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27일 목요일(그레고리오)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마르9,41-50)
제1독서<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마라.>(집회5,1-8)
1 재산을 믿지 말고 “넉넉하다.”고 말하지 마라.
2 너 자신과 네 힘을 붙좇지 말고 마음의 욕망을 따르지 마라.
3 “누가 나를 억누르리오?” 하고 말하지 마라. 주님께서 기필코 징벌하시리라.
4 “죄를 지었어도 내게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분노에 더디시기 때문이다.
5 속죄를 과신하지 마라. 죄에 죄를 쌓을 뿐이다.
6 “그분의 인자함이 크시니 수많은 내 죄악이 속죄받으리라.”고 말하지 마라. 정녕 자비도 분노도 다 그분께 있고 그분의 진노가 죄인들 위에 머무르리라.
7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말고 하루하루 늦추려 하지 마라. 정녕 주님의 분노가 갑자기 들이닥쳐 너는 징벌의 날에 완전히 망하리라.
8 부정한 재산을 믿지 마라. 정녕 재난의 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
<화답송>시편1,1-2.3.4와 6(◎40,5ㄱㄴ)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
복음<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마르9,41-5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44)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46)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제1독서(집회5,1~8)
"재산을 믿지 말고,"넉넉하다."고 말하지 마라. 너 자신과 네 힘을 붙좇지 말고, 마음의 욕망을 따르지 마라."(1~2)
"부정한 재산을 믿지 마라. 정녕 재난의 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8)
오늘 독서 말씀 집회서 5장 1~8절은 집회서 4장 20절에서 6장 17절 까지 '인생의 가치'라는 주제로 전개되는 말씀 중의 일부이다.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믿고,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죄를 짖는 자들이 하느님께서 자비하시고 분노에 더디시니~ 운운하면서 전혀 회개를 서두르지 않을 때,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의 의노로 징벌이 내림을 경고하고 있다.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 대전에 올바른 양심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따라 죄짓는 생활을 삼가할 것을 명하고 있다.
오늘 독서 말씀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복음이 루카 복음 12장 16~21절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말씀이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루카12,20)는 청천벽력같은 말씀이 내린다.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이렇게 해야지.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루카 12,17.18.19참조)
이처럼 가진 자들은 한도 끝도 없는 자신의 마음의 욕망을 펼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 서간 4장 13~17절과 5장 1~6절에서 자만하지 말 것과 부자들에 대한 경고를 주고 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 저런 일을 할 것이다."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야고4,14~16)
복음적 권고의 하나인 청빈(淸貧)은 '맑을 청(淸)'과 '가난할 빈(貧)'의 합성어로서 '맑은 가난'을 말한다.
그런데 '빈(貧)'을 보면 '나눌 분(分)'과 '조개 패(貝)'의 합성어로 '가지고 있는 화폐를 나눈다'는 뜻이다.
그러나 '탐욕(貪慾)'의 '탐낼 탐(貪)'을 보면, '이제 금(今)'과 '조개 패(貝)'의 합성어로서 '지금 화폐를 움켜잡는' 것을 의미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우리 인생 살이~~ 주님의 생명의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주님 대전에 주님이 주신이 주신 것을 잘 관리하고 보존할 뿐 아니라 주님의 영광과 교회와 이웃의 공동선을 위해서 주님 대신에 재화를 잘 쓸 줄 아는 착하고 충실한 관리인이 되어 하늘에 썩지 않는 보화를 차곡 차곡 쌓아 가라는 말씀으로 오늘의 집회서 말씀을 실천하면 좋겠다.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오늘 복음과 독서의 표현들은 꽤 위협적이고 과격합니다.
‘죄를 짓게 하는 요소’를 없애라는 표현을 “잘라 버려라.”, “빼 던져 버려라.” 등으로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말 ‘아포콥토’(자르다)는 무엇인가를 잘라 내어 없어지게 하는 행위를 일컫고, ‘에크발로’(-로부터 빼내서 던지다) 또한 무엇인가를 멀리 던져서 주변에 존재하기 않게 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모두 점진적 과정이나 단계와는 다른 ‘급진’과 ‘극단’을 부각시킵니다.
악의 요소를 단호하게 끊어 내고 분리시키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소모적이고 무모한 시간 낭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영성 생활에서 만나는 뜻밖의 복병은 나날의 작고 사사로운 변화입니다.
엄청난 비극과 급작스러운 불행에는 꺾이지 않는 강한 힘으로 용감히 대처하면서도 “소금”처럼 자잘한 일상의 습관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소하고 평범한 습관쯤이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다고 착각하고, 그렇게 스스로 속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에서는 손, 발, 눈 등 일상의 행동과 연결된 신체 부위를 말하며 그러한 사소함과 평범함이야말로 우리를 악에 노출시키는 의외의 도구임을 경고합니다.
