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봉독
말씀 전례의 정점은 복음 봉독이다. 그래서 복음서에 최대의 경의를 표시하도록 되어 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
회를 불문하고 복음서 책자를 호화롭게 장정하였고 미사의 시작 예식 때 부제나 사제가 정중히 손에 들고 가서
제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귀빈을 모시고 모인 신자들 가운데로 행진하는 것과 같다. 복음서는 말씀에 현존
하시는 주님이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유다인의 왕’처럼 환영받는 주님이시다. 신자들은 모두 일어서서
인사와 환호를 보내며 분향과 촛불로 경의를 표한다. 복음은 부제나 사제가 봉독하고 강복을 주며 준비 기도와
십자표시, 봉독 후의 입맞춤(우리나라는 목례) 그리고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로써 복음 선포가 끝났음을 표
현한다.
부제는 복음 선포 전에 사제 앞에 나아가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축복하여 주십시오.” 하고 청원한다.
이때 주례사제는 손으로 십자 강복을 하며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어 그대가 복음을
합당하고 충실하게 선포하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면 부제는 “아멘” 하고 대답한다. 그
리고 주례자가 직접 복음을 읽을 때엔 이렇게 기도한다. “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을 깨끗하게 하시어 합
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 복음 봉독 전 이마에 작은 십자표를 한 것은 9세기부터이다. 그 후 점
차 가슴과 입술, 그리고 복음서에도 십자표시를 하게 되었다. 이마는 머리의 중심으로 복음 말씀을 잘 깨닫고,
입으로는 깨달은 바를 전파 또는 고백하며, 가슴속 깊이 간직하여 생활 속에 실현하려는 의지의 표시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기대를 걸고 들어라. 회개, 치유, 원의, 사랑, 체험, 희망을 걸고 들은 후 화
답하여라. 기대한 만큼 이루어진다.
말씀의 영성체
교부(敎父)들은 그리스도께서 말씀 전례 중에 특히 복음 말씀 안에 현존하시고 구원활동을 계속하신다고 보았
기 때문에 성체 안에 계심과 마찬가지로 여겼다. 초대교회 성서학자인 오리게네스는 “하느님 말씀의 살을 먹는
신자들은 날마다 어린양의 살을 먹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교회는 주일마다 아니 날마다 성당에서 식탁을 차려
놓고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고 하느님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주고 있다. 말씀의 빵을 받을 적에 ‘말씀의
영성체’를 행한 것이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과거에 소홀하였던 말씀의 식탁을 풍부하게 채웠다. 전례헌장(51항)은 이렇게 권고
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의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도록 신자들에게 성경의 보고(寶庫)를 널리 개방하여, 성서의
중요한 부분을 일정한 연수(年數)내에 회중들에게 낭독해 주어야 한다.”
말씀을 듣는 우리 신자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한 주간 동안 성서를 몇 줄이나 읽었는가? 우리는 모두 현대인이
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래서 날마다 규칙적으로 참을성 있게 텔레비전과 라디오 앞에서 깜짝 놀랄 소식이나 흥
미로운 연속극을 두 시간 이상 보고 있다. 그런데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듣고 간직하는 데
는 너무도 인색하지 않은지 반성해 보라.
복음은 바로 예수님이시다.(마르 1,1 참조). 복음에 대한 응답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
는다. 복음을 통한 믿음은 또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준다(로마 1,17). 복음은 결국 결단을 요구한다. 이
구원의 기쁜 소식,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사람은 도처에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듣고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
이다. “내 말을 들으시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개종한 사람은 삼천 명이나 되었다(사도 2.22.41 참
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