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오싱지엔(高行健)의 냉담한문학

2001. 2. 2. 오후 4:44:54

글자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오싱지엔(高行健)의 타이완 방문에 부치는 몇 가지 단상: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오싱지엔(高行健,1940년1월4일 중국 쟝시(江西)에서 태어남)이 홍콩을 거쳐서 어제(2월1일) 타이완에 왔다. 홍콩 방문 때 그곳 문화 예술계 인사들로부터는 환영을 받았지만, 홍콩의 관방은 중국 당국의 눈치를 의식하여 그를 냉담하게 대하였다(이것은 홍콩이 문자 그대로의 완전한 자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홍콩이 비록 향후 50년간(지난 1997년 7월 1일 중국 본토에 귀속되었으니, 사실 이제 47년 남은 셈)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로서 자치를 누리고 있다고는 하나, 음으로 양으로 중국 당국으로부터 이런 저런 간섭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외적으로 홍콩문화예술계에서 가오싱지엔을 초청할 때, 그것을 공개적으로 막을 명분은 없었지만, 이를 내내 불쾌하게 생각해 온 터였다. 왜냐하면 그는 일찍이 이른바 문화혁명 이후 창작의 자유를 찾아 그의 모국인 중국대륙을 떠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하자면, 중공(중화인민공화국) 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로 분류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당국자는 그동안 가오싱지엔의 노벨상 수상에 대하여서도 그것을 폄하하는 발언을 계속해왔다.

 

그는 일종의 망명자의 신분으로 프랑스에 정착하여, 그 곳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다가 지난 해 12월 7일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 노벨상 위원회가 수여하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 수상을 했을 때, 중국인(華人) 가오싱지엔은 중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가까운 일본에서도 이미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가 있었건만(1968년도의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와 1994년도의 오에 겐자부로(1935-)), 어떤 면에서 보면 동아시아의 종주국(?)답게 유구한 역사를 통해서 문학예술 방면에서도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을 비롯한 인근 국가에도 문화예술 방면에서도 많은 영향을 준 중국에서 가오싱지엔 이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가 없었다는 것은 여간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어떤 중국인들은 서양인들이 중국문학에 접근하고 그를 이해하기에는 중국어(漢語)가 너무 어려운 것이라고도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해 왔다. 글쎄, 아마 그것도 서방 일반 대중이 중국 문학을 이해하는데 큰 장애요인일 수 있겠다.

 

이 번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오싱지엔의 경우는 작가로서 그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우수한(?) 작품을 써왔다는 전제 이외에도 운(어쩌면 사람들이 흔히 일컫는 상복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노벨상 수상의 공신 가운데 큰 공신은 당연히 노벨문학상 심사위원 가운데 한 사람인 마위에란(馬悅然, Goran Malmqvist) 이라고 한다. 그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 노벨 문학상 심사위원 가운데 중국어(漢語)를 이해하는 유일한 원사(院士,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에 비교되는 지위)라고 한다. 그는 비단 중국어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동안 중국 현대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또한 자신이 직접 중국 당대(當代) 작가들이 쓴 작품을 엄선하여 번역을 하기도 하였다. 그가 가오싱지엔을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중국 대륙을 방문했을 때이다. 그 곳에서 상하이원쉬에(上海文學)라는 잡지에서 가오싱지엔이 쓴 단편 "제화공과 그의 딸(鞋匠和他的女兒)"을 보았다. 물론 그 당시 그는 가오싱지엔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었다. 단지, 그 단편을 보고는 반드시 번역하기로 마음먹고는 중국작가협회에 편지를 써서, 그곳을 통해서 가오싱지엔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가오싱지엔의 작품 가운데서 제일 번역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를테면,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언어 리우(流,flow)라고 한다. 그가 번역할 때 쓰는 방법의 하나는 반복해서 낭송하는 것이다. 낭송하는 가운데 작가의 숨소리를 듣고, 또 작가가 설정한 인물의 숨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이렇게 줄곧 그 숨소리의 흐름을 장악하고 나면, 번역작업이 거의 반은 끝났고, 남은 반은 타자치는 일뿐이라고 한다. 마위에란(馬悅然)이 또 말하기를, 이 번에 노벨상 수상작으로 뽑힌 링산(靈山,Soul Mountain)을 번역할 때, 그는 하루에 한 장을 번역해서 여든 하루만에 그 번역을 마쳤다고 한다. 물론 번역하기 이 전에 반복해서 그 원문을 읽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헤아리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제일 어려운 번역은 역시 가오싱지엔의 노벨상 수상 소감으로 쓴 "문학의 이유(文學的理由,The case for Literature)였다고 한다. 그것이 비록  일곱 페이지 밖에 안되지만 그것을 번역하는데, 무려 이레나 걸렸다고 한다. 그는 가오싱지엔의 모든 작품이 다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링산(靈山)과 가오싱지엔의 단편소설 및 희극(戱劇)을 편애한단다.  

