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간 수요일] 고향 방문 (마르6,1-6)

2025. 2. 5. 오후 2: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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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5일 수요일(아가타)

[연중 제4주간 수요일] 고향 방문 (마르6,1-6)

 


1독서<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히브12,4-7.11-15)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화답송>시편103,1-2.13-14.17-18(17ㄱㄴ)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아버지가 자식을 가여워하듯,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 가여워하시네. 우리의 됨됨이를 익히 아시고, 우리가 한낱 티끌임을 기억하시네.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고, 그분의 의로움은 대대손손, 그분 계약을 지키는 이들에게 이르리라.

 

복음<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마르6,1-6)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제1독서(히브 12,4~7.11~15)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6)

 

주님의 훈육은 영적 자녀가 된 성도에 대한 진정한 부성애의 표시이다. 

그분의 훈육은 사랑하시는 이에게만 내리기 때문에 누가 주님의 훈육을 받는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 안에 있음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증거이다.

 

여기서 '훈육하시고'로 번역된 '파이듀에이'(paideuei)의 원형 '파이듀오'(paideuo)는 본래 '어린이와 함께 있다'라는 뜻이었는데, 여기에서 '양육하다', '가르치다', '습관을 들이다' 등의 의미가 추가되었다.

 

구약 그리스어 번역 성경 70인역(LXX)에는 주로 '응징하다', '교정하다', '훈계하다' 등을 뜻하는 히브리서 '야싸르'(yasar)의 역어로 나온다.

따라서 70인역에서는 '파이듀오'(paideuo) '가르치다'라는 의미보다는 '훈육하다'라는 의미에 보다 가깝다.

 

이 단어가 본절에서는 하느님의 훈육을 통한 교육이라는 개념을 나타내어 쓰였다.

유대 사상에서는 훈육을 '최후의 심판에서 보호하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행동'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히브리서의 저자도 이러한 사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주님의 훈육이 성도들로 하여금 심판을 당하지 않도록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징표이기 때문에, 고난 중에 있는 히브리서 독자들에게 실망하지 말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녀가 된 당신 성도들을 멸망하는 악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치고 교정하시는 일시적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신앙으로 인한 고난으로 침체에 빠졌을, 당시 히브리서 일차 독자인 히브리 출신의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릇 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는 부모는 실상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나 불의에 가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전혀 상관하지 않으신다면,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내버려 두셨다는 것과도 같다.

 

하느님께서는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녀로 인정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릇된 길로 나아가게 되면 계속해서 훈육하심으로써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신다.

가르침이나 교정에는 꾸짖음이나 훈련이 불가피하다.

언제든지 그분께서는 우리 곁에 계시면서 당신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를 교육하며 훈련시키신다.

  

'채찍질하신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영적 자녀들에게서 허물이 발견될 때에 나타내시는 반응에 대한 언급이다.

여기서 '채찍질하신다'로 번역된 '마스티고이'(mastigoi)는 현재 시제로서 '계속해서 매질하다' 혹은 '계속하여 응징하다'라는 지속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마스티고이'의 원형 '마스티고오'(mastigoo)는 끝에 납덩어리가 달려있는 '채찍'을 의미하는 명사 '마스틱스'(mastiks)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문자적으로 살점이 떨어지도록 심하게 '채찍질하다'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육체적 폭력 행위를 뜻하는 여러 그리스어 단어들 중에 더욱 가혹한 형태의 처벌을 나타내는데, 후기에는 중대한 범죄에 뒤따르는 로마의 징벌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빌라도의 명령으로 이 형벌을 받으셨고(요한19,1),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사도5,40) 역시 채찍질의 형벌을 받았다. 

그 채찍질은 참으로 가혹한 형벌로서 본문에서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무엇때문에 인정하시는 아들, 즉 구원하시기 위해 선택하신 아들에게 그렇게 가혹하게 채찍질하시는가?

그 이유는 그 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요, 또한 그 아들을 상속자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본절의 '아들'에 해당하는 '휘온'(hyon)의 원형 '휘오스'(hyos)는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하는 아들이라는 법적 개념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내려지는 주님의 채찍이 아프다고 생각될 때, 이것은 그분이 나를 인정하시고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그 채찍은 바로 아들된 우리를 향한 아버지되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증거인 것이다.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집’이나 ‘고향’이라는 말은 많은 경우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고 애틋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당신의 고향으로 가신 이야기를 전합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집(안)”이라는 표현이 무려 119번이나 나오는데, 이 표현이 늘 좋은 뜻으로만 쓰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전통’이라는 틀에 매여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거절하는 이들을 가리키기도 하였습니다(예레 11,17; 바룩 2,26; 에제 3,7 참조).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탈출 20,2; 신명 5,6)이라고 소개하십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첫 말씀은 아브라함이 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창세 12,1 참조).

