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25일 토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16,15-18)
제1독서<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사도22,3-16)
바오로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 “나는 유다 사람입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이 도성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4 또 신자들을 죽일 작정으로 이 새로운 길을 박해하여,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5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8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9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10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11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12 거기에는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으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와 앞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16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화답송>시편117,1.2ㄱㄴ(◎마르16,15 )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
○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
복음<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18)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제1독서(사도22,3~16 )
사도행전의 이방인 선교를 다룬 후반부(사도11,19-28,29)는 선교 무대의 주인공이 베드로가 아니라 바오로이다.
후반부의 첫째 부분(11,19-21,16)은 이방인 선교의 중심지 안티오키아 선교와 세 차례에 걸친 바오로의 선교 여행을 다룬다.
1차 선교 여행(13,3-14,28)과 2차 선교 여행(15,36-18,22)사이에 열렸던 예루살렘 회의(15,1-35)는 서로 다른 관습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지켜야 할 원칙을 제시한다.
2차 선교 여행 때에 아테네 아레오파고스 법정에서 바오로가 한 설교(17,16-34)는 그리스도교 복음을 다른 문화권 안에 심을 때 필요한 전략을 가르쳐 주고, 3차 선교 여행(18,23-21,16)을 끝내면서 밀레포스 해안가에서 에페소 원로들에게 한 고별 설교(20,17-38)는 이상적 선교사의 삶을 묘사한다.
후반부 둘째 부분(21,17-28,29)은 유다인들과 로마인들의 박해 앞에서 교회를 변호하고 보호하는 호교론이다.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뜻하지 않게 유다교 율법과 관습을 무시했다는 오해를 받고 성전에서 체포된 바오로는, 유다 최고 의회 앞에서 그리고 로마의 고관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21-24장)
오늘 독서 사도행전 22장 3-16절은 히브리말로 유다 최고 의회 앞에서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때문에 성전에서 체포된 자신을 해명하는 이야기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박해하던 자신이 어떻게 회심을 했는지 밝히는 사도행전 9장 1-22절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갈라디아서 1장 11-24절도 참조바란다.
"사울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길은, 오직 그를 말에서 거꾸러트리는 길밖에 없었다." 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er)라는 사람이 사울의 회심 사건을 보면서 한 말이다.
사울은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의 현장에 있었고 그의 죽임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사도7,58)
"사울은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하고 있었다." (사도8,1)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 (사도8,3)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사도9,1-2)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가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뿌리째 흔드는 박해로 이어졌지만, 그 박해는 도리어 교회를 견고하고 굳건하게 세우는 역할을 하였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렀던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퍼지게 하면서, 복음이 온 세계로 뻗어나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런데 스테파노의 순교의 현장에 있던 사울이 스테파노의 피의 순교의 댓가 때문인지 몰라도,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방인들을 위한 위대한 복음 선교사로 탄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다마스쿠스에서 18km 떨어진 곳(현재 지명 코갑)에서 사울은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된다. 사울이 말을 타고 가는데, 하늘에서 비추는 강렬하고 큰 빛에 의해 낙마한다. 요새로 말하면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시리아 정교회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2001년도에 교회를 건축했는데, "바오로 낙마 교회" 혹은 "바오로 회심 교회" 라고 부른다.
사울은 하늘로부터 음성을 듣는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 줄 것이다." (사도22,7-11참조)
사울은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고(사도22,11 : 9,8), 사흘동안 앞을 보지 못한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사도9,9) 사울은 눈을 떴지만 앞을 볼 수가 없는 상태가 사흘 동안 계속 되었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사울의 영적인 상태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가 율법과 예언서에 정통했으나,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약속된 메시아가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실을 모르고, 도리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사울은 사흘간의 영적 암야인 "어둔 밤"을 통해, 자신이 가진 메시아에 관한 성경의 지식과 말씀을, 자신이 박해하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께로 포커스를 맞추고 정향하는 단식 피정을 한 것이다.
