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광송
“우리 신부님은 노래를 참 잘하신다.”또는“우리 본당신부님은 음치다.”신부에 대한 본당 신자들의 이런 평가는
주로 장엄미사 때에 사제가 선창하는 대영광송의 첫 구절에서 판명된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힘
있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제의 선창이 성당 안에 울려 퍼질 때에 신자들의 마음은 한층 더 고양되고 찬미와 기
쁨의 노래에 심취하게 된다.
어떤 신자는 ‘대영광송’을 노래하고 듣기 위하여 미사에 참여할 만큼 큰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대부분 신자들
은 그저 음악이 좋아서 함께 부른다. 그러나 이 음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더 잘 파악하고 음미한다면 사람에 따
라 말로 형언하지 못할 기쁨과 감명이 따를 것이다.
영광이란 말
어떤 졸부의 이야기다. 갑자기 땅값이 올라 몇 억 원을 받고 토지를 매각하였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
게 찬양하였다. 영광을 독차지한 기분으로 아버지는 자손들에게 돈을 모두 분배해 주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
은 세금통지서가 날아왔다. 그것도 수천만원이나 되었다. 세무서에 가는 도중에도 세금이 너무 많고 또 다 내기
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앞을 가렸다. 돈 생각에 정신없이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그는 죽고 말았다.
구약성서의 아브라함은‘가죽과 은과 금’
(창세기 13,2참조)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매우 영광스럽다고 일컬어졌다. 영광은 사회적인 높은 지위나 귄위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그중에도 왕권은 전형적인 영광이었다. 그래서 솔로몬은“어느 왕과도 비교가 안될 만큼 부
귀와 영광”(1열왕 3,9-14)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렇게 어떤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존경을 받게 되는데 히브리인들이 사용한 영광이란 단어(카보드:kabod,
그리스어 doxa, 라틴어 gloria)는 중요성의 무게에 중점을 두었다. 즉 영광이란 기치로서가 아니고 무게로 측정
되었다.
반면 구약성서는 인간적인 영광이란 덧없고 허무한 일로 여겼다.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시편에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누가 부자가 되었다 해도, 그 가문이 명성을 떨친다 해도, 너는 시새우지 말아라. 죽으면 재산을 가
져가지 못하고 명예도 따라 내려가지 못한다”(49,16-17).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영화를 주겠다고 하였다. 예수께서는“사탄아, 물러가라!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4,8-10) 고 대답하셨다.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스도는 “영광의 주님”(1고린 2,8)이시다.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은“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
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다”(히브 1,3).
예수님의 영광을 세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는 종말의 영광이다.“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것이다”(마르 8,38). 신약성서는“위대하신 하느님이시오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
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날 것”(디도2,13-14)과“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영광”(1베드 5,10)을 지향하고 있다.
둘째는 부활의 영광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바로 부활과 승천의 영광을 차지하기(루가 24,26참조)위
한 것이었다. 이런 영광은“아버지께서 천지 창조 이전부터”(요한 17,24) 마련하신 것이다.
셋째는 탄생과 복음과 수난의 영광이다. 예수의 생애, 선교활동, 죽음은 영광의 표징이다. 예수 탄생 때 주님
의 영광스런 빛이 목자들을 에워쌌다(루가 2,9참조). 이런 영광은 예수님의 세례, 거룩한 변모, 기적, 말씀, 죽
음에서도 드러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이야 말로 앞에서 말한‘영광의 주님’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