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금요일] “에파타!” (마르7,31-37)

2025. 2. 13. 오후 3: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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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4일 금요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에파타!” (마르7,31-37)


   


1독서<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창세3,1-8)

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8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화답송>시편32,1-2.5.6.7(1)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은 이!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

제 잘못을 당신께 아뢰며, 제 허물을 감추지 않았나이다.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당신은 제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셨나이다.

당신께 충실한 모든 이들이 곤궁할 때 기도드리나이다. 큰물이 닥친다 하여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당신은 저의 피신처. 곤경에서 저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환호로 저를 감싸시나이다.

 

복음<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마르7,31-37)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제1독서(창세3,1~8)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4)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5)

 

창세기 3장 3절에서 여자는 선악과를 먹거나 만질 경우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낸 데 대해서, 창세기 3장 4절에서는 3장 3절의 여자의 말을 받아 뱀이 완강히 부정하고 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4절이 계속적 '와우'(wau; and)로 문장이 시작되지만, 앞선 3장 3절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 주기에 계속적 '와우'를 '그러나'(but) 혹은 새 성경처럼 '그러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창세기 3장 4절의 '말하였다'에 해당하는 '아마르'(amar)는 기본적으로는 '이르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때로는 '지시하다'(창세22,3), '명령하다'(민수15,38), '맹세하다'(예레16,14)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본문에서 이런 뉘앙스를 살려 보다 강조하는 의미로 이 단어를 해석해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말 중에 '결코'는 상당히 힘이 실린 권위적인 어투의 말이기 때문이다.

 

당시 뱀은 '결코'에 해당하는 부정사 절대형 '모트'(moth; surely)와 미완료형 '테무툰'(themuthun; you shall die)을 사용해서 동사의 개념을 강조하신 하느님을 흉내내어 마치 자신이 신적 권위를 지닌 것처럼 위장하고, 여자에게 강하게 지시하였음을 보여준다(창세2,16). 

이처럼 사탄은 하느님의 위치에 서서 자신도 마치 신적 권위를 지닌 것처럼 위장하고 사람들을 유혹하여 파멸에 이르게 한다.

 

창세기 3장 4절에 나오는 뱀의 말은 선악과를 먹을 경우 '반드시 죽을 것이다' ('모트 타무트'; moth thamuth)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창세2,17)에 단지 '로'(lo; not)라는 부정어만 붙인 형태이다.

 

그런데 히브리어 '로'(lo)는 '아인'(ain)이나 '알'(al)이 다소 부드러운 부정을 나타내는 것과 달리 강한 부정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은 사탄이 하느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공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탄은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을 부정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멸망에 이르게 하는 속이는 영이며 거짓의 아비이다(요한8,44).

 

이 시대에도 사탄은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로마6,23)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슬러 마치 죄악이 큰 기쁨을 순간적으로 가져오는 것처럼 속여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다. 

'훔친 물이 더 달고 몰래 먹는 빵이 더 맛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는 그곳에 죽은 자들만 있음을,  그 여자('우둔함'을 지칭)의 손님들이 저승 깊은 곳에  있음을 알지 못한다.' (잠언9,17~18).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5)

 

원문의 '키 뻬욤 아콜르켐'(ki beyom akollkem; when you eat of it; the instant you eat it)은 직역하면 '너희가 먹는 바로 그때에'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욤'(yom)은 일반적으로 '날'(day)로 번역되지만, 특별한 시점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으며, 더군다나 바로 앞에 나오는 '키'(ki)가 시간을 나타내는 접속사로 쓰여 '바로 그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뱀은 간교하고 사악한 동기를 가지고 선악과의 신통한 효험이 먹자마자 바로 나타난다고 말함으로써 여자의 욕망과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속이는 거짓의 영 사탄은 각각의 인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극적인 미끼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멸망에 빠트린다. 

'그러나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2코린11,3)

 

한편 히브리어에서 '눈'('아인'; 'ain')은 단순히 보는 기능만을 지닌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을 인간의 '외모'(1사무16,7)는 물론, 인간의 마음 속 여러가지 감정을 표출하는 창구로 이해할 뿐 아니라(신명15,7; 잠언6,17; 시편18,28; 아가4,9), 때로는 지력을 나타내 보이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창세29,17). 

