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17일 월요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시대의 표징 (마르8,11-13)
제1독서<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창세4,1-15.25)
1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아이를 얻었다.”
2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3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6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8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9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12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13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14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화답송>시편50,1과 8.16ㄴㄷ-17.20-21(◎ 4ㄱ) ◎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쳐라.
○ 하느님, 주 하느님이 말씀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온 땅을 부르시네. “제사 때문에 너를 벌하지는 않으리라. 너의 번제야 언제나 내 앞에 있다.” ◎
○ 어찌하여 내 계명을 늘어놓으며, 내 계약을 너의 입에 담느냐? 너는 훈계를 싫어하고, 내 말을 뒷전으로 팽개치지 않느냐? ◎
○ 너는 앉아서 네 형제를 헐뜯고, 네 친형제에게 모욕을 준다. 네가 이런 짓들 저질러도 잠자코 있었더니, 내가 너와 똑같은 줄 아는구나. 나는 너를 벌하리라. 너의 행실 네 눈앞에 펼쳐 놓으리라. ◎
복음<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마르8,11-13)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제1독서(창세4,1~5.25)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3~5ㄱ)
여기서 '세월이 흐른 뒤에'에 해당하는 '와예이 믹케츠 야임'(wayei miqets yaim; in the course of time)을 직역하면, '그리고 날들의 끝으로부터 이 일이 있었다'이다.
'세월'은 '한 날'에 해당하는 '욤'(yom)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야임'(yaim)이며, 이러한 '날들'은 무한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끝'에 해당하는 '케츠'(qets)가 있음을 보여 준다.
'흐른'으로 번역된 '믹케츠'(niqets)는 '끝'이란 뜻의 '케츠'(qets)에 '~으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민'(min)이 결합한 형태로 '~의 끝으로부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주로 심판을 다루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창세6,13; 에제7,2.3; 이사9,6).
그러므로 창세기 4장 3절은 단순히 세월이 흐른 어느 시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카인과 아벨을 평가하고 심사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카인과 아벨이 각각 자신의 수고에 따라 힘써 일하고 보냈던 날들이 마감되고, 하느님 대전에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에 지켜볼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전개될 사건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정해진 때, 즉 카인과 아벨이 자신들의 수고에 따라 일한 것들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검증받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물'에 해당하는 '미느하'(minha; offering)는 반드시 인간이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선물을 나타낼 때에도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 혹은 감사를 나타내기 위해 바치는 선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여기서 이 단어는 카인이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이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존경과 감사를 돌려 드리기 위해 바치는 것이어야 함을 보여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4장 5절에 나오는 것처럼 카인의 제물을 하느님께서 굽어 보시지 않은 이유가 바로 제물을 바치는 대상인 하느님 당신께 대한 진정한 존경과 감사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히브11,4참조).
사람은 보통 겉모습을 보지만, 전지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의 정성을 보시고 이러한 제물을 굽어보시고 기꺼이 받아주시는 것이다 (1사무16,7참조).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직역하면, '그의 양 첫 새끼들 그리고 그것들의 기름을'이다. 여기서 '맏배들'에 해당하는 '뻬코라'(bekora; some of the firstborn)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어서 아벨은 새끼양 한 마리만을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를 바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뻬코라'(bekora)가 '맏배'(첫 새끼; firstlings) 외에도 모든 '처음 난 것'을 가리키거나 그 말 속에는 '가장 뛰어난 것'이나 '우두머리'라는 뜻도 들어 있다.
그리고 '기름'에 해당하는 '헬레브'(heleb; fat portions)는 일차적으로 '지방'을 뜻하지만, '살찌고' '기름지며' '아름다운' 것이란 뜻도 들어 있다.
그래서 본문은 '그의 양 떼의 첫 새끼 몇 마리로부터 얻은 기름진 부분들'이나 '그의 가장 좋은 어린 양들로부터 얻은 고기의 기름진 조각들'과 같이 의역되기도 한다.
어쨌든 아벨은 형식적인 제사를 바친 카인과는 달리 정성을 다해 가장 좋은 것을 하느님께 바쳤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아벨의 태도는 하느님을 만물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태도이며, 하느님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겸손의 표현이다(히브11,4).
