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선교에 대한 한 수도자의 목소리 - " ? "와의 대화 -
선사(禪師) 한 분이 세상을 하직할 때가 가까이 이르자,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제자를 불러서 한가지 부탁을 했다 : "때가 이르렀구나, 나는 내 사부(師父)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나에게 전해준 이 경전(經典)을 이제 너에게 전해 주어야겠다. 너는 이 귀중한 보물을 잘 보관해야 할 것이니라. 만일 그것을 잃어버리면, 몇 세기동안 쌓아 놓은 것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다른 제자들도 이 경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일찍이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선사가 어느 곳을 가든지 늘 그 책을 가지고 다녔고, 어느 누구에게도 그 책의 내용을 보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자들은 이 경전에 대하여 호기심이 무척 많았다. 선사가 그 경전을 줄곧 감추어 두었던 자신의 베개 아래서 꺼내 들었을 때, 그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 "요 몇 년간 나는 경전이 없었습니다.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루었으면, 왜 이 경전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스승은 여전히 그에게 건네주려고 하다가 마침내, " 좋아! 네가 그것을 받지 않겠다면, 내가 그것을 도로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구나."하고 거두어 들였다. 어느 겨울 밤, 날씨가 몹시 추워서 집안에 불을 지폈는데, 제자는 그 책을 꺼내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것을 바로 불 속에 던져버렸다. 선사가 펄쩍 뛰면서 말한다 : "너 뭘 하는 거야?" 제자가 큰 소리로 " 사부께서 경전을 도로 거두시려구요?"하고 말하자, 그 때 사부는 웃으며 말했다: "너는 시험(시련)을 통과하였다. 내가 너에게 사실대로 말하겠는데, 그 책 속에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고 완전히 공백이다. 나는 단지 네가 정말로 깨쳤는지 보려고 했을 뿐이다."
어느 누가 말하기를, 제 1천년은 법률(法律)의 천년이었고, 제 2의 천년은 교의(敎義,dogma)의 천년이었으며, 제 3의 천년은 마음(心靈)의 천년이니, 사람은 법률과 교의의 틀을 초월하며, 마음의 추적을 통하여 신(神)을 만난다고 한다. 서점에는 이런 유형의 책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팡쯔(方智)출판사가 11년 전에 이미 출판한 신시대계열(新時代系列) 총서 가운데, "신과의 대화(與神對話)"는 총서 100권 가운데 3권에 불과하다. 이 3권이 이미 24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이미 1200만 권 이상이 팔렸다나! 신시대(New Age)의 중심사상은 이런 것이다 : 우리는 모두 신(神)의 일부분이며, 당신이 당신 자신의 본래모습을 창조하고, 인생을 긍정하고, 도덕의 내재성을 믿고, 심신의 건강은 자연상태이며, 환경을 보호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
물론 우리가 볼 때, 이와 같은 사상은 "상대화(相對化)"의 위험이 있지만, 만일 자세히 본다면, 부득이 묻지 않을 수 없다 :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2000년 전에 강생(降生) 하셨다. 우리는 성경(聖經)과 교회의 가르침, 신학서적과 각종 사조(思潮), 수도회의 은사(神恩,카리스마) 등, 그리고 또 이루 다 셀 수 없는 문자, 관념, 이론 등을 통하여,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天主)을 인식하려고 시도한다. 또, 우리는 왕왕 하느님의 대변인(發言人)으로 자처하며, 확실히 그분을 잡고 파악하여,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대하여, 그리고 그분의 절대성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한다: 우리의 교의(敎義,dogma)는 거의 하느님(天主)과 같으며, 하느님의 주해(註解)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사람들은 이미 자기들의 방식으로 신(神, 하느님)을 찾는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보호 혹은 다른 이념과 가치관을 자신의 평생 사명(終身職志)으로 삼고, 그들의 생활방식(life style)으로 삼는다. 맞다, 예수 그리스도(耶蘇基督)는 참으로 유일한 구원이며, 우리는 이 유일한 구원의 전파자(傳播人)이고, 수호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이 "유일"한 구원이 내포(內涵)한 것을 체험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서 법률, 교조, 제도를 수호하는 옹호자의 모습을 보는지? 하는 것이다. 혹은 스스로 청렴하고 고상하다고 자처하는 중상류 계층으로 보는지? 주변 현실 생활의 문제, 사람들의 걱정에 대하여 반응이 둔한 국외자로 보는지? 혹은 그저 교리를 듣고 가르치는 교회로 보는지?