따라서 여기서 '눈이 열리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잘 볼 수 있게 된다는 기본적인 의미와 더불어 외모가 출중해지며 지력이 하느님처럼 향상된다는 다른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열려'에 해당하는 '웨니프케후'(wenipqehu)는 단순히 '밝다' (이사42,20)는 의미 뿐만 아니라 '열다'(2열왕6,17.20), '뜨다'(욥기27,19)는 뜻도 가지고 있는 '파카흐'(paqah) 단순 재귀 완료형이다. 

이것은 어둡던 눈이 밝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장님처럼 못보던 눈이 열려 보게 되는 새로운 차원을 말한다(시편146,8; 이사42,7).

 

특히 여기서 수동의 뜻이 강한 재귀형이 사용된 것은 이러한 일이 전적으로 선악과의 효험에 의해 나타내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리고 완료형이 사용된 것은 먹는 순간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 것임을 단정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뱀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때와 먹고 난 후의 상태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여자를 집요하게 유혹하고 있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5)

 

'하느님처럼'에 해당하는 '켈로힘'(kellohim; like God)에서 하느님의 이름 '엘로힘'(ellohim) 앞에 붙어 있는 '케'(ke)는 '~처럼'(as; like)이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이다(욥기32,19).

 

당시 뱀이 계약을 맺으시는 하느님을 강조하는 '주 하느님'이 아닌단지 하느님의 권능을 강조하는 '하느님'(엘로힘)이란 명칭만을 사용한 것은, 여자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느님의 계약을 망각하게 하고 하느님의 권능을 자신도 가질 수 있다는 허영심을 부추기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사탄은 단어 하나까지 선택적으로 사용해서 오직 인간을 파멸에 빠트리는데 전념한다.

이러한 사탄과의 싸움에서 인간은 자신의 힘만으로 승리할 수 없으며, 오직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야 한다(에페6,13).

 

한편 여기서 '선'(善) 해당하는 '토브'(tob; good)는 단순히 착함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온갖 종류의 긍정적인 것을 가리킨다. 

반대로 '악'(惡)에 해당하는 '라'(ra; evil) 역시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알다'에 해당하는 '야다'(yada)는 단순히 머리로 깨닫는 정도가 아니라 체험을 통하여 속속들이 아는 것까지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는 이 단어가 남녀가 동침하는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며(창세4,1; 1열왕1,4) '익숙하다'(창세25,27; 1열왕9,27)라는 뜻으로도 번역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선과 악을 구별하는 정도의 지력만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선(善)의 속성과 악(惡)의 속성을 깊이 알며, 또한 선(善)과 악(惡)에 익숙하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었을 때 이처럼 선(善)과 악(惡)을 철저히 알게 될 것이라는 뱀의 장담은 완전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후 남자와 여자는 물론 그들의 후손인 모든 인류가 선(善)에는 오히려 무지하고 선(善)을 행할 능력마저 퇴보된 반면에, 오히려 악(惡)을 알고 악(惡)을 행하는 능력만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고(창세3,7), 인류의 모든 비극은 이처럼 '알게 될 것'('yada')이라는 사탄의 달콤한 거짓 유혹에 넘어감으로써 발생하게 된 것이다.

 

끝으로 '하느님께서 아시고'에서도 '아시다'는 것은 앞의 '야다' (yada) 동사와 같아서 철저히 아는 것을 말한다. 

사탄은 여기서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분사형을 사용해서 하느님께서 이전부터 알고 계셨으며, 현재로 알고 있다고 여자를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사탄은 마치 인간에게 큰 유익이나 줄 것처럼 웃으면서 다가오고, 어떤 일의 배후에 마치 큰 흑막이 있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긴다. 

그러나 사탄의 마음에는 온갖 부정이 가득하고 그 혀에는 간교함과 사악함이 가득하여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인간을 멸망에 이르게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중 제5주간 금요일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께서 지으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죄를 짓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뱀의 존재를 말하기에 앞서 뱀의 교활함은 매우 놀랍습니다.

