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5주간 수요일]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것 (마르7,14-23)

2025. 2. 11. 오후 1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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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2일 수요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것 (마르7,14-23)


   


1독서<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창세2,4-9.15-17)

4 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5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화답송>시편104(103),1-2.27-28.29ㄴㄷ-30(1)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 하느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시옵니다. 존엄과 영화를 입으시고, 광채를 겉옷처럼 두르셨나이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신께 바라나이다. 제때에 먹이를 달라 청하나이다. 당신이 주시면 그들은 모아들이고, 당신 손을 펼치시면 복이 넘치나이다.

당신이 그들의 숨을 거두시면,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당신이 숨을 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온 누리의 얼굴이 새로워지나이다.

 

복음<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르7,14-23)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16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창세2,4ㄴ~9.15~17)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16~17)

 

'명령하셨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와'(tsawah)는 원래 '지정하다'(appoint)라는 엄격한 뜻이 있다. 이 단어는 어떤 것을 정확하게 지정하여 다른 것을 선택할 여지를 완전히 없앤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엄하게 명령하다'는 뜻인데, 이 명령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최초의 금지 명령으로 절대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먹어도 된다'에 해당하는 '아콜 토켈'(akol tokel; you are free to eat)에서 '먹다'라는 기본 뜻을 지닌 '아칼'(akal)이 두 번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다.

 

앞에 나오는 '아칼'(akal) 부정사 절대형이고, 뒤에 나오는 '토칼'(tokal)은 2인칭 단수 미완료형이다. 여기서 부정사 절대형이 사용된 것은 이어 나오는 동사를 강조하는 것이고, 미완료형이 사용된 것은 앞으로 계속 먹어도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창세기 2장 16절은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나 자유롭게 계속 먹을 수 있다'는 뜻이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다음에 나오는 창세기 2장 17절 단 하나의 금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있어 넉넉한 자유가 부여되었음을 뜻한다.

 

이처럼 인간은 원래부터 창조주 하느님께로부터 많은 자유와 특권을 부여받은 존귀한 존재였다.

 

한편, 창세기 2장 17절의 '먹으면 안된다'에 해당하는 '로 토칼'(lo tokal; you must not eat)에서 '로'(lo)는 '아니다'라는 뜻을 지니는 부정 불변사이고, '토칼'(tokal)은 '먹다'는 뜻을 가진 '아칼'(akal)의 미완료형이다.

 

그런데 부정어 '로'(lo)가 미완료형과 함께 쓰일 때에는 강한 금지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창세24,37; 탈출20,13; 레위19,4). 따라서 '절대로 먹지 말라'는 강한 금지 명령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이러한 강한 금지 명령은 실제로 먹는 행위를 금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먹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조차 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창세기 2장 17절은 인간의 절대 순종을 요구하는  하느님의 엄중한 금지 명령인 것이다.

 

또한, '먹는 날'에 해당하는 '뻬욤 아칼레카'(beyom akaleka; when you eat)에서 '뻬'(be)란 '안'(in)이란 뜻의 전치사인데, 직역하면 '먹는 날 안에'(in the day)이다. 이것은 '먹는 즉시'라는 뜻으로서 하느님의 명령을 불순종했을 때는 그 즉시 형벌이 내린다는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 선언이다.

 

그리고 '반드시 죽을 것이다'에 해당하는 '모트 타무트'(moth tamuth; you will surely die)에서 '죽다', '망하다', '멸하다' 등의 뜻을 가진 '무트'(muth)가 두 번 반복되고 있다.

 

여기서 앞부분 '모트'(moth)는 부정사 절대형으로서 '죽는 것'을 의미하고, 뒷부분 '타무트'(tamuth)는 2인칭 단수 미완료형으로서 '너는 죽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부정사 절대형이 동일한 동사 앞에 오면 그 동사를 강조하는 뜻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먹는다면 전혀 예외없이 죽음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5주간 수요일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제1독서가 그리는 세상의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사막 한가운데에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고 거기서 사방으로 물줄기가 뻗어 나가며물속에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넘쳐 나고물이 지나는 땅 주변에는 식물들이 풍성히 자라나고 동물들이 활기 넘치게 뛰어다닙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들을 돌보고 있습니다이것은 분명히 모든 이가 꿈꾸는 이상향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히브리 말로 된 구약 성경을 그리스 말로 맨 먼저 번역한 이들이 이 정원을 가리켜 낙원(樂園 파라다이스)’이라고 이름 지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독서를 보면 사람이 이 정원에서 할 일을 규정한 동사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하다’ 또는 경작하다의 의미를 지닌 동사 아바드입니다.

그런데 이 동사는 구약 성경에서 흔히 봉사하다’, ‘섬기다’, ‘공경하다의 의미로도 쓰였습니다.