 

노벨문학상과는 쉽게 인연(?)이 닿지 않은 한국의 문학풍토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꼭 노벨상과 관련짓지 않고도 우리의 사상과 정서, 우리의 숨결과 살아가는 모습을 다른 이웃 나라들과 나누는 매체 혹은 도구들이 많이 있지 않은가! 문학도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작품들도 간간이 외국어로 소개되는 줄은 알고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나라마다 문학의 인재를 발굴하고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를 격려하고, 그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여러 가지 시상제도가 있다. 우리 나라는 여러 가지 시상제도가 있는 줄로 안다. 그런데 그것들이 어떻게 잘 운영되는지 궁금하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이외에도, 사실 그를 능가하는 발군의 작가들이 아마 세계도처 꽤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되어 먹은 작가들이 다 그러하듯이 그들은 누구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스스로의 창작의 욕구를 억누를 수 없어 오늘도 자기의 작업실에서 창작의 열정을 사르고 있을 것이다. 소비주의(consumerism)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은 어떤 것이든 상품화와 연결 지어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상품가치가 없는 일은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하여 가오싱지엔이 그의 수상연설 때 인용했던 단문, 바로 십 년 전 그 자신이 7년에 걸쳐서 링산(靈山) 쓰기를 다 마치고 나서, 문학은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문(短文) 가운데 인용한 부분을 여기에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단지 일종의 정신상의 교류일 뿐이다. 서로 얼굴을 대면할 필요도 없고, 서로 왕래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작품을 통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문학은 인간의 활동에 있어서 여전히 없앨 수 없는 일종의 행위이다. 읽는 것과 쓰는 것 둘 다 모두 자발적이다(自覺自願). 그러므로 문학은 대중에 대하여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이렇게 본성을 회복한 문학은 냉담한 문학(冷的文學)이라고 불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존재는 단지 인간이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 밖의 일종의 순수한 정신활동이다. 이런 문학이 물론 오늘 시작된 것은 아니다. 다만 오직 과거의 주요한 정치세력과 사회습속(習俗)의 압력을 제압하고, 오늘날 여전히 소비사회의 상품가치관에 오염되는 것에 대항한다. 그리고 생존을 추구하고, 먼저 스스로 고독함을 달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작가가 만일 이와 같은 창작활동에 종사한다면, 분명히 살기가 곤란하다. 부득이 창작활동 이외의 다른 생계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학창작은 일종의 사치요, 정신적인 만족이라고 말할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냉담한 문학이 다행히도 출판되어서 세상에 전해질 수 있으니, 그것은 오직 작가와 그들의 친구들의 노력에 의거해서이다. 차오쉬에친(曹雪芹)과 카프카 모두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들의 작품은 생전에 출판할 수 없었으며, (그들이) 무슨 문학운동을 야기하였느니 혹은 사회의 저명인사(스타)가 되었느니 하고는 더더욱 말하지 말라. 이들의 작가 생활은 사회의 가장자리와 틈새에 자리했으며, 당시에 그 어떤 보상도 바랄 수 없는 정신활동에 전념하였고, 사회의 인정도 구하지 않았으며, 단지 스스로 하는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었을 뿐이다.

 

냉담한 문학은 일종의 도망하여 그 생존을 추구하는 문학이며, 일종의 사회가 억누르지 못하는 정신적으로 자기를 구하는 문학으로서, 한 민족이 만일 결국 이러한 일종의 비공리적(非功利的)인 문학을 용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작가 개인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그 민족의 비애임에 틀림없다."

 

 

이 인용문에 이어서 그는 "나는 뜻밖에 생전에 다행히도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The Royal Swedish Academy,瑞典皇家學院)가 주는 이러한 큰 영예와 상을 받게되었다. 이것은 세계 각지의 친구들이 여러 해 동안 내 작품을 대가도 바라지 않고, 또 수고도 마다 않고 번역, 출판, 연출과 평가를 해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라고 그의 수상 경위를 간략히 언급한다.

 

가오싱지엔이 여기서 언급한 이른바 냉담한 문학(冷的文學cold literature)에 대하여 다시한번 곰곰이 새겨 볼 일이다. 냉담한 문학은 세간의 흐름 가운데 자리하면서, 세간의 흐름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는, 그래서 세간에 대하여 말하면서도 세간의 흐름에 발목잡히지 않을 수 있는 일종의 중용(indifference)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탈속적으로 보이는 이 길을 가오싱지엔은 그 나름대로 걸어왔고, 또 그 길을 동료 문인들에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한 작가가 큰 상을 받았다고 하루 아침에 그의 삶의 방식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대로 굽힘없이 살아갈 것이라고 희망한다.    

 

이제 말을 줄여야 할 것 같다. 중국 본토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성장하고 활동하던 가오싱지엔이 "작가가 만일 사상의 자유를 얻기를 바란다면 침묵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도망을 해야한다"고 그의 수상연설 때 언급했듯이, 창작의 자유를 찾아 이국 땅 프랑스로 건너가 살더니, 이제 그가 스스로 마치 자기 고향 같다고 여기는 이 곳 타이완에 2주간의 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세 차례에 걸친 공개강연 행사 이외에 그의 이번 방문의 대부분 시간은 이 곳의 지인들을 만나는데 쓸 것이라고 한다. 텔레비젼에 비치는 기자회견 장의 그는 그저 평범한 지식인,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 모습 그대로이다. 아무쪼록 이 번 방문이 그에게 재충전의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덧붙이는 말, 2000년 노벨문학상으로 선정된 그의 장편소설 링산(靈山)은 이미 1990년 12월에 타이뻬이(台北) 리엔징(聯經)출판사에서 첫판을 냈고, 노벨상을 수상한 2000년 12월에는 그 첫판을 일곱 번 째 찍었다.(양재오 2001/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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