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월요일] 더러운 영 (마르5,1-20)

2025. 2. 2. 오후 9:03:57

글자

 

20250203일 월요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더러운 영  (마르5,1-20)

 


1독서<그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습니다.>(히브11,32-40)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타, 다윗과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에 대하여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정의를 실천하였으며, 약속된 것을 얻었고 사자들의 입을 막았으며,

34 맹렬한 불을 껐고 칼날을 벗어났으며, 약하였지만 강해졌고 전쟁 때에 용맹한 전사가 되었으며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어떤 여인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식구들을 다시 맞아들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은 부활을 누리려고, 석방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고문을 받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박과 투옥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37 또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으며 양가죽이나 염소 가죽만 두른 채 돌아다녔습니다.

38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39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40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화답송>시편31,20.21.22.23.24(25)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마음을 굳게 가져라.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 얼마나 크시옵니까! 주님은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 사람들 보는 데서 그 선을 베푸시나이다.

당신 앞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 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시고, 당신 거처 안에 숨기시어, 사나운 구설에서 구하시나이다.

포위된 성읍에서 당신 자애로 내게 기적을 베푸셨으니,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겁에 질린 나머지 제가 말씀드렸나이다. “저는 당신 눈앞에서 쫓겨났나이다.” 그러나 당신께 도움 청할 때, 애원하는 제 소리 들어 주셨나이다.

주님께 충실한 모든 이들아, 주님을 사랑하여라. 주님은 진실한 이들은 지켜 주시나, 거만한 자에게는 호되게 갚으신다.

 

복음<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5,1-20)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히브11,32-40)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39-40)

 

본문은 히브리서 11장 4~38절까지 언급된 옛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혹은 믿음을 가지고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명시한다.

 

본문에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으로 번역된 '마르튀레텐테스'(martyrethentes)는 '증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마르튀레오'(martyreo)의 수동태 과거분사이며, 그것은 어떤 사실의 진실된 모습이라는 인정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특히 11장에서 이 동사는 수동태로만 쓰였다.

 

여기서 이 표현은 두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여기에 거명된 사람들, 즉 아벨로부터 사무엘 및 여러 예언자들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들의 신앙에 대한 증인이 하느님 자신임을 알게 한다.

그분께서는 언제든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길을 택하거나 적어도 순교를 각오한 모든 이들을 위해 기꺼이 증인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인정해 주신다. 그러나 믿음을 따라 살지 못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둘째는 믿음의 옛 사람들이 믿음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의 구원에 대해 증거를 받았다는 것이다. 비록 그 실현을 그들이 당대에 보지는 못했으나 그 사실에 관해서는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라는 히브리서 11장 1절의 선언을 상기시킨다.

 

'약속된 것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생전에 메시아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한 사실을 나타낸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전, 곧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죽었던 것이다.

따라서 '얻지 못하였습니다'로 번역된 '우크 에코미산토'(uk ekomisanto)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갈바리아의 죽음을 통한 하느님과의 친교라는 충만한 축복을 얻지 못하였음을 증거한다.

 

믿음의 옛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의 성취를 얻지 못하였다는 본문의 내용과 관련하여 볼 때, 옛 사람들을 위해서는 종국적인 구원은 순전히 미래에 속하여 있고, 우리를 위해서는 그것은 이미 성취되었고,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은 것이다.

즉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이 이미 성취되었고, 재림을 통한 종국적 구원은 구약의 옛 사람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에게 모두 미래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히브리서는 성도인 우리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영적인 특권들과 비교해 볼 때, 옛 계약 아래 있는 영적 특권들이 열등하다는 사상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충분히 뒷받침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마태11,11)

이것은 현재 성도인 우리가 누리는 영적 특권이 구약 시대의 아무리 놀라운 믿음을 지닌 옛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옛 계약 아래 있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음을 잘 알게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본절은 하느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 구약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보다 더 좋은 약속을 예비하셨다는 사실을 말한다.

여기서 '내다보셨기'로 번역된 '프로블렙사메누'(probllepsamenu)의 원형 '프로블레포'(probllepo)는 '전에', '앞에'를 뜻하는 전치사 '프로'(pro)와 '보다'를 뜻하는 동사 '블레포'(bllepo)의 합성어로 '미리보다', '앞서 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더 좋은 것은 무엇인가? '더 좋은 것'으로 번역된 '크레이톤 티'(kreitton ti)는 보다 정확히 번역하면 '더 좋은 어떤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속과 그로 인한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친교를 가리킨다.

