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24일 금요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 사도 (마르3,13-19)
제1독서<그리스도는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히브8,6-13)
6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7 저 첫째 계약에 결함이 없었다면, 다른 계약을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8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결함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9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키지 않아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10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1 그때에는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제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2 나는 그들의 불의를 너그럽게 보아주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화답송>시편85,8과10.11-12.13-14(◎11ㄱ)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리라.
○ 주님, 저희에게 당신 자애를 보여 주시고, 당신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
복음<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마르3,13-19)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연중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히브8,6-13)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6)
히브리서 8장 6절의 상반절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뛰어나심에 대한 묘사인데, 이것은 히브리서 1장 4절에 그가 천사보다 뛰어나신 분이라는 묘사에서 이미 사용되었다.
히브리서 8장 6절은 모든 동사가 완료 능동 직설법으로 되어 있는데, 후반절의 '중재자'라는 용어는 법적 중재자를 의미하는데, 사제가 거룩하신 하느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에 서듯이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이에 서신다는 것이다(히브9,15; 12,24; 1티모2,5).
이것은 대사제의 직무와 역할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에서 '세워진'은 완료 수동 직설법이고, 히브리서 저자는 '더 나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모세의 계약보다 우월한 예수님의 권위를 드러낸다.
이것은 히브리서 7장 7절의 '윗 사람에게서'의 '위'를 뜻하는 '더 높은', '더 나은', '뛰어난', '훌륭한', '더 가치있는'에 해당하는'크레이토노스' (kreittonos; better)라는 단어를 통해 대조가 나타난다.
히브리서의 핵심은 모세의 계약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계약을 비교함에 있는데, 이것이 히브리서의 반복된 주제이다.
한편, '계약'을 뜻하는 구약의 용어인 '베릿'(berit; covenant)은 정의하기에 쉬운 용어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A와 B가 계약을 맺을 때 송아지 한 마리를 가져와 자르고 (죽이고), 그 갈라진 틈으로 지나간다.
그것을 '계약을 맺는다'에 해당하는 '카랏 베릿'(karat berit)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말하자면 계약을 어긴 당사자는 그 잘려진 송아지처럼 죽는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예레34,18).
그래서 '베릿'(berit)이라는 히브리 단어를 'covenant'라는 영어로 번역한다.
이것은 A와 B가 인격과 생명, 존재를 뜻하는 '피'로서 맺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교환 행위를 말한다.
그래서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을 대표로 하는 모세와 하느님과의 계약에서 나온 '계약의 산물'인 '십계명'(신정법; 神定法)을 어기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으니까, 동물이 사람 대신에 속죄 제물로 번제단에서 바쳐졌고, 이제 신약에 와서는 수많은 동물들 대신에 무죄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상실한 관계를 회복하는 일과 하느님의 성품과 속성을 나타내는 의로운 백성이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히브리서 8장 10절에서 인용되는 예레미야서 31장 31~34절 중의 말씀인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은 하느님의 법이 외적 행위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내적인 갈망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경건하고 의로운 백성이 되는 목적은 그대로 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범죄하는 인간의 죄성과 불완전함과 나약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로마7장; 갈라3장).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 사업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은 무상으로 주어지지만, 동시에 자신의 구원과 성화를 위해 끊임없는 회개와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신약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계약 앞에서, 하느님의 자신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을 온전히 믿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쳐 회개해야 하며, 그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으로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실천하고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죽을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는게 구원이다.
독서 (히브8,6-13)
6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약속, 계약보다 더 나은 약속, 계약의 중개자라 하신다. 곧 율법의 의로움보다 더 나은 의로움의 중개자이신 것이다.
(로마3,21.24)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로 받는 의로움, 더 나은 계약이다.
7 저 첫째 계약(율법)에 결함이 없었다면, 다른 계약(진리)을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8ㄱ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결함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모든 사람들이 첫째 계약인 율법을 지킨, 그 자기 의로움의 길을 고집했기에 꾸짖으시며 율법보다 더 나은 계약,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새 계약의 날은 반드시 온다고 하시는 것이다.