그 사흘 간의 단식 피정 중에, 진리의 성령께서는 사울의 이성에 은총의 빛을 비추어 주어, 모든 혼돈을 깔끔히 정리하게 해 주셨을 것이다. 이제 사울은 사흘 후에, 하나니아즈라는 예언과 치유의 은사를 받은 봉사자를 만나 안수받고,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된다.
하나니아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사도9,17)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죄사함의 세례를 받게된다. 사울의 회심은 복음 전파의 흐름과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전환점이 된다. 그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은 복음을 소아시아로, 그리고 로마까지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먹으시면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 불가능이 없으시다.
그러니까 우리 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내롭게 지켜 볼 필요가 있다. 그들안에서 그리고 그들 뒤에서 어떤 영들이 역사하는지를 보아야 한다. 특히 어둡고 부정적으로 보이는 일들 속에서도 절망하거나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 게속 기도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시간들 두고 일이 되어가는 과정들과 열매들을 보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가 읽혀진다. 악은 결코 선을, 거짓은 결코 진리를, 사탄과 그 졸개들은 결코 하느님을 이기지 못한다.
01월 25일 목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오늘의 묵상 (사제 김재덕 베드로)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한 번의 들음이 바오로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필리피서는 바오로 안에서 어떤 내적인 변화가 일어났는지 다음과 같이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3,7-9).
예수님을 얻고 싶은 마음, 예수님 안에 있고 싶은 마음, 바오로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예수님에 대한 진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참된 회심은 ‘들음’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할 때, 우리의 믿음은 영적인 힘을 되찾게 됩니다.
바오로에게 일어난 영적인 변화가 우리 안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얻으려는 열망, 예수님 안에 있으려는 열망과 함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중단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10,17)라는 로마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믿음은 들음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듣는 것이 중단된 신앙생활은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심’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영적인 기쁨도 사라져 버리게 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그 힘을 잃어 가게 됩니다.
하느님보다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구원을 가져다주는 신앙생활이 짐처럼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신앙생활은 “믿는 이들에게” 일어나게 될 영적인 표징들을(마르 16,17-18 참조) 체험하게 이끌어 줍니다.
(김재덕 베드로 신부)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람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면 사울처럼 그분을 박해하는 헛된 신앙이 된다.
(마르16,15-18)
15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피조물인 사람이 복음을 모르면, 믿지 않으면 흙의 티끌일 뿐인데, 그들에게 복음을 주라는 말씀이다.
(창세1,25-27) 25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같은 날, 같은 재료로 짐승들도 창조하셨다.
(창세2,7)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하느님의 생명의 숨으로 흙의 먼지가 생명체가 되었다. 생명의 숨(니스마 하이), 하늘의 생명을 찾아 살 수 있는 곧 생명을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찾고자 하면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히브1,3) 3 아드님(예수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모습(제렘-형상, 모상) 흙의 먼지인 우리를 예수님의 모상이 되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기심으로 예수化- 그 예수님의 모상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福音이다.
(1요한2,2)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요한1,4.9.12)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내 죄를 대속하신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형상, 모상이 되는 것이며 복음을 믿는 것이다.
(1코린15,2-5)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3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4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5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 대속의 죽음과 부활, 구원의 기쁜 소식, 복음이다.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 대부분 우리는 그 복음을 믿기 전에 세례를 받았다. 그러니 믿음이 없는 그 종교 행위에만 열심 하다가 죽으면 어찌 되겠는가. 믿음은 성령께 의지하여 성경을 묵상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곧 성령께서 말씀을 믿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령께서 믿음을 주신다.
말씀을 모르던 시절- 성경 말씀을 보고 하느님의 뜻을 깨달을 생각은 하지 않고 철야기도, 피정을 찾아다니며 믿음 달라고 ‘소리, 소리 질렀던’ 그 때를 생각하니, 참으로 無知한 탓이었다.