 

구약의 성도들은 신약의 성도들 곧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구원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이것은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계획하신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구약의 성도들이 이 축복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의 옛 사람들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한 구원을 믿음을 가지고 미리 본 반면에, 우리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을 가지고 영접한 것만이 다를 뿐이다.

결국 믿음에 따르는 상급이라는 면에서는 그들이나 우리가 다를 것이 없다.

 

'우리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본절을 정확히 번역하면,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가 된다. '히나'(hina)가정법 구문'인 본문은 하느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 목적 혹은 예비하심으로써 빚어진 결과적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즉 이것은 우리가 구약의 성도들을 완전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해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옛 계약 아래 있던 믿음의 옛 사람들은 스스로는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이 완전함에 이르는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 사업을 이루심으로써 믿음의 사람들이 완전함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함께 완전해지는 것이다.

'다 이루어졌다'(요한19,30)라는 십자가상 예수님의 외침과 부활이 있기 전에는 아직 완전함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공로와 그 효력이 신약 뿐 아니라  구약의 믿음의 옛 사람들에게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히브12,23). 그리스도의 구원에 그들도 초대된 것이다.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비유로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거센 돌풍이 이는 호수를 건너 “게라사인들의 지방”에 도착하십니다.

이곳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며, 곳곳에 무덤이 있고, 유다인들에게는 부정한 돼지 떼가 방목되는 지역입니다(이사 65,4 참조).

 

‘군대’라고 불리는 더러운 영은 아무도 휘어잡을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더러운 영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앞에서는 엎드려 절하며 복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 간곡히 청하여 돼지들에게 들어가서라도 목숨을 부지하려던 더러운 영 ‘군대’는, 돼지들이 호수로 달려가 빠져 죽음으로써 결국 파멸하고 맙니다.

그렇게 이 부정한 지역에서 마귀의 세력이 사라지고, 이제 하느님의 다스림이 펼쳐집니다.

 

돼지를 치던 이들에게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와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들의 고장을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반면에 치유받은 이는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음’은 열두 제자의 특징이고 사명입니다(마르 3,14 참조).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가족에게 알리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치유받은 이는 물러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자기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요르단강의 동쪽에 자리 잡은 열 개의 도시, 데카폴리스 지역에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의 치유가 복음 선포로 이어집니다.

마르코 복음이 전하는 이민족을 향한 복음 선포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는 어떠한 경계나 제한이 없음을 드러냅니다.

이는 우리의 복음 선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연중 제4주간 월요일]

 

 하느님의 말씀(뜻)을 인간의 말(뜻),  가르침을 먹은 것이다.

 

(마르5,1-20)

1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 앞 節에서 돌풍 같은 호수(세상)의 물이 배(교회)에 들이쳐 사람을 두려움에 빠트렸고, 그 물은 뱀의 거짓말에 의한 우리 삶의 풍랑, 바람이었음을 묵상했다. 곧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을 인간들의 계명으로 받아 하늘의 용서(생명)도 모르고 사람을 힘들게, 죽이려는 거짓 영의 말이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호수의 거짓 풍랑을 말씀으로 복종 시키고 제자들과 함께 로마의 속국인 게리사인들의 지방으로, 또 다른 뱀의 거짓말을 듣고 힘들어 하는 그 더러운 영(말)이 들린 사람을 구하시러 들어가신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 빛이 켜지면 더러운 것이 드러나는 법이다. 그리고 빛을 피해 도망가는 법인데, 이 사람은 빛이신 예수님께 적개심은 품었지만 다가온다. 주님께서 자비의 마음으로 그를 이끄신 것이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 무덤 - 그의 靈이 거짓에 묶여 죽어 있다는 것이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 하느님의 말씀을 眞理로 받으면 밤으로 낮을 만나 곧 어둠에서 빛을 배워 쉼, 기쁨을 살게 되지만, 인간들의 말(계명, 법) 로 받으면 밤과 낮 모두가 苦痛뿐이다. 그래서 돌로 제 몸을 친다. 法의 罪의식으로 자신을 해친다는 것이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 인간의 말로,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하는 信仰은 오히려 사람을 힘들게 하는 무거운 짐이 되어 하늘의 쉼(安息)을 주지 못해 죄의식으로 괴롭다. 그래서 예수님이 원망스러워 안식을 살지 못한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軍隊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군대 - 하는 나라 백성도 군대(軍隊)로 말씀하신다. 곧 신앙생활이 전쟁이라는 것이다. 거짓과 진실의 싸움, 그 전쟁(戰爭)을 말한다. (에페6,11참조)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 로마의 속국 이였기에 그들이 먹었던 돼지를 키웠다.

