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뒷 이야기
가오싱지엔(高行健)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2000년 12월7일)부터 중국대륙에서 끊임없이 전해오는 뜬소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떤 선배 작가가 거의 노벨 문학상을 받을 뻔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인 마위에란(馬悅然,Goran Malmqvist)이 어제(2월2일) 그 내막에 대하여 드러내놓고 해명하였다. 그는 라오서(老舍), 루쉰(魯迅)이 노벨상을 거의 받을 뻔했다는 소문을 반박하였다. 그러나 선총원(沈從文)은 확실히 1987년과 1988년 2년 연속으로 노벨 문학상 최종 심사까지 올라간 후보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는 노벨 문학상은 작가 개인에게 주는 것이지, 작가의 조국에다 주는 것이 아니며, 심사의 관건은 작가 개인의 문학적 소양(질)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마위에란은 어제 제9회 타이뻬이 국제 도서전에서 행한 강연에서 번역에 대하여 그리고 노벨 문학상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또 언급하기를, 가오싱지엔이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에 어떤 사람들은 노벨 문학상의 역사가 근 100년이나 되었는데, 왜 중국 작가는 수상을 한 적이 없는가하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그는 노벨 문학상은 작가 개인에게 수여하는 것이지, 작가의 조국에 수여하는 것이 아니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게다가 가오싱지엔의 작품을 심사할 때,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인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가오싱지엔의 국적에 대하여 전혀 몰랐으며, 국적이나 언어 같은 것은 애초부터 전혀 심사 기준의 범위에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의 규정에 의하면, 그 회원(院士)은 50년 이내의 노벨상 후보자의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벨 문학상과 그 후보자에 대하여 뜬소문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마위에란은 말하기를, 최근 중국현대문학관 관장 라오서(魯舍)의 아들 수이(舒乙)가 공개적으로 1966년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에서 라오서에게 노벨 문학상을 주기로 결정했으나, 그 전에 라오서가 죽어버리고 말았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그는 그 같은 사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과거 몇 몇 프랑스 한학자(漢學者)가 라오서를 추천하고 여러 차례 그에게 라오서를 후보자로 올려달라고 부탁하였으나, 그는 생각이 달랐으니 그것은 당시 외국어로 번역 소개된 라오서의 작품은 루어투어시앙쯔(駱駝祥子)와 리혼(離婚) 밖에 없었고, 그 가운데서도 영역본 루어투어시앙쯔(駱駝祥子)는 행복한 결말로(happy ending) 인하여 라오서의 원작(原作)을 훼손(말살)하였다며, 라오서는 근본적으로 노벨 문학상 최종 후보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루신(魯迅)에 대하여, 마위에란은 루신의 내이한( 喊)과 팡황(彷徨)은 모두 대단히 창조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만일 1920년대에 누가 이 두 단편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했다면, 루쉰은 노벨상 후보자로 추천될 수 있었고, 아마 노벨상까지도 받았을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가 5 4 운동(五四運動)이후의 원로작가 가운데서 제일 탄복하는 대상은 선총원(沈從文)이란다. 선총원을 대단히 존경하기 때문에, 그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의 엄격한 비밀 규정을 깨고, 선총원이 이미 여러 지역의 전문학자들로부터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추천되었다고 토로하였다. 