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목요일] 많은 병자 치유 (마르3,7-12)

2025. 1. 22. 오후 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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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3일 목요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많은 병자 치유 (마르3,7-12)

   


1독서<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한 번에 다 이루셨습니다.>(히브7,258,6)

예수님께서는 25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십니다.

26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27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28 율법은 약점을 지닌 사람들을 대사제로 세우지만, 율법 다음에 이루어진 맹세의 그 말씀은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아드님을 대사제로 세웁니다.

8,1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대사제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시어,

2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

3 모든 대사제는 예물과 제물을 바치도록 임명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대사제도 무엇인가 바칠 것이 있어야 합니다.

4 만일 그분께서 세상에 계시면 사제가 되지 못하십니다. 율법에 따라 예물을 바치는 사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5 모세가 성막을 세우려고 할 때에 지시를 받은 대로, 그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상이며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성소에서 봉직합니다. 하느님께서 ,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형에 따라 모든 것을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6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더 훌륭한 직무를 맡으셨습니다. 더 나은 약속을 바탕으로 세워진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화답송>시편40,7-8ㄱㄴ.8-9.10.17(8ㄴ과 9)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당신은 희생과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두루마리에 저의 일이 적혀 있나이다. 주 하느님, 저는 당신 뜻 즐겨 이루나이다. 당신 가르침 제 가슴속에 새겨져 있나이다.

저는 큰 모임에서,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당신을 찾는 이는 모두, 당신 안에서 기뻐 즐거워하리이다. 당신 구원을 열망하는 이는 언제나 외치게 하소서. “주님은 위대하시다.”

 

복음<더러운 영들은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소리 질렀다.>(마르3,7-12)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8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히브7,25~8,6)

 

"사실 우리는 이와 같은 대사제가 필요하였습니다.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7,26)

 

히브리서 7장을 마무리하는 26~28절은 레위 계통의 사제들과는 다른 멜키체덱의 반열을 따르신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대해 언급한다.

즉 우리 인간들의 필요를 완전하게 충족시켜 주실 대사제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하였습니다'로 번역된 '에프레펜'(eprepen)의 원형 '프레포'(prepo)는 '적당하다', '어울리다'는 뜻이다.

비슷한 단어들 중에 '데이'(dei)는 필연성'오페일로'(opheillo)는 의무를 표현하는 반면에, '프레포'(prepo)는 적당한 것, 알맞는 것을 표현한다.

 

이 단어에는 외부적 강제나 절대적 필연성이라는 요소가 나타나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자세의 직무를 수행하신 것은 외부의 강제나 절대적 필연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쁘신 뜻에 따른 결단이란 사실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한편 대사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하신 이유가 본절에서 다섯 가지로 나온다.

이러한 특징은 레위 계통의 사제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영적, 도덕적 욕구를 정확하게 충족시켜 주시는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을 이런 열거를 통해 한층 더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①먼저 그분은 거룩하시다.

여기서 '거룩하시고'로 번역된 '호시오스'(hosios)는 원래 '신의 법이나 자연법에 의해 재가된 혹은 허용된'이란 뜻이다.

신약에서 '호시오스'(hosios)는 하느님께 대해서 뿐 아니라 사람(티토1,8), 기도하기 위해 드는 손(1티토2,18) 등과 관련하여 쓰였으며, 이때에는 '경건한'이란 뜻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는 예수님의 '호시오스'는 신적인 거룩함을 나타낸다.

그분이 가지신 거룩함은 인간이 아닌 하느님으로서의 거룩함이라는 것이다 (사도2,27; 16,35).

그분은 인간이시면서 동시에 하느님이시다. 이에 대한 증거는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이사9,6; 요한1,1~3.14; 3,16; 10,30; 14,9; 20,28).

레위 계통의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경건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거룩함을 대사제 예수님께서는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는 천사도 가지지 못한 거룩함을, 모세와 여호수아, 아론도 가지지 못한 거룩함을 독점적으로 지니고 계신 분이다.

