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11일 화요일(세계 병자의 날)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사람의 전통 (마르7,1-13)
제1독서<우리와 비슷하게 우리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1,20―2,4ㄱ)
20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
21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큰 용들과 물에서 우글거리며 움직이는 온갖 생물들을 제 종류대로, 또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제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2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번식하고 번성하여 바닷물을 가득 채워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 곧 집짐승과 기어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25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28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31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2,1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3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4 하늘과 땅이 창조될 때 그 생성은 이러하였다.
<화답송>시편8,4-5.6-7.8-9(◎2ㄱㄴ) ◎ 주님, 저희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 우러러 당신 손가락으로 빚으신 하늘하며,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나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
○ 천사보다는 조금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나이다. 당신 손으로 지으신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나이다. ◎
○ 저 모든 양 떼와 소 떼, 들짐승하며,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물속 길을 다니는 것들을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
복음<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마르7,1-13)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창세1,20~2,4ㄱ)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1,26)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우리와 비슷하게'로 번역된 '뻬찰르메누'(betsalmenu ; in our image)에서 '모상'(형상; tselem; 첼렘)은 '그늘지다'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일차적으로 '그림자'(시편39,7)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뜻이 확장되어 그림자가 그 실체의 모양을 반영하듯이 실체의 모양을 반영하는 '모상'(형상)이란 말로 주로 번역되었다.
또한 '우리 모습으로'으로 번역된 '키드무테누'(kidmuthenu; in our likeness)에서 '모습'(유사성; 모양 ; 떼무트; demuth)은 '닮다'(dama; 따마)에서 유래하며 어떤 실체와 유사한 상태를 가리킨다(1역대4,3; 이사4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모상'(형상; imago; image)과 '모습'(유사성; 모양; similitudo; likeness)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며 어떻게 양자가 구별되는지 알기는 매우 어렵다.
과거 초대 교회의 일부 교부들은 '모상'(형상)을 외형적인 신체의 모습을 보고, '모습'은 하느님께서 지니신 영원성이나 절대성, 성성(聖性)등과 같은 내면적인 성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두 단어는 그 통례에 있어서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으로 구분되어 사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순수한 영이신 하느님께서는 육체적인 형상이 없다는 점에서 위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히려 두 단어를 구별하여 이해할 것이 아니라 모두 하느님의 성품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이를 중복하여 사용한 것은 유사한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보다 의미를 강조하려는 의도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본문 단어는 각각 분리될 수 없는 전치사 '뻬'(be)와 '케'(ke)가 그 서두에 붙어 있다. 이 두 전치사는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으나 가장 일차적인 의미가 '뻬'(be)는 '~안에'(in)이고, '케'(ke)는 '~처럼'(as)이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이 매우 엄정하게 하느님의 모상(형상)과 모습(유사성)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본문은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의 성품을 이어 받아 창조되었으므로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어야 하는 존귀한 존재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 생물학적 진화론이 옳다면, 근본적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별반 다를 바 없으며 단지 빠른 진화 과정을 겪었다는 상대적인 가치만을 지닐 뿐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듯이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imago dei; similitudo dei)으로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는 절대 구별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녔음을 알게 된다.
역설적으로 눈에 보이는 인간을 연구할 때 그 안에 하느님의 신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지성, 자유의지, 감성(정서), 기억, 양심 등과 같은 영혼의 정신성과 영혼의 불멸성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성적인 동물로서, 지성과 자유의지가 있는 실존으로서,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인격적 존재(persona; personality)라는 것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다른 유인원, 동물들에는 없는 고유하고 독보적인 것이 아닌가?
여기에 생물학적 진화론이 들어올 자리가 어디 있는가!
'만들자'로 번역된 '나아세'(naase)는 '만들다'는 뜻을 지닌 '아사'(asa)의 일인칭 복수형이다. 히브리어 '아사'는 이미 있는 기존 재료를 사용하여 어떤 것을 만들지만 그 결과는 전혀 새롭고 창조적인 것임을 가리킨다.
창세기 2장 7절에도 나오지만 사람은 흙이라는 재료로 하느님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나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인간은 그 이전의 어떠한 창조물과도 구별되는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임을 암시한다.
한편 본문에는 '우리'라는 1인칭 복수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처럼 인간 창조에 있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우리'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최고 걸작품인 인간을 창조함에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느님의 밀접한 협의와 상호 협조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천지 창조 때에도 성부 하느님과 더불어 성령 하느님께서도 활동 하셨음이 밝혀져 있으며(창세1,2), 후에 요한 복음 저자도 성자 하느님께서도 창조 사업에 동참하셨음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요한1, 2.3).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제1독서에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하시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남성과 여성” 또는 “수컷과 암컷”이라고 옮기는 편이 낫습니다.
이 표현이 구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 대부분 짐승과 관련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창세 6,19; 7,16; 레위 3,1; 3,6 참조).