그렇게 주님의 대속, 그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용서가 이뤄지겠는가? 그러니 斷罪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 하느님의 말씀을 뱀(마귀)의 유혹으로 善惡의 말로 먹은 아담, 그의 그 잘못(죄)으로 모든 이가 죄(죽음)의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죄의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뱀의 선악의 말, 그 심판의 말을 하던 마귀가 쫓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 심판의 말이 아닌 惡을 대속하신 善의 죽음, 그 眞理의 말씀, 그 새로운 언어를 말하게 된 것이다.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말로 따먹은 아담(하와)의 손이다. 그 손이 선악의 열매인 법, 심판의 말, 그 독으로 받아도~ 예수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 그 새로운 언어, 말을 할 줄 아는 이에게는 죄의 심판, 그 독이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대속으로 그 진리의 새로운 말로 심판이 주었던 罪, 그로 인한 죄의식의 火病, 질병이 낫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듣고 傳할 때 말이다.
(로마6,4) 4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 믿음으로 흙의 먼지, 그 피조물이 아닌 새로운 피조물, 하늘의 존재가 된 것이다.
*오늘 독서의 사울을 보면, 제사와 윤리로 흠 없이 살았던 그는, 예수님과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열성으로 박해 하는 그것이 좋은 일, 봉사, 참 신앙 인줄 알았다. 그런 그를 주님께서 찾아 가셨다.
(사도22,5-7) 5 대사제와 온 원로단도 나에 관하여 증언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서 동포들에게 가는 서한까지 받아 다마스쿠스로 갔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와 처벌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7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그 후- 그 하늘의 큰 빛이 사울의 율법의 눈, 육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가 박해 하고 죽이려 했던 이(성령)를 통해 열어 주신다(믿음의 성령께서 그를 통해 하신일) 새로운 길, 새로운 삶,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잘못된 열성, 무서운 헛된 신앙의 사울을 건져내시어 참 신앙, 진리의 새로운 길을 가는 새로운 바오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은 참된 구원자를 만났고, 믿는다. 확신 한다’고 하는 것이다.
(2티모1,12) 12 그러한 까닭에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입당송)
☨천주의 성령님! 하늘의 대속, 그 진리를 못보게 하는 눈을 열어주소서,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 하늘의 존재가 되게 하소서, 저희 모두가 의탁합니다.~아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복음 (마르16,15-18)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5)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16장 15절보다 앞선 부분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불신앙적 모습으로 보여 주면서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16장 15절 이후부터는 이렇게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이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복음 전파의 명령을 받고, 능력있는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가 부활의 종교이고, 그리스도교인들은 그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 그 부활을 증거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의무가 믿는 이들에게 수행하기 힘든 무거운 짐이 되지 않는 것은 그것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기만 한다면,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 16장 15절에서의 강조점은 복음 전파의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에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삼으신 것은 제자들을 중심한 유대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제자들은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무지와 불신앙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제자들은 이방인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현존은 제자들의 무지와 불신앙을 깨뜨리기에 충분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는 순간에 기존의 무지와 불신앙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부터 깊이 구세주로 영접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의 대상에서 이방인들도 제한되어야 할 이유가 없음을 반증하고, 이방인들도 부활의 복음 앞에서 무지와 불신앙의 틀을 깨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기서 '온 세상'으로 번역된 '톤 코스몬 하판타'(ton kosmon hapanta; all the world)는 '세상'(세계)을 뜻하는 '코스모스'(kosmos; world)와 '온', '모든 것'을 뜻하는 '하파스'(hapas)를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당대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상(세계) 뿐만 아니라 오고 가는 세대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을 가리킨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로 번역된 '파세 테 크티세이'(pase te ktisei; to every creature)는 보통 만민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복음이 어느 특정 지역과 민족에게 제한되지 않고,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어야 함을 이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1월 25일 화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을 앞두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 선포는 의무이며, 그 대상에 경계와 구별이 없다는 이 말씀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 선포에 자신의 삶을 바친 바오로가 떠오릅니다.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유다 사람”으로 태어나,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은 바오로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포박하고 감옥에 넣었던 박해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오늘 독서가 전하는 부활하신 예수님 체험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번쩍이는 커다란 빛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특별한 체험으로 바오로는 ‘그리스도 박해자’에서 ‘그리스도 선포자’로 바뀝니다.
