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뜨레야 3월 영적 독서 및 묵상자료 ☆☆
"간음하다 잡힌 여자"
(요한 8,1~1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났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묵 상
우리 한국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는 남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남의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어떤 감정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남의 이야기를 하고 남에 대해서 들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끼리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어느 정도 일치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남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들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모습에 어느 정도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을 숨기기도 합니다.
남의 잘못된 점을 들추어내면서 나 자신이 그러지 않은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남이 잘못을 들추어내면서 나 자신은 마치 그러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모습을 숨기면서
그 사람이 자신은 그렇게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뜻 없이 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누구에게 돌이 되어 그 사람의 가슴을 때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복음말씀에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간음한 여인이 사람들에게 붙잡혀 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죄 없는 사람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돌을 들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내려놓고 자리를 뜹니다.
과연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정은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잘못도 저지른 일이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약 그 상황에서 돌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 역시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돌을 맞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언제 어느 때 어떻게 죄를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죄를 짓고 나서는 회개하고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말이 하나의 돌이 되어 어느 누군가의 머리를 때린다면 그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틀림없는 사실을 내가 남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회를 치고 있다면
나 역시 언젠가는 그 사람처럼 남의 도마 위에 올려져 횟감으로 맛있게 요리된다는 사실입니다.
가톨릭대학 교수 고준석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