뱀은 주 하느님의 말씀(계명가운데 오직 부정적인 말씀만 가져다 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뱀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다른 모든 선물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한계(금지)의 말씀이

사실은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담고 있음을 망각하게 합니다.

뱀의 질문에 여인이 대답합니다.

언뜻 보면 여인이 뱀의 유혹에 당당히 맞서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인이 뱀의 논리에 따라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산의 중심에는 생명나무와 뱀이 주장하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함께 있었지만(창세 2,9 참조),

결국 여인의 마음에는 생명나무가 없어지고 금지된 계명만 남습니다.

여기에다 여인은 하느님의 금지 계명을 하나 더 늘립니다.

그 나무 열매를 먹어서도’ 안 되지만 만져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뱀은 분명히 자기 욕망을 분출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그런데 뱀은 언어의 마법사입니다.

말의 모호함을 이용하여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말로는 죽음에서 사람을 구해 줄 것처럼,

그래서 자신이 사람을 지켜 줄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지배하려 합니다.

뱀은 사람에게 친구처럼 다가오지만 오히려 불행의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자라게 합니다.

창세기 저자는 여인이 뱀의 제안을 바라고 열망하였음을 드러내려고 반복된 표현을 사용합니다.

선과 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여인의 눈이그의 마음이 바라고 탐합니다.

바라다와 탐하다의 조합은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둘 다 아주 강하게 집착하는 사람의 욕망을 표현합니다(시편 78[77],29-30; 잠언 7,25; 미카 2,2 참조).

세상에는 우리를 꾀는 뱀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위험한 뱀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끝없는 욕망이 아닐까요?

오늘도 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살피며 하느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말씀에 기대어 살아갑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사람의 말로 받은 에수님성경속 예수님어떤 예수님을 따르십니까? 

 

(마르 7,31-37)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데카폴리스-열개의 도시(고을)라는 뜻그 열 한가운데에 들어있는곧 열 계명 그 한가운데 있는 사랑.

다시십계명 그 열 개의 계명그 각 계명 안에 숨어있는 대속의 죽음그 사랑입니다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속죄 제물로 그 사랑으로더러운 죄를 없애시러 오셨다는 뜻입니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성경말씀을 하늘의 진리로 알아듣지 못하는 귀먹음 이그래서 그 진리를 올바로 말할 줄 모르는 말더듬는 이입니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우리 죄의 속죄 제물로 오신 예수님그 속죄 대속의 십자가가 되는그 이치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도 하느님나라에 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구원을 위한 하늘의 의로움은 십자가의 대속을 진리로 믿었을 때 얻어집니다.(로마3,24)

그런데~

(마르7,7-8)  7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을 사람의 계명전통으로 가르치면하늘의 진리를 들을수 없는 귀머거리가 또 그 진리를 올바로 말할 수 없는 말더듬는 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더듬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을 섞어 분명하게 말을 못하는 헛된말빈말이 됩니다그러면 기도 또한 구원을 위한 그 하느님의 뜻이 아닌 우리의 욕망 그 빈말기도를 하게 되어 구워(용서)을 못 받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마태6,10)

 

(마태6,7)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자신이 그 귀먹고 말더듬는그 빈말을 하는 이라는 것을 알고 치유를 청한다면 그가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손을 얹어 주셔서 치유해 주십니다구원자의 손으로 잘못을 덮어 주십니다.

 

(즈카8,23)  23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 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하나의 옷자락다른 민족은 열 개의 계명을 참이라 지키지만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계명곧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을 하나의 계명으로 믿고 의탁하기에 용서(구원)의 하느님으로 지금부터 영원히 그분과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복습합니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하늘의 대속그 십자가의 죽음 그 사랑을 이웃에게 주어 그 이웃이 죄의 용서로 하늘의 생명을 받게 하는 것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한숨당신의 숨생명을 내쉬신(주신), 목숨을 건 열려라입니다그분의 생명주님의 영으로입니다. (요한19,30 20,22참조)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당신의 목숨을 건구원의 손(옷자락)을 덮으심그 일이~ 1. 먼저 따로분리 입니다. 2. 창조의 손가락으로 재창조입니다. 3.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4.말씀-선포입니다.