작은 습관 하나도 바꾸기 쉽지 않은 우리이기에, 사울에서 바오로로 바뀐 이름처럼 변화된 그의 삶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얼마나 강렬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지내며, 회개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회개는 자신의 노력과 하느님의 은총이 만나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회개의 결과는 ‘변화’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나는 회개하였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변화하였는가?’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과 그의 열정적인 복음 선포를 기억하며, 우리도 ‘회개’하는 신앙인, ‘선포’하는 신앙인, ‘변화’하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와 함께 고백합시다.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필리 3,10).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믿는가?
복음(마르16,14-18)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율법의 죄(罪), 곧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로마4,25) 그분의 대속, 피의 새 계약인 새롭고 살아있는 용서, 구원의 길을 믿는가? (히브10,20)
십자가의 대속, 그 한 번의 속죄 예물로 죄인인 우리가 더 이상 예물 없이 영구히 거룩하고 완전하게 됨을 믿는가?(히브10,14) 그래서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 하신, 하느님의 새 계약, 그 약속 말씀을 믿는가(히브10,17)
(1요한4,9-10)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 이것이 복음(福音)이다. 우리의 생명, 빛인 복음이다. 모든 이들에게 선포해야 할 기쁜 소식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하늘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믿으면 용서, 의(義), 구원인 것이고, 옛 계약 그대로 율법으로 행하면 심판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그가 주는 거짓말, 곧 선악의 법, 가르침을 버리는 것이다. 믿지 않는 것이다. 마귀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과 악, 도덕과 윤리로 보고 가르침으로 듣게 한다.
세상의 재물과 사람의 명예, 영광을 위해 살게 한다. 곧 세상의 노예로 온갖 영적 질병에 시달리게 한다. 하늘의 의, 영광, 영원한 생명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다. 새롭고 새로운 길로 가지 못 하게하기 위해서다.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을 믿으면 뱀이 주는 선악의 심판, 그 독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늘의 용서, 하늘의 생명, 구원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의 대속, 흠도 티도 없는 그 피로 모든 죄, 더러운 양심까지 다 씻겨 깨끗해 졌기 때문이다. (양심은 첫 계약인 율법이다. 양심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 양심의 죄를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이 없애신 것이다.)
(히브11,28) 28 믿음으로써, 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피를 뿌려, 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을 진리로 하느님이 법, 새 계약으로 믿으면 맏아들이신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것이기에 선악의 법이 죄의 판결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고난, 시련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 새 계약의 새로운 길을 가는 이들을 율법자들은 지속적으로 박해 한다.
오늘 독서의 사울이 그랬다~
독서(사도22,3ㄴ) 3ㄴ “오늘날 여러분이 모두 그렇듯이 나도 하느님을 열성으로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사도9,2-4ㄱ)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ㄱ 그는 땅에 엎어졌다.
= 낮아짐으로 창조주를 의탁 해야 할 피조물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낮아지지 않으니 하늘의 빛이신 주님께서 낮은 저리로 엎어뜨리신 것이다. 곧 인간의 명예, 영광을 위해 살았던 교만의 삶을 버리게 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의(義), 영광을 받도록 새 계약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 엎어뜨리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련, 고난은 기쁨이라는 것이다.(1베드4,12)
(사도9,8)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 하늘의 빛, 빛이신 하느님을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인간 스스로가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지혜, 진리인 새 계약을 깨달을 수도,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고 믿을 수 있도록 진리의 성령을 보호자로 보내주신 것이다.(요한14,16-18.26 1코린2,10 참조)
(사도9,9)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 육의 양식, 곧 자기 의를 위한 율법을 보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하신 것이다. 인간의 뜻, 자기 의로움을 위한 율법을 단식 시키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나니아스를 보내신다.
