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rabbi)의 선물

2001. 2. 24. 오전 12: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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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rabbi)의 선물

 

 

이것은 전해진지 아주 오래된 이야기죠. 어디서 들었는지는 이미 기억할 수 없고, 다만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에 대하여 서로 다른 판본(板本)과 다른 표현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와 관련하여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목 - "랍비의 예물"과 수도회 성쇠(盛衰)의 과정이랍니다. 새 세기와 새해가 시작되는 즈음에, 이 이야기를 선물로 드리며, 이것이 여러분에게 어떤 깨우침을 가져다주고, 동시에 우리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점검하고 다듬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16세기에 유럽 어느 지방에 수도회가 하나 있었는데, 대단히 번창하였습니다. 수도회 안에는 경건한 수도자들이 많았고, 여러 지방에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 그 가운데 제일 주요한 수도원은 초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산림 안에 세워졌고, 많은 수도자들이 그 곳에서 기도하고, 고요히 묵상에 잠기고, 하느님을 섬겼습니다.

 

17, 18세기에 일어난 반 수도회 풍조와 수도자를 박해하는 물결이 이 수도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19세기에 일어난 세속주의는 더더욱 이 수도회의 흡인력을 상실하게 만들어서, 점차 몰락하게 되었지요. 수도자들 가운데, 죽을 사람은 죽고, 떠날 사람은 떠나서, 각지의 수도원은 하나 둘 황폐해져갔습니다. 마지막 남은 그 아름다운 산림 속의 중심 수도원에는 단지 나이 70이 넘은 5명의 수도자만이 남아 있었는데, 그들은 이 세상을 하직할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고, 갈 곳도 없는 늙은 수사들일 뿐입니다. 보아하니, 이 수도원도 폐허가 될 시간이 조만간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이 아름다운 산림의 다른 한 곳에는 작은 나무 오두막이 있는데, 종종 인근 도시에 사는 유태교 랍비가 와서는 며칠 씩 은거하곤 했습니다. 수년간 고행을 한 나이 든 수사들은 이미 거의 일종의 영감(靈感)이 생겨서, 그들은 랍비가 매번 올 때마다 그가 이미 산림 속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되었고, 서로 가벼운 소리로 말을 건냈습니다 : "랍비가 또 왔네, 랍비가 산림 가운데 있군!" 이 번에도 그들이 또 이와 같이 말을 전하고 있을 때, 수도원 원장 - 지금 수도원의 장래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노인 - 이 한 순간 문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왜 내가 작은 나무 오두막집으로 가서 랍비를 방문하지 않지? 그가 나에게 사라져 갈 운명에 처한 이 수도원을 구해 낼 수 있는 어떤 충고를 해줄지도 몰라."

 

랍비는 수도원장의 방문을 대단히 반겼습니다. 그러나 원장이 방문한 뜻을 밝혔을 때, 늙은  랍비는 원장에게 동정(同情)을 표시하고는, 원장의 뜻을 채울 만한 적절한 충고를 할 수 없다며, 연거푸 미안함만 표시할 뿐이었습니다. 랍비는 이렇게 말합니다,"나는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영성(靈性)을 잃어버렸고, 신앙이 없습니다.  내가 사는 도시도 똑같습니다. 회당에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지요."

 

늙은 랍비와 늙은 원장은 서로 마주보고 울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성경 몇 편을 읽고는 안정을 되찾은 뒤, 몇 가지 심오한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너무 늦게 만났음을 몹시 아쉬워하였답니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늙은 원장은 부득이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지요. 그들은 서로 포옹을 하며 작별을 하였습니다. "너무 좋군요! 우리가 이렇게 서로 만날 수 있으니, 정말 좋습니다!" 그러자 늙은 원장이 말합니다: "아쉽게도 나는 방문한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정말 당신은 나에게 충고 한 마디 해주어서, 내가 곧 사라지게 될 수도원을 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없단 말입니까?"