나를우리를 사람의 규정 계명에서 분리시키십니다주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주님의 말씀을 생명수로 먹이십니다그 말씀에 믿음을 주십니다. - 그래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진리의 말을 분명하게 하시어 하느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치유기적의 예수님으로 말하지 말라 하십니다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신나서 말을 합니다그래서 그 많은 이들이 기쁜 소문을 듣고 신앙을예수님을 믿으려합니다.

그러나 그 신앙은 헛된 것으로 예수님을 헛되이 믿게 하는 잘못이 됩니다그래서 예수님은 늘 사람들에게 (당신을 기적의 주님으로사람의 관점으로) 말하지 말라고 강하게 거듭 말씀하신 것입니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하늘의 진리를 알아듣고 말하는 우리가 놀라운 기적입니다말할 수 있어서들을 수 있어서 우린 늘 행복합니다.

♡ 아멘 -*^^*-




  

 

 연중 제5주간 금요일 복음(마르7,31~37)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2~34)

 

'데카폴리스'에 해당하는 '데카폴레오스'(Dekapoleos; of Decapolis)는 숫자 '십'(ten)을 뜻하는 '데카'(deka)와 '도시'를 가리키는 '폴리스'(polis)가 결합된 형태로서 '열 개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 도시들은 갈릴래아 호수 동쪽에 위치한 대부분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헬라화된 열 개의 도시들을 말한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다른 복음사가들이 언급하지 않은 지역을 소개하는 것은 이방인에 대한 주님의 관심을 나타내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마르코 복음 7장 31~37절과 병행 단락인 마태오 복음 15장 29~31절에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 말고도, 예수님께서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 여럿을 치유하신 것으로 나온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치유 행위를 광범위하게 기록한 반면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역에서 행하신 치유 중에서 대표적인 한 사건만을 정선해서 그 치유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여기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한 사람인데, '말더듬는 이'로 번역된 '모길랄론'(mogilalon; had an impediment in his speech; could hardly talk)의 기본형 '모길랄로스'(mogilalos)는 '어렵게'라는 뜻의 부사 '모기스'(mogis)와 '말하다'는 뜻의 동사 '랄레오'(laleo)에서 유래하여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말더듬는 이'는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라는 뜻보다는비록 어느 정도 소리를 내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서 말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 7장 35절에서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손을 얹어 주십사고'

 

유대 사회에서는 '손을 머리에 얹어 하는 기도'를 가리키는 안수(按手)는 널리 베풀어졌다. 

'손을 얹어'에 해당하는 '에피테 아우토 텐 케이라'(epithe auto ten cheira; put his hand upon him; place his hand on him; lay on by hands)는 상속권 수여(창세48,14-20), 직책 수여(민수27,18.23), 축복(마태19,13.15) 등을 위해서도 베풀어졌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건강 회복을 위한 안수(마태9,18; 사도9,12.17)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하는 단순한 안수가 아니라, 마르코 복음 7장 33절에 나오는 데로 행동을 통해 그 병을 즉각적으로 완전하게 고쳐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당신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신다.

여기서 '따로'에 해당하는 '카트 이디안'(kat' idian; aside)는 '사적으로'라는 뜻의 관용어로서 비밀리에 행한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비밀리에 그를 고쳐 주시려고 한 것에 대해 학자들마다 의견이 많다.

 

환자과 개인적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나누기를 원하셨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고,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보고 군중이 흥분해서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메시야되심을 숨기기 위해서, 또한 군중 가운데서 호기심만을 추구하는 이들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예수님께서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의 딸을 치유하실 때에는 말씀으로만 하셨는데 (마르7,29.30), 여기서는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당시 사람들에게 침은 치료의 효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그리고 아픈 부위에 손을 대는 것도 흔히 행하던 방법이었다.