 

②둘째, 그분은 순수하시다.

여기서 '순수하시고'로 번역된 '아카코스'(akakos)는 부정 불변사 '아'(a)와 '악'을 의미하는 '카코스'(kakos)의 합성어로서 '죄없는', '악의가 없는', '교활함이 없는' 등의 뜻을 가진다.

여기에는 제3의 세력으로부터 받는 영향 및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고려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악이 전혀 손을 댈 수가 없는, 순수한 분이시다.

인간은 누구나 악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예외이다. 그분은 모든 악으로부터 자유로우시다.

또한 그분은 사람들에게 전혀 악한 일을 행하시지 않으시며, 결코 그들을 악으로 이끌고 가지고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와 같은 점은 레위 계통의 사제들이 '악' 즉 '카코스'(kakos)의 영향을 받아 타락하고 그릇되게 행하였던 것(레위10,1~7; 1사무2,12~17)과 대조를 이룬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시 악의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라면 절대 구원자가 될 수 없다.

 

③세째로,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꼐서는 순결하시다.

여기서 '순결하시고'로 번역된 '아미안토스'(amiantos) 부정 접두어 '아'(a)와 '더럽히다', '흠을 내다'등을 뜻하는 '미아이노'(miain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형용사로 종교적으로든지 도덕적으로든지 '순결한'(pure)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것을 방해하는 흠이라든지 더러움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하늘에서 받게 될 성도의 약속의 상태(2베드1,4), 혼인 관계에서 요구되는 성적인 순결(히브13,4), 실천적인 종교의 순결성(야고1,27)등에 대해서도 쓰였다.

레위 계통 사제들은 정결 의식을 치르지 않고서는 하느님께로의 접근이 불가능한 흠이 있는 자들이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한 점의 흠도 없는 순결한 분이시다.

 

④넷째로, 예수 그리스도꼐서는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지상에서 비록 죄인들과 함께 하시고 친교하셨지만(루카15,1.2) 그들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분이셨다.

여기에서 '떨어져 계시며'로 번역된 '케코리스메노스'(kechorismenos)는 '코리조'(chorizo)의 수동태 완료 동사로 분리된 상태를 가리킨다.

고전 희랍어 문헌에서 이 '코리조'동사가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이 육체를 떠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쓰였다는 사실은 문자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신약에서 '코리조'는 공간적인 분리(사도1,4; 18,1.2)라든지 감정적인 분리(로마8,35), 이혼(마태19,3)등을 나타내어 쓰였는데, 본절에서 저자가 이해시키려는 것은 정신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양면적 분리성이다.

즉 하나는 그분이 무죄하시다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이 악한 세상에서 떠나 계시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심에도 죄는 없으셨으며(히브4,15), 이 세상에 오셨지만 결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셨다(요한17,14).

또한 지금은 완전히 거룩한 하늘 옥좌에 계신다.

 

⑤다섯째로, 예수 그리스도꼐서는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어 최고의 지위에 오르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분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셨으며(사도1,9~11), 하느님 아버지 옥좌 오른편에 앉으셨다(마르16,19).

스테파노는 순교 직전에 하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이에 대해 증거하였다(사도7,36).

 

'~보다 더 높으신'으로 번역된 '휩셀로테로스'(hyselloteros)는 '높은'을 뜻하는 '휩셀로스'(hysellos) 비교급으로 '더 높은'(higher)이란 뜻이다.

하늘은 지상의 모든 피조물보다 높은 곳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그 하늘보다도 더 높아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천사들과 레위 계통 사제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분이심을 잘 알게 한다.

그분께서는 아버지의 옥좌 오른편이라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신 것이며, 그분의 사제직이 아래에서 난 레위 계통 사제들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얼마나 우월하신지를 잘 보여준다.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예수님의 주된 활동 무대는 갈릴래아입니다.

