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15일 수요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시몬 장모 열병 치유 (마르1,29-39)
제1독서<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히브2,14-18)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6 그분께서는 분명 천사들을 보살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십니다.
17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모든 점에서 형제들과 같아지셔야 했습니다.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충실한 대사제가 되시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화답송>시편105,1-2.3-4.6-7.8-9(◎8ㄴ) ◎ 주님은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셨네.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
○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
○ 명령하신 말씀 천대에 이르도록, 당신의 계약 영원히 기억하시니,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이며, 이사악에게 내리신 맹세라네. ◎
복음<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마르1,29-39)
예수님께서 29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제1독서 (히브2,14-18)
"그분께서는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18)
본절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취하심으로써 인간이 당하는 모든 유혹을 경험하였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매우 유명한 구절이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셨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히브4,15)
히브리서 2장 18절의 본문 '아우토스 페이라스테이스'(autos peirastheis)을 좀 더 정확히 번역하면, '그분 자신이 유혹을 받아'가 된다.
'아우토스'(autos; himself)는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재귀적 용법으로 쓰였다. 또한 '유혹을 받아'로 번역된 '페이라스테이스'(peirastheis; being tempted)는 '유혹하다', '시험하다' 등을 뜻하는 '페이라조'(peirazo)의 과거분사 수동태이다.
예수님께서는 일생동안 사탄의 유혹의 대상이었고, 이러한 사실은 히브리서 2장 18절, 4장 15절, 그리고 루카복음 4장 13절, 22장 28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당신의 제자들이 유혹을 당할 때에 친히 도와주실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예수님의 지상 생애가 인성적 차원에서 하나의 유혹이었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동일하다. 단지 다른 것은 그러한 유혹 가운데서도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분께서는 여러가지 유혹을 받으셨지만 죄는 짓지 않으셨다. 따라서 본절에서 유혹은 유혹(was tempted)이었지, 시험(test)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인간들과 동일하게 하느님의 뜻에 불순종하라는 유혹, 사탄에게 굴복하라는 유혹, 육체의 고통을 피하라는 유혹 등이 끈질기게 따랐지만, 이것들과 싸워 이기셨으므로 그러한 유혹에 직면한 성도들을 도우실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여 기도하셨는데, 공관 복음서 저자들은 한결같이 그때에 그분이 '호 페이라존'(ho peirazon), 즉 '유혹하는 자'인 사탄과 만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마태4,1; 마르1,13; 루카4,2).
사탄은 '계속해서 유혹하는 자' 이다. 사탄은 유혹의 손길을 그리스도에게까지 뻗치고 있다.
광야에서 그는 세 가지로 그분을 유혹하고자 시도했는데,
첫번째 유혹은 예수님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 이외의 목적으로 능력을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돌을 빵이 되게 하는 극적인 기적을 행하라는 것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 유혹은 주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위해 양식을 제공하시리라는 구약의 약속의 배경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사탄은 그분의 마음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했으며,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이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불신앙과 욕심, 불만족과 의심 등에 사로잡혀서 하느님께 범죄했던 그 전철을 그분도 따르기를 원하였음이 분명하다.
두번째 유혹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며 그때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다. 이 유혹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유랑할 때에 하느님께서 보호를 약속하신 사실로 보인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에 축복과 저주를 제시하셨는데(신명기11,26; 27,10~30,20), 축복에는 모든 종류의 위험으로부터의 보호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번째 유혹은 하느님 대전에 사탄 자신을 따르면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줄 것이라는 유혹이었다. 이런 유혹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차원에서 매우 빈번하게 당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의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당한 유혹들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이스라엘이 민족 공동체의 생활에서 당한 유혹들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한 사탄의 유혹은 이처럼 그분이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되어 겟세마니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겟세마니 기도에서 할 수만 있다면 그 고난의 잔이 자신에게서 비켜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이다(히브5,7; 마태26,39).