적당한 선행이나 기도만으로 삶과 신앙이 저절로 깊어지지 않습니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죄의 도구로 쓰이는 손과 발, 눈을 조심하는 데에 단호한 결단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어느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단호히 맞설 필요가 있습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걸려 넘어지지 마라
반영억라파엘신부
“행동을 통해서 수확하는 것은 습관이고, 습관을 심어 수확하는 것은 성격이며 성격을 심어 수확하는 것은 운명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듭니다.”그러니 좋은 습관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습관은 덕이 되고, 좋지 않은 습관은 그야말로 악습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악한 표양으로 남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9,4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작은 이들이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제자들, 제자들과 제자들 사이에서 이간질하거나 추종의 길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그릇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이 약한 사람을 죄짓게 하여 신앙을 저버리게 한다면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네 발이 너를 죄를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마르9,45-47). 이렇게 섬뜩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의‘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악한 행동은 절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섬김의 자세로 살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행동으로 다른 이들을 신앙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되어서 버려질 뿐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절대로 죄의 유혹에 걸려 넘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신앙이 여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된 신앙인의 삶보다는 무늬만 신앙인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환경은 좋아졌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정도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환경과 여건, 처지가 어려웠지만 믿음의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세상 안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이 너무도 많기에 마음이 흔들리고 심지어 신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늘어만 갑니다. 세상에 타협하면 주님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은 한 순간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4,18). 그러므로 영원한 것을 잡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9,41-50).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주님께서는“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소금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와 땀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매 순간 단호한 결단이 요구됩니다.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것을 주고자 하십니다. 영원한 것을! 일상 안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시길”(에페5,10).빕니다. 사랑합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 마다 소금의 위력을 새삼 실감합니다. 벌써 일주일째 소금간이 제대로 되지 않은 밋밋한 음식을 먹으니 살맛이 안날 정도입니다. 먹는 재미가 사라져버리니 삶이 시들시들합니다. 머릿속은 온통 매콤짭짤한 골뱅이 무침이며, 고등어조림, 김치찌개 등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으로 지당한 말씀을 하십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소금의 존재 이유는 짠맛을 내는 것입니다. 짠맛이 사라져버린 소금은 한 마디로 무용지물입니다. 그것을 대체 어디에 쓰겠습니까? 아무 쓸데없는 짠맛 잃은 소금을 어딘가 저장해두는 것도 웃깁니다. 어딘가 쌓아놓는 것도 이상합니다. 볼 때 마다 짜증이 날 것입니다. 트럭에 실어 황무지나 계곡에 갖다버릴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 묵상하고 있노라니 덜컥 겁이 납니다. 자주 우리는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무의미한 삶을 살아갑니다. 삶이 충만하고 신명나야 하는데, 그저 물에 물탄 듯 아무런 재미도 의미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시는 짠맛을 잃은 소금 같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한 그리스도인 안에 반드시 들어있어야 할 알맹이요 핵심,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짠맛을 상실한 소금 같은 존재입니다.
한 교육자의 마음 안에는 제자들의 성장을 돕고자 하는 열정과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들의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사랑과 헌신의 마음으로 가득 차있어야 하는데, 그 대신 무기력과 냉랭함과 무관심으로 가득하다면 그는 짠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한 사목자의 삶 안에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할 복음전파를 향한 사목적 열정과 양떼를 향한 측은지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명예나 부, 권력, 안락한 생활에만 몰두한다면 그는 짠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우리 영혼을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비워내야겠습니다. 비워진 내면을 빛나는 보석으로 가득 채워나가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음식의 맛을 돋우는 소금 같은 인생, 누구나 환영하는 맛 갈진 양념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딱딱한 회의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시는 인도 신부님이 잠 깨우기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로마에 온 관광객이 운전기사에게 묻습니다. 저기 저 교회는 무슨 교회인가요? 최근에 들어온 교회인데 이름 이 '하나이신 하나님의 교회'의 교회입니다.
그 옆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저건요?" "저건 요즘 사람들이 많이 가는 오순절 교회입니다."
"그 옆은요?" "저 교회는 제 칠일 안식일 교회입니다."
"그 옆에 제일 큰 건물은요?" "육 일간 무신론자 교회입니다."
"뭐 그런 교회가 다 있나요?" "그 교회는 바로 천주교회입니다."
일주일 가운데 엿새 동안은 무신론자로 지내다가 하루만 그리스도인으로 지내는 사람들을 빗댄 뼈있는 농담이네요.
소금 같은 그리스도인, 참 그리스도인은 육 일간 무신론자, 하루만 신자가 아니라 일주일 내내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겠지요.
2025년 02월 27일 목요일(그레고리오)
[연중 제7주간 목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복음에서는 작은 이에 대한 예수님의 각별한 관심이 두드러집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큰 사랑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며 작은 이를 죄짓게 한 사람은 혹독한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이 내용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였다가는 세상에 성한 육신을 가진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뜻은 그만큼 죄를 두려워하라는 것이고 육신의 지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죄를 부추기는 원인들, 곧 탐욕, 허영, 교만, 이기심 등을 잘라 내라는 뜻일 것입니다.