갈릴래아는 호수의 이름이자 호수가 속한 지역을 일컫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역으로 보면 갈릴래아는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에는 유다 지역이 자리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스라엘 지역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의 활동을 설명합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중심 도시가 속한 유다 지역, 이스라엘의 최남단인 이두매아,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은 동쪽의 경계를 나타냅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티로와 시돈은 갈릴래아보다 더 북쪽에 있는, 당시에는 페니키아에, 지금은 레바논에 속하는 도시입니다.

도시와 지역에 대한 언급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갈릴래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스라엘 전 지역에, 더 나아가 다른 나라들에도 퍼져 나갔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결과를 통하여 마르코 복음은 이미 예수님의 구원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이들을 고쳐 주시고 악령을 쫓아내십니다.

그리고 악령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외칩니다.

악령의 외침은 예수님의 신원을 드러내지만 그분께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악령의 외침은 진정한 고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악령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루신 가르침과 업적을 통하여, 특히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드러나는 신비를 통하여 사람들이 믿음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은 단순히 아는 것 이상입니다. 믿음은 알고 고백하며 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2주간 목요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는 아버지 하느님!

(마르3,7-12)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8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 갈릴래아 주변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다. 왜? -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셨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것이다. 예수님을 찾아 올 때 까지, 소문난 의사, 유명한 치유자 들을 찾아다녔을 그들이다. 

그러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더 나빠졌기에 실망과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힘들고 고통스러워 찾아온 그들이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찾아왔을 것이다. 그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온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나는 안다. 지난날 내가 그랬으니까. 의사를 찾아가도 소용이 없고 이 피정 저 피정, 수도원도 여기 저기~ 찾아 다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더 힘들었다.

한번은 유명한 신부님이 오신다 해서 피정을 갔는데, 피정이 끝나고 너무 고통스러워 신부님께 안수라도 받고 싶어서 계신 곳으로 갔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신부님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얼마 후 신부님이 뒷문으로 나가셨단다.

그 때의 실망과 절망감이란~ 그냥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뭘 그렇게 피정이 끝난 후 까지 신부님을 찾아 가냐? 할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 절박한 심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그 같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다. 절박했기에 예수님을 서로 만지려고 밀쳐 댔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 누구보다 그들의 아픔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피하시려 배를 준비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당연히) 그러면 왜?

우선 배는 교회를 뜻한다. 오늘 사방에서, 시련 속에서 찾아온 그들은, 예전에 나 같이 하느님 말씀 안에 십자가를 통한 용서, 구원, 그 은총(은혜)의 약속을 몰랐던, 그저 사람의 규정과 교리, 그 잘못된 신앙(교회)을 살았던 그들이기에,...

그래서 예수님께서 타실 배, 곧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주인이신 교회를 준비하라고 하신 것이다.

말씀이 예수님 이시며(요한1,14), 그 말씀이 일하시기 때문이다.(1데살2,13) 그 말씀이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에페5,26-27) 말씀을 생명의 진리로 깨달아 간직하면, 그러면 선악의 계명, 그 무력한 신앙에서 벗어나 죄의식에 묶이지 않을 것이며 온갖 환난, 질병 속에서도 하늘의 평화, 안식을 이 땅에서 부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르2,17)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의사로, 구원자로 죄인을 만나 용서를 주시려는 예수님 이시다.그런데 나는 의인만 좋아하시는 예수님인줄 알았다. 착한 사람의 기도만 주어 주시는 줄 알았다.(로마3,24 10,1-4 참조)

 

(히브12,7.11)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 내가 겪었던 시련이 벌인 줄 알았다. 물론 시련(試鍊)은 죄 때문이다. 하느님의 질서를 벗어난 잘못, 그 죄 때문에 생긴 시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죄를 통해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이다. 그 죄의 속죄 제물로 내주신 예수님의 대속, 그 십자가로 받는 용서, 구원으로 이끄시는 그 하느님의 뜻을, 그 아버지의 사랑의 신호였음을 몰랐던 것이다.

