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신앙의 이성과 감성:
이성(理性)과 감성(感性) 가운데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덜 중요한가? 우리의 행위는 이성적인 철학적 사고(思考)의 지배를 받고, 그것이 감성적인 정서를 억압하거나 몰아내는가? 신앙 생활이 경건(敬虔)한지 아닌지는 당신이 신앙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이해의 정도에 달려 있는가, 아니면 당신이 감성에 충실하기 때문에 정서(情緖) 면에서 겪는 경험의 움직임에 의해서 일어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사람에 따라 서로 견해가 달라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썩 만족스러운 답안이 없는 실정이다.
일전에 ’교우생활 주간(敎友生活週刊)’에서 쩡원칭(鄭文卿) 신부가 쓴 ’믿음과 깨달음(信與悟)’의 기사를 읽고는 신앙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이라는 이 오래된 문제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 문장에서 불교의 수행은 ’깨달음(悟)’를 강조하고, 기독교(基督敎,그리스도교)에서 선포하는 것은 ’믿음(信)’이며, 믿음은 신학의 단계에 속하고, 깨달음은 심리(心理)의 단계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 문장에서 또 언급하기를, 기독교 신앙은 희랍과 로마의 이성적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신학의 단계의 ’믿음’이 점차 일종의 신조(信條)로 변해버렸음을 지적한다. 더욱이 교회가 신자들에게 (교회) 법의 의무와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기독교인의 신앙이 교조주의(敎條主義) 및 율법주의(法律主義)라는 이중의 압력 아래, 신앙 안에 있어야만 하는 오성(悟性)과 감성(感性)의 작용을 대단히 소홀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신앙 안에서 믿음과 깨달음 및 법률상의 책임과 내적인 수덕생활은 모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다만 심리학의 관점에서 신앙 안에서의 이성과 감성의 문제를 토론하고, ’종교체험’이 개인의 경건성 여부를 좌우하는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싶을 뿐이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의 혼합체(混合體)이며, 우리의 모든 행위는 모두 정신과 육체의 이중적 영향을 받는데,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신이 정신(精神)을 영혼(靈魂)이나 이지(理智) 혹은 심지어 대뇌(大腦)로 해설하고, 육체를 물질(物質).정서(情緖).감각(感覺) 등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런 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의 모든 활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성과 감성의 쌍방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공부를 하는 것, 결혼을 하는 것, 심리적으로 건강한지의 여부가 모두 이 쌍방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고, 여기서 종교신앙(宗敎信仰)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천주교(天主敎) 신앙은 중세기의 대 철학자 성 토마스 아퀴나스(聖多瑪斯阿奎那)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거의 이성과 감성의 상호 작용 아래서 이루어졌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亞里斯多德)의 이성철학이념(理性哲學理念) 즉, 인간은 ’이성적 동물(理性的動物)’이라는 정의(定義)를 수용한 이후, 점차로 종교신앙은 이성의 영역으로 밀려들어갔다. 스콜라 철학(經院哲學)의 창시자 보에시우스(波伊提烏)는 그의 명저 <철학의 위안(哲學的慰籍)>에서, 일찍이 신앙과 이성이 서로 결합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아퀴나스 및 그 후의 철학자들은 모두 신앙의 철리(哲理)에 의하였으며, 그들은 철리(哲理)에 따라서 모든 종교현상을 해석하려 하였고, 성경이 계시하는 신학의 진리도 당연히 철리(哲理) 안에서 해석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스콜라 철학의 공과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이러한 철학자들이 신앙을 교조화(敎條化)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신앙의 표현을 더욱 추상화하고, 공허하게 만들었고, 실제생활과 더욱 더 들어맞지 않게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교신앙이 철리(哲理)의 지지와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신앙은 살아있어야 하고, 피와 살이 있어야하지, 지나치게 철리화(哲理化).이성화(理性化)되면 오히려 실제생활(實際生活)과 어긋나게 되고 만다.