이처럼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와 행복을 얻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집이나 고향, 곧 과거의 전통과 자기의 예전 생각에서 떠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배우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고향 나자렛을 떠나 카파르나움에서 첫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실 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제자들을 뽑으신 것이었는데(마르 1,16-20 참조),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새 가족을 만들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만드신 이 가족을 교회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우고 만드신 새 가족이 나자렛의 옛 가족과 충돌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곧잘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넘어집니다.

나자렛 주민들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이유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는 이는 과거의 전통과 생각과 신념으로 살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 말씀을 믿고 자신의 옛 집과 고향(자기 생각, 신념, 전통, 문화 등)에서 끊임없이 나오려 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을 자신보다 앞세우는지 아니면 하느님보다 자신을 앞세우는지에 따라 믿는 이의 삶이 결정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한 17,17)라고 고백하시며 늘 당신보다 하느님 아버지를 앞세우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는 데에서 큰 걸림돌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4주간 수요일]

 

시련은, 하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한 하느님 아버지의 훈육이라 하신다.

 

(히브12,6-16)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8 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 9 게다가 우리에게는 우리를 훈육하시는 육신의 아버지가 계셨고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를 공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영적 아버지(하느님)께는 더욱 순종하여 그 결과로 *생명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0 육신의 아버지들은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잠깐 훈육하였지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훈육하시어 우리가 당신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 肉身의 아버지에게서 肉의 목숨을 위한 訓育을 받았고, 하느님 아버지에게서는 그분의 훈육으로 하늘의 생명, 거룩함을 받는다.

 

(탈출29,37) 37 너는 이레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하여 그것을 성별하여라. 그러면 제단은 가장 거룩한 것이 되고, 거기에 닿는 것도 모두 거룩하게 된다.”

= 거룩한 것에 닿으면 거룩하게, 곧 거룩한 것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에페5,26)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생명수인 하느님의 말씀으로 용서 받아 거룩하게 된다.

 

(히브10,9-10) 9 그다음에는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 것을 세우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 첫 번째 것, 율법(제사와 윤리)의 자기 의로움이 아닌 두 번째 것, 구원의 진리인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피의 새 계약으로 거룩해진다.

 

(히브13,12) 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 예수님의 피로 더러운 양심까지 다 씻겨 거룩해진다. 그러니까 제단, 말씀, 물은 새 계약의 그리스도를 뜻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생명, 구원의 진리라 하신 것이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요한14,6)

 

(요한17,17)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 물질과 건강, 그리고 가족과 이웃 간에 갈등, 그 모든 시련(試鍊)이 하늘의 평화, 하늘의 의로움을 얻기(깨닫기) 위한, 훈련인 것이다.

 

(로마8,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모든 것이 所重하고 貴한 것이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 바른 길, 하느님의 말씀에 인간들의 지혜, 생각을 보태고, 뺀, 그 양쪽의 길로 절름 거렸던 다리를- 바른 길, 구원의 진리인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그 진리의 길을 걸어 다리가 온전하게, 낫게 하라는 것이다.

 

(신명4,2)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태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된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성경의 시작부터 마지막 장, 절까지 말씀하신다.

 

(묵시22,18-19) 18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보태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보태실 것입니다. 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된 말씀 가운데에서 무엇을 *빼면, 하느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거룩한 도성에서 얻을 그의 몫을 빼어 버리실 것입니다.

= 左右로 치우치는 그 인간들의 열심, 의로움의 길이 아닌 바른길 -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의로움을 받아 가야 하는 것이다.

 

(로마4,4-8)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이 선물이 아니라 당연한 보수로 여겨집니다. 5 그러나 일을 하지 않더라도 불경한 자를 의롭게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받습니다. 6 그래서 다윗도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7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8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으시는 사람!”

 

14 모든 사람과 (진리로)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진리로)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 세상의 것으로 평화롭게 거룩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의 뜻이 들어있다.

 

 15ㄱ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요한1,16-17)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 은총(恩寵)과 진리(眞理)는 곧 성령(聖靈)이시다.