 

(로마8,3)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1요한4,10)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크심, 전능 하심을 몰랐다. 말씀을 몰랐고,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뜻),구원의 계명을 사람의 말(뜻), 법의 계명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뱀의 유혹을 먹은 선악의 말인 것이다. 그래서 그 뱀의 말, 그 거짓을 말하는 더러운 영의 말을 막으시는 것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 더러운 영은 예수님은 인정하지만 살짝 바꾸어 말한다. ‘내 뜻을 들어 주시는 예수님으로, 심판하시는 메사아로, 기적과 치유의 구원자로’ 바꾸어 알려준다. 그리고 착하게 살라고 한다. 그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의로움만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게 더러운 영은 착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분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마태7,15)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 그래서 하늘의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한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안식을 받지 못하게 한다.(누구는- 예수 그리스도는 2위로 강등하고 교회와 전통이 우선한다) 그래서 성령의 보호하심, 이끄심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보호와 이끄심으로 구원을 지킨다.

 

(티토3,5-6)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이다.(요한19,34) 그래서 물은 구원의 말씀이다. 성령께서 깨닫고 믿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 천주의 성령님! 늘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ㅇ^*-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복음(마르3,7~12)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9)

 

예수님께로부터 선포되는 복음과 능력의 치유 행위는 바리사이들과 같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극단적인 반대자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덧입으려는 추종자들을 양산하는 대조적 결과를 낳았다.

마르코 복음 3장 8절의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한순간에 몰려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관한 소문이 퍼지자 이곳 저곳에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음을 묘사한다.

 

이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여기서 '거룻배 한 척'에 해당하는 '플로이아리온'(ploiarion; a small ship)를 마련하라고 했을 때, '마련하다'에 해당하는 '프로스카르테레'(proskartere; should wait on; ready for)는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다', '온 힘을 기울여 대기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당신께 몰려든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작은 배를 준비시키신 것은, 여기의 본문 외에도 하느님 나라의 여러 비유를 가르치시기 위한 경우도 있었다(마르4,1).

그런데 여기서는 특별히 마르코 복음 3장 10절에 나오는 데로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전능하신 제2위 천주 성자 하느님이시므로 신적인 방법으로 얼마든지 어려움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병고침이나 자연 재해를 다스리는 목적 이외에, 당신을 신기하게 보이도록 하는 깜짝 놀랄 기적 극히 제한함으로써, 당시 희랍 사회에 성행하던 미신적인 '신적 인간'으로 비치는 것을 철저히 경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마르코 복음 3장 12절에 나오는 데로, 성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이루어질 때까지, 말씀과 영적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선포되는 과정에서 당신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는 것을 피하셨고, 특히 더러운 영들을 통해 당신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로 알려지는 것을 더욱 원치 않으셨다.

우리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복음 전파 뿐만 아니라 소위 인기와 명성의 바다에 익사하지 않기 위해서 '거룻배 한 척' 미리 준비시키고 대기시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깊이 묵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전교가 잘 되는 한 장소에서 계속해서 오랫동안 머무시지 않고, 또한 당신의 인기와 명성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다른 곳으로 떠나시기 위해 '거룻배 한 척'을 미리 준비하시며 그곳과 거리를 두신다.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만을 생각하시고 기도하시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시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곳에 전교하러 가시기 위해서 인간성의 모든 찌꺼기와 폐단을 초월하시는 동선을 그리신다.

  

 

20250123일 목요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김동희 모세 신부)


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에서 그동안의 예수님의 구마와 치유 기적, 용서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십니다.

그러자 가까이 갈릴래아 지역을 비롯하여 사방에서 큰 무리가 몰려옵니다.