'기꺼이 굽어 보셨으나'
'기꺼이 굽어 보셨으나'에 해당하는 '와이샤'(waisha; and looked with favor on; and had respect)는 '기쁘게 받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샤아'(shaah)의 뜻은 '응시하다','둘러보다'이다.
특히 이 단어는 상대방을 돕기 위해 둘러본다는 뜻이 있으며, '돌이키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응시하신 대상이 단지 제물만이 아니라 아벨 그 자신까지도 포함된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아벨을 제물보다 앞에 단어를 위치시켜서 아벨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응시하심을 보여 주고 있다.
본문은 하느님께서 정성껏 제물을 바치는 아벨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살펴 보시는 것을 의인법적으로 더 친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제1독서에는 두 형제가 주님께 각자의 소출을 바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카인의 곡식과 달리 아벨의 봉헌물에 눈을 두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 궁금합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차별을 말합니다. 카인이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불의한 듯이 보이는 하느님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가장 잦은 시도는 히브리서의 논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아벨이 카인보다 더 훌륭한 제물을 바쳤다는 것입니다(히브 11,4 참조).
또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으며 하느님의 행위에 반영하였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목축업을, 가나안 민족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살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우월을 강조하고자 카인(농업)보다 아벨(목축)의 봉헌을 하느님께서 선호하셨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아벨의 봉헌물이 카인의 것보다 낫지 않았는데도 받으셨다면 주님은 불의한 분이 되시는 것은 아닐까요?
하와는 첫 아기를 낳고 “내가 주님과 함께 한 사람을 얻었다.”(창세 4,1의 직역)라며
카인이라고 부르며 무척 소중히 여긴 듯합니다.
반면에 아벨에 대하여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은 듯합니다.
아벨은 부모의 아들로 제시되기보다는 카인의 동생으로 덧붙여진 사람으로 소개됩니다(창세 4,2 참조).
이렇게 우리 앞에 대조되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열망이 반영된, 하느님과 함께 얻은 카인과 그와 비교할 바 못되는 아벨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와의 두 가지 불의를 봅니다.
카인에게 쏟은 과도한 애정(愛情)과 아벨에게 보인 무관심 또는 무정(無情)입니다.
어머니에게 지대한 관심과 소유의 열망을 받고 있는 카인과 달리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받지 못하는 아벨의 선물을 하느님께서 받아 주심은,
어쩌면 차별당한 불의한 아들 아벨에게 하느님 편에서 베푸실 수 있는 보상이 아닐까요?
아벨이 여전히 하느님 앞에 또 사람들 앞에 존재함을 인정하시는 하느님의 행위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아벨의 선물을 받으시자 이제껏 연기처럼 존재하던 아벨이 드러나게 되고
카인은 그의 옆에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성경의 첫 형제는 형제애를 이루는 데 실패합니다.
사실 성경은 단 한 번도 카인을 아벨의 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아벨의 경우는 카인의 동생이라고 일곱 번이나 말합니다(4,2.8.9.10.11 참조).
우리는 주님 앞에서 형제애를 이루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소유와 질투의 욕망으로 형제를 잃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살핍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
[연중 제6주간 월요일]
十字架는 세상의 惡을 드러내는 事件이다.
(창세4,1-15.25-26)
1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임신하여 카인을 낳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남자아이를 얻었다.”
= 하와는 살아있는 것의 어머니가 되게 해 줄 후손, 곧 자신과 모든 이들의 죄를 대속할 후손을 낳았다고 생각했다.(창세3,15) 그래서 남자아이 카인을 낳았다 했다. 그리고 그의 아우를 낳고는 아벨이라 이름을 지었다. (아벨-허무하다. 없다)
2 그 여자는 다시 카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 당시 사람들이 고기를 먹지 않았기에 양치기는 스펙이 없는 직업이고, 반면에 농부는 富를 누릴 수 있는 인기 직업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땅을 부치는(아바드- 섬기다. 노예가 되다) 곧 카인은 땅(세상)을 섬기는 땅의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3 세월이 흐른 뒤에 카인은 땅의 소출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그 굳기름을 바쳤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나, 5 카인과 그의 제물은 굽어보지 않으셨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 아벨은 어떻게 양치기가 되었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양의 맏배와 굳기름을 드렸을까? 아벨은 그의 부모, 아담과 하와가 입고 있었던 가죽옷을 봐 왔고, 그 가죽옷의 이야기, 어린양의 대속, 그 전해 받은 말을 귀담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마음 또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었다. 곧 하느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에페2,8)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히브11,4) 4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믿음 덕분에 아벨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예물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 덕분에 여전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 믿음은 성경 말씀 안에 들어있다. 하느님의 구원의 약속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씀 안에 약속에 머물며 되새기면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 믿음이다.