따라서 이 낱말은 주인을 위하여 봉사하고 섬기는 직무를 받은 종의 역할을 드러냅니다.

사실 창세기 첫 장에는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땅의 권한을 위임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1,26.28 참조).

결국 이 말은 사람이 땅을 지배하라는 의미가 땅을 섬기는 일땅을 공경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두 번째 동사는 ‘-을 잘 바라보다’, ‘-을 눈을 뜨고 지키다라는 뜻을 지닌 샤마르입니다.

이 낱말은 사람이 정원을 지키는 소명을 받았음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인간이 땅을 지배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인간은 온유하고 겸손하게 땅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아름다운 낙원의 산지기로서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섬기는 하느님의 충실한 관리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껏 우리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훼손한 기존의 생활양식을 되돌아보고의미 있는 변화를 이루어 내는 일에 모두 함께 관심을 가지고 발맞추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되는 것은  도리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마르 7,14-23)

 1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깨달아라' 하십니다.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 누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 주님의 귀로- 하느님의 관점으로, 하늘의 뜻으로 깨달아 들어라. 입니다.

 

(2베드1,21)  21 예언(말씀)은 결코 인간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에게서 받아 전한 것입니다.

 

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 주님의 뜻으로 깨닫기 위한 물음입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 음식- 사람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양식입니다. 참 생명의 양식- 말씀을 비유하심입니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어제,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대속 그 계명을 , 말씀을 깨닫지 못해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바꾸어 하느님을 헛되이 섬기는 그릇된 신앙을 살고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이어진 오늘 말씀입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깨끗하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미워 보이는 것, 더러움과 깨끗함, 선과 악, 모두 그렇습니다.

더러움- 악, 어둠으로, 깨끗함- 선, 빛을 깨달았으면 모두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뱀도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창세3,1)

 

(1티모4,4)  4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다 좋은 것으로, 감사히 받기만 하면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5 사실 그것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 하느님은 그 어둠, 악 그 죄의 존재들을 ~ 당신의 대속으로 구원하심을 보여 주시려고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도, 우주도 율법 도 계명 도 다 그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음입니다. 죄악을 용서하시기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당신의 대속, 그 사랑, 의로움을 드러내시려 구요.(이사43,7 로마3,26참조)

그렇게 세상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분의 뜻(계명)으로 지어졌기에 모든 것이 깨끗합니다.(로마1,20 참조) 그러니 그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받아 들였을 때 그것이 사람을 더렵 힐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세상의 것이 사람 안에 들어가 사람의 생각과 뜻으로 바뀌어 밖으로 나오게 되면 당연히 그것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하느님의 대속 그 사랑이 아닌 사람의 도덕과 윤리의 사랑으로 나오면~ 법의 사랑이 되어 심판, 죄의식(더러움)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 앞에서 묵상했듯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신성과 본성인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고 감탄만 한다면, 그래서 하느님의 대속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더러운 것이 됩니다,(지혜13장 참조)

하느님은 이 세상 만물을 통해서 당신의 구원의 사랑을 깨달아라. 주신 것이지 감상하라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듯 하느님의 말씀, 계명 또한 그 구원의 사랑, 그 하나 만을 약속하신 말씀인 것이고 그 사랑의 약속(말씀)을 받아라, 먹어라 하심입니다.

십계명 또한 그 열 개의 계명, 곧 도덕과 윤리로 지켜 버리면 사람의 의로움을 위한 계명이 되어, 십자기의 대속 그 하늘의 죽음, 의로움을 헛되게 하는, 죽이는- 도둑질, 살인, 탐욕, 교만, 악의, 시기, 방탕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뜻과 하나 되지 못하게 하니 간음 이 되어 사람을 더럽히는 어리석음이 됩니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 하느님의 대속 그 십자가의 사랑을 이웃에게 알려주어 그 이웃이 용서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의 그 우리의 사랑은 이웃에게 구원을 위한 용서를 줄 수 있는 가치, 능력 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귀(뜻)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히브9,22) 22 율법에 따르면 거의 모든 것이 피로 깨끗해지고, 피를 쏟지 않고서는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대속의 피를 쏟으신 그 의로움의 주님, 당신을 의탁하라 하시니 염치없는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 아멘 -*^ㅇ^*-

 

 

 

  

  연중 제5주간 수요일 복음(마르7,14~23)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황,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20~23)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5장 18절에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란 표현이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인간의 악한 마음이 여러 행동에 투영되지만,  특히 언어 생활을 통해 드러남을 강조적으로 보여 준다.

 

마르코 복음 7장 21절의 '나쁜 생각들'을 뜻하는 '호이 디알로기스모이 호이 카코이'(hoi dialogismoi hoi kakoi; evil thoughts)가 7장 21절과 22절 전체의 주어이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19절에서는 '나쁜 생각'을 따로 떼어 사람을 더럽히는 대표적 실체로서 말하기보다는, 단지 악한 요소 중에 하나로만 표현하는 차이점이 있다.

