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월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르2,18-22)

2025. 1. 18. 오후 7: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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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0일 월요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르2,18-22)

 


1독서<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5,1-10)

1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화답송>시편110,1.2.3.4(4ㄴㄷ)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주님께서 내 주께 이르셨나이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주님이 당신 권능의 왕홀을 시온에서 뻗치시리이다. “너의 원수들을 다스려라.”

네 권능의 날에 주권이 너와 함께하리라. 거룩한 빛, 새벽 품에서 나는 너를 낳았노라.

주님은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복음<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마르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히브5,1~10)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7)

 

'이 세상에 계실 때'로 번역된 원문에서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없고 '육체'라는 단어가 나온다. '육체로 계실 때' 혹은 '육체를 지니고 계실 때'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육체'로 번역된 '사르코스'(sarkos)의 원형 '사륵스'(sarx)의 기본 의미는 '살'(flesh) 이지만, '몸', '혈육을 가진 인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인간성' 등 다양한 의미들을 나타내어 쓰인다.

 

본절에서는 이 '사륵스'(sarx)가 '인간 그 자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강생(육화)하신 예수님의 지상 존재, 즉 인격적인 본성 전체를 의미한다.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혈육을 가진 인간이셨던 동안 그분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을 느끼실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과 유혹과 고통을 모두 당하셨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죄가 없었으므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사륵스'(sarx)의 생각에 지배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실 때에나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을 때에는 항상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마음에 드는) 아들이었다 (마태3,17).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본문은 생명을 독점적으로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보여준다. 여기서 '죽음에서 구하신다'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

 

① 먼저 예수님을 갈바리아 언덕에서 죽기 이전에 건져내신다는 의미가 된다.

 '구하실'에 해당하는 '소제인'(sozein)의 원형 '소조'(sozo)는 어떤 위협을 당하지 않게 미리 건져 내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에크 타나투'(ek thanatu; from death)와 함께 쓰이면, 죽음의 위험에서 건져 낸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에크 타나투'(ek thanatu)와 함께 '소조'(sozo; to save)가 쓰였다는 사실은, 본절에 기록된 기도가 겟세마니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지도록 간절히 바치신 예수님의 기도임을 말해 주며, 예수님께서는 그때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죽음의 위험에서 능히 건져 내실 수 있는 하느님께 드렸던 것이다.

 

② 둘째로 위와 같은 의미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구하신다'라는 표현이 죽음 이후의 부활 사건까지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그 기도가 '들어 주셨습니다'라는 본절의 후반절의 표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겟세마니의 기도를 염두에 두고서 그 기도의 장면을 묘사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경험하신 분이다.

본문을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심한 통곡(요란하도록 큰 부르짖음)과 눈물(울음)로 ~ 드렸고'prayers and petitions with loud (strong) cries and tears>가 된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그 당시 기도 모습을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루카 22,44) 라고 기록하였다.

이보다도 더 이상 간절하고 애절할 수 없는 마음으로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디에 나오는가!

 

예수님의 얼굴에서 떨어진 땀이 핏방울처럼 되었다는 복음서의 기록은 얼굴에 있는 모세 혈관이 터져서 피부 밖으로 나온 피가 땀방울에 섞여땅에 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 정도로 예수님은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이다.

 

한편, '큰 소리로 부르짖고'로 번역된 '크라우게스'(krauges)의 원형 '크라우게'(krauge)는 '고함', '큰 부르짖음'이란 뜻이다.

이것은 자신이 억지로 외치려 해서 나는 소리라기보다 극도의 긴장이나 고통의 가운데서 마음을 쓰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소리(통곡)이다.

 

더군다나 '심한'이라고 번역된 '이스퀴라스'(ischyras; strong; loud)라는 수식어가 있다는 것은 그분이 얼마나 큰 고통 가운데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분의 심정을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은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태26,38)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상처가 깊은 사람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 소리가 터져나오고,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찬 사람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 새어 나오듯이 그 순간 예수님은 그와같은 상태에 빠지셨음이 분명하다.

참을 수 없는 긴장과 고통 가운데서 그분은 흘러 나오는 신음 소리만 낸 것이 아니라 울기까지 하셨다.

 

그분은 아버지께 울면서 기도와 탄원을 드린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한 인간으로서 두려움과 혼란, 절망감에 싸여 우리와 마찬가지로 내적 혼란을 겪으셨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진지하고 애절하고 뜨겁게 기도하셨으나 저자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 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기도와 탄원'을 올렸다고 만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탄원'에 해당하는 '히케테리아스'(hiketerias)는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과 원통함을 탄원하는 자'를 의미하는 '히케테스'(hikete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탄원', '간청'이라는 뜻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그 기도와 탄원의 내용을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로 전해주고 있다 (마태26,42; 마르14,36; 루카22,42).