6 주님께서 카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 네가 옳게(옳게-선)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 성경에서 善(토브-옳은)은 하느님께서 하신 創造, 곧 흙에 생명과 안식을 주는 일이 善이라 했다. 카인은 그 하느님의 선, 뜻이 아닌 흙, 자신의 뜻, 안식을 위해 땅을 섬기며 땅의 노예로 살았던 것이다.
그런 자신의 욕망, 욕심을 잘 살펴, 다스려 그 자신의 헛됨을 깨닫는 그 自己否認으로 하느님의 善(생명, 안식)으로 돌아서야 했다.
8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들에 나가자.”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 카인이 자기 아우 아벨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였다.
= 자신의 시기 질투로 인한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
(잠언16,32) 32 *분노에 더딘 이는 勇士보다 낫고 자신을 *다스리는 이는 城을 정복한 자보다 낫다.
(야고1,19-20) 19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20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하지 못합니다.
= 하느님의 뜻, 선을 적대하는 카인이 뱀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의 후손이 바리사이들이다.(요한8,44) 열심히 제사 드리며 종교행위에 충실했던 그들이 여인의 후손이신 예수님을 죽였다. 곧 카인이 자신의 제물, 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죽였던, 죽임을 당한 아벨이 여인의 후손이었던 것이다.
하와, 인간의 생각은 늘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다.(이사55,9참조) 하느님은 인간의 수준으로 선택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누군가 하느님의 뜻을 죽이고 있다면, 그래서 내 뜻을 이루고야 만다면 뱀의 후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생명, 구원, 그 하느님의 선, 구원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다면 여인의 후손,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이다.(갈라3,16참조)
하느님은 악(죄)을 통해 선(용서, 구원)을 이루시니 하느님께는 악과 선이 짝, 하나인 것이다.(로마8,28참조)
9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11 이제 너는 저주를 받아,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네 아우의 피를 받아 낸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다.
*(공동번역)= 11 땅이 입을 벌려 네 아우의 피를 네 손에서 받았다. 너는 저주를 받은 몸이니 이 땅에서 물러나야 한다.
= *모릅니다.-인간의 뻔뻔함이다.
12 네가 땅을 *부쳐도, 그것이 너에게 더 이상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될 것이다.”
= 수확- 생명의 양식이다. 창조 사흗날 땅을 위해(희생, 대속) 씨(하늘)가 들어가 썩어(죽어) 맺는 씨의 열매, 곧 생명(구원)의 양식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인이 땅(자신)을 육(사람)의 길, 돌밭, 가시덤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카인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마르4,19)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 그러니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13 카인이 주님께 아뢰었다. “그 형벌은 제가 짊어지기에 너무나 큽니다.
= 인간의 뻔뻔함은 계속된다.
14 당신께서 오늘 저를 이 땅에서 쫓아내시니, 저는 당신 앞에서 몸을 숨겨야 하고,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어, *만나는 자마다 저를 죽이려 할 것입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카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나 일곱 곱절로 앙갚음을 받을 것이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표를 찍어 주셔서, 어느 누가 그를 만나더라도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셨다.
= 카인을 죽이지 못하게 하신다. 그의 죄를 통해 하느님의 선하심, 의로움을 밝히실 것이기 때문이다. 곧 죄인이 돌아오면 죄를 묻지 않으시고 대속으로 살리실 것이다. 십자가로 살리시는 것이다. 십자가는 그렇게 악을 드러내 용서한다.
(로마5,8)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원수)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 그러나 카인이 받은 표를 세상 것을 쓰면 세상이 카인을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세상이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죽어야 한다. 세상은 하느님의 뜻을 적대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카인의 생각, 뜻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벨처럼 죽어 하늘로 살아나야 하는 것이다. 곧 죽어야 부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15,18-19)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니, 그 여자가 아들을 낳고는, “카인이 아벨을 죽여 버려, 하느님께서 그 *대신 다른 자식 하나를 나에게 *세워 주셨구나.” 하면서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 대신(쉬트-임명하다),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 부활하셨듯이, 후손 아벨의 부활로 셋이 임명된 것이다.