심리학(心理學)은 우리에게 인간의 일체의 행위는 모두 동기(動機)에 의하여 유발되며, 다만 동기가 이성적 사고능력의 영향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많은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며, 그들은 신앙의 철리(哲理)에 대하여 대단히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신앙 방면에 있어서 그들이 더 경건하다거나 혹은 그들이 성인(聖人)이 될 희망이 더 있다는 것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신앙행위의 동기는 종교가 지니고 있는 그 무엇 이외에도 감성의 촉진이 필요하다. 이른바 여기서 감성이라 할 때, 그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체험. 체득 등을 포함한 실제적인 개인경험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신앙의 진실(眞實)을 받아들이고, 신앙의 내용을 체득하여야 한다. 그런 뒤에 사랑이 깊어지고, 그 사랑을 동경(憧憬)하게되며, 신앙의 참뜻(眞諦)을 생활 가운데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 사랑을 동경하고 그 사랑이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의 신앙을 삶 안에서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증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모친은 90세의 고령이시며, 대륙(中國大陸)에서 살고 계시다. 그분은 글자도 모르고, 한평생 바깥 여행도 마음껏 하지 못하셨으나, 나이 40세에 이르러 천주교에 입교한 뒤에, 조금씩 발전하여 마침내 아주 경건한 신자가 되었다. 특히 대륙이 공산화 된 뒤의 30여 년 동안, 노모는 단 한 번도 신부(神父)를 만나본 적도 없고, 성사(聖事)한 번 받아 본 적이 없지만, 매일 똑같이 남몰래 기도문을 외우고, 하느님(天主)이 그녀와 함께 계심을 깊이 느끼므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녀의 종교적 열성(熱誠)이 그녀가 신앙에 대한 그 어떤 지식이 있고, 그것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여기는가?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 다만 아는 것이 있다면 천상(天上)에 천주(天主)와 성모(聖母)께서 계시고, 로마에 교황이 계시고, 죽은 뒤 천당(天堂)과 지옥(地獄)이 있다는 것뿐이다. 물론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이 매우 중요하다. 종교신앙(宗敎信仰)은 본래 자연계(自然界)의 특별한 은혜(殊恩)를 넘어선다.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러한 암흑천지(暗無天日)의 고통의 나날 가운데서도,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종교신앙을 유지해 나왔고, 하느님의 성령(天主聖神)이 그 어두움 가운데서 그녀를 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모친(母親)이 줄곧 느끼는 ’하느님이 그녀와 함께 하신다(天主與 同在)’ 는, 그와 같은 절실한 경험이 그녀가 끊임없이 기도하고 재를 지키고(守齋) 착한 일을 행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비록 종교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또 비록 세상의 온갖 노고(千辛萬苦)를 다 겪었을지라도, 그녀는 시종일관 죽은 뒤 천당이 있음을 믿으며, 하느님께서 그녀를 지켜주고 계신다고 느낀다. 아마도 이런 절절한 느낌(身切的感覺)이 그녀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敬虔的信仰)을 유지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이러한 종교경험은 그 어떤 법률의 규정을 준수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누구에게 배워서 얻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 것은 각자 스스로 찾아 나서고 경험해야만 하는 것이다. 당신은 아마 이렇게 한마디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만일 이 말이 마음에 없이 그저 입으로 내 뱉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라면, 당신은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이다. 이런 감은의 마음(感恩之心)이 바로 종교경험이며, 그것이 오래 지속될 때,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큰 일 작은 일 불문하고, "주님, 감사합니다"하는 말이 터져 나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당신은 이렇게 기도를 시작할 수 있다: "주님, 오늘 저를 도와주셔서, 제가 당신의 사랑의 사도가 되게 해주소서!" 당신은 단지 약한 인간이고, 당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솔직 담백하게 주님께 자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적어도 당신은 그 분께 청하여 당신 자신이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정말로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와 같이 청한다면, 나는 오래지 않아 당신이 하나의 사랑의 사도가 될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도 일종의 강력한 종교경험이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은 사탕을 좋아하고, 아이스크림(氷淇淋)을 좋아하고, 혹은 담배를 즐겨 피운다....상관없다. 그것이 그 무슨 크게 나쁜 습관은 아니다. 먹고 피우는 것이 당신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당신이 만일 감성의 신앙경험(感性的信仰經驗)을 하고 싶으면, 당신은 그 작은 일들로부터 자기를 제어하는 일을 배울 수 있다.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말할 수 있다: "기다려, 몇 분 지난 뒤에 다시 먹고, 다시 피울 거야." 당신이 만일 주님을 위해서 이 몇 분간 즐길 수 있는 것을 잠시 희생한다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마음속에서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승리(勝利)와 기쁨(快感)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승리감과 기쁨은 천천히 그리고 점차적으로 당신이 더 큰 희생과 자기극복을 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종류의 종교경험이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으며, 더욱이 큰 일에서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다. 그것의 비밀은 아주 작은 일로부터 시작하고, 또 한 조금씩 조금씩 배워 익혀 나가는 것이다!