예수님은 그 기도를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해서 하셨다(마태26,44). 히브리 사상에서 '세 번'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횟수이다.

 

히브리인들의 공식 기도가 하루 세 차례였다는 사실도 그들이 하느님께 온전한 기도를 드린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예수님께서 같은 내용으로 세 번이나 동일하게 기도하셨다는 것은 더 이상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고도 완벽하게 기도했음을 나타낸다.

 

'그 경외심 때문에'

 

예수님의 기도와 탄원의 응답을 받은 결정적인 동기와 배경에 대한 언급이다. 하느님께서 중시하시는 것 기도하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경건에서 우러나오는 복종 때문에 그의 기도가 아버지께로부터 응답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고 있다.

'경외심'으로 번역된 '율라베이아스'(eulabeias)는 '두려움', '경건'을 뜻한다. 기원전 3~4세기 이후부터 사용된 이 단어가 처음에는 '신중함', '세심한 주의', '사리분별'등을 의미했으나, 후기 희랍어에서는 '공경'을 뜻하게 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명사가 나타나는 곳은 본절과 히브리서 12장 28절 뿐이다.

 

라틴어 성경은 이것을 '존경', '경외'(reverentia), 그외 다른 성경은 '경건'(piety), '공손한 복종'(reverent submission)등으로 번역했다.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아버지 앞에 엎드릴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러한 태도이다. 그분의 이러한 복종은 비굴함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공경하고 신뢰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들어 주셨습니다'

 

'들어 주셨습니다'로 번역된 '에이사쿠스테이스'(eisakustheis)의 원형 '에이사쿠오'(eisakuo)는 방향 또는 진입의 의미를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 (eis)와 '듣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쿠오'(akuo)의 합성어로서 '요구에 따르다',  '요구를 들어주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는 과거 분사 수동태로 쓰였으며, 영어로는 'he was heard'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무슨 기도가 어떻게 응답받았는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는 기도는 '대속의 십자가 죽음'으로서 응답받았고, '죽음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는 십자가 죽음 후 '부활'을 통해서 응답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죽으셨고, 또한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으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부활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 탄원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허규 베네딕토 신부)

 

주님, 저희가 천상 양식을 함께 나누고 비오니, 사랑의 성령을 부어 주시어, 그 사랑으로 한마음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의 논쟁은 모든 복음서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런 논쟁 안에서도 전해집니다.

오늘 복음은 서로 대조되는 것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제자들, 헌 옷과 새 천 조각, 헌 부대와 새 포도주입니다.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단식은 유다교에서도 일상적으로 행하던 일들이었고 신앙을 지닌 이들이 실천해야 할 덕이었습니다.

또한 단식은 회개와 속죄를 위한 표지로 구약 성경에서도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올바른 단식이 무엇인지 가르치기도 하셨습니다(마태 6,16-18 참조).

초기 교회에서도 단식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열두 사도의 가르침: 디다케』에서는 신자들이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도록 권고합니다(8,1 참조).

지금은 금요일에만 단식하지만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해 왔습니다.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대답은 많은 경우에 두 가지 차원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일상적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적인 의미입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느냐?”

혼인 잔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로 기쁨과 풍성함이 그 특징입니다.

신랑, 곧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시기는 기쁨의 시기이면서 구원의 시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입니다.

신랑을 빼앗긴다는 비유는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 시간은 옛것과는 구분되는 구원을 위한 때입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완성.

 

(마르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 바리사이 단식 - 음식을 끊는 단식이다. 혼인잔치 -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우리(제자)의 혼인, 곧 구원을 뜻한다.(마태22,2참조) <혼인 법 - 혼인은 신랑이 신부의 몸값을 지불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자들이 아직 손님으로 있다. 오늘 혼인 잔치는 구원의 잔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신랑을 빼앗길 날(죽는 날), 곧 신부를 얻기 위해 그 신부의 몸(죄) 값을 대신 치르는 날, 신랑이신 우리 주님께서 대속으로 죽게 되면 단식을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단식이란 단순히 음식을 끊는 것이 아니라 신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그 피로 맺는 구원(혼인)의 새 계약을 이룰 것이니, 옛 계약, 그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의 법, 그 행위를 끊는 그 단식을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피의 새 계약’ 그 진리를 먹게(믿게)될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히브10,8-9) 8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당신께서는 원하지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이것들은 율법에 따라 바치는 것입니다.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 헌 옷, 헌 것과 새 것이 섞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 옷이 찢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신다. 곧 율법으로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또 그 율법을 우리는 다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구원에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야고2,8-11참조) 그 죄의 법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자유의 법(새 법), 곧 십자가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의 새 계약으로 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기에 율법, 그 헌 옷은 그대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율법으로 죽어 그리스도로 살아 나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律法을 또 善이라고도 한다.(로마7,12)