한편 유혹과는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그분께서 최고의 시험을 받으신 순간은 십자가상에서 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르15,34;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십자가 위에서의 외침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과 고통의 크기를 잘 표현해 주며,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의 궁극적 결과에 직면하신 것도 바로 이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받아 고난을 많이 겪으셨다. 인간중에 예수님보다 더 큰 유혹과 시험을 당한 자가 어디 있는가?
이렇듯이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고의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셨기 때문에 성도들이 어떤 유혹과 시험을 당하더라고 능히 도와주실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시험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유혹은 마귀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경우를 모두 인성으로 극복하셨다.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와주실 수가 있습니다' 로 번역된 '뒤나타이 토이스 페이라크메노이스 보에테사이'(dynatai tois peirazomenois boethesai)는 '그는 유혹을 받는 이들을 도우러 도실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셨지만, 그것을 모두 이기신 예수님께서는 동일한 유혹에 직면한 당신 백성들을 언제든지 도우실 수 있다는 말씀이다.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로 번역된 '보에테사이'(boethesai)는 '도우러 오다', '돕다'를 뜻하는 '보에테오'(boetheo)의 부정사이다.
'보에테오'는 본래 위험에 빠진 자의 울음 소리를 듣고 도우러 급히 달려가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마귀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달려가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사용되었으며(마태15,25;'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아시아로 선교 여행을 계속하고자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간 바오로에게, 환시 중 나타난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라고 했을 때도 사용되었다(사도16,9).
이러한 의미과 용례를 가지는 이 단어를 통해서, 우리는 심각한 유혹에 직면하여 도움을 청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지체하지 않으시고 달려오셔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유혹과 시련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야고보는 성도들이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라고 말했으며(야고1,2). 베드로는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에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1베드4,12) 라고 말했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유혹과 시련 가운데서도 우리가 낙담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동일한 유혹을 당하신 바 있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히 도와주신다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유혹과 시련을 당할 때에 낙심하여, 심지어 하느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그러지 말고, 솔직히 잘 극복하기 힘을 때에는,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똑같은 유혹을 겪으신 예수 그리스도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라고 겸손하게 도움을 구할 것이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회당에서 악령을 쫓아내신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그곳에서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치시는 기적이 오늘 복음이 전하는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앞선 구마와 치유 기적에 이어 예수님의 업적을 요약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세 번째 이야기는 예수님의 또 다른 모습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내용은 6장 46절과 14장 32-42절(겟세마니에서 기도)에서도 언급됩니다.
예수님의 활동을 요약해서 전하는 가운데 표현된다는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주 기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소는 ‘외딴곳’으로 표현되는데 이 또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복음서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낱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것은 복음 선포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예수님의 활동을 정리한 모음집과도 같습니다.
그분의 활동은 치유, 구마, 기도와 복음 선포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모든 활동 가운데 중심이 됩니다.
치유나 구마도 하느님의 힘이 드러나는 업적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말씀을 통해서만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활동으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열병 치유
(마르1,29-39)
29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오시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 예수님의 급하신 마음이 느껴진다. 앞 절에서 사람의 계명으로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하는, 그래서 하늘의 쉼,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구원과 상관없는 헛된 신앙을 하는 그들을 예수님께서 가르침으로, 구마로 치유하셨음을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구원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생각 그대로 소문으로 퍼뜨렸다.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주었더니 소문으로 하느님의 뜻을 헛되게 한 것이다. 그와 같이 자기 의로움을 위해 애쓰는, 그래서 힘든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 그 사람을 곧바로 찾아가신 것이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 어떤 사정? - 사위와 그의 동생이 함께 사는 집에 사는 장모다. 엄청 힘들고 화가 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참아야 한다. 참고 또 참아야 했다.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을 살아야 하니 화병이 났던 것이다. 또한 사람의 말, 소문을 듣고 하는 신앙이니, 죄인들을 구원하시러 오신 메시아를 몰랐기 때문이다.