(공동번역)26 셋도 아들을 얻고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어 불렀다. 그 때 에노스가 비로소 야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였다.
=에노스-이쉬(여자)와 동일한 언어다. 사람이 자신의 본질, 곧 흙의 먼지일 뿐인 그 주재를 알고 살아갈 때, 비로소 자신의 주인(주님)이신 하느님을 그분의 이름, 뜻을 받들어 찾는다는 것이다.
(에페2,2-6)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의탁합니다. 카인의 길에서 하느님의 길로 돌아설 수 있는 힘을 주소서~아멘!!!
연중 제6주간 월요일 복음(마르8,11~13)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2)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구한 '표징'에 해당하는 '세메이온'(semeion; a sign)은 어떠한 것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해 주고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함을 뜻하는 단어이다.
'세메이온'(semeion)이 '표'나 '신호'(마태26,48)라는 뜻 외에 '표징', '표적', '기적', '징조' 등의 의미로 사용될 때는 '능력'을 뜻하는 단어인 '뒤나미스' (dynamis; act of power)와 비교된다.
'뒤나미스'(dynamis)는 다분히 초자연적인 능력이라는 뜻이 있는 데 비해서, '세메에온'(semeion)은 그것을 행하는 자가 모든 사람들이 부정할 수 없는 신적(神的)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뜻이 있다.
따라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은 과연 신적(神的) 권위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증명해 달라는 뜻이고, 그러한 호기심은 순수하게 예수님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마음 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신다.
'깊이 탄식하며'에 해당하는 '아나스테낙사스'(anastenaksas; he sighed deeply)의 원형 '아나스테나조'(anastenazo)는 '위쪽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아나'(ana)와 '탄식하며 신음하다'는 뜻의 동사 '스테나조'(stenazo)가 결합된 단어인데, 가슴 밑바닥 깊은 곳으로부터 숨을 끌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곤경에 빠지게 하여 고소하려는 비열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아들의 깊은 실망과 비애 및 탄식의 마음을 대변하는 단어이다.
마르코 복음 8장 12절의 후반절인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이 세대에 표징을 주시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으실 것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4절에는 '이 세대'가 '악하고 절개없는 세대', 즉 '악하고 음란한 세대'로 표현되고 있으며, '요나의 표징밖에는 아무런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는 예수님의 구체적인 답변이 나온다.
'요나의 표징'이란 바리사이들이 구하는 표징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영광의 표징만이 이 시대에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며 어두움에 속한 이들은 눈에 보이는 신비한 표징만을 구하며, 그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에는 결코 하느님을 믿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진실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자연인의 지혜와 이성으로 온전히 깨달을 수 없는 십자가의 신비(1코린1,18.21)를 믿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주신 진정한 표징으로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2025년 02월 17일 월요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인류의 첫 가정이 제2세대로 넘어오면서 죄의 모습은 더 복잡해지고 심각해집니다.
창세기의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왜 카인과 아벨을 차별하셨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카인이 “옳게 행동하지 않[았음]”(창세 4,7)을 암시할 뿐입니다.
창세기에서 주어진 첫 질문 “너 어디 있느냐?”(3,9)는 이제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4,9)라는 물음으로 발전합니다.
하느님의 물음이 보여 주는 발전 과정은 자신에게서 형제에게로 건너가는 자아의 확장을 암시합니다.
카인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가 아우를 죽인 것을 부인하고 오히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4,9) 하고 되묻습니다.
아우와 ‘상관없음’을 선언하고 형제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입니다.
그날 이후 오늘날까지 인류 역사에서 폭력으로 억울하게 고통받고 존재를 부정당하면서 사라진 수많은 아벨들의 피가 울부짖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은 교회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예표되었고 구약에서 오묘하게 준비되었으며, “‘의인 아벨부터 마지막 뽑힌 사람까지’ 아담 이래의 모든 의인이 보편 교회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 앞에 모이게 될 것”(2항)이라고 말합니다.
카인의 이야기는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리시면서도 죄인의 하소연을 들어주시고, 폭력으로 아우를 죽인 그를 또 다른 폭력에서 지키시고자 표를 찍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로 끝납니다.