 

(갈라2,19-20)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 구약에서 죽어 신약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죄인이 용서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율법인 것이다. 그러나 율법(제사와 윤리)에 멈추면 죽음으로 끝나는 죽음의 법이 되는 것이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헌 가죽 부대는 어린 양의 가죽(죽음)으로 만든 부대, 곧 옛 제사를 열심히 지킨, 그 죽음의 신앙인 것이고, 새 부대는 옛 제사를 예수님께서 대속으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피의 새 계약, 곧 구원(생명)의 신앙인 것이다.

율법의 제사와 윤리, 그 의로움은 구원의 가치, 힘없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구원의 의로움을 따르라 하시는 것이다.

 

(로마3,20-22.24)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그러니 제사와 윤리, 그 율법에 묶여있지 말고, 단식하고- 용서로 구원의 의로움을 거저 주시는 십자가의 대속, 그 구원의 진리의 신앙을 살라 하시는 것이다.

 

(이사58,6)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 ‘구원의 진리인 대속, 그 새 계약의 복음을 주라’는 말씀이시다. 그 복음으로 모든 것에서 풀려나 안식을 얻게 하는 것,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참 단식인 것이다. 그 복음, 주님이시다.~

 

(마태11,29-30)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십자가)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십자가)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주님! 오늘도 내일의 양식, 구원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가 의탁합니다. ~아멘!!!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복음(마르2,18~22)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21~22)

 

'새 천 조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찾아온 새로운 복음의 질서를 상징하는 반면에, '헌 옷'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인간적으로 해석하여 문자적인 준수에 얽매이는 구질서를 상징한다.

 

'새 천 조각'에 해당하는 '에피플레마 라쿠스 아그나푸'(epiblema rekous agnaphou; a piece of unshrunk cloth)는 세탁을 한 적이 없어 줄지 않은 옷감 말한다.

그러니까 마르코 복음 2장 21절의 의미는, 이러한 '새 천 조각'이므로 '헌 옷'을 기우게 되면 그 기운 옷을 세탁할 때 아직 줄어들지 않았던 '새 천 조각'이 물을 흡수하여 급격히 줄어들면서 '헌 옷'을 망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 뜻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유대교의 전통은 함께 조화될 수 없으며,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망칠 수 밖에 없는 상충적 관계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구시대의 질서인 단식의 문제를 가지고, 하늘 나라의 신랑인 예수님을 맞이하여 기쁨의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한편, 마르코 복음 2장 22절의 '새 포도주'의 '새' '네온'(neon; new)이지만, 후반절에 나오는 '새 부대'의 '새'는 '카이누스'(kainous; new)이다.

전자의 원형 '네오스'(neos)는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뜻이고, 후자의 원형'카이노스'(kainos)는 본질적으로 새롭다는 뜻이다.

특히 '카이노스'(kainos)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더러운 영이 들린 자를 고치셨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이라고 했을 때의 '새롭고'에 해당하는 단어의 원형과 같다(마르1,27).

 

새 포도주는 아직 발효가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발효가 시작되면서 그 부피가 늘어난다. 이 때 새 가죽 부대는 유연하고 신축성이 있어서 변화에 따라 늘어나지만, 헌 가죽 부대는 그 변화를 견딜 수 없고 곧 터지고 만다.

말하자면,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낡아서 헌 가죽 부대 같은 바리사이인들의 전통이 수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헌 가죽 부대 같은 바리사이들의 슬픔의 단식은 합당하지 않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를 맞이하는 기쁨의 혼인 잔치와 같은 축제가 합당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해 '혼인 잔치 집의 비유'(마르1,19~20), '새 천 조각의 비유'(마르1,21), '포도주와 부대 비유'(마르1,22)를 연이어 말씀하셨다.

과거의 전통적인 종교 관습을 기준으로, 단식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예수님을 비난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질문에 국한하지 않으시고 모든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복음이 갖고 있는 역동성을 이런 비유들로 밝히신 것이다.