오랫동안 준비한 "새로운 세기, 새로운 복음전파(新世紀, 新福傳)"대회가 마침내 개막되었고, 각 분과별로 이미 제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타이완 교회의 구성원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단지 제안의 내용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복음을 전파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 조직의 기구를 통해서 할 것인가? 사업은? 무엇을 전할 것인가? : 2천년 전의 예수를 전할 것인가? 교회의 교의를 전할 것인가? 우리를 충분히 알 수 있는 대상은? 당연히 "하느님의 길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볼라치면, 때때로 우리가 드러내 보이는 것이 너무나 쇠었고(老), 변화했다고 해도 놀라울 것이 없으며, 조직의 기구는 너무도 경직되어 있지 않은가! 하느님의 성령의 바람이 어떻게 우리 가운데에 불어와 움직일 수 있을까? 복음전파는 의무인가? 혹은 참으로 기쁜 소식의 전달인가? 이렇게 생각할 즈음에, 마음속에서 울려오는 소리가 있다 : 내 자신이 그리스도와 상통(相通)하는 사람인가? 나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인가? 금년 한해 동안 우리는 반드시, 먼저 자신이 고집하는 관념과 안전판과 제도 등을 내려놓고, 적나라한 우리 자신을 대면하고, 끊임없이 우리 자신이 하느님과 대화하고, (혹시, 만일 우리자신이 이미 하느님의 말씀을 장악하고 있다고 참으로 여긴다면) 그런 하느님을 해방시켜드려야 하겠으며, (그 때) 하느님도 우리를 해방시킬 것이다. 우리 개인의 생명의 지도를 고침으로써, 그리스도의 면모가 드러나도록 해야할 것이다(고린토 후서 3장18절 참조). 우리의 연약함을 믿을(인정할) 때,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며, 성령의 숨결(氣息)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된다. 우리 모두 생명을 나누고, 생명을 전달하는 이들이 되어서, 제 3천년 기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걸어가며 성장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이 글은 台灣天主敎修會會士協會(The Regional Association of Major Religious Superiors of Men and Women in Taiwan)에서 간행한 뉴스레터 ’一心(One Spirit)’의 2001년 2/3월호(통권 제35권 제2호)의 필명 晩玉이 쓴 "與[ ] 對話"( 1-2쪽)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 2000년 대희년을 전후하여, 새로운 세기를 맞아 새로운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한국 천주교회 안의 몇몇 교구에서는 이미 교구 시노드(synod)를 개최하였고, 또 어떤 교구는 개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교세가 열악한 타이완 천주교회에서는 교구 차원의 역량이 부족하여, 타이완 주교단의 차원에서 타이완 전교회의 이름으로 "새로운 세기, 새로운 복음전파(新世紀, 新福傳)"라는 기치아래 복음화 대회를 치르고 있다. 한국은 수도회의 역량에 비하여 교구의 역량이 큰데 반하여, 이 곳 타이완은 수도회의 역량이 교구의 역량을 압도한다. 따라서, 순전히 내 개인적인 관찰에 의하면, 복음화 대회가 타이완의 전 교회적인 행사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일부 본당 교우들도 이 대회에 동원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주교단과 협조한 수도회의 역량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이 복음화 대회와 일반 기층 교우들의 참여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 글이 이 곳 타이완 교회가 직면한 복음선교의 한 측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또 한편으로는 이 글이 나름대로 복음선교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교회의 실정을 반추해 보는 소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소개한다.(양재오, 200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