 

돼지는 부정한 짐승으로 이스라엘은 키우지도 만지지도 않았다. 율법 때문이다.

(레위11,7) 7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 갈라지고(파라스 - 구별되어 갈라지다),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는 것에서 갈라져 구별되어 지는 것, 그리고 양식을 새김질하는 것이 깨끗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그분의 뜻으로, 구원, 말씀의 양식으로 묵상하고 되새기는 것, 그것이 깨끗한 것이다. 그 의미(意味)로 돼지를 부정하다. 먹지마라. 하신 것인데, 그 율법을 잘 키는 자시 열성, 열심, 의로움이 참 이라고 거짓 영의 말을 들었기에 오늘날까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들은 큰 착각,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부정한 것, 더러운 말에 매어 사는 것이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 더러운 것은 부정한 것, 더러운 곳을 찾는다. 빛이 있는 곳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히브11,28) 28 믿음으로써, 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피를 뿌려, 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 새 계약의 피 가 있는 곳, 믿는 그 사람에게는 파괴하는 더러운 말(靈)이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 예수님의 고치심을 보고 겁이 났다는 것은 그들 안에도 더러운 영(말)이 있다는 것이다. 곧 게리사인들이 다 그렇다는 것이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 성당에 잘 다니다가 재산, 건강 등을 잃으면 떠나는 경우와 같다. 다른 말로- 돈, 명예, 건강을 위해 성당을 다녔다는 것이다. 더러운 영의 말로 신앙을 살았기 때문이다. 떠나지는 않더라도 실망으로~ 말씀으로 용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 다른 이들에게는 “나를 따르라” 하시고는 왜? - 그 사람이 더러운 영이 들렸던 것은 그 한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더러운 말(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가정(교회, 성당)으로 파견하신 것이다.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알려라’ 하신다.

주님의 자비- 어둠(죄)을 드러내시고 그 어둠에서 갈라(구별)내시어 빛을 주시는 것, 주님의 慈悲다. 자비(慈悲), 여자의 子宮을 뜻하니, 자신의 생명으로 키우는 그 母性愛, 그 사랑으로 생명을 키워내시는 그 자비다.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데카폴리스 - 열(10)개의 도시라는 뜻, 로마의 속국들을 말한다. 로마의 힘, 곧 세상의 힘, 그 말로 세상의 재물, 명예를 위해 모두가 산다. 더러운 말(영)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이웃, 가족이 모두(전부, 다) 그 세상 것을 위해 일치를 이루고 있기에 분열시키려 하신다. 우리 주님께서~ 가르시고 구별하시어 구원하려 하신다.

 

거룩(쎄퍼렛-다르다, 구별하다).

(루가12,51-52)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천주의 성령님! 부족한 저희를 충만하게 하시어, 주님의 분열, 구별하심이 더러운 나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한 자비임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아멘!!!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복음(마르5,1-20)

병행구절인 (마태8,28~34) 중에서 묵상글을 올립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29) 예수님께서 "가라."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32)

 

영적 존재로서 영적 지각력이 뛰어난 존재인 마귀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향해 '하느님의 아드님'에 해당하는 '휘에 투 테우'(hye tou theu; the son of God)라고 불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사람들에 의해 고백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명칭은 아주 중요한 신앙고백적 명칭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 주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고백 이전에 더 먼저 마귀들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인지하였고, 예수님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에 해당하는 '티 헤민 카이 소이' (Ti hemin kai soi; what do you want with us)에서 '당신'으로 번역된 '소이'(soi)와 '저희'로 번역된 '헤민'(hemin)은 여격의 형태인데, 직역하면 '저희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무엇입니까?'이다.

 

이것은 '당신께서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또는 '저희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라는 뜻으로서 자신들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사적 질문이다.