8ㄴ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9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키지 않아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 이집트에서 나올 때 맺었던 계약,
(예레11,3-4) 3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계약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4 이 계약의 말씀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곧 쇠를 녹이는 도가니에서 끄집어내던 날, 그들에게 이렇게 내린 명령이었다. ′내 말을 듣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을 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면,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하겠지만 그럴 수 있다. 하느님의 법, 뜻이니까. 하느님 나라는 흠도 티도 없는 깨끗한 빛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깨끗한 나라에는 깨끗한 자만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빛의 나라에 어둠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법의 모든 조목을 다 완전히 킬 힘,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야고2,10) 10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 그래서 율법으로는 우리의 죄만 드러날 뿐이라고 한 것이다.(로마3,20) 그러니 우리 모두는 저주받은 자로 지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하느님께서 율법보다 더 나은 계약, 곧 새 계약을 주신다는 것이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대속으로)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 저주를 다 받으시고 저주의 십자가에 대신 달리시어 죽으시고 흘리신 그 새 계약의 피로, 더러웠던 우리의 죄가 따 씻기어 흠도 티도 없는 깨끗한 자로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다시 알려주신 새 계약이다.
(히브10,14. 22) 14 그래서,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10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 새 계약의 피를 흘리신 십ㅈ다가의 대속이 다 이루어진 후에, 우리의 생각, 마음에 새겨주고 넣어주신 그 새 계약을 간직하면(지키면, 믿으면) 하느님의 백성으로, 그분의 생명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구원이다. 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받는 구원이며 그 말씀을 품고가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세례를 받았다고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다. 새 계약을 지켜야, 곧 거짓말 가르침에 빼앗기지 않고 잘 간직해야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새 계약을 지키지 못하고 빼앗겨 옛 계약에 묶여 있기에, 오늘 세 번씩이나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로 강조하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복음에서 제자들, 우리에게 그 옛 계약을 물리칠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이다.
(마르3,14-15)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새 계약)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새 계약)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1 그때에는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제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으리라.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 아니다.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는 일은 하느님의 영, 성령께서 하신다는 것이다.(1요한2,27참조) 그래서 주님을 전할 때, 사람들이 한 일이나 책이나 영화 같은 것들을 예화로 들어서 주님의 일로 가르침을 주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께서 하신 일, 말씀을 하느님의 뜻으로, 사실 그대로 선포하는 말씀(복음)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2 나는 그들의 불의를 너그럽게 보아주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 십자가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그 하느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하신, 곧 새 계약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그 구원자, 그 예수님만을 하느님께서는 보신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보시지도 기억하시지도 않으시는 것이다.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 죄의 심판은 법이 있어야 성립이 된다. 대속이라는 새 계약 아래 있는 사람은 옛 계약의 법이 힘을 못 쓴다. 죄의 심판, 곧 죽음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1고린15,53-57) 53 이 썩는(옛 계약) 몸은 썩지 않는(새 계약) 것을 입고 이 죽는(옛 계약) 몸은 죽지 않는(새 계약) 것을 입어야 합니다.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새 계약)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옛 계약)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옛 계약)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구원)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옛 모습에 묶여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를 동행하시며 새 모습으로 이끌어 주시는 사랑과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염치없는 의탁과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성경에서 ‘산’은 지형적으로 평지보다 높은 곳만을 가리키지 않으며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산은 구약 성경에서부터 하느님과 가까운 장소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 하느님께서는 하늘 위에 앉아 계시는 분이시고, 산은 그분께 다가가 만나는 장소입니다.
또한 산은 모세가 하느님께 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나이산에 올랐던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십계명을 받은 이 사건은 하느님의 뜻이 직접 전해지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져 성경 전반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신학에서는 이를 모세의 예형론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로, 하느님의 뜻이 계시된 장소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산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장소이기도 합니다(마르 6,46 참조).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셨다는 것은 이미 이런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산에 올라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산에서 열두 제자를 선택하십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십니다.