 

 

2025년 01월 20일 월요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김동희 모세 신부)

 

오늘의 복음은 어제의 복음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이십니다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과방장을 감탄하게 하신 좋은 포도주이십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의 1항에서 구약을 뛰어넘는 신약의 새로움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한 사건은 나와 온 우주를 뒤흔드는 그분과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은 이제 우리네 인간의 노력이기보다는 자신이 만난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에 화답하듯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항 첫 시작에서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는지를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를 다시 활기차게 하신 차고 흘러넘치는’ 충만한 포도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만난 우리는 모두 사랑의 취객입니다감사와 찬미를 그분께 바칩니다.

 

(김동희 모세 신부)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먹기 위한 단식(斷食)

 

복음(마르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 율법, 곧 낡은 첫째 계약의 단식을 하는 이들이 묻는다.

 

(히브8,13)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율법, 그 첫째 계약으로는 죄가 드러날 뿐이기에 율법(제사와 윤리)으로는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로마3,20) 그래서 율법의 죄(罪)를 대속으로 완성하시고 구원을 주실, 그 새 계약의 신랑 예수님 이시다. 곧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 달리실, 죽으실, 그 빼앗길 때, 다시 십자가의 대속, 그 새 계약이 다 이루어지게 되면 율법, 그 낡은 것을 버리는, 끊는 단식(斷食)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로마3,21)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첫계약)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새계약)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 (풀어보면) 새 계약을 헌 계약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계약, 그 율법 때문에 새 계약의 옷, 곧 사람이 찢어진다(죽는다). 함께 지키면, 섞이면 죽는다는 것이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풀어보자. 새 계약을 헌 계약의 사람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계약의 피가 사람을 터트려(죽여) 새 계약도, 사람도 버리게 된다는 말씀이다.(1베드2,6-9 참조) 곧 헌 계약을 비워내는, 끊는 그 단식을 해야 담을 수 있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 계약은 율법(제사와 윤리, 낡은 것)을 버린, 단식 한 그 사람이 담아야, 받아야 된다는 말씀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구원의 진리, 곧 ‘대속으로 새 생명을 주시는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옛 계약의 사람인 나를 부인하는 자기 버림(否認)으로 따라오라’는 말씀이다. 옛 계약의 자기 의, 열심히 아닌, 새 계약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인 십자가를 내 십자가로 지고 따라오라는 말씀이다.

내 십자가(十字架)의 죄(罪)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마태11,28-30)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십자가)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예수님의 대속, 그 주님의 십자가가 새 계약의 능력, 힘이다. 죄인들을 살리시려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죄로 저주의 십자가에서 저주로 죽으심, 그것이 능력이다.

 

(에페1,17-23) 17 그래서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영광(사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영(푸뉴마)은 ‘숨, 호흡, 원리’라는 뜻이다. 곧 하늘의 지혜의 원리로 하느님을 알게 되어...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사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능력이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 모두 새 계약의 능력이다.

 

(에페2,1-10) 1 그리고(카이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옛 계약의 사람이다.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십자가의 대속)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은총의 새 계약으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새 계약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은혜)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의 행위의 ‘의’가 아니라 은혜, 선물로 주신 새 계약의 십자가의 의로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 선행이란, 나를 희생하여 남을 살리는 것이다. 곧 남(이웃)이 옛 사람의 자신, 그 육의 삶을 버리고(단식) 영으로 다시 살아나 영원한 생명을 살도록 하느님께서 창조이전 미리 준비하신 그리스도를 구원의 새 계약으로 주는 것이 선행이다.

 

(에페1,4-5)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십자가의 대속, 그 큰 사랑의 능력인 새 계약으로 다. 그러므로 현실의 내 멍에, 내 십자가를 지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희생한다. 하늘의 용서, 새 생명, 구원의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현실의 내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되냐?’고 묻는다. 아니, 열심히 져야한다. 현실의 내 십자가는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게 하기 위한 하느님의 교육, 훈련을 위한 의무, 직분이다.

우리의 더러운 죄성, 우리의 불가능을 보게 하시기 위한 도구다. 그러니 가족들, 이웃들에게 열심히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실패해도, 넘어져도 괜찮다, 또 일어나면 된다.

승리,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패를 위한 훈련이다. 열심히 살아봐야 실패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의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기 위한 실패다.

구원은 죄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가지 못하는 실패는 죄의식으로 쌓여 사람을 병들게 한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새계약)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 이미 준비하신 승리, 선이 있기에, 이 악한 세상의 삶을 희망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시는 하느님 지혜의 영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대속그 능력의 새 계약그 새로운 길을 바라보며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사랑하는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믿음의 Q&A]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의도는?


[김대인 전도사] 새 부대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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