 

그리고 '때가 되기도 전에'로 번역된 '프로 카이루'(pro kairou; before the time; before the appointed time)라는 표현은 먼저 마귀도 종말론적 심판과 그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권세의 종말이 올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하느님 나라가 임했지만 그 나라의 최종적인 완성과 마지막 도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한편, 구약에서 돼지는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지만 새기짐을 하지 않으므로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되어(레위11,7; 신명14,8) 그것을 먹는 일이 가증스런 일로 여겨졌다(이사65,4).

하지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 있어서 돼지는 주요 음식이었고, 돼지 사육은 주요 수입원이었다.

 

본 사건의 배경이 되는 가다라인들의 지방은 이방인들이 살던 지역이었으므로 돼지를 사육할 수 있었다. 

병행구절인 마르코 복음 5장 11절에는 2천 마리라는 구체적인 수가 제시된 반면에, 마태오 복음사가는 능력을 행하시는 그리스도께만 초점을 맞추기 위해 구체적인 보도를 단순화시켜 '많은'에 해당하는 '폴론'(pollon; many)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22절에서 호수로 빠져들어간 주체인 '돼지 떼' 단수형으로 취급했지만, 물에 빠져 죽은 존재에 대해서는 복수형으로 취급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여기에서 '돼지 떼'로 하여금 내리 달려 호수로 들어가게 만든 내면적 동인은 '마귀'가 제공했지만, 실제 죽은 것은 '돼지 떼'였음을 나타내는 문학적 기법을 썼다.

 

그렇다면, 왜 마귀는 돼지 떼 속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예수님께 청하였을까?

이것은 그곳 사람들의 재산에 손실을 입히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원인을 예수님께로 돌려 예수님을 경계하게 하고, 그 지방에서 떠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마태8,34).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아셨지만, 사람의 영혼 생명이 물질적인 재산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마귀가 돼지 떼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셨다고 본다.

 

 

  

20250203일 월요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복음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인간의 비참함과, 그에게서 풀려나 제정신으로 돌아온 인간 사이의 차이를 극적 과정으로 매우 뚜렷하게 보여 줍니다.

그 과정에 예수님께서 지니신 절대적 권능이 마귀에게 작용합니다.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신앙 고백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마르 5,7)라며 그분의 권능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던 더러운 영들은 결국 자기들이 살길을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군대라는 이름의 더러운 영들에 사로잡힌 사람을 살리시려고 그 청을 들어주십니다.

사실 악령은 인간에 대한 권한이 없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의 말대로 주님께서는 전적으로 당신 소유인 사람을 사로잡고 있는 악령을 제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시어 그를 해방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소유인 인간의 해방을 위하여 돼지 이천 마리를 잃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머물러 계셔야 하는 사람 안에 더러운 영이 머무르는 것을 허용하시지 않고 그 영을 내보내십니다.

사실 사람 안에 악령이, 예수님께 어울리지 않는 어떤 것이 머무른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모독입니다.

인간에게 육신을 마련해 주시고 그 안에 머무르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 몸은 그분의 몫이니 다른 어떤 영도 우리 몸을 소유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군대라는 이름의 더러운 영이든 돈과 허영과 탐욕이라는 세속의 영이든 말입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12. 01. 30 연중 제4주간 월요일 - 마르 5, 1-20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문자 속에 숨겨진 보물, 곧 하늘의 생명을 찾아, 얻고자 합니다. 

 

(마르 5,1-20)

