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25일 화요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 꼴찌가 되어야 한다. (마르9,30-37)
제1독서<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집회2,1-11)
1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2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3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
4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5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6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7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8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을 믿어라. 너희 상급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
9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그분의 보상은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이다.
10 지난 세대를 살펴보아라. 누가 주님을 믿고서 부끄러운 일을 당한 적이 있느냐? 누가 그분을 경외하면서 지내다가 버림받은 적이 있느냐? 누가 주님께 부르짖는데 소홀히 하신 적이 있느냐?
11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 주신다.
<화답송>시편37,3-4.18-19.27-28.39-40(◎5) ◎ 주님께 네 길을 맡겨라. 그분이 몸소 해 주시리라.
○ 주님을 믿으며 좋은 일 하고, 이 땅에 살며 신의를 지켜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네 마음이 청하는 대로 주시리라. ◎
○ 주님이 흠 없는 이들의 삶을 아시니, 그들의 소유는 길이길이 남으리라. 환난의 때에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기근이 닥쳐와도 굶주리지 않으리라. ◎
○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여라. 그러면 너는 길이 살리라. 주님은 올바른 것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 버리지 않으신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받지만, 악인의 자손은 멸망하리라. ◎
○ 의인들의 구원은 주님에게서 오고, 그분은 어려울 때 피신처가 되신다. 의인들이 주님께 몸을 숨겼으니, 그분은 그들을 도와 구하시고, 악인에게서 빼내 구원하시리라. ◎
복음<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마르9,30-37)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제1독서(집회2,1~11)
집회서 1장 14절에서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라고 했다. 여기서 '경외함'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라 어른을 삼가 공경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말한다.
오늘 집회서 2장 1~11절 말씀은 모든 지혜의 기초요, 시작인 <주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전제 조건이요, 필연적 통과 과정인 시련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으며, 그 시련을 겪을 때 어떤 삶의 자세와 태도를 취해야 할지를 계시해 준다.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을 믿어라,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집회2,1~7)
거룩하신 주님을 경외하는 인간들이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아담과 하와의 인간성의 찌꺼기와 본성적인 요소들이 걸러져야 하기 때문에 시련을 통한 정화의 작업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 단련의 과정이 인간 본성에 반하기 때문에 상당히 아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워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고 붙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동시에 그럴 때 마지막에는 번창하며(3절)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인 선물이 보상으로 주어진다(9절)고 말한다.
오늘 집회서 말씀은 신약의 야고보 서간 1장 2절이하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야고1,3)
먼저 여기서 '시험'으로 번역된 '도키미온'(dokimion)은 마치 금, 은을 뜨거운 불 속에 넣고 녹여 그 진위를 시험하듯이믿음의 진위를 입증하거나 시험하는 단련(연단)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야고보 서간 1장 3절과 베드로 전서 1장 7절에만 나타난다.
즉 야고보서 1장 3절에서 이 단어는 시험 곧 단련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진위를 테스트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성도의 삶에 있어서 이것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되풀이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반복적으로 닥치는 믿음에서의 시련은 그것을 겪는 그리스도인에게 '인내'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한다.
여기서 '인내'로 번역된 '휘포모넨'(hypomonen)의 원형 '휘포모네'(hypomone)는 '~아래에' 란 뜻의 전치사 '휘포'(hypo)와 '머물다'(마태10,11)란 뜻의 동사 '메노'(men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문자적으로는 어떤 상황아래 흔들림없이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서 '확고부동', '복지부동', '항구성'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큰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휘포모네'의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경건을 충실하게 지켜나간다.
결론적으로 여러가지 시련을 기쁨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이유는 시험이 인내를 만들어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자세를 온전히 구비하게 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시험을 당하는 그 당시는 비록 그것이 힘겨울지라도 결국 믿음으로 잘 인내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큰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고난의 시험없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영적 기쁨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제1독서는 아름다운 집회서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우리 가운데 누가 주님을 섬기려는 마음을 가지고자 할 때, 주님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오십 배 백 배로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 삶에 평화와 안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집회서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여기서 ‘시련’은 우리에게 좋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징이며,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가장 값진 은총을 받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
그러면서 집회서는 계속해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고통스러운 일들을 참고 견뎌야 한다며, 금이 불로 단련되듯이 주님께 맞갖은 이들도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시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집회서의 저자는 그때마다 “그분을 믿어라.”,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하고 다독입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그리고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오늘 복음은 이와 관련하여 좀 더 명확한 가르침을 전합니다.
시련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혼란이나 망설임을 되풀이하지 않으며 주님을 따르고 그분을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중반부 이후에는 제자들이 누가 서로 높은지를 놓고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자리에 앉으셔서 그들을 당신 곁으로 부르셨습니다.
당신 곁으로 가까이 오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제자들이 당신 곁을 떠나 있다고 느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시련 가운데서도 당신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을 섬기고 형제들을 섬기는 길은 신앙의 참 기쁨을 얻는 길이지만 십자가의 길이고 시련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가 주님의 길을 올바로 걷고 있다는 분명한 표징입니다.