(골로2,14)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죄)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로마6,6) 6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옛 인간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죄의 지배를 받는 몸이 *소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하늘에서 죄인들을 찾아 이 땅으로 내려오신, 그리고 그들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으로 다 갚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렇듯 주님(하늘, 新郞)이 죄인(婦人, 땅)을 찾아가신 것이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 손과 손이 하나가 되었다. 죄의 손을 용서의 손이 덮으셨다. 대속으로 못 박히신 손이시다. 그 손이 잡아 일으키시니 화가 가셨다. 화, 분노, 미움의 그 죄성들은 인간의 힘,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려질 수는 있지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쌓이는 것이기에 같은 사건, 상황이 벌어지면 화가 더 커진다. 그래서 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모든 질병의 원인이 화(禍), 미움 그 죄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대속으로 십자가를 지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오늘 독서(히브2,14-18) 중에서~
14 자녀들이 피와 살을 나누었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함께 피와 살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당신의 죽음으로 파멸시키시고, 15 죽음(죄)의 공포 때문에 한평생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다음절에 고침받은, 구원받은 이들을 소개한다.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 그 구원으로 치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기적의 예수님으로, 그 소문으로 퍼뜨릴 것을 막으신 것이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다니시는 분이시다. 당신께서 죽으셨다 부활하신 뒤에도 두려워 숨어있는 제자들을 찾아 다니셨다.(요한20,11-24 21,1~) 그리고 당신의 숨, 성령과 하늘의 평화를 주셨다. 그렇듯 오늘 주님이, 말씀이 우리를 찾아 오셨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참지 않아도 된다는 말리 아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예수님의 힘으로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용서하신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또 다른 이의 죄를 위해서도 죽으신 그 서로의 용서이신 예수님 안에서 참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 넘어진다. 열난다. 그랬을 때 매일 찾아오시는, 아니 내 마음과 생각에 새겨주신 용서의 법, 그리스도 피의 새 계약, 그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또 일어나 가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참지 못하는 나의 이기심과 혈기, 그 부족함, 그 죄성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갈 때, 그런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그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또 넘어져 힘들 때 곧바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못 박히신 손’을 다시 잡는 것이다. 그랬을 때 열병, 화병, 죄의식이 가시곤 한다는 것이다.
(히브10,16-17) 16 “그 시대(십자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새 계약의 법, 그 예수님(말씀)께서 오늘 나에게 다가 오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화가, 죄가 가셨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아멘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복음(마르1,29~39)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35)
'새벽 아직 캄캄할 때'에 해당하는 '프로이 엔뉘카 리안'(proi ennycha lian; very early in the morning)은 마르코 복음에 나타나는 시간에 대한 전형적인 이중 표현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마르코 복음 1장 21절에서 38절까지에서 '낮'(21~31절), '해질녘'(32~34절), '새벽녘'(35~38절)에 이르는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하루 일과 시간표를 통해서 예수님의 활동이 잠시도 쉴 틈도 없이 매우 바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새벽'으로 번역된 '프로이'(proi; in the morning)는 유대인의 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네번째 밤인 새벽 3시부터 새벽 6시 사이의 시간을 말한다.
또한 '아직 캄캄할 때' 혹은 '미명(未明)에'로 번역될 수 있는 '엔뉘카'(ennycha; before day)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시간을 말한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중적 표현을 사용해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편히 쉬는 시간에 깨어서 제일 먼저 기도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코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장면이 이곳을 포함해서 세 번 등장한다.
시간에 있어서 마르코 복음 1장 35절은 밤이 거의 끝나가는 새벽 무렵이고, 마르코 복음 6장 46절에서는 해가 진 이후인 저녁이었고, 마르코 복음 10장 32~42절에서는 한밤중이었다.
또한 모두 혼자 기도하셨거나, 제자들을 데리고 있었어도 따로 떨어져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
그리고 공생활 활동 초기의 갈릴래아 선교, 활동 중간시기, 또는 활동 말기의 수난 이전 등 큰 사건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도한 것으로 묘사되며, 큰 일을 앞두고 있을 때일수록 더욱 성부 하느님 대전에 열심으로 기도하셨음을 보여준다.
