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과 타이완 천주교회

2000. 11. 2. 오후 1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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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과 타이완 천주교회

 

    금년은 한국외방선교회 창설25주년이되는 해이다. 한국외방선교회는 1990년 이래 타이완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회 선교사들이 선교하고 있는 타이완은 1626년(明 天啓6年) 스페인 선교사들이 당시 대륙 푸지엔성(福建省) 대목구(代牧區)에 속한 타이완(臺灣)의 지룽(基隆)과 딴수에이(淡水) 등지에 와서 처음으로 전교를 하기 시작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으나, 1642년 네델란드인들이 그 곳을 점령한 뒤, 그들은 모두 잡혀서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Batavia)로 이송되었다. 그 뒤, 1859년 5월18일 스페인 출신 도밍고 수도회 회원들이 필리핀으로부터 샤먼(厦門,Amoy)을 거쳐서 까오슝(高雄)에 와서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오늘날 볼 수 있는 타이완천주교회의 교세성장의 틀은 사실상 1949년 공산당에 밀려 대륙수복의 꿈을 안고 국민당 정부와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온 대륙출신 사제, 수도자들과 선교사들에 의하여 마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타이완 천주교회는 모두 7개의 교구로 나뉘어져있다(1개의 대교구와 6개의 교구). 그러면 아래에서는 타이완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더불어 타이완 천주교회에 대하여 소묘해 보고자 한다.

 

사회문화배경: 타이완의 원래 이름은 포르모사(Formosa,福爾摩沙), 면적은 대략 한국의 경상남북도 크기에 인구는 약 2천300백 만명, 그 가운데 원주민이 100분의 2이고 그 외에 300년 전부터 서로 다른 시기에 대륙 각 지역에서 넘어온 한족(漢族)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른바 바깥 성 사람(外省人)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타이완 전체인구의 100분의 13으로, 그들은 1949년 공산당이 중국대륙을 점령할 때, 타이완으로 건너온 사람들이다. 현재 타이완은 경제, 정치 및 사회 각 방면에 걸쳐서 급속한 전환기에 처해있다. 경제 방면에서 타이완은 매년 성장률 100분의 6에서 7에 달하고 있으며, 공업형태도 점차 첨단화 되어가고 있어서, 세계적인 첨단 산업국가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현상들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예를 들면, 급속한 도시화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들과 환경오염 현상은 말할 나위 없고, 가정 파괴와 청소년 범죄의 상승, 그리고 마약 사범의 증가 현상  등이 그 것이다. 게다가 타이완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국내 노동자 문제와 외국 노동자 문제, 고령화에 따른 노인복지와 장애인 복지 및 원주민의 생활향상 등이다.

 

     정치방면에 있어서, 국민당 정권 아래서 겪은 긴 계엄정치를 끝낸 뒤,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타이완의 민주화는 상승 발전의 과정에 있으며, 다당제 아래서 정당정치도 그 꼴을 잡아가고 있다. 국가 원수인 총통도 직선제로 치러지는가 하면, 점차 복지국가를 지향해 가고 있다. 현재 타이완에서 첫째 가는 정치적 의제는 타이완과 중국 대륙과의 관계이다. 즉, 타이완 독립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대륙과 통일의 길로 갈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의제일 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의제이기도 하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편으로 강권 통치 아래서 모든 경향은 통일의 추세로 나아가도록 유도되었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타이완의 특수한 역사와 문화 배경이 소홀이 취급되었다. 현재, 타이완은 중국 전통 문화 안에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

 

타이완의 천주교회: 현재 타이완 교회도 마찬가지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곤경에 처해있다. 30만 교우 가운데서 3분의 1이 원주민, 반이 이른바 와이성런(外省人), 그 나머지가 타이완 본토인이다.  성직자는 주교를 포함하여 대다수가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이고, 그 가운데서 또 반은 외국인이다. 일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나름의 토착화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도 서양교회의 면모를 일신하지 못하고 있는 타이완 천주교회는 타이완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 확립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어떻게 하여야 타이완의 발전을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타이완 천주교회의 선교에 대한 노력은 성직자들의 고령화로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대다수의 사제들이 1950년대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한 뒤 국민당 정부와 함께 타이완으로 넘어왔다. 당시 젊고 왕성한 사제들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나이 들고, 게다가 타이완 본토의 성소자가 절대 부족하니, 지금까지 그들이 했던 일마저도 계승할 후보자가 없는 형편인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이제는 외국으로부터 오는 선교사들도 점차 감소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교우들 대다수도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영세 받은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들이 그 동안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었다가 근래에 들어서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의 대사회적인 분야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그런대, 급변하는 전환기를 맞이하여 교회가 발전하기가 쉽지않고, 교회가 일반 대만인들에게 의미있는 표지로서의 역할을 다하기가 쉽지않다. 50년, 60년대에 세례받은 교우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교우수도 더 늘어나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아마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선교방법을 적용할 때, 아마 이 사회와 교회 안에 충만한 희망의 표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양산 해 낸 물질 지상주의에 젖어있는 사회는 많은 폐단을 낳고 있다. 이 점에서 타이완도 예외가 아니다. 타이완 정부도 점차 이 점에 대하여 각성하기 시작하였으니, 전임 총통은 비록 구체적인 실천강령은 미흡하여 구호에 그치고 말았긴 했지만, 마음의 개혁(心靈改革)의 필요성 제기하고 그 운동을 제창했었다. 어떤 점에서 타이완 정부는 교회가 사회정신개혁 방면, 특별히 젊은이들에 대하여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본다. 개개의 교회는 모두 이러한 개혁에 참여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예컨대, 감옥의 수인들 방문하는 일, 학교에 종교를 소개하기 위한 교재를 편집하는 일, 그리고 각 대학에 종교학과를 개설하는 문제의 검토, 이와 같은 것이 자그마하나마 이 사회 안에서 선교에 임하는 교회의 새로운 희망의 표지가 아닌가 한다. 타이완의 경제능력이 신장 된 뒤,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들이 추구해 왔던 물질의 가치와는 어떤 점에서 대당되는 정신의 가치에 점차 주목하게 되었으니, 이런 현상은 비단 불교와 신흥종교 운동에서는 말할 나위 없고,  그리스도교에서도 그러한 일면을 보게 된다. 타이완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편견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교회 안에는 이 사회가 당면한 의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도록 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으며, 아시아의 영성도 주목을 받고 그 나름으로 발전한 바도 있다. 교우들도 일종의 민간 천주교의 방식으로 자기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애써 타이완 교회의 미래한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2000.11.2  타이완 신쭈교구 신펑본당에서 양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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