 

마르코 복음 7장 21절의 '디알로기스모이'(dialogismoi)의 기본형 '디알로기스모스'(dialogismos)는 '생각'이라는 뜻외에 '변론', '의논', '다툼' 등의 의미도 있다.

 

그리고 '나온다'로 번역된 '에크포류온타이'(ekporeuontai; come; proceed)는 원형 '에크포류오마이'(ekporeuomai)의 직설법 현재 동사로서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르코 복음 7장 21절과 22절에 나와 있는 나쁜 생각들이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그날까지 늘 마음속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계속적으로 나쁜 생각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마음이 본질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이다(예레17,9; 창세6,5참조).

 

결국 마르코 복음 7장 16절과 20절에서 말하는 사람을 더럽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what comes out of man)이란 바로 '나쁜 생각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 '나쁜 생각들' 마르코 복음 7장 21절과 22절에서 12가지 구체적인 것들로 나열되고 있다.

 

이 열두 가지는 원문 성경에서는 모두 주격으로 사용되어 마르코 복음 7장 21절과 22절의 전체 주어인 '나쁜 생각들'을 열두 개의 항목으로 다시 풀어 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열두 개의 항목을 십계명의 순서와 무관하게 나열하고 있는데,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이것을 재구성하면, '중상'에 해당하는 '플라스페미아' (blasphemia; blasphemy; slander; 신에 대한 불경, 모독, 독성, 죄받을 언동, 욕설, 명예 훼손)는 제2계명에, '살인', '악의', '시기', '교만', '어리석음'은 제5계명과 연관되고, '음란', '간음', '방탕'은 제6계명'도둑질'은 제7계명, '사기'는 제8계명, '탐욕'은 제9~10계명에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십계명 가운데서 대인 관계를 규정한 7계명 중에서 부모와 관련된 제4계명만 빠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불륜'에 해당하는 '포르네이아이'(porneiai; fornications; sexual immorality)는 '포르네이아'(porneia)의 복수형인데, 결혼의 유무와 관계없이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성범죄를 가리킨다.

 

이 단어는 '간음'이나 '방탕'과 비교해 볼 때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의 성적 범죄 행위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성적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간음'에 해당하는 '모이케이아이'(moicheiai; adulteries)는 '모이케이아'(moicheia)의 복수형인데, 일반적으로  결혼한 남녀가 자신의 아내나 남편이 아닌 사람과 성적 관계를 갖는 행위를 가리킨다(마태5,28참조).

 

'탐욕'에 해당하는 '플레오넥시아이'(pleoneksiai; greed) '플레오넥시아'(pleoneksia)의 복수형인데,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과도하게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을 말한다.

 

여기서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이러한 과도한 욕망들이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날 때는 여러 가지 양상으로 표출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악의'에 해당하는 '포네리아이'(poneriai; malice; wickedness)의 단수형 '포네리아'(poneria)는 '노동', '아픔'을 뜻하는 '포노스'(pono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가 주는 모든 해악들을 가리킨다.

 

'시기'에 해당하는 '옵탈모스 포네로스'(opthalmos poneros; envy; an evil eye)는 '악한 눈'으로 직역되는데, 여기서 '악한 눈'이란 특별히 상대방을 경멸하는 눈짓 가운데 나타나는 오만함이나,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나타나는 시기와 질투 등을 가리킨다.

 

상대방이 잘되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우월함이  깎이는 것처럼 느끼는 열등 의식인 '질투'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어리석음'에 해당하는 '아프로쉬네'(aphrosyne; foolishness; folly)는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지각없이 어떤 일에 대해 몰상식하고 도의에 어긋나며 무분별하게 행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말한다.

 




 

  

20250212일 수요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날 우리 사회는 웰빙’(well-being)을 숭배하는 사회라고 할 만합니다.

이 낱말을 문자 그대로 푼다면 잘 살기’, ‘잘 존재하기정도로 이해되는데, 이는 곧 인간 존재가 모든 차원에서 건강하고 평안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육체적 건강과 미용의 차원에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오염되지 않은 물과 공기와 식품을 얻는 데 수고와 지출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육신의 건강을 돌보는 만큼 영적 건강도 돌보는지요?

음식을 비롯한 외적 물질은 건강을 해칠 수는 있을지라도 내적 인간을 더럽히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몸을 지나 몸 밖으로 빠져나감으로써 마음에 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마르 7,19)을 분명히 구분하시고, 배가 아니라 마음에 머무르면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인간을 더럽힌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라 바로 나쁜 행동을 일으키는 나쁜 생각”(7,20), 곧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동의 동기들입니다.