또한 위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의 기도는 바리사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함이나 신심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루카18,11.12)나 교훈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성부 하느님과의 은밀한 친교를 통해 자신의 활동의 힘을 얻기 위해서 하는 기도였다(마태6,6).
그리고 '기도하셨다'에 해당하는 '프로세위케토'(proseycheto; prayed)는 원형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의 미완료 과거형이다.
희랍어에서 미완료 과거형은 과거 사실의 반복과 계속을 나타내므로, 예수님의 기도가 장시간 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가 이어집니다.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마르 1,27)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신 예수님께서 회당을 나와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곳에는 그분의 도움이 필요한 시몬의 장모가 있습니다.
어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말씀’으로 치유하신 예수님께서, 오늘은 ‘행위’로 그를 치유하십니다.
그분께서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십니다.
치유받고 나서 곧바로 “시중을 드는” 그의 모습은, 하느님께 받은 ‘은혜’가 이웃을 위한 ‘봉사’로 이어져야 함을 묵상하게 합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안식일이 끝나고 사람들은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데려옵니다.
그들을 낫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외딴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십니다.
이는 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분의 능력은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곧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만나는 때인 기도 안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십니다.
모든 이가 열광하며 당신을 찾는 그곳에 머무르시지 않고, 다른 고을을 찾아 나서십니다.
온 백성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당신께서 오신 목적이며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르코 복음사가는 어제와 오늘 복음에 걸쳐 예수님의 모든 활동을 요약하여 소개합니다.
하루에, 그것도 안식일에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하셨다는 것은 복음 선포가 그만큼 급하고 중요하였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항해 여정을 기도로 시작하시고, 기도로 마무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합시다.
믿음은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 안에서 커 나갑니다.
기도는 우리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채워 주고, 우리의 분주한 일상을 이끌어 주는 근원입니다. “기도는 노력입니다.”
“기도를 가까이할 때에 삶이 바뀝니다”(『기도, 새 생명의 숨결』, 16면).
그래서 기도는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희생하고 투쟁하며 기도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홍보국)
2025년 01월 15일 수요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어제와 오늘 복음(마르 1,21-39)을 신학자들은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라고 부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구마와 치유 활동, 기도 등을 마치 그분의 하루 일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제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신 구마와 오늘 복음의 다양한 치유 이야기,
그리고 이어지는 죄의 용서를 통해서 하느님이시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시몬의 장모의 열병 치유, 온갖 질병과 마귀 때문에 앓고 있는 많은 이의 치유, 그리고 예수님의 새벽 기도입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부분에 마음이 더 많이 머무릅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마르 1,32) 곧 안식일이 지나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자,
예수님 앞은 사람들이 데려다 놓은 병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이는 유다교의 독특한 날짜 계산법에 따른 것입니다.
빛보다 어둠이, 낮보다 밤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밤, 낮 하루가 지났다.”(창세 1,5.8.13.19.23.31)라는 첫 번째 창조 이야기의 후렴구 그대로입니다.
더 일찍 오고 싶었지만 안식일 계명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온 고을’에서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1,34)과 마귀 들린 ‘많은’ 이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도 많은 이가 주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비 구원의 상태’에 놓여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십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회복됩니다. 예수님의 구마와 치유는 하나의 표징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하느님께 받은 예수님의 놀라운 권위와 권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펼쳐지기 시작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1,38).
그 누가 예수님의 이 사랑의 발길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김동희 모세 신부)
2025년 01월 15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주신 말씀을 실천하도록 지켜주소서.
복음(마르1,28-39)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게 해, 하늘의 대속, 진리, 구원의 의로움과 상관없는 인간 스스로의 자기 의로움(율법- 제사와 윤리)으로 안식, 구원에 이르도록 헛된 신앙을 살게 해 영원한 멸망, 병, 죽음에 갇히게 했던 카파르나움의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살리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빨리도 인간들의 이야기(소문)로 퍼져 나간 뒤~
29 그들(예수님 일행)은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셨다.