요컨대, 감성의 종교경험은 매일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당신 스스로 계획을 하여 해 나갈 수 있다. 당신이 늘 어떤 사람을 욕하고 흉을 보거나, 다른 사람을 당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그들 하나 하나 모두 그리스도의 화신(基督的化身)이며, 그리스도 자신이 그들 안에서 생활하고 계시다고 생각해 보았는가? 성당에 가서 기도할 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耶蘇基督)께서 참으로 감실 안에서 밤새 당신을 기다렸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 때문에 당신이 그 앞에서 절을 할 때, 뭔가 좀 더 다정하고 친밀하게 그 분께 다가가 절을 하는 것은 어떤가? 그런데, 사정이 늘 마음먹은 데로 되지 않아서, 당신은 늘 하느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며, 당신 자신이 유쾌하지 않음으로써 다는 사람도 불유쾌하게 만든다: 이 때, 당신은 이런 것이 아마도 당신 자신의 잘 못이라고, 혹은 하느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해 보지는 않는가?
우리의 신앙(信仰)에 제일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비교적 감성적인 신앙생활이다. 교회의 신조는 물론 중요하고 교회의 법도 지켜야 하지만, 그저 이러한 신조와 법에만 의지하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경건하고 열심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게 할 수 없다. 그저 주님, 주님하고 부르기만 하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으며, 더욱이 단지 종교를 이해만 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종교를 이해하는 것은 다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에 불과하며,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표현해 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성을 활용하여 이해하고, 감정(혹은 정서)을 발동하고, 행동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종교신앙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인 것이다. 심리학의 공식을 적용해 볼 것 같으면, 이해(理解) - 동정(動情) - 행동(行動)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서 이해(理解)는 이성(理性)을 대표하고, 동정(動情)은 감성(感性)을 대표하고, 이성과 감성이 서로 도와 접합(接合)될 때, 비로소 종교신앙이 실제로 꽃을 피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감성 가운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無所不在)는 그런 ’임재감(臨在感)’을 절절하게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늘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모든 일의 배후에서 하느님을 보고, 듣고, 느끼는 학습(學習)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 때에 이르러서야, 우리도 성 바오로 사도와 같이 말 할 수 있다: "내 생활은 이미 내 생활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생활하십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 사순시기에 이 글이 우리 각자의 신앙생활을 돌이켜보고, 혹시 소홀한 점이 있는지를 반성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 기쁨은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뜻있는 사순절을 지내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뤼위팅(呂漁亭)이 타이완에 있는 天主敎輔仁大學(Fu Jen Catholic University)에서 발행하는 격주간지 益世評論(Catholic Observer a Biweekly)(2001년 3월1일자)에 기고한 원제 ’宗敎信仰的理性與感性’입니다.(양재오 번역, 200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