부르심은 온전히 예수님에게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르시고 제자들은 응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신 첫째 목적은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그분과 함께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 사도
(마르 3,13-19)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 산에 올라가시어~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겠다는, 그 아버지의 뜻이 곧 당신의 운함이라는 말씀입니다.
14ㄱ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 열둘~ 구약의 12지파(아들)를 신약의 12 사도로- 교회를 세우심입니다. 그 교회는 하느님나라 백성들의 모임인데~
(묵시7,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 12지파 ⅹ 12사도 = 144 ⅹ1000 하늘의 충만입니다. 하늘의 인장- 자격 없는 타마르를 회복시켜 주었던 그 인장입니다.(창세38;18참조) 창조주, 그 전능하신-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신의 약속입니다.
그 구원의 인장, 약속으로 완성하시는~ 그 하느님 나라 백성을 의미하는 숫자가 144,000명입니다. 그 숫자만 구원 받는 그런 잘못된 생각은 헛된 망상일 뿐입니다.
(2고린1, 22)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14ㄴ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주님과 함께 지낸다는 것, 주님과 하나 됨을 뜻합니다. 그렇게 주님과 하나 된 후, 복음 선포입니다. 그랬을 때 복음 선포가 마귀를 쫓는 힘입니다. 구마는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이루어집니다. 말씀이 곧 권한입니다.
(마태17,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 말씀으로 호통 치십니다. 칼날 같은 말씀입니다.
(히브4,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 사도란, 지도자란,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 그 칼로 사람 속에 들어있는 그 이기적 죄 성을 들쳐 내어 잘라 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뱀의 유혹으로 사람의 말, 계명으로 잘못 받은 12지파의 잘못, 그 더러운 영의 거짓 가르침을 12사도가 잘라내는 그 구마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구마의 능력으로 갖지 않고 사람의 뜻을 충족시키는, 만족시키는 그 사람의 말로 갖고, 고집하면 그것이 곧 뱀, 더러운 영의 말을 계속 먹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물-말씀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 이지만~ 사람의 말 그 가르침은 영원을 줄 수 없는 다시 목마르게 하는 곧 끊어질 죽음의 물입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 시몬(물이 없는 자갈)에게 물이 주어집니다. 베드로(물이 나오는 반석)가 됩니다.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 그 하느님의 말씀, 그 복음이 주어집니다.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 그런데 기도하신 후 뽑으신 제자가 배반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세 번 배반하고 다른 제자들 도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기도가 잘못된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 만을 위해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도 예수님도 알고 계셨지요.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우리 자신들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맡기신 겁니다.
(로마3,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 구원은 100% 하느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십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히브11,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 사라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
(창세18, 12) 그래서 사라는 속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렇게 늙어 버린 나에게 무슨 육정이 일어나랴? 내 주인도 이미 늙은 몸인데.’ ~
=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없었던 사라에게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이 낳으신 겁니다.
믿음이란~ 하느님께서 꼭 이루실 것을 믿는 겁니다. 그 믿음이 있을 대 희망만이 남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 그 약속이 계시기에 우리는 늘 희망입니다.
♡ 아멘 -*^ㅇ^*-
연중 제2주간 금요일 복음(마르3,13~19)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4~15)
마르코 복음 3장 14절의 '세우시고'에 해당하는 '에포이에센'(epoiesen; he appointed; he ordained)의 원형 '포이에오'(poieo)는 사람의 행위와 관련될 경우에는 어떤 물건의 외형을 '짓다', '만들다'(마태17,4) 또는 '일하다', '노동하다'(마태20,12)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께 적용되면 무에서 유를 '만들다','창조하다'(마태19,4)는 의미가 된다.