 

(티토3,5-6)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15ㄴ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 쓴 열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라 말하고 자랑 한다면, 진리를 배우는 이들이 혼란스러워 그들의 죄가 씻겨 지지 않고, 더럽혀진 그대로 남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16 그리고 아무도 음식 한 그릇에 맏아들의 권리를 팔아넘긴 에사우와 같이 *불륜을 저지르거나 *속된 자가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 하느님께서 주신 맏아들의 권리를 자신의 욕망을 위해 넘기는, 곧 하찮게 여기는 것, ‘불륜의 속된 자’인 것이다. 곧 하느님께서 주신 구원의 진리의 길, 그 예수님을 버리고 자신의 욕망, 명예를 위해, 우리가 한 의로운 일을 진리로 고집하는 것, 불륜이며 속된 것이다.

 

☨ 은총과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진리의 구원의 말씀을 받았으니 영원한 생명의 保證이신 당신의 힘으로 저희 안에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복음(마르6,1~6)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4)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자주 사용했던 격언으로 보이는 말씀으로서 그들이 당신을 배척한 이유를 밝히셨다.

즉 예수님께서는 친숙한 사람에게서 특별한 것이 발견되면 잘 수용하지 않는다는 격언을 통해 당시 나자렛 사람들의 닫혀진 마음을 질타하셨다.

 

여기서 '예언자'로 번역된 '프로페테스'(prophetes; a prophet)는 '앞에'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pro)와 '보여 주다', 말하다'라는 뜻의 동사 '페미'(phemi)의 합성어로서 '앞에서 말하는 자', '미리 말하는 자'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한문으로는 '미리 예'(豫)자가 아니고 '맡길 예'(預)자를 사용한다. 하느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하고, 그것을 전하는 사람 '예언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예언은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미래의 일을 미리 앞당겨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자렛 사람들은 자신들과 가까이 지냈으며, 자신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들추어내고 비판하는 등 예언자의 역할을 하는 데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강한 거부 반응을 나타냈던 것이다.

 

여기서 '존경받지 못한다'로 번역된 '아티모스'(atimos; without honor)는 부정 접두어 '아'(a)와 '위엄', '존경'을 뜻하는 '티메'(time)의 합성어로서 '덜 귀하게 여기는'이라는 뜻 뿐만 아니라 '비천한'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표현은 단지 존경받지 못하는 소극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고향 사람들로부터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취급받음을 의미한다.

 

마르코 복음 6장 4절의 내용은 다른 사람들에게보다 친숙한 사람들에게 존경받기가 더 어렵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나자렛 사람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시지 않으신다.

 

마르코 복음 6장 5절은 구원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불신하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는 일어날 수 없음을 계시하고 있다.

마르코 복음 6장 6절의 '믿지 않는 것'으로 번역된 '아피스티안'(apistian; unbelif; lack of faith)의 원형 '아피스티아'(apistia)는 부정 접두어 '아'(a)와 '믿을 만한', '신실한'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 '피스토스'(pistos)의 합성어로서 '불신앙', '불충실', '불성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볼 때 '믿지 않는 것'의 의미는 단지 온전한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믿음의 대상에 대한 충실과 성실함이 결핍된 것까지를 포함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놀라셨는데, 여기서 '놀라셨다'로 번역된 '에타우마젠'(ethaumazen; he was amazed at; he marvelled)의 원형 '타우마조'(thaumazo)는 '놀라다', '이상히 여기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여 당황하셨다는 뜻이 아니고, 일반적인 기대치하고는 다른 반응을 보임에 대한 심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리하여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본래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그의 공생활을 통해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로부터 도리어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하시고, 결국 동족의 고발로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

 




 

  

20250205일 수요일(아가타)

[연중 제4주간 수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복음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 놀라다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에 대한 놀라움은 그 놀라움의 이유가 되시는 분에 대한 찬미로 이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오히려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뒤틀린 감정을 가집니다.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은 무엇일까요?

자신들의 경험과 스스로 안다고 믿는 생각의 틀입니다.

삼십여 년 동안 한동네에서 살아온 사람을 겉으로만 아는 얄팍한 이해의 한계로, 또 목수는, 마리아의 아들은, 야고보와 유다의 형제는 그렇게 훌륭한 가르침과 기적의 능력을 지닐 수 없다고 믿는 편견으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자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 안에서 비범하고 초자연적인 것, 곧 은총을 주십니다.

