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15일 토요일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일곱 개의 빵 (마르8,1-10)
제1독서<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흙을 일구게 하셨다.>(창세3,9-24)
9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16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23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 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24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 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화답송>시편90,2.3-4.5-6.12-13(◎1) ◎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 산들이 솟기 전에, 땅이며 누리가 생기기 전에,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은 하느님이시옵니다. ◎
○ 인간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당신은 말씀하시나이다. “사람들아, 돌아가라.”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 토막 밤과도 같사옵니다. ◎
○ 당신이 그들을 쓸어 내시니, 그들은 아침에 든 선잠 같고, 사라져 가는 풀과 같사옵니다. 아침에 돋아나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 말라 버리나이다. ◎
○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돌아오소서, 주님, 언제까지리이까? 당신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
복음<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마르8,1-10)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창세3,9-24)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9)
여기서 '부르시며'에 해당하는 '와이크라'(waiqra; and called)에서 '부르다'('카라'; qara)는 큰 소리로 '외치다'(1사무26,14; 1열왕13,12)라는 의미와 '소환하다'(욥기13,22)라는 의미도 지닌다.
즉 하느님께서는 아담이 부인할 수 없도록 분명한 목소리로 그를 소환하셨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소환은 아담과 하와 뿐 아니라 인격적 존재로 지음받은 모든 인간에게도 이루어진다.
또한 '물으셨다'에 해당하는 '와요메르'(wayomer; and said)에서 '묻다'('이르다';'아마르'; amar; 창세46,33)는 일반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가리키나 더 나아가 '권하다'(에스테르3,4)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앞의 '부르다'가 죄에 대해 엄정하신 하느님의 공의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라면, '묻다'는 연약하여 죄를 지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찾아와 회개할 것을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죄는 미워하되 죄악 가운데 빠져 있는 그 인간 자체는 불쌍히 여기시고 몸소 찾아와 회개할 것을 촉구하시는 은혜가 풍성한 분이시다(이사1,18).
한편, '너 어디 있느냐?'에 해당하는 '아옉카'(ayekkah; where are you?)는 '어디'를 의미하는 의문 부사 '아예'(aye)에 '너'를 의미하는 접미사 '카'(ka)만을 붙인 극히 간략한 형태의 의문문이다.
그러나 길게 묻지 않고 간략하게 질문하므로 더욱 가슴 속을 깊이 파고 들며 강한 울림을 남긴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말씀은 모두 생략하신 채 단도직입적으로 아담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만을 표면으로 끄집어 내셨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아예'(aye)가 장소를 나타내는 의문부사이지만, 본절은 하느님께서 현재 아담이 있는 장소를 모르셔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아담으로 하여금 어떤 형편에 처해 있으며,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상태인지 반성을 촉구하는 질문이다.
사실 아담은 이 질문을 받자마자 자신의 죄스런 상태를 돌아보고 겸허하게 하느님 대전에 나아와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담은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방문과 자신을 돌아보도록 촉구하시는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기회를 놓쳐 버렸다.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제1독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하느님께 벌 받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느님의 벌이 무서워 남자는 여자에게 탓을 돌립니다.
여자도 뱀에게 탓을 돌립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가 다릅니다. 여자는 뱀에게 속은 사실을 말합니다.
뱀의 기만과 교활함을 인식하였다는 뜻입니다.
뱀으로 형상화된 욕망과 싸우는 것은 힘겨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여인의 후손)이 하느님의 말씀에 힘입어 욕망을 이겨 내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이야기의 배경에는 고대 근동의 독사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미움이 깔려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과 악의 만남이 마치 사막에서 유목민과 독사의 만남처럼 필연적으로 둘 중 하나가 살고 죽는 싸움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의 최종 승리자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여인의 후손이신 그분께서 악마의 유혹을 이기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지배하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된다고 말합니다(야고 1,14-15 참조).
제1독서의 말씀에 따르면, 욕망(뱀-욕망의 총체)은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저주의 대상입니다.
사람들이 동물들과 싸우며 땅의 풀을 뜯어먹고 이마에 땀을 흘려 먹을 것을 얻게 된다는
창세기의 예고는 오늘의 현실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모두가 경쟁자가 되고 땅은 미래를 약속받지 못한 채 점점 더 황폐해져 갑니다.
죄의 결과인 벌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시는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부적인 것으로서 인간이 자기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탓에 겪어야 하는 결과를 하느님께서 알려 주시고 선언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인간의 범죄 이후 우리는 친구로서 다가오셨지만 심판관이 되어 버리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적어도 불의한 심판관이 아니십니다.