우리는 각자가 형제자매를 ‘지키는 사람’임을 기억하면서 서로 돌보고 책임지는 사랑을 하며 살아갑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02월 17일[연중 제6주간 월요일]
지혜신학(知慧神學)이 신앙을 망친다.
복음(마르8,10-13)
10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과부) 지방으로 가셨다.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 표징(標徵)의 실체(實體)이신 예수님이시다.
(루가2,11-12) 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짐승 먹이통)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 죄인(짐승)들에게 하늘의 용서, 쉼, 안식을 주시기 위해 대속의 속죄 제물로 죽으러 오신 예수님께, 곧 자신들의 구원의 양식(養食)으로 하늘에서 인간의 육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깨닫지 못해, 받아들이지 않아 한 몸이 되지 못한 과부(寡婦), 율법(律法)자들이 다른 표징(標徵)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과부)들을 구(求)하시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자신들의 짝, 남편으로 찾아 오셨는데 시험(試驗), 논쟁(論爭)까지 하면서 다른 남편, 곧 헛된 표징(標徵)을 청(請)하고 있는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이 세대(世代)가 원하는 표징은 자신들의 뜻, 소원을 만족시켜줄, 곧 땅의 복(福 영광, 명예, 의, 건강)을 줄 남편이다.
(1티모6,17) 17 현세에서 부자로 사는 이들에게는 오만해지지 말라고 지시하십시오. 또 안전하지 못한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시어 그것을 누리게 해 주시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지시하십시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 율법(제사, 윤리)을 열심히 지킨 그 자기 의로움으로 땅의 것, 현세의 것을 위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를 버려두신 채 다른 과부들을 찾아 가신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믿는 예수님이,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하늘의 복(福)인 거룩, 의로움을 거저 주시는 새롭고 살아있는 구원의 길인 새 계약의 그리스도로, 진리의 영으로 계시는지, 믿는지, 오늘 생각해 보자!
(로마8,10) 10 그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아멘!)
(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 가르침의 결론 부분을 보고자한다.)
‘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인의 단죄가 아니라 회개, 즉 다시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 선행, 극기, 봉사, 단식을 통해, 그리고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 받으면 우리 영혼은 맑아지고, 그러면 하느님의 말씀이 잘 드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더 잘 보일 것입니다.’ -이상 발췌-
=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을 잘 모르고, 곧 그분의 뜻, 지혜를 깨닫지 못하고 하는, 그 하느님의 지혜의 용서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진리로 깨닫지 못하고 하는 ‘기도, 선행, 극기, 봉사, 단식, 고해성사’로 양심까지 완전히 깨끗해지는 용서가,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 은총이 더 잘 보일까?
생각해 보자!
나는 불가능(不可能)했다. 열심히 다 해봤다. 나의 온 삶, 온 시간을 기도 등을 다해 열심한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했다. 그러나 믿음은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짐이 되어 나를 속박(束縛)했다.
말씀을 깨닫고, 곧 성경 말씀 안에 머무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契約)이 새롭고, 살아있는 구원의 길임을, 자유(自由)하게하는 진리(眞理)임을 깨닫고 믿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모든 죄, 죄의식에서 풀려 안식을 살게 되었다. 사람의 규정(規整)과 교리(敎理)에서도 자유(自由)하게 되었다.
(1코린2,5-7)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 인간의 지혜(知慧)는 믿음을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7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 창조 이전부터 미리 정(定)하신 지혜(智慧), “예수 그리스도”시다. (에페1,4 1코린1,24)
*99가지 좋은 일, 좋은 말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하나를 빼 버리면,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헛 것이 된다. 곧 새 계명, 새 계약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길을 진리의 말씀으로 결론 짖지 않으면 엉뚱한 길, 영원한 죽음의 골짜기로 가게 된다.
인간의 열심, 열성을 의지하면 절대로, 그 누구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善), 신앙행위를 의지하는 것,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도리(道理)이지 신앙의 목적이 아닌 불의(不義), 불법(不法)이기 때문이다.
(마태7,21-23) 21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23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은총과 진리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말씀을 당신의 이끄심, 지혜 없이 어찌 깨닫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 귀와 마음을 열어 당신의 귀와 마음을 주소서 저희 모든 이들의 생각을 의탁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을 진리로, 남편으로 받아들여 한 몸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