= 베드로를 시몬으로 소개했다. 생명수(물)가 나오는 반석(베드로)이 아닌 물 없는 모래, 조약돌(시몬)로, 곧 사람을 살리시는 생명의 물, 복음, 진리의 말씀을 사람들의 소문으로 들어 생명의 물(진리의 말씀)이 없는 시몬의 집으로 가신 것이다.
그러니까 더러운 영의 거짓으로 생명인 말씀(물)이 없어 스스로 안식, 구원에 이르려 열심을 부렸던, 그래서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어 열이 난 이를 찾아가신 것이다. 오늘 행위의 열심(제사와 윤리)을 믿는 우리를 찾아오심 이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로마10,2-3) 2 *(율법-제사, 윤리) 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 하늘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의 손이, 땅, 인간의 의로움의 열(火)을 없애신 것이다. 다시, 더러운 영의 거짓말, 거짓 가르침으로 무거운 신앙을 살았던 화병, 열병을 진리(오른손)의 손이 고치신 것이다. 창조의 손이 새 창조로 다시 살리신(낳으신) 것이다.
오른 손으로~
(예레18,4) 4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
(시편18,36) 36 당신께서는 구원의 방패(말씀, 믿음)를 제게 주시고 당신 *오른손으로 저를 받쳐 주시며 손수 보살피시어 저를 크게 만드셨습니다.
(시편138,7) 7 제가 비록 곤경 속을 걷는다 해도 당신께서는 제 원수들의 분노를 거슬러 저를 살리십니다. 당신 *손을 뻗치시어 당신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십니다. ~아멘!
32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 해가 있는 낮에 안 오고 왜? 어둠을 향해가는 저녁에 왔을까? 땅의 소원, 땅의 의를 위해 사는 것이, 그렇게 가르친 마귀(사람)의 말이 어둠(죄, 죽음)을 향해가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33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 온 고을, 곧 온 세상 사람들이 마귀의 거짓말로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34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질병을 일으키는 마귀의 거짓의 말(가르침)을 막으신 것이다.
시몬의 장모처럼, 구원의 복음을 사람들의 말, 소문으로 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들어 헛된 신앙을 살아 영적질병이 든 이들을 살리셨고, 막으신 것이다. 마귀는 예수님을 잘 알기에 위장하여 사람들을 잘 속인다.
(2코린11,14-15) 14 그러나 놀랄 일이 아닙니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15 그러니 사탄의 일꾼들이 의로움의 일꾼처럼 위장한다 하여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종말은 그들의 *행실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35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의 자세다. 새벽, 곧 일찍 일어나 하느님부터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말, 세상의 말(TV)부터 듣지 말고,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보고, 먹어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을 기도로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사탄, 마귀가 위장한 거짓된 의(義)의 유혹으로,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늘의 대속, 그 십자가의 의로움(그리스도)을 빼앗기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 당신의 죽음을 위해 기도하신 것이다. 그러니 아침마다 그 주님과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는가...........
36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온갖 질병을 치유 받고자 찾는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 사실은, 질병을 고치심이 당신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물론, 아플 때 주님께 기도할 수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고쳐 주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필요에 따라서. 곧 하느님의 백성을 구하시기 위한 영적치유, 구원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이다.
*기도 했는데 고쳐 주시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처럼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이다.(2코린12,7-9참조) 그래서 복음 선포가 목적이다. 십자가의 대속, 그 당신의 죽음을 진리로 선포하시는 것이다.
(마태6,33)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9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 영원한 치유, 자유, 평화, 생명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이 구마다. 곧 모든 죄를 대속 하시고 흘리신 피, 하느님의 구원의 새 계약, 새 계명인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씻겨 마귀가 흠 잡을 때가 없기 때문이다.
(히브11,28) 28 (하느님, 말씀)을 믿음으로써, 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어린양의) 피를 뿌려, 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사탄, 마귀)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말씀이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 진리임을 깨달아 거짓 빼앗기지 않고 지킬 수 있도록 마음에 새겨 주소서, “주님의 종이오니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아침부터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