아픔이 낫기를 바라는 사람의 믿음은 치유자의 능력을 활발히 일으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마르 6,5)라는 말은, 치유가 일방적으로나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쌍방의 상호 작용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앓는 사람을 모두고쳐 주신 예수님의 보편적 능력이 고향에서는 몇몇 병자”(6,5)에게 한정됩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마태 9,29)라는 말씀과 달리 그들에게는 믿지 않는 대로 되었습니다.

익숙한 것을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보는 능력, 스스로 안다고 여기는 대상을 지금 이 순간 보이는 대로 새롭게 바라보는 능력을 청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내가 기적입니다.  

 땅의 존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늘의 존재가 된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마르6,1-7)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 그 지혜와 모든 것, 예수님은 어디서 받으셨을까요? 나자렛에서 요~~

 

(루가2, 39)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 나자렛-초소, 망루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전쟁을 위한 건물의 의미보다 아름다운 동산을 보고 즐기기 위한 건물을 뜻한다 했지요. 아름다운 동산, 곧 하느님 나라를 누리기 위한 모든 지혜를 그 나자렛에서 배우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리, 그 자리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 낸다면~ 喜怒哀樂의 그 모든 삶 안에 하느님의 뜻, 그 구원의 지혜를 우리 또한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로마8, 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善(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이 세상은 구원을 위한 교육의 현장일 뿐입니다.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 마리아의 아들- 당시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아닌 어머니(여자)의 이름을 들어 아들이라 함은 큰 모욕 이였습니다. 예수님을 무시하는 호칭 이였던 것입니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올림픽 우승 등, 세상의 명예를 얻은 이들은 고향에서도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 하늘의 관심사는 생명인데 말입니다. 모든 이가 곧 끝나버릴 세상 것을 위해 살아갑니다.

 

(집회37, 25) 25 사람의 삶은 이미 날수가 정해져 있지만 이스라엘(하늘)의 날수는 헤아릴 수 없다.

= 세상 名譽, 義, 財物 등을 위해 세상 법의 행실을 산 사람은 죽었다 살아나 영원한 땅의 복(地獄)을 받을 것이고, 하늘의 명예, 의, 재물 등을 위해 하늘의 법의 행실을 산 사람은 살아나는 영원한 福(하늘)으로 살 것입니다.

 

(마태16,26-27)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하늘의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심판)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루가12, 8)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심판)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 자신의 죗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갚아주신 용서, 구원의 주님으로 안다고 말한다면 예수님께서도 맞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 병을 고쳐주심, 곧 죄를 용서하심이 奇蹟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믿는 것이 또한 기적입니다. 인간들의 죗값을 하늘께서 대신 당신의 죽음으로 갚으시고(代贖) 하늘의 생명을 주셨으니 그것이 어떻게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그 진실을 진리로 믿는 것 또한 기적입니다.

 

 

(1코린2, 14) 14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 다른 이가 어리석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이 어찌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 믿지 않는 이들로 가득한 세상, 그들에게 예수님은 왜 계속 가르침을 주실까요?~ 믿지 못하는 그 어리석은(죄) 세상, 그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 어린양(아기)으로 오셨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라고, 아직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마태12,20)  20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21 민족들이 그의 이름(구원)에 희망을 걸리라.”

 

(2베드3, 15) 15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이는 우리가 사랑하는 바오로 형제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지혜에 따라 여러분에게 써 보낸 바와 같습니다.

= 우리의 시간은 생명입니다. 땅에 목숨이 붙어 있는 이곳이~ 하늘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곧 기적이 일어나는 기회인 것입니다. 기적은 나에게 달려있고 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무시와 모욕을 당하실 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 무시와 모욕을 보여 주시려, 가르치시려고 고향에 데려 가셨던 것입니다.

마르코복음 5장에서 하혈병을 앓는 여자를 고치시고, 죽은 소녀를 살려내신 그 힘, 능력 - 그 힘, 능력을 기적으로 보고 사람들의 환대, 영광을 기대하지 마라. 버려라 하는 가르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 후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 하십니다.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사람들의 환대. 환영을 기대하지 말라고~~~

사람들의 뜻을 만족시키는 땅의 가르침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위한 구원(생명)의 말씀을 올바로 선포하라고요~ 그래서 하느님의 일 그분의 말씀으로 살려 내라고요~~~

♡ 아멘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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