(사도9,15-16)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 그리스도를 통한 새 계약의 길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고난의 길’ 이라는 것이다.(루가2,34참조)
(사도9,17-18ㄱ)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ㄱ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 안수(按手) - 예수님의 이름, 손으로, 곧 새 계약의 손으로 안수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뱀의 유혹인 선과 악, 도덕과 윤리로 보고 먹어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을 모르게 했던 (막았던) 비늘이 떨어진 것이다.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해 하느님처럼 슬기롭게, 의롭게 되고 싶은 교만의 욕망, 그러나 부끄럽게 하는 곧 사람에게 죄를 알게 하는 그 눈의 욕망의 비늘이 떨어진 것이다.(창세3,5-6)
(사도9,18ㄴ-20)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 율법, 그 옛 계약을 단식하고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을 먹은 것이다. 자신이 박해했던 새로운 길인 새 계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한 것이다. 믿는가?
내 죄를 대속하시고 하늘의 복(용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믿는가? 아니면 제사와 윤리의 삶으로 열심을 부리면 땅의 복을 주시는 그 그리스도로 믿는가?
오늘 입당송으로 배워보자~
(2티모1,12 4,8 참조)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맡은 것을 의로운 심판관이 마지막 날까지 지켜 주시리라고 확신하노라.
좀 더 자세히 보자~
(2티모1,12 4,7-8) 12 그러한 까닭에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아멘!!!
☨우리의 힘이신 보호자 성령님!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 엎어지게 하셔서 억지로라도 끌고 가심을 보았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엎어지게 하는 고난을 원망하기보다 먼저, 당신 아드님을 우리의 속죄 제물로 내어 주셔서 구원의 새로운 길, 그 새 계약을 완성하신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잃어버린 생명의 길인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다시 찾게, 붙들게, 믿게, 의탁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5년 01월 25일 토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은 ‘일치 주간’의 마지막 날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일치의 관점에서 묵상해 봅니다.
바오로(사울)는 율법에 대하여 철저히 교육받은 유다인으로서 당시 새로운 종교적 움직임으로 드러나고 있던 예수님 추종 세력을 박해하였습니다.
바오로는 그들을 체포하러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납니다.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22,7)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바오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다마스쿠스로 들어가라고 이르십니다.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께서 보내신 하나니아스라는 독실한 유다인을 만납니다.
하나니아스는 처음에는 바오로와 만나기를 주저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9,15)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바오로를 찾아가 말합니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9,17).
하나니아스는 박해자 사울을 ‘형제’라 불러 주었습니다.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일어나 세례를 받은 바오로는 열렬한 복음 선포자로 변모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바오로를 믿고 받아들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는 여전히 위험인물이었고, 유다인들의 눈에는 변절자요 배신자였습니다.
몇 년 뒤 바르나바가 고향 타르수스에 머물던 바오로를 찾아와 안티오키아로 데려가 함께 활동함으로써 바오로는 복음 선포자로 거듭납니다.
바오로는 예수님과의 만남에 더하여 하나니아스와 바르나바의 신뢰와 환대로 박해자로서 지녔던 적개심을 모두 내려놓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화해의 사절’이 될 수 있었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1월 25일 수요일[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마르16,14-18)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우리의 죄로 죽으셨고 의롭게 하시려 되살아나신 사랑, 자비의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로마4,25.5,1) 25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 5,1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히브9,28) 28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 믿어야 합니다.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 마귀를 쫓아내는 것, 새로운 언어를 진리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대속(代贖)으로 거저받는 의(義), 생명(로마3,24), 그 새 계약의 말씀이 새로운 언어입니다. 곧 단죄하는 법, 심판의 말이 아니라 살리는 용서, 생명의 말이 새로운 언어입니다.
마귀는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스스로의 의를 위한 옛 계약에 만족하게 합니다.
(히브8,13)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갈라3,24) 24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 뱀이 속이는 선악의 법(毒)이, 그리스도의 대속, 곧 새 계약, 그 새로운 언어를 말하는 이들, 믿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해를, 단죄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 믿음이 치유다.
(1베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1베드4,8) 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
(야고5,13-16) 13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양 노래를 부르십시오. 14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15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 은총이신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저희의 내적 인간이 성령님의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새로운 언어,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내려 서로 사랑으로 살도록 간구(기도)해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