 

랍비가 대답합니다: " 해줄 말이 없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제가 당신에게 해드릴 충고는  없고, 다만 당신에게 한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구세주(Messiah)입니다."

 

늙은 원장은 수도원으로 돌아오자, 오랫동안 기다리던 형제들이 그를 에워싸고는 랍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곧바로 알고 싶어했습니다. 원장이 대답합니다:"그는 우리를 도울 수 없소. 우리는 그저 울고, 함께 성경을 읽었습니다. 내가 떠나려 할 때, 그는 나에게 한가지 일을 말해주었지요. 조금 신비하고, 조금은 이상한 것인데,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한 명이 구세주라고 합디다."

 

계속해서 몇 날, 몇 주, 몇 개월, 이 몇 명의 늙은 수사들은 랍비가 한 말이 무슨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일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명이 구세주라고!"  우리 들 모두 늙은 수사가 아닌가?  설령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누구일까? 원장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그는 이미 이 수도회를 20년 이상 이끌어 왔으니까!  그런데, 혹시 토마스 형제일지도 몰라! 우리 모두 그가 성결(聖潔)하고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또 혹시 몰라, 바오로 형제인지도? 음, 아닐거야, 그는 늘 괴팍하고, 말로 늘 남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서 다시 찬찬히 생각해 보니, 바오로가 말한 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음, 절대로 필립보일리는 없어! 그는 매우 소극적이고 대단히 볼품없는 인물이지. 그런데 그는 특별히 타고는 천성이 있지, 누가 곤란하거나 필요한 일이 있을 때, 그는 나타나서 그 사람의 곁에 있어주지. 혹시 그가 구세주인가!?  물론, 랍비가 말한 것은 나일 리가 없어, 나는 그저 평범한 인물에 불과하니까. 그렇지만 만일 정말 나라면, 만일 내가 구세주라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맙소사! 하느님, 저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각 수사마다 모두 이와 같은 생각에 깊이 잠겨있습니다. 이리 생각해보고, 저리 생각해보아도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깊이 생각에 잠겨있는 가운데, 그들은 점차 매우 존경하는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였지요. 자기가 대면하는 형제가 혹시 구세주일지 모르는데,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또 대단히 존경하는 태도로 자기 자신을 대하였습니다. 혹시 만일 만에 하나라도, 자기가 구세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어찌 자기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구세주를 소홀히 대할 수 있겠습니까?

 

수도원이 있는 곳은 매우 아름다운 산림인데, 우연히 몇몇 사람이 수도원 가운데 있는 초원에 소풍을 와서는 꽃밭의 작은 길을 천천히 걸어서 다 낡은 성당에 들어가서 잠잠히 묵상을 합니다.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이 다섯 명의 늙은 수도자들 사이에서 풍겨 나오는,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거의 모든 수도원 경내에 충만하여, 이 곳은 사람을 감화시키고, 끌어당기는 신비한 분위기가 만들어 졌습니다. 그 흡인력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나, 사람들은 더욱 빈번히 이 곳에 소풍을 오고, 기도합니다. 무심코 그들은 친구들을 데리고 이 특별한 곳을 보러 오고, 그들의 친구들은 또 다른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어느 날, 이곳에 온 한 무리 젊은이들이 이곳의 몇몇 늙은 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지요. 한 번, 또 한 번, 이야기를 나눌수록 깊어지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재미가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젊은이 한 명이 이 수도회에 가입하기를 청하였습니다. 한 명, 두 명, 몇 년이 지난 뒤 이 수도회는 다시 번창하기 시작해서, 이 일대의 활력이 가득한 영성생활의 중심이 되었다고 합니다.(끝)

 

 

* 이 글은 台灣天主敎修會會士協會(The Regional Association of Major Religious Superiors of Men and Women in Taiwan)에서 간행한 뉴스레터  ’一心(One Spirit)’의 2001년 2/3월호(통권 제35권 제2호)의  탄리다(譚莉達)가 쓴 "拉比的禮物"( 5-6쪽)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양재오,200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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