그분께서는 거짓과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자 애쓰시는 의로우신 심판관이십니다.
그보다 더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신 주님이시고 인자하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죄가 많아진 곳에 은총도 충만히 내렸다고 증언합니다(로마 5,20 참조).
언제나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마태 9,13 참조).
(정용진 요셉 신부)
[연중 제5주간 토요일]
다른 이를 탓하고 원망하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하느님은 그 죄로 당신을 보여 주신다.
(창세3,9-24)
9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앞장에서 (창세2,16-17) 16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아담)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의 열매를 따 먹었고 그리고 물으신 것이다. 찾으신 것이 아니라 선악의 자리냐? 생명의 자리냐? 물으신 것이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 선악의 말씀으로 먹었기에 두려웠고, 그래서 하느님을 피해 숨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 누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남을 원망한다.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 하느님의 뜻을 떠나면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를 탓하게 된다.
선악을 먹기前 아담은~
(창세2,22-23) 22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23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 이랬던 아담인데, 그 피조물이 자신의 잘못을 창조주 하느님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남의 탓을 하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 뱀에게는 이유를 묻지 않으신다. 심판만 있을 뿐이다. 야단도 훈계도 매도 자녀들에게만 하신다. 그것이 뱀에게 넘기시는 것이다.(욥처럼~) 하느님을 떠난 하느님의 영(숨)을 잃어버린 죄인, 그 흙의 먼지를 뱀의 먹이로 내 주시는 것이다.
(히브12,6.11)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 여자의 후손이신 예수님은 뱀에게 발의 피를 빨리시고, 뱀은 자신의 머리를 예수님의 발에 밟힌다. 이것이 여자(교회)의 길인 원시 복음이다. 뱀의 후손, 그의 말을 먹은, 그 죄인들이 자신의 머리가 밟히고(죽고) 하늘, 의인의 피를 먹으면 사는 것, 복음이다.
(히브10,22)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말하지 않는 것, 거짓이다.
(1요한4,1) 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요한1,7)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세상 모든 죄의 속죄 제물로 오셨다는 것(요한1,29 3,16),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 생명의 길이요 진리임을 믿는 것이다.(요한14,6)
16 그리고 여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
= 여자가 아기(씨)를 잉태를 하면 처음엔 기쁘지만 입덧으로 고통을 겪는다. 또 아기를 낳을 때는 온 몸의 뼈가 물러나는 고통을 겪는다. 그것이 생명을 낳는 진리인 것이다. 곧 말씀(씨)이 들어오면 처음엔 기쁘지만 후에는 속이 쓰리고 아프다. 아기(말씀, 씨)에게 지배를 당하기 때문이다.
(묵시10,10) 10 그래서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삼켰습니다. 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
= 말씀은 뱀의 말, 그 선악의 계명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열심, 그 의로움을 기각(否認)시키는, 곧 자신의 모든 것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시기에 그 자신을 버리는(죽이는)일이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명, 구원의 진리이다. 그래서 말씀(예수)으로 넘어졌다, 말씀으로 일어나 하늘로 살아나는 것이다.(루가2,34 요한3,3 참조)
17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18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 아담이 말씀(씨)을 사람의 욕망으로 받았기에 땅이 씨를 못 맺고 가시덤불을 내 놓는 것이다.
(마르4,18-19)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구원)를 맺지 못한다.
19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 하느님께서 창조 사흗날에 땅을 위해 씨를 썩혀 씨의 열매를 맺게 하신 그 씨의 희생, 곧 사흗날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을 구원의 진리, 복음, 양식으로 먹지 못하면 영원히 땅속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먼지가 돌아가는 것은 먼지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그 먼지, 땅 속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의 영광을 드릴 수 밖에 없다.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 똑 같은 처지의 하와에게 ‘살아 있는 것의 어머니’라 부른다. 아담이 원시복음을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영원히 땅속에 갇혀야 할 죄인 하와가, 후손 그리스도의 피를 먹고 살아나는 그 복음을 알아들었던 것이다.
(에페1,7)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21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어린양이 죽어 남긴 가죽, 곧 그리스도의 대속의 옷, 그 십자가의 복음을 입혀 살리시는 것이다.
22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자,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
= 하느님처럼, 사람이 선과 악을 정하는 것이 죽을 죄다. 그래서 살리시려 그 죽음의 자리에서 쫓아내시는 것이다. 선악의 나무를 생명나무로 먹으면 영원히 땅속(지옥)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악의 나무, 그 자기 의로움을 부인하고(버리고), 생명의 의로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인 십자나무를 생명의 진리로 먹어야한다.