열두 제자를 세우신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마르3,11), 제자들 역시 인위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고 신적 권능에 의해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단어가 계약적 관점에서는 '추종자를 지명하다'는 뜻으로 '어떤 것을 다른 성질의 것으로 만들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모나고 고집스럽고 우직한 갈릴래아 출신 어부나 탐욕스러운 세리 등을 당신의 제자로 새롭게 변화시키셔서 복음 전파와 선교라는 막중한 사명을 맡기셨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단어가 구약적 관점에서는 왕이나 사제에게 직책을 부여하는 표현도 되므로,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의 대사로 지명하여 세우신 것이 된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본문 이하 본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본문의 '함께 지내는 것'과 본문 이후에 나오는 '복음 선포'와 '구마 행위'를 추가하여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하지만, 원문에는 '~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 '히나'(hina; that ~may)가 두 번 사용된 사실을 감안하면, 우선 '예수님 당신과 함께 지내는 것'과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하는 것'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 옳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제자 선택의 첫번째 목적은 당신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즉 참된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자야 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그분의 사상, 정신, 마음, 인품, 삶의 가치관과 방식, 고난을 비롯한 인생 문제를 다루는 방식, 나아가서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것들을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이 제자됨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선택의 두번 째 목적은 '파견' 즉 '복음 선포를 위해 보내는 것'이다.
'그들을 파견하시어' 앞에도 '~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히나'(hina) 접속사가 또 사용되었다.
그리고 '파견하시어' 다음에 나오는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케륏세인'(keryssein; to preach)과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에 해당하는 '에케인'(echein; to have)는 모두 부정사 현재형으로서 '파견'의 이유를 나타낸다.
즉 이것은 파견된 제자의 사명으로서 '복음 선포'와 '구마'를 명령하시고 지적하신 것이다.
여기서 '파견하시어'에 해당하는 '아포스텔레'(apostelle; he might send ~out)는 '사도'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동사형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제자'란 '예수님께서 전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 안에서 선포하는 자들' 이며, 세상으로 보내어지지 않고 교회 안에서 머물기만 하는 자들은 주님의 참된 제자라고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케륏세인'(keryssein; to preach)은 특히 진리와 구원을 '선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므로, 주님의 제자된 자는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이제 파견된 제자들의 두번 째 사명인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는 것'에 대한 말씀이 마르코 복음 3장 15절에 나온다.
이 구절은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0장 1절, 1장 21~28절, 32절, 3장 10~12절을 참고하면, 병을 고치는 치유 행위와 관련되거나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 3장 15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가 단순히 관념적 구원을 강조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질적 변화까지 가져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통해 한 가지 더 강조되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나라의 확장이란 사탄의 세력의 축소라는 사실이다(에페6,12).
여기서 '마귀들'로 번역된 '타 다이모니아'(ta daimonia; devils; demons)는 명사 복수형으로서 '사탄'의 졸개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은 타락한 천사로서의 마귀들의 존재를 부정해서도 두려워해서도 안되는데, 그것은 복음의 능력을 소유한 자는 그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2025년 01월 24일 금요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십니다.
‘12’는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의 숫자입니다. 완전과 충만을 뜻하는 숫자이지요.
그러기에 구약 성경은 메시아의 할 일을 늘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 그들이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는 일로 묘사하였습니다.
따라서 열두 사도를 뽑는 일은 그러한 구원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사도’는 부름을 받아 파견된 존재, 사명이 위임된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에게서 파견되신 것처럼, 제자들 또한 자신들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
예수님의 삶은 바로 이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순결한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 2,14-15).
그런데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처방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2,5).
그러기에 제자들은 파견되기에 앞서 예수님 곁에 머물며 그분을 맛 들여야 하였습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2025년 01월 24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12) 사도(使徒)
복음(마르3,13-19)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 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사제께서*
예수님께서 가장 힘든 기도를 하셨습니다. 당신을 배반(배신)할 이들을,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로 선택(뽑으셔야) 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아버지의 뜻, 구원에 대한 순종이며 죄인들을 가엾게 여기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베드로, 유다룰 비롯한 모든 제자들,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죄인인 우리(나)를 선택하셨고,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하늘의 의(義), 생명을 주신 사랑의 그리스도이십니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히브9,15) 15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은총이신 보호자 성령님!
하느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희 마음 안에서 타오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