 

예수님께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을 때, 그리고 침을 발라 혀에 손을 대셨을 때이 병자는 예수님의 극진한 자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병자에게 말씀하신 당신 치유의 손길을 직접 느끼게 하셔서, 치유된 후에도 당신 사랑과 축복의 생생함을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여기서 '한숨을 내쉬신'에 해당하는 '에스테낙센'(estenaksen; he sighed; with a deep sigh)의 기본형 '스테나조'(stenazo)는 '좁은'이라는 뜻의 형용사 '스테노스'(stenos)에서 유래했다. 

그러니까 '스테나조'(stenazo) 동사는 '매우 답답한 상태에 있다'는 뜻이다. 

이 동사는 사람의 심정을 답답하게 하는 외적 요소에 의해 심적으로 몹시 압박감을 받는 상태(로마8,23)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귀먹고 말더듬는 것'에 대해 심적으로 압박감을 느끼셨다는 말인데, 그만큼 큰 사랑과 관심을 갖고 계셨다는 뜻이다. 

이러한 매우 답답한 상태는 마르코 복음 7장 34절 후반부의 '열려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에파타'(aphphatha)는 문자적으로 '완전히 열리다'는 뜻의 아람어 (예수님의 모국어) 음역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방인 독자를 위해 희랍어 동사 '디아노이크테티'(dianoichtheti; be opened)로 풀어 주고 있다. 

'디아노이크테티'(dianoichtheti)는 '열다'(루카24,45)는 뜻의 동사 '디아노이고'(dianoigo)의 수동태 명령법으로서 '너는 열려져라'는 뜻이다.

 

물론 여기서 귀가 먼저 열려지고, 그 다음으로 혀의 묶인 것이 풀리는 것을 뜻하지만, 앞의 예수님의 마음이 답답한 상태를 가리키는 '한숨을 내쉬신'과 대조된다는 점에서 '열려라'의 의미는 예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병자의 전체적인 상황이 풀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20250214일 금요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마르 7,32)를 낫게 하시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마치 성사를 집행하는 사제 같으십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실 것을, 곧 안수를 청하였을 뿐인데 예수님께서는 손가락, , 숨 등을 통한 정교하고 신중한 동작으로 그의 귀와 혀를 열어 주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때로는 병자를 직접 만나시지 않고 원격으로 고쳐 주시기까지 하시던 분께서 여기서는 당신 지체로 병자의 몸을 접촉하시면서 일종의 전례 예식 같은 치유 행위를 보여 주십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육신을 취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구체적인 모습을 목격합니다.

하느님이신 분께서 만질 수 있는 지체로 육화하시어 당신을 만지는 사람들이 당신 신성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귀먹고 말 더듬던 사람은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순간 그분의 신성을 체험하게 됩니다.

육화하신 하느님께서는 말씀만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구체적인 모든 수단으로 우리를 낫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 기도나 초자연적 방식으로만이 아니라 당신께서 마련하신 자연적인 수단들이나 의사들을 통해서도 고쳐 주십니다.

그러니 그들 안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인간 조건에 맞추어 눈에 보이는 표시와 말씀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 주는 도구가 바로 성사입니다.

우리는 성사를 받을 때마다 눈에 보이는 표지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보고 합당하게 모셔야겠습니다.

그때 우리의 영혼은 은총으로 활짝 열릴 것입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연중 제5주간 금요일]

 

서이신 주님이 내 마음에 계시면!

 

복음(마르7,31-37)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죄인들의 지역을 가로질러 가신 것이다. 죽어야 할 죄인들이다. 그들의 그 죽음의 길을 지나오신 것인데, 그들의 그 죽음의 길을 지나오신 것이, 곧 그 죄인들의 죽음을 당신이 품어 대신 죽으시고 그들의 죽음을 갈라버리신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용서, 구원을 주시는 그 구원자로 돌아오신 것이다.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재림을 뜻한다. 우리는 그 지나가심에 대하여 여러 번 하느님과 아브람의 계약에서 공부했다.(창세15,1-18참조)