1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 게라사 지방- 이방인들의 지역으로 로마의 속국입니다. 로마~ 가장 큰 힘을 갖은 세상을 뜻합니다. 그 세상의 힘을 부수시어 고치시려~예수님께서 들어가십니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 더러운 영(푸뉴마 다이몬)- 더러운 말, 귀신, 마귀, 사탄-모두 같은 뜻입니다. 하느님의 용서, 그 약속의 계명을 세상 사람들의 善惡의 법으로 속여 먹게 한 뱀, 그 뱀의 말, 그 거짓을 참이라 하는 더러운 영(말)입니다. 그 뱀의 더러운 말을 먹은 사람입니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 뱀의 그 선악의 신앙을 살면 심판이 따라오니 그의 삶이 무덤이 됩니다.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된 사람입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 세상 사람들의 법에 묶인, 곧 법의 족쇄에 묶인 세상의 노예입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 법의 죄 의식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의 모습입니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예수님의 치유(용서)를 청하지 않습니다.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 도덕과 윤리 그 법의 신앙을 살면~ 구원자 예수님이 아닌 나를 괴롭히는, 나와 상관없는 분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한 몸이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음으로 그 법의 죗값을 다 치루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 법을 이유로 죄의 삯인 죽음을 요구하는 더러운 영에게 ‘나가라’하실 수 있는 권위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레지오)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 사람의 법이 지배하는 지방,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청합니다. 죄의 의식으로 괴로워도 세상, 사람의 법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제정신이 아닙니다. 사탄이 주는 기적, 재물, 명예. 그 세상에 묶여 끌려가는 모습입니다.(루가4,6참조)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 돼지는 부정함을 뜻합니다. 더러운 영 역시 부정하기에 부정한 것을 찾습니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과 같습니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 더러운 영, 그의 말이 쫓겨나야 제 정신이 됩니다. 그런데 육의 치유 때와는 반대로 영의 치유를 해주셨는데 겁을 냅니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 겁을 먹고 떠나 달라 청한다는 것은~ 그들 모두가 영적 질병으로 더러운 영의 것, 돼지를 자신들의 재산으로 보고 그 재산을 잃어 버릴까 봐 주님께 떠나 달라 청합니다. 그들이 제 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복이 아닌 땅의 복을 위한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더러운 영으로 부터 치유 받은 사람은 한 사람 뿐입니다. 왜 그 사람만 치유해 주셨을까요.? 그것은 그의 더러움이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병자가 자신의 질병(죄)을 드러내야, 인정해야 의사이신 예수님 께서 치유(용서)해 주시지요.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 자신을 위한 배, 교회에 다니는 것보다 하느님의 일을 선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마르3, 12)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마태12,6 17,9 마르3,12참조)

= 그런데 이곳에서는 알려라, 말해라 하십니다. 그것은 다른 곳에서는 예수님을 육의 치유자로 말하지 말라하심 이었습니다.

오늘은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하십니다.

자비(慈悲 스폴랑코 니조마임),- 애간장이 녹는, 그 애끓는 사랑입니다. 그 고통을 손수 쫓아내시어 살려 내시는 분- ‘그 마음, 그 사랑, 자비를 알려라’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 되시기 위해 당신의 죽음으로 '법의 죗값을 다 치루셨다'. 했습니다. 그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 그 자비를 전하는 것입니다.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 데카폴리스, 10개의 도시.고을 이라는 뜻입니다. 그 10개의 도시를 ‘10’ 그 충만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선포를 시작했다 입니다. (숫자10은 충만, 완전. 곧 하나를 뜻합니다.)

세상의 법, 그 사람의 계명으로 완전함, 깨끗함이 될 수 없으니 하느님의 계명인 대속의 죽음 그 사랑 그 자비로 완전할 수 있도록, 깨끗해지도록 그 하늘의 복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10개가 아닌 완전, 충만의 하나가 되도록 복음 선포를 시작한 것입니다.

 

(1요한4,9-10)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아멘 -*^ㅇ^*-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4주간 수요일] 고향 방문 (마르6,1-6)25.02.05조회 8[연중 제4주간 화요일] “탈리타 쿰!” (마르5,21-43)25.02.03조회 13[연중 제4주간 월요일] 더러운 영 (마르5,1-20)25.02.02조회 13[연중 제3주간 토요일]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시는 분! (마르4,35-41)25.01.31조회 39[연중 제3주간 금요일] 겨자 씨의 비유 (마르4,26-34)25.01.29조회 13[연중 제3주간 목요일] 등불은 등경 위에 (마르4,21-25)25.01.29조회 38[연중 제3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마르3,31-35)25.01.27조회 10[연중 제3주간 월요일] 성령 모독 죄 (마르3,22-30)25.01.27조회 11[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16,15-18)25.01.24조회 11[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 사도 (마르3,13-19)25.01.24조회 11[연중 제2주간 목요일] 많은 병자 치유 (마르3,7-12)25.01.22조회 10[연중 제2주간 수요일] 안식일 법 (마르3,1-6)25.01.21조회 13[연중 제2주간 화요일] 안식일의 주인 (마르2,23-28)25.01.20조회 9[연중 제2주간 월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르2,18-22)25.01.18조회 9[연중 제1주간 금요일] 중풍병자 치유 (마르.2,1-12)25.01.16조회 9[연중 제1주간 목요일] 나병환자 치유 (마르1,40-45)25.01.16조회 8[연중 제1주간 수요일] 시몬 장모 열병 치유 (마르1,29-39)25.01.14조회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