시련을 겪을 때에도 언제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동고동락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읽지 못할 때는 답답함을 갖게 됩니다. 같은 잠자리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말대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야 말로 동상이몽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제자들은 마땅히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아니라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기 전에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인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입니다.”(마르9,34)
이 물음은 창세기3장9절의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하는 물음이나 카인에게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하는 물음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네 속을 보아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 마음의 중심이 어디 있는가를 살피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큰 사람은 단순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품이 큰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높은 자리를 희망하고 있었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음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논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9,3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랑으로 섬기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대접 받기는 쉬워도 상대방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을 중심으로 나의 것을 양보한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2,6-7)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에게 맞추는 겸손,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사랑은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눈높이 사랑이 필요합니다. 미숙하고 모자란 상대를 받아들이는 섬김이 필요한 때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이 세상에서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누리려 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바람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보이는 평화를 갈망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을 바라십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의 일시적인 수고와 땀, 희생의 봉헌을 새롭게 하십니다. 주님을 차지한다면야 종이면 어떻고 꼴찌면 어떻습니까? 결국 모든 것을 얻은 것인데 말입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그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2025년 02월 25일 화요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이 벌써 두 번째인데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묻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수난과 죽음 부분에만 머물러 부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진실을 알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 아는 것에만 머물러 있고 싶은 유혹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현세에서 지금 누리시는 존경과 권위에만 머물러 그분께서 겪으셔야 할 수난과 죽음은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세에서 지금 그분을 따르면서 큰 사람이 되려 하고 작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나무가 높이 자라려면 먼저 뿌리를 땅속 깊이 내려야겠지요.
낮은 곳에서 시작하지 않고는 높이 오를 수 없습니다.
그처럼 제자 직분은 낮아지고 작아지면서 성장하는 신비입니다.
일등이 되려고 모든 것을 거는 세상, 일등만 환호하는 세상에서 꼴찌가 되라는, 어린이와 같은 작은 이를 받아들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진정한 첫째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높고 훌륭한 사람의 종이 되라고 하면 거부감이 덜하겠지만 자신보다 작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죄인들의 종이 되라고 하면 선뜻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와 당신을 동일시하셨고(마태 25,40 참조) 죄인인 우리의 종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을 섬기시려고 스스로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그분처럼 “모든 이”(마르 9,35)의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02월 25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복음
시련속에 살길이 있습니다.
(마르 9,30-37)
30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곧 사람의 지혜로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런 하느님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 십자가의 대속이 진리임을 못 알아듣고, 못 봐, 말 못하는~ 그래서 죄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한 구원의 그 하느님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이 카파르나움입니다.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 성전)
하늘의 의로움이신 십자가의 그 예수님을 진리로 깨닫지 못해 땅의 사람의 선악의 의로움을 진리로 믿고 사는 그 스스로의 나를 위한 신앙을 사는 그곳을 향해가는 중에~~
사람의 길을 걷는 제자들의 그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던 - 그 카파르나움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 예수님을 믿는 제자란 ~ 십자가의 의로움을 진리로 받아드려 참 의로움이신 그분의 지체로 다~ 똑같은 의인, 큰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3,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그런데 사람의 길, 선악의 계명으로 예수님을 누가 더 잘 따랐는지, 큰사람인지 논쟁을 벌린, 헛된 신앙을 사는 제자들입니다.
나는 매일미사(제사로)를 다녀, 나는 묵주기도(~단씩) 매일 바쳐, 나는 여러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해, 그러니 다른 이보다 나는 참 신앙인이야 주장합니다.
(에페2,8-9)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 하늘의 의로움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진리로 깨닫지 못해 헛된 신앙을 사는 제자(교회-나)들의 모습입니다.(마르7,7~참조)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열둘-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첫째, 곧 하늘의 의인이 되려면 그 의인의 꼬리(꼴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길, 그 세상의 의로움이 첫째가 아닌 꼴찌임을 깨달아 그 꼴찌로, 종으로 서로 섬기는~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 그 하느님의 진리를 서로 주고받아 하늘의 의인, 그 첫째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 어린이 하나가 하늘로 세워진, 하늘의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37ㄱ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어린이를~ 이 아닌, 어린이 하나입니다. 아버지만을 의지하는, 아버지만을 믿고 살 수 밖에 없음을 아는 어린이입니다. 그런데 그 어린이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린양으로- 아기로 오신 한분 예수님이십니다.
그 어린이 하나, 그 한분만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 예수님과 한 몸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37ㄴ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 되는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교회)들이나, 세상이나 모두가 다 자신의 뜻을 위해(카파르나움) 신앙하고 살고 있기에, 그 카파르나움을 의지하지 말라고, 그 카파르나움을 오늘 부수심을 오늘 알아듣고 보라고 하십니다.
(루기8,12-13) 사람의,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 그러나 그 시련, 하느님을 의지하게 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매인 것을 깨닫고 오늘 그 사람의 길, 그 카파르나움에서 십자가의 길, 그 진리의 길로 돌아서면 삽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1베드4,12) 사랑하는 여러분,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에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1베드1.5-7)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오늘 날 일어나는 시련 속에 하늘로의 구원(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그 시련 속에 하느님의 용서,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주님~! 시련을 원망이 아닌 구원의 기회로 깨닫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