23 그래서 주 하느님께서는 그를 에덴동산에서 내치시어, 그가 생겨 나온 흙을 *일구게 하셨다.
=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자신의 흙됨을 확인 하라고, 흙의 먼지일 뿐인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에 앉은 교만을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라고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선악의 나무를 버리고 하느님의 뜻, 계명, 생명나무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 그 새 계약(계명)으로 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24 이렇게 사람을 내쫓으신 다음, 에덴동산 *동쪽에 커룹들과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 죄로 생명나무 곧 하느님 나라에 가는 길이 어려워 졌다는 것이다. 그 길을 예수님은 ‘좁은 문’이라고 하신다. 많은 이들이 그 생명나무의 길로 가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한 선악의 나무, 그 길로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선악의 길이 넓은 길인 것이다.
(마태7,13-14)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천주의 성령님! 오늘도 당신으로 충만하게 하소서.~아멘!!!
연중 제5주간 토요일 복음(마르8,1~10)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6)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7)
제자들이 제시한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많고 적다'는 식의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사천 명가량의 군중을 먹이실 준비를 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천주 성자 제2위 하느님이시므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시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시기에 양(量)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서 '앉으라고'로 번역된 '아나페세인'(anapesein; to sit down)의 원형 '아나핍토'(anapipto)는 상체를 뒤로 젖혀 기대는 것을 뜻하는 동사이다(요한13,25).
이 동사는 유대인들이 식사하는 몸의 자세를 기술하는 전문 용어이다. 유대인들은 보통 한쪽 팔을 바닥에 기대고 비스듬히 누워 식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땅'에 해당하는 '테스 게스'(tes ges; the ground)라는 것은 풀이 돋지 않은 황량한 지대임을 나타내며,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 바위에서 솟은 물을 먹이신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감사를 드리신'에 해당하는 '유카리스테사스'(euchasristesas; gave thanks)의 원형 '유카리스테오'(euchasristeo)는 '좋은', '잘'을 의미하는 접두어 '유'(eu)와 '~에게 은혜를 베풀다'는 뜻을 지닌 동사 '카리조마이'(charizomai)의 합성어로서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감사하다'는 뜻이다(요한11,41).
이 동사는 유대인들이 절기 음식을 먹을 때나 일반 식사 자리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행위를 묘사하는 단어로 쓰인다.
그러니까 마르코 복음 8장 6절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음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장면이다.
한편,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서 예수님의 손에 들려진 물고기는 정확히 '두 마리'였다(마르6,41).
하지만 지금 예수님께 들려진 생선의 숫자는 몇 마리인지 정확하지 않고, 크기도 작다.
여기서 '작은 물고기'로 번역된 '익튀디아'(ichthydia; small fish)의 원형 '익튀디온'(ichthydion)은 본문과 마태오 복음 15장 34절의 병행 구절에만 나온다.
이것은 '물고기'(fish)를 뜻하는 명사 '익튀스'(ichthys; 마르6,41)의 지극히 작은 것을 표기하는 단어로서,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크기가 작은 물고기를 뜻한다.
그리고 '몇 마리'로 번역된 '올리가'(oliga; a few)의 기본형 '올리고스'(oligos)는 수나 규모가 '작은', 혹은 양이 '적은', 정도가 '약간이거나 사소한' 등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다.
여기서는 복수로 사용되었는데, 본문에서 셀 수 있는 수를 나타내는 용법으로 쓰여서 적어도 두 마리보다는 많았을 것으로 본다.
마르코 복음 8장 7절의 '축복하신'에 해당하는 '율로게사스'(eulogesas; be blessed)의 원형 '율로게오'(eulogeo)는 '좋은', '잘' 이란 뜻이 있는 접두어 '유'(eu)와 '말하다'는 뜻이 있는 '레고'(lego)의 합성어로서 '좋게 말하다'는 뜻이 있지만, '찬송하다', '찬미(찬양)하다' (마태23,39; 마르11,9; 루카2,28)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앞의 마르코 복음 8장 6절에 나오는 '감사를 드리신'에 해당하는 '유카리스테오'(euchasriteo)가 주로 '감사하다'는 뜻을 갖는 것과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이것은 감사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즐거운 마음으로 하느님께 찬양까지 드렸음을 보여 준다.
2025년 02월 15일 토요일
[연중 제5주간 토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르시지 않는 분의 이 물음은 그가 당신 앞에 스스로 나서도록 기회를 주시려는 것 같습니다.