아브람이 하느님께서 ‘가져오라’ 하신 제물을 인간의 뜻대로 반으로 쪼개어 가지고 오는 바람에, 곧 하느님의 뜻을 잘라버려 그릇되게 함으로 그에게 어둠(죽음)이 덮쳐왔고, 하느님께서 그 죽음 사이를 홀로 지나가심으로, 대신 죽으심으로 아브람과 계약을 완성하신다. 그렇게 구원의 계약은 하늘의 대속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창세15,17-18)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 하느님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속으로 들어오신 구원자 예수님이시다. 그분과 함께 할 때. 우리의 모든 고난, 시련, 죄까지 모두, ‘훗날 하늘나라에서 그분과의 사랑의 추억이 될 것’임을 잊지 말자.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섬기는데 열성을 부린다. 땅의 복을 받으려고 헛된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제사, 기도드리고 선행도 한다. 그것이 구원의 능력, 가치가 없는 율법신앙이다.

하느님의 뜻, 말씀을 문자 그대로, 곧 선과 악, 도덕과 윤리로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선이신 예수님께서 악인들, 곧 죄인인 우리를 품으시고, 우리의 죽음을 가르시고 구원을 이루시는 그 기쁜 소식, 새 계약으로 오신 것인데 그 ‘새 계약의 복음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가리어져 있다.’ 인간의 길, 계명을 너울이 덮고 있기 때문이다.

 

(2코린3,15-16) 15 사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 율법은 선이다. 그러나 그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하늘에 오를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죗값으로 당신의 목숨을 내주심으로, 곧 우리의 죄로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로마3,19-24참조)

그런데 그 주님의 대속, 구원의 새로운 길, 새 계약의 십자가를 구원의 진리로 듣지 못하고, 볼 줄 몰라, 용서(거룩)를 주시는 그 주님의 십자가를 제 십자가로지지 못해 더러운 죄가 그대로 있는 죄인(병자)이 되었다.

*오늘 죄로 병들게 하는 그 너울을 벗기려 하신다. 곧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가의 길이 구원, 생명, 진리의 새 계약임을 듣고, 보고, 깨닫게 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시겠다고 찾아오신 것이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ㄱ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 모두가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들인데 그들 중 자신이 귀먹고 말더듬는 병자인 줄 아는 그사람을 깨끗한, 거룩한 새 사람으로 고치시기 위;해 따로 구별, 분리시키신 것이다. *거룩(하기아죠- 분리, 구별되다)

 

33ㄴ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 옛 창조의 손가락, 말씀으로(창세1장) 새 창조, 곧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옛 계약을 대속으로 이루시고 다시 세우신 그 새 계약으로 땅(흙)의 존재를 거룩한 하늘이 되게 하신 것이다.

 

(히브11,3) 3 *믿음으로써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야고1,18)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갈라6,15)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36ㄱ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 하늘의 일, 말씀이 사람의 말로 나가면 꼭 변질되기 때문이다.

 

36ㄴ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 감추어진 하느님의 새 계약의 말씀을 듣고, 보고, 말 할 수 있는, 그래서 그의 영이 치유, 구원 받았음을 깨닫고 놀라워한 것일까? 아니다. 변질되게 들었다. 곧 귀먹은 이기 듣게 되고, 말 못하는 이가 말하게 되는 그 육적치유, 기적으로 보고 놀라워한 것이다.

그래서 다음 8장1절이 “ 다시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 말씀을 생명, 구원의 새 계약으로 먹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肉)의 치유자, 능력자로 예수님을 섬기며 따르는 신앙을 산다면, 그런 예수님을 이웃에게 전한다면 자신도 죽고, 이웃도 죽이는 것이다.

 

(마태15,14) 14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 우리 가톨릭교회는 매년 2월 11일을 ‘세계 병자의 날’로 지내고 있다. 병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해, 의료인들을 위해 기도하고자 한다. 그런데 눈 먼 인도자의 기도가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삶속에서 지나시는곧 대신 죽으시는 그 예수님을 깨닫게 하소서그 사랑을 놓치지 않고 그 사랑에 머무르며 주님과의 추억이 되게 하소서저희 모든 이들이 간절히 기도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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