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뜨레야 9월 영적 독서 및 묵상자료 ☆☆
" 부자와 라자로"
(루카 16. 19∼31)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의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묵 상
라자로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모릅니다. 알려진 것은 너무나 비참한 거지였다는 사실 뿐입니다.부자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어떤 신분인지 모르지만 값진 옷을 입고 매일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는 것뿐입니다. 아무튼 두 사람의 생활은 극명하게 달랐고, 그렇게 살다가 두 사람은 죽었습니다. 죽음 저쪽에서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별 볼 일없던 라자로는 복된 사람의 대열에 들어갔고, 부자는 고통 속에 떨어진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뀐 셈입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의 삶이 저 세상 삶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부자였기에 죽은 뒤에도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라자로 역시 거지로서 저 세상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의 신분 조건은 죽는 순간 바로 끝이 납니다. 아무리 위대한 신분과 뛰어난 조건도 이 세상의 일이지 저 세상까지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이승의 신분이 저승에서도 보장되겠지’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승에서 그토록 부족함을 몰랐던 부자가 저승에선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처지가 되고, 개들까지 와서 종기를 핥던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으로 갔다는 이 반의적인 가르침이 복음의 교훈인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신분과 조건이 죽은 뒤에까지 계속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불공평하겠습니까? 그러기에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불공평은 순간인 것입니다. 저 세상에는 공평함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대단하다는 사람도 저 세상에선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기준으로 저 세상을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 복음의 또 다른 교훈입니다. 고통 중에 있던 부자는 애원을 합니다. 지상의 남은 형제들이 물질에만 매달리지 말고 영혼을 위한 일에도 전심하게 해달라고…….부자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의 삶을 정성과 겸손으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에서의 신분과 처지는 세상 안에서 끝나지만, 삶의 결과는 저 세상으로 연결됨을 믿고 알아야 합니다. 부자가 애원했듯이 물질에만 매달리지 말고 영혼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며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