 어진 백성들,
그러면서도 묵묵히 자기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이런 백성들이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라는 선언인 것이다.
수없이 짓밟히면서도 끈질기게 되살아나서 자기 몫을 말없이 해내는 어린 양 같은 민초들이야말로
역사 발전의 주역이며 참 행복을 누려야 할 하느님의 자녀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달인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인천교구 꾸르실료 담당사제 정윤섭 요셉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