그를 하느님 앞에 나서지 못하게 한 것은 바로 죄입니다.
원조들의 이야기는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연결해 있는 죄의 실제를 잘 보여 줍니다.
불순종이라는 태초의 죄에 연루된 세 공범은 서로에게 탓을 돌리기 바쁩니다.
사람은 여자를, 여자는 뱀을 탓하면서요. 더구나 사람은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3,12)라는 말로 하느님까지 탓합니다.
그들은 저마다 남이 자신에게 한 잘못만 말하지 자신이 한 잘못된 행동은 인식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사람과 여자의 근원적인 ‘탓’은 들어야 할 말씀을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 대신 아내의 말을 듣고 여자는 남편의 말 대신 뱀의 말을 듣습니다.
무엇보다 그 열매가 먹음직스럽다고 보는 자신의 감각을 따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면서도 부끄러움을 알아 버린 인간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시고 에덴동산 밖에서 살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래서 원조들의 이야기는 원죄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 자비로 끝납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죄는 인간의 삼중 관계를 깨뜨립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다른 인간과의 관계,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입니다.
우리 삶 안에서도 발견되는 이러한 죄와 악의 고리를 선의 고리로 끊어 버리고 더 튼튼한 사랑의 고리로 인류를 연결하면서 이 삼중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노력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천국 식당에서 땅의 음식을 찾지는 않는지요?
(마르 8,1-10)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 앞 7장 36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늘의 진리를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그 귀먹고 말 더듬는 그 헛된 신앙을 사는 이의 구원의 치유를~ 육의 치유, 기적의 예수님으로 말하지 말라 하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치유, 기적의 소문으로 널리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기쁜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왔으니, 그들의 입(뜻)에 맞는 양식도 또 구원을 위한 하늘의 양식도 먹지 못하는 오늘 본문의 모습입니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 사흘- 숫자 3은 하늘을 뜻합니다. 그 하늘을 살면서 땅의 것만 찾으니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 광야는 빵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신명8,3참조) 제자들 역시 영을 위한 말씀 양식이 아닌 육을 위한 빵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 6장에서 경험했던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신 그 의미, 표징(기적)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모습임을 보라 하십니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6장에서는 보리빵 다섯 개였습니다. 그리고 그 보리빵은 부정한 빵이었습니다.(민수5,15 에제4,12 참조) 그 부정한 빵을 예수께서 받으시고 대신 깨끗한 새로운 빵(말씀)으로 바꾸어 주셔서 오천명을 살리셨던 것입니다. 당신의 목숨과 바꾸셨던 것입니다.
그 새로운 빵, 성찬례에서 내 몸이라 하셨던 예수님의 몸, 구원의 새 계약의 빵입니다.(루카22,20참조)
부정한 빵 그 부정함을 예수님께서 받으시고, 부정한 자가 되시어 대신 죽으시고 깨끗한 빵, 새 생명의 빵, 그리스도의 몸으로 내주신 새 계약의 빵입니다. 새롭고 완전한 빵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충만 그 안식(7)의 빵입니다.
그렇게 제자들은 이미 그 안식의 빵, 그 일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 역시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일곱의 의미, 그 보물, 안식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 그 예수님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도 안식을 깨닫지 못해 그 쉼의 시간을 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도 굶고 있었던 군중이나 제자들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성당을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 면서도~ 예수님의 대속, 그 진리가 주는 용서를 믿지 못해-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그 쉼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 자신들이 땅의 본질임을 깨닫고 하늘의 것을 받을 준비를 하라. 입니다. 땅은 하늘을 받아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완성된 새 계약의 빵, 그 하늘의 빵-일곱(7)을 다시 주십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7) 바구니나 되었다.
= 다시 받은 일곱-안식입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 사천(4000, 4ⅹ1000)- 사(4)- 동서남북. 춘하추동, 그 사각, 땅의 숫자입니다. 다시 받은 일곱으로 사각의 완성, 땅의 완성- 구원입니다.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 달마누타- 과부라는 뜻입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마가단(탑)으로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그 대속을 믿지 못해 용서, 그 쉼(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그 안식이신 예수님(신랑)과 짝하지 못하는 과부, 그래서 자신의 힘(빵)으로 헛된 신앙의 탑을 쌓는 그곳에 쉼, 안식(7)의 빵(말씀)을 다시 주시러 가십니다.
예수님으로 신앙을 산다 하면서 죄의 용서 그 쉼,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 나를 찾아오십니다.
♡ 아멘 -*^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