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읽고 응답하라

2004. 9. 14. 오후 3:05:49

글자

  어느 신자가 우리 본당으로 이사를 왔다. 전 본당에서는 여러 가지 교회활동을 하였지만, 새 본당에는 아는 사

람도 없고 자기 시간도 갖고 싶어 활동을 중단하려고 마음먹었다. 주일미사 참여만 잘하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성당에 갔다. 참회예절 직전에 주례사제는 그날 독서 한 구절을 설명하고 모두 반복하라고 하였다.“나에게 능력

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필립 4,13). 조용히 쉬려고 맘먹었던 신자는 깜짝

놀랐다. 자기 마음을 꿰뚫어 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얼마 후 신부의 가정방문 때에 이 깨달음을 실토하였

다.

 

  듣고 읽고 응답하라

  방탕한 생활에 빠졌던 성 아우구스티노가 회계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어떤 어린이의 소리가 연거푸 들렸

다.“잡아라. 읽어라.”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였다.“그것은 성서를 펴놓고 최초로 눈에 띈 장을 읽으

라는 하느님의 명령임에 틀림없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

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로마 13,13). “나는 그 이상 읽으려 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모든 의

혹의 어둠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고백록, 12장).

 

  말씀 전례란 무엇인가. 가장 쉽게 대답한다면 잘 듣고, 잘 읽고, 잘 응답하는 예절이다. 신앙은 들음에서 온다

(로마 10, 17 참조).“들어라.”하고 예언자 아모스와 예레미야가 외쳤고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다(마르 4, 3).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가 2, 19).예수님은“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

람들은 행복하다.”(루가 1,28)고 하셨다. 사람들은 하느님께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경건하게 하느님 뜻을 실행하는 자들의 말을 들으신다.

 

  귀머거리, 반벙어리 신자들

 

“말씀 전례 중 중요한 부분은 성서의 독서들과 그 사이에 외는 시구이다. 강론, 신앙고백, 보편 지향 기도는 말

씀 전례를 더 깊이 설명하고 끝맺는다”(미사경본 총지침, 33항).  독서는 단순히 성서를 읽는 것이 아니고 하느

님 말씀의 전달이며 강론은 현실생활에 적응하도록 호소하는 하느님 말씀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 말씀 속에 하

느님께서 현존하시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들려주심으로써 신자들 가운데 현존하신다. 또한 하느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치유, 구마, 부활 등 능력을 발하였듯이 성서 말씀은 우리를 구

원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어떤 신자들은 말씀 전례 중 성서봉독이 끝나고 강론을 듣기 위하여 자리에 앉자마자 졸거나 분심잡념

에 빠진다. 조는 사람의 귀는 들리지 않고 입은 벙어리가 되며 마음은 완악해진다. 사도행전(20.9)에는 유디코

라는 청년이 나온다. 주의 만찬을 나누려고 신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바오로 사도는 밤이 깊도록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일종의 강론이었다. 창문에 걸터앉아 있던 유디코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 삼층에서 땅

으로 떨어졌다.

 

듣지 않는 자는 귀머거리 신자요, 읽지 않는 자는 벙어리 신자이며 응답하지 않는 자는 재판받을 신자이다. 인

간은 경청하기를 싫어하는 데 이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호소에 귀머거리가 되고 그의 귀와 마

음은 할례를 받지 않았다(사도 7,51 참조). 예수님의 기적이란 귀먹은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깨닫고 복종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마태 17,5 참조). 바오로 사도는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

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마음을 드러냅니다.”(히브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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