적어도 이 표현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가리키는 표현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창세기에서 사람의 창조는 여섯째 날 동물이 창조된 날에 함께 이루어집니다.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동시에 동물의 본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이 지닌 이러한 동물의 본성은 개별적 차원을 넘어 집단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지파들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나(창세 49,17.27 참조), 또한 다니엘서에서 바빌로니아의 정복자가 짐승의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규정된 것은 (4,13 참조) 우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뒤에 곧바로 그에게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면서 소명을 주십니다.
그것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고 땅과 바다와 하늘의 동물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소명입니다.
또한 그분의 창조에는 온유함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유와 책임을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기대되는 것은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그분의 통치 원리를 따라 자기 일을 하는 것입니다.
창조 이야기 전체에서 하느님께서는 말씀과 영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십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하느님을 닮고자 말씀과 영의 온유한 힘으로 자기 생명의 원동력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없다면 사람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 세상에 폭력의 씨를 뿌리고 세상을 파괴하고 죽음을 가져오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소명에 올바로 응답하기를, 그래서 인간이 이 땅의 동물들과 피조물들을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자신에게 내재된 동물의 본성을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 영의 힘으로 다스리는 겸손한 목자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는”(이사 11,6) 세상,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은’ 세상을 우리 마음에 품고 이를 이루려고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성령의 힘으로 이루시는 창조, 구원이다.
첫 창조 사흗날 씨의 희생이 재창조인 사흗날 예수님의 대속이다.
(창세1,1-2,7)
1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라하프) 있었다.
=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있는 땅을 하느님의 영(힘, 얼, 말씀)이 감돌고(덮고) 계심으로 창조가 시작된다. 그 꼴(틀)을 삼일동안 세우시고 그 틀 안에 삼일동안 채우심으로 창조를 이루신다.
곧 창조 첫날 빛에- 나흗날의 빛들로(1=4), 이튿날 물에- 닷새날 그 물에 생물들을(2=5), 사흗날 땅, 씨에 엿샛날 사람으로(3=6) 채우신다.
*창조 첫날(1)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짝, 나흗날(4)
16 하느님께서는 큰 빛물체 두 개를 만드시어, 그 가운데에서 큰 빛물체는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물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 큰 빛물체(태양), 빛의 본체인 하늘을 뜻한다. 작은 빛물체(달), 반사체로 하늘의 빛을 받아 빛을 내는 땅을 뜻한다. 곧 피조물이다. 그 이치를 깨닫는 존재가 별, 하느님의 자녀다. 이것이 첫날과 나흗날의 관계다.
*창조 이튿날(2)
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 7 하느님께서 이렇게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르시자, 그대로 되었다.
짝, 닷샛날(5)
20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에는 생물이 우글거리고, 새들은 땅 위 하늘 궁창 아래를 날아다녀라.”
= 궁창 위에 물-하늘의 물, 궁창 아래 물- 땅의 물. 하늘의 물은 하늘의 생명을 주는 생명수, 땅의 물은 바다의 풍파로 사람을 죽이는 쓴 물이다. 위에서 내리는 물과 하나가 되어야 살 수 있다. 그것이 구원의 완성이다. 그러나 아직 하나를 이루지 못했기에 이 날만 다른 날에 ‘보시니 좋았다’하신 말씀이 없다.
*창조 사흗날(3)
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0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 사흗날의 씨의 죽음이다. 빈땅이 스스로 씨를 맺는, 열매를 맺을 수 없기에, 씨가 들어가 죽고 맺는 열매다. 그것을 하느님은 땅이 맺었다고 해 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으의 은총(은혜, 자비)다.
짝, 엿새날(6)
2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 땅, 그 흙의 먼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2,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7)에 쉬셨다.(安息)
= 사람에게 하늘의 씨(빛, 물)를 양식으로 주시고 그 씨를 먹고 사람으로 살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야 하늘의 ‘7, 쉼, 안식’을 살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하늘의 양식이 창조 사흗날 씨의 희생, 죽음이다.
그 사흗날 씨의 양식이 땅(흙)의 먼지인 그 없음의 존재들을 있음의 존재가 되게 하시는 대속의 제물로 죽으시고 사흗날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그 표징이 빈 땅인 처녀에게 들어오시어 짐승(인간)들의 먹이통(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시다.
(루가2,11-12)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 사흗날, 씨의 희생 곧 빛이시며 생명의 물이신 사흗날,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을 죄인들이- 구원의 진리,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보시니 좋았다(토브)’ 하신 善(토브)이다.
같은 날 만드신 짐승들에게 그 씨가 아닌 풀을 양식으로 주심을 기억하자. 곧 사흗날의 씨,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지 못하면 흙의 티끌, 짐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씨, 예수님 말씀을 육의 욕망, 그 사람의 뜻, 길로 받으면 사탄에게 구원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마르4,14~)
그것을 오늘 복음(마르7,1-13)에서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하느님을 헛되이 섬기게 되는 것이고,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헛된 신앙이라 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인 영의 구원을 위한 말씀, 씨, 진리로 받으면 하늘의 존재,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 모습이 빈 땅, 처녀의 잉태다.