뿐만 아니라 1987년과 1988년 2년 연속으로 노벨 문학상 최종심사에 올랐었으며, 만일 그가 1988년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으면, 그 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는 분석하기를, 과거 중국의 작가들이 노벨 문학상과 줄곧 인연을 맺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5 4 운동 이래로 선배 작가들의 저작이 외국어로 번역 소개되지 못했기 때문에 서방 독자들에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점과, 또 다른 원인은 번역자들의 수준이 미흡하여 외국독자들이 원문에 나타나는 문학적 소양(질)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인데,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십 여 년간 이와 같은 상황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고 본다. 그밖에 마오쩌똥(毛澤東)이 1942년 5월 옌안(延安)에서 가진 문예좌담회가 중국대륙 문학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당시 경력 있는 작가들은 이후 글쓰기를 중단하였다. 그 후 내리 계속된 정치운동과 문학혁명은 중국문학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말하자면 50년대에서 70년대 말엽까지 중국대륙의 문단은 광대무변한 사막과 같았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그밖에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는 매년 각국 대학의 문학과 교수, 철학과 교수 그리고 각종 작가단체의 회장으로부터 추천작가 명단을 접수한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중국대륙과 타이완의 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는 자격 있는 추천인과 추천기관들이 추천하는 중국작가(華文作家)가 대단히 적다는 것이다. 중국대륙에 있는 중국작가협회는 가오싱지엔이 상을 받은 뒤, 대외에 선언하기를 중국대륙에는 가오싱지엔 보다 더 나은 작가가 적어도 이백명은 된다고 했지만, 정작 현재 중국작가협회 회장인 바진(巴金)은 한 번의 담화 중 자신은 단 한 명의 중국작가도 노벨상 후보자로 추천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런데 중국대륙과 달리 타이완 시인들의 작품은 그에게 비교적 익숙하다. 그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타이완 시인은 지시엔(紀弦), 뤄푸(洛夫), 야시엔( 弦), 상친(商禽), 쩡치우위(鄭愁予), 저우멍디에(周夢蝶), 양무(楊牧), 뤄칭(羅靑), 천이쯔(陳義芝), 샹양(向陽), 양쩌(楊澤)와 샤위(夏宇)이다. 그는 이 시인들의 우수한 작품들은 이미 세계문단의 영역에 들어갔다고 본다. 바깥 인사들은 가오싱지엔이 상을 받은 뒤 분명히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중국작가에게 상을 받을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자신을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면서, 가오싱지엔이 사실상 중국문학(華文文學)이 바깥으로 나가는 한 길을 개척했으므로 그리 오래기다리지 않고도 또 다시 중국작가(華文作家) 가운데서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피력했다.(끝)
* 이 글에 나오는 華文文學과 華文作家를 일반인에게 익숙한 용어인 중국문학과 중국작가로 각각 옮겼는데, 사실상 원문에서 보여주는 것은 지리적으로 중국대륙에서 성행하는 문학이나 중국대륙 안에서 활동하는 작가에 한정하지 않고, 중국어(中國語, 漢語 혹은 華語)로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와 그 작품을 가리키므로, 이는 지리적인 것인 물론이려니와 정치적 그리고 국적인 것에도 제한 받지 않는 것이다.
**참고로 200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지엔(高行健)은 1940년 1월4일 중국 쟝시(江西)에서 출생하였고, 1988년에 정치적 망명자의 신분으로 프랑스 파리에 거주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그의 국적은 프랑스로 되어있다. 그는 소설과 희곡을 쓰는 것 이외에도 소설에 관한 이론서도 출판하였고, 이 달 초순에는 타이뻬이(台北)에서 미학평론서인 링이쫑메이쉬에( 一種美學)를 타이뻬이 리엔징추빤꽁쓰(台北 聯經出版公司)에서 출판한다. 그 밖에 그는 개성 있는 수묵화(水墨畵)를 그리는 화가이기도 하여 지금까지 세계각국에서 약 30여회의 수묵화 전시회를 가졌고, 호평을 받았다. 그는 말하기를, 시각(視覺)과 언어(語文)는 둘 다 각기 다른 창조의 수단인데, 언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때, 비로소 그림을 그리며, 그 때 주제를 배척하는 순수회화를 그려서, 형상(形象) 스스로 말하게 한다고 한다.
***이 글은 타이완의 유력 일간지 리엔허빠오(聯合報) 기자 쩌우메이훼이(周美惠)가 취재하여 그 신문 2월3일자 14 쪽 문화면에 실린 기사임(양재오 번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