사실 안에 있는 것은 언제든 어떻게든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안에 있는 것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보이는 음식과 보이지 않는 마음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에 더 신경을 쓰는지요?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마음의 순결을 돌보는 지혜를 청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2월 12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죽음 속에 꽃피는 十字架

 

(창세2,4-9.15-17)

4 하늘과 땅이 창조될 때 그 *생성은 이러하였다. 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 생성(토트도트)-역사, 기원. 앞 1장~2장3절까지의 창조를 다른 관점으로 묘사되는 기록이라는 뜻이다.

 

5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숨(네사마-기운) 생명의 기운을 받은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께 있다.

 

(요한1,4) 4 그분(말씀,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 生命나무와 善과 惡을 알게 하는 나무, 모두 하느님의 눈에 ‘보시기에 좋은’ 나무다.

 

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 에덴의 나무를 알아라(깨달아라) 하시는 것이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하느님께서 돌보라 명령하신 것이 선과 악의 열매를 ‘따 먹지 마라, 못하게 하라‘고 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善과 惡의 계명으로 받으면 심판의 근거(根據)가 되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 심판의 근거가 되는 위험한 나무를 가장 보기 좋은 동산 한가운데 왜? 두셨을까. 따먹고 죽으라고~

사람(아담)은 생명의 기운을 받은 것이지 생명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로 두면 영원히 땅(肉) 속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흙의 먼지일뿐임을 깨닫고 생명나무를, 곧 선악의 나무를 통해 하늘의 생명체를 찾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하느님의 善惡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야고보2,8~10) ‘善, 토브’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니 좋았다(토브)’하신 그 善이다. 곧 하느님의 뜻으로 사는 것이 善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 산다. 그러니 인간의 힘으로는 그 누구도 절대, 생명나무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그 같은 사실을 잘 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恩寵), 은혜로 생명나무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그 좋은(토브) 뜻이 들어 있음을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곧 ‘代贖의 十字架 그리스도’를 創造 이전에 豫備하신 것이다.

 

(에페1,4-5)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토브)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2티모1,9)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선악)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 생명나무와 선악의 나무, 그 안에 하느님의 은총, 은혜의 십자나무가 들어 있는 것이다. 율법(제사와 윤리)으로 얻는 의로움이 아닌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얻는 생명이다.(로마3,21-24) 그것이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 福音이다.

그 십자나무의 복음으로 얻는 구원은 인간들의 선악구조로 구원에 이르겠다고 열심을 부렸던 그 자기 의로움의 무력함, 헛것임을 自覺하고 인정하는 그 自己否認으로 얻는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우리의 선악의 십자가로 죄와 죽음을 깨닫고 용서, 구원,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리로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빠진 10절 이하를 보면~(창세2,10-14)

10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

= 江 하나가 네 줄기- 4방위, 곧 땅의 온 세상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11 첫째 강의 이름은 피손(풍성한)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온 땅을 돌아 흘렀다. 12 그 땅의 금은 질이 좋았으며, 그 고장에는 브델리움 향료와 마노 보석도 있었다.

= 강 하나에서 흐르는 물을 먹는 이는 보석과 같이 반짝이고 귀하다는 것이다.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터져 나가다)인데, 에티오피아 온 땅을 돌아 흘렀다. 14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화살처럼 빠르다)인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달콤하다)이다.

= 흙의 먼지인 존재를 귀하고 반짝이는 보석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풍성하고 달콤한 십자나무의 복음이 화살처럼 빠르게 세상으로 퍼져 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江하나, 하나- 한분이신 하느님의 뜻인데,

 

(요한4,14)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江)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요한7,38-39) 38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39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께서 아직 와 계시지 않았던 것이다.

= 강 하나는 하느님의 영, 사랑, 성령을 뜻한다. 그 진리의 성령께서 생명나무와 선악의 나무를 사람을 귀하게 만드는 하늘의 존재, 구원의 십자나무로 화살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구원의 진리, 새 계약으로 증언하신다.(로마8,1~ 히브10,16-18참조)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선악의 나무, 그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구원, 생명을 찾겠다는 律法(제사, 윤리)人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인간들에게서 나오는 善, 의로움은 개짐(쓰레기)일 뿐이다.’ 라고 하셨다.

 

오늘 복음중(마르7,20-23)에서도-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 어리석음이 나쁜 생각, 악한 것이다. 어리석음- 얼이 섞인 것. 하느님의 얼(뜻, 말씀, 계명)에 인간의 얼(뜻, 말, 계명)을 섞어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려는 어리석은 나쁜 생각, 악한 것이다. 죄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드러난 죄를 통해 나의 본질, 죄인임을 깨닫고 대속의 십자가 그리스도께 가야 하는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당신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자기부인의 삶으로 생명나무에 이르게 하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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