어떤 교부는 시각(視覺)의 마차에 올라탄 우리의 생각을 하느님 사랑을 향하여 몰고 가야 한다고, 육적인 시선을 마음의 판단에 복종시키라고 권고합니다.
다른 모든 감각보다도 특히 시각은 범죄 영상물까지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영상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 각별히 절제해야 할 감각입니다.
절제의 덕은 우리에게 죄에 대한 식별력을 길러 줍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절제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시궁창과 그 얼룩을 잘 알지만 죄악에 빠진 사람은 자기 병세의 심각성조차 깨닫지 못하고 시궁창에서도 향유 냄새가 나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오늘 독서인 집회서가 경고하듯 눈앞의 현실에 몰두하여 주님의 자비와 인내를 과신하거나 남용하지 말고 죄의 무서움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지켜 주는 절제 안에서 서로 평화롭게 지내려면 마음에 소금을 간직해야 하는데,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 소금이 바로 하느님 말씀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02월 27일 목요일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먼저 받아야(알아야) 할 수 있다.
복음(마르9,41-50)
4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 물은 말씀을 뜻하며, 그 말씀을 먹은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그리스도의 지체로 받아들여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하늘의 복(償)을 받는 것까지 묵상 했다. 곧 큰 계명의 실천인 이웃 사랑이다.
(1요한5,1-6)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 사랑은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의로운 의무라 했다. 곧 내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늘의 용서, 자유, 거룩한 생명을 구원 받았다면, 다른 하느님의 자녀인 이웃들에게도 그 구원의 복음을 전해서 살게 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큰 계명을 지키는 실천이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 세상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적대하며 그리스도의 대속, 그 의로 얻는 하늘의 복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믿기에 하늘의 용서, 구원, 그 복을 거저 받는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 물은 생명수인 말씀을, 피는 대속인 피의 새 계약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말씀이다. 그 새 계약의 말씀이 구원의 진리임을 진리의 성령께서 증언하신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이 성령의 증언, 자유의 법을 믿지 못하고 율법(제사와 윤리)에 묶여 신앙을 무거운 짐으로 지고 힘들게 살고 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할 뿐, 자유, 구원을 줄 수 없기에(로마3,20) 이웃에게 율법 신앙을 주는 것은 죄를 짓게 해 죽이는 것이다.(로마10,1-4)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44)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46)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 말씀을 법으로 보고 행한 눈과 손, 발을 곧 ‘나의 율법의 행위를 잘라 던져버리라’ 하시는 것이다. ‘잘라 버려라, 던져 버려라’는 말은 할례, 세례의 단어다.
그러니까 율법의 제사와 윤리를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義)를 위한 신앙을 잘라 던져버리고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용서, 구원의 진리,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하늘을 살라는 것이다.
(히브10,19-20)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하늘)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0 그분께서는 그 휘장을 관통하는 *새롭고도 *살아 있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곧 당신의 몸을 통하여 그리해 주셨습니다.
= 하늘 길, 문을 가로 막고 있던 휘장을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으로 찢으셨다.(마르15,37-38) 그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이다. 곧 소금 같이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구원의 계약인 것이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 잃지 않고 믿음으로 간직했을 때 짠맛, 곧 용서로 다시 살아나는 구원이다. *간직하고- 율법에 흔들려 밖으로 흘리지 말고 마음에 지키면 하늘의 평화를 얻는다. 그 것이 실행(킵)이다. *킵- 밖으로 흘리지 않고 안에 지키다.
(민수18,19) 19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거룩한 예물들은 모두, 영원한 규정(계명)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
(2역대13,5) 5 너희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소금 계약으로, 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권을 영원히 주신 것을 알지 않느냐?
(2열왕2,19) 19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어르신께서 보시다시피 이 성읍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빠서 이 땅이 생산력을 잃어버렸습니다.”
= 좋은 곳, 성당(교회)은 다니나 하늘의 물,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못해 생산력, 곧 하늘의 생명을 얻는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2열왕2,20-22) 20 이 말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소금을 가져오자, 21 엘리사는 물이 나오는 곳에 가서 거기에 *소금을 뿌리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되살렸으니, 이제 다시는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생산력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22 그러자 그 물은 엘리사가 한 말대로 되살아나서 오늘에 이르렀다.
= 구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되살아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피의 새 계약이다.
(골로4,6) 6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누구에게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 소금으로 맛을 내야한다.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새롭고 살아있는 길로, 구원의 진리로 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 하늘의 평화를 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먼저 말씀으로 새롭고 살아있는 길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피의 새 계약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을 피의 새 계약으로 주지 못하고,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으로 준다면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하늘의 생명을 잃는, 서로(피차) 영원한 죽음에 갇히게 되는 큰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을 부자로 비유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성령의 눈과 귀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 소금 계약을 진리로 믿고 행(전)하는 손과 발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서로 하늘의 용서, 자유를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