(루가1,31.34-35) 31 보라, 이제 네(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4 마리아(쓴물)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씨)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라하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 구약의 첫 창조에서 비어있는 땅을 감돌고(라하프) 재창조를 시작하신다. 그 하느님의 영, 성령을 찾고,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하느님의 숨(기운)이다.
(창세2,7)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힘이 약해질 때, 주님의 힘으로 강해짐을 깨닫나이다. 그것이 나의 창조, 구원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아멘!!!
연중 제5주간 화요일 복음(마르7,1~13)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겼다." (7)
마르코 복음 7장 7절은 이사야서 29장 13절의 마소라(mt)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고, 70인역(lxx)에만 나타나는 표현이다.
'헛되이'로 번역된 부사 '마텐'(maten; in vain)은 '열매가 없이', '유익이나 생각없이'라는 뜻으로 철저히 생각하지 않고 행한 수고가 아무런 이익이나 열매를 맺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지킨 조상들의 전통들은 신학적인 성찰없이 행해진 행동이며, 하느님 대전에 아무런 열매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무익한 행동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하느님을 섬김에 있어서 무익한 이 규정들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멍에를 지우고 단죄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섬긴다'에 해당하는 '세본타이'(sebontai; they worship)의 기본형 '세보마이'(sebomai)는 신약에서 10회 사용된 동사로서, 오로지 신적 존재만을 경배하고 경외하는 행위를 뜻한다(사도16,14; 18,7.13; 19,27).
여기서 '세본타이'(sebontai)는 직설법 현재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당시 그렇게 행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에 그치지 않고 이 현재 시제가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행위에까지 연결되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과거 시점의 상황을 다룬 예언서를 인용하시면서 실제로는 현재의 사람들을 책망하고 계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불변의 규정으로 여기며 엄격하게 지켜오고 가르치던 정결례와 같은 규정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들이 백성들을 통제하며, 자신들이 이것을 철저히 지키고 있음을 과시하면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심을 이끌어 내던 수단이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이러한 노력들이 하느님을 섬김에 있어서 아무런 열매가 없는 헛된 일에 불과하다고 하심으로써, 종교 지도자들의 권위를 완전히 무너뜨리셨던 것이다.
[연중 제5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내면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과 음식을 먹기 전 손을 씻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십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정결법을 근거로 손을 씻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결법의 진정한 의미는 몸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히십니다(7,20-23 참조).
우리의 정결함은 손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과 나만이 아는 우리의 마음 상태에 따라 결정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면을 가볍게 여기면서 외적인 행위에만 집중하는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하느님을 입술로 공경하지 말고 마음으로 섬기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으로 꾸짖으십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생활’이기에 우리가 단순히 외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을 하려면 계명이 담고 있는 정신을 잘 알아야 하며, 그 정신에 따라 마음을 다하여 이를 지켜야 합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이란 이처럼 내면의 가치를 어렵지 않게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5주간 화요일]
가짜기 더 진짜 같은 신앙
(마르 7,1-13)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 물에 씻지 않은 손입니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 물에 씻는 의미는 용서입니다.(레위15,13) 물에 죄가 죽고 다시 살아나는, 물에 육이 죽어 영으로 살아나는 세례입니다. 세상의 삶의 위한 양식을 먹기 위한 씻음입니다.
(1배드3,21)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 용서를 넘어선 하늘의 생명이- 물 씻음의 목적입니다.
땅의 도덕과 윤리의 의로움은 자신의 양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물(말씀), 곧 그리스도의 피로 더러운 양심을 씻어주는 그 약속, 말씀으로 양심이 깨끗해집니다.(히브10,22참조)
그 올바른 양심을 청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물(말씀)을 자신들의 제물(양식)을 위한 전통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참된, 올바른 신앙이라 주장 합니다. 그리곤 오히려 물, 말씀이신 예수님께 잘못이라 지적합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하느님의 규정, 계명입니다.
(탈출15,25)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나무 하나의 규정과 법규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그 나무입니다. 구원의 계명입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사람의 규정과 교리, 계명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십자가 그 참 복음, 계명이 버려졌습니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로마8,1)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십자가)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 코르반은 율법에 없는 사람이 만들어 낸 사람의 전통, 규정입니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 믿는다. 하는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대속 그 계명, 말씀을-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바꾸어 하느님을 헛되이 섬기는 신앙을 산다. 하십니다.
(민수15,38-39) 38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말하여, 대대로 옷자락에 술을 만들고 그 옷자락 술에 자주색 끈을 달게 하여라. 39 그리하여 너희가 그것을 볼 때마다, 주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실천하고, 너희 마음이나 눈이 쏠리는 것, 곧 너희를 배신으로 이끄는 것에 끌리지 않도록 하는 술이 되게 하여라.
= 사람의 관점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과 눈으로 보는 계명은~ 하느님의 계명보다 더 멋지고, 더 진짜 같아 보입니다.
구원의 가치 없는 그 가짜가 진짜인 구원의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로 끌고 갑니다.
(1코린1,21-24)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22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구원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아멘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