남쪽으로는 유다와 이두매아 지역에서, 동쪽으로는 요르단 건너편에서, 그리고 북쪽으로는 티로와 시돈 근처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무리를 지어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열광적으로 구하는 것은 치유이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봅니다.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르 3,11) 하고 소리 질렀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침묵하라고 엄하게 이르셨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특징인 메시아 비밀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다만 인지(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랑과 추종의 앎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열광하는 군중이 아닌, 당신을 뒤따를 제자들을 바라십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많은 병자 치유

 

(마르 3,7-12)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8 또 유다와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 일곱 지역의 이름입니다, 갈릴래아를 기점으로 남쪽 동쪽 북쪽입니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와서 큰 무리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 큰 무리, 군중, 그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침 받고 싶어서 몰려왔습니다. 고통 받는 그 많은 이들이 치유 받고 싶어서 손을 대려고 몰려들면 예수님을 밀쳐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댈까봐 타실 배를 준비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왜 그랬을까? 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당신께서 밀려나는 등 사고가 날까봐? 그 답을 다른 장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마르5,24-34)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 피를 흘리는 여자가 다른 이의 옷을 만진다는 것은 그 다른 이가 부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레위15,25-27참조)

구원 받았다, ‘네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하십니다. 그러니까 열 두해 동안 그 누구도 어느 의사도 그 여자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목자 없는 양처럼 이 회당, 저 회당(온갖 피정) 길을 잃고~ 큰 무리, 군중이 되어 쫓아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아픔, 고통을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이기에 애통해 하시는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그들을 위해 당신이 타실 배(교회)를 준비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헤매지 않고, 밀쳐대는 일 없이 참 목자, 의사이신 예수님이 계신 그 참 교회에서 주님의 양식(말씀)으로 온갖 질병(죄)에서 벗어나 자유하라고~ 그러면 소문을 들은 그 군중 속에서 밀쳐대는 이리 없게 될 것이니까요.

 

(에제34, 21-22) 21 너희(지도자들)가 약한 양들을 모조리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내고 뿔로 밀쳐 내어 밖으로 흩어 버렸으니, 22 내가 내 양 떼를 구하여 그것들이 더 이상 약탈당하지 않게 하겠다. 내가 양과 양 사이의 시비를 가리겠다.’

= 율법을 사람의 규정, 교리로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 그 힘으로 사람들을 판단하며 하느님의 계명, 나무 하나의 희생, 그 대속의 죽음 그 사랑을 알려 주지 않았던(탈출15,25참조) 그래서 그 하느님의 대속 그 진리를 잃어버리게 했던 그 사랑(법)을 약탈했던 그 지도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참 목자, 참 의사이신 예수님을 진리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10, 7-11)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 값으로 죄인들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면 예수님과 하나, 한 몸이 되어 이곳저곳으로 헤매지 않게 됩니다.

 

(마태24, 23-25) 23 그때(시련)에 누가 너희에게 ‘보라,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 또는 ‘아니, 여기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둔다. 26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광야에 계시다.’ 하더라도 나가지 마라. ‘보라, 골방에 계시다.’ 하더라도 믿지 마라.

= 죄의 덮으심, 그 하느님의 대속의 계명을 사람들의 윤리의 계명으로 가르치는 것, 거짓입니다.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을 참 목자(의사) 참 진리로 믿고, 의지 한다면 내가 진리를 갖은 자가 되어 헤매지 않게~ 온갖 종교 행위로 시간 낭비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시간은 곧 생명입니다. 그 살아있는 시간에 예수님을 진리로 그분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에페5, 16) 16 시간을 잘 쓰십시오. 지금은 악한 때입니다.

= 주님과 한 몸 되기 위한 시간을 쓰는 것, 신앙 생활입니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질병의 치유가 아닌 우리 죄의 용서, 구원을 위해 속죄 제물로 대신 죽으신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진리로 믿고 의탁 하는 것입니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예수님을 치유의 예수님으로 소문을 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복받는데~ 매일미사 열심히 다녀봐~ 너희의 행실로 잘 섬겨봐~ 너희 뜻 그 기도 잘 들어 주셔~ 하면서 ...... 그러나 그런 예수님으로 사람들에게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는데 듣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진리(십자가)가 아닌 자기 자랑 잘 하는 것입니다.

 

(1요한2. 2) 2 그분(예수)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 예수님께서 내 죄 대신 죽으시고 당신의 생명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그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복입니다.

 

♡ 아멘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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