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22일 토요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하늘 나라의 열쇠 (마태16,13-19)
제1독서<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인 원로>(1베드5,1-4)
사랑하는 여러분, 1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원로들에게 같은 원로로서, 또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2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3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4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화답송>시편23,1-3ㄱ.3ㄴㄷ-4.5.6(◎1)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 돋우어 주시네. ◎
○ 당신 이름 위하여, 나를 바른길로 이끌어 주시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 저에게 위안이 되나이다. ◎
○ 원수들 보는 앞에서 제게 상을 차려 주시고,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옵니다. ◎
○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저는 오래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 ◎
복음<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제1독서 (1베드5,1-4)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해서 지배하려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2-3)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전서 5장 2절과 3절에서 원로들을 양 떼를 치는 목자로 비유하면서 그들에게 목자로서 갖추어야 할 필요한 세 가지 자세에 대한 지침을 주고 있다. 이러한 베드로 사도의 권면은 요한복음 21장 15-17절에 기록된 그와 부활하신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대화를 상기시킨다.
즉 부활하시어 베드로 사도에게 나타나셨던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 (요한21,16)고 당부하시며, 그 '양'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였지만 그 양을 돌보는 직책은 베드로 사도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제 베드로는 그 '양'이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 속하였다고(사도20,28) 언급하면서 원로들 역시 베드로 자신처럼 그러한 하느님의 양 떼를 돌보는 직책을 가지고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돌보되'로 번역된 '포이마나테'(poimanate)는 '포이마이노'(poimaino)의 명령형이다. '포이마이노'(poimaino) 동사는 '양치는 목자'를 뜻하는 명사 '포이맨'(poimen)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가축떼를 돌보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마태오 복음 2장 6절과 묵시록 7장 17절에서는 '목자가 되다'라는 의미로 번역되었다.
원로들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양 떼, 곧 성도를 먹이고 돌보아야 하는 목자라는 철저한 자각을 가져야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다.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원로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양 떼를 돌볼 때 첫째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 '억지로 하지 말고'에서 '하지'로 번역된 '에피스코푼테스'(episkopuntes)는 '에피스코페오'(episkopeo)의 명령적 의미를 지닌 분사로서 2절의 중반절과 하반절에 있는 네 개의 분사에 모두 걸린다.
'~위에'란 의미의 전치사 '에피'(epi)와 '주시하다', '돌보다'라는 의미의 동사 '스코페오'(skopeo)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위에서 돌보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에피스코페오'(episkopeo)는 신약 성경에서 여기 베드로 전서 5장 2절과 히브리서 12장 15절 두 곳밖에 용례가 없는 동사이다.
이 단어의 명사형은 '감독'이라는 의미의 '에피스코포스'(episkopos; 사도20,28; 1티모3,2; 1베드2,25)인데, 이것은 이 동사 '에피스코페오'(episkopeo)가 '돌보고 감독하다'라는 의미인 것을 알게 한다.
한편 본문에서는 '억지로'라는 말과 '자진해서'라는 단어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먼저 '억지로'라고 번역된 '아낭카스토스'(anangkastos)는 '아낭케'(anangke)의 부사형이다.
'아낭케'는 '꽉 누르다'라는 의미의 동사 '앙코'(angcho)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필연성', 강제', '고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이 용어는 어떤 일을 기쁜 마음으로가 아니라 의무감이나 어떤 외적 요인들에 의해 마음이 눌려진 상태에서 하는 것을 뜻한다(1코린7,37; 필레몬1,14). 따라서 '아낭카스토스'를 '하기 싫은 상태에서 억지로', '강제적으로', '강요로'라고 번역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과 대조를 이루는 '자진해서'라고 번역된 '헤쿠시오스'(hekusios)는 '자유 의지를 사용해서', '자발적으로', '자의로'(필레몬1,14)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 속에는 인간의 자발적인 열의가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라고 번역된 '카타 테온'(kata theon)이라는 표현에 한정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발적인 인간의 열심도 중요하지만, 그 인간의 열심히 오직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고 성령께서 주신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인간의 자발적인 열심은 교만으로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오히려 하느님의 일에 해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양 떼를 치는 원로들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양 떼를 치는 자들은 자신의 눈에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할 것이 아니라 그 양들을 맡기신 분의 뜻을 쫓아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하느님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기억해야 할 두번째 자세는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이다. 여기에서는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와 '열성으로 하는 것'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먼저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로 번역된 '아이스코로케르도스'(aischrokerdos)는 '부끄러운', '추한', '상스러운' 등의 뜻을 갖는 '아이스크로스'(aischros)와 '얻다'라는 뜻이 있는 '케르도스'(kerd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혐오스러운 욕심을 가지고','부끄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열성으로 하십시오'로 번역된 '프로튀모스'(prothymos)는 '~앞에' 라는 뜻의 전치사 '프로'(pro)와 '열망', '욕정', '열성' 등의 뜻이 있는 명사 '튀모스'(thym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기꺼이 ~하는', '간절히 바라고 열망하여' 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 '기꺼이 ~하다'라는 행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마르코 복음 14장 38절과 마태오 복음 26장 41절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인간 자신의 의지뿐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지가 앞서야 한다.
결국 이 두번째 지침도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양 떼를 자신의 욕심이 아닌 하느님의 뜻대로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양 떼를 치는 자들은 삯꾼 목자와 같다(요한10,12.13). 이들은 하느님 대전에 부정한 욕심을 가지고 부끄러운 이득을 취하기 위해 양들을 돌보는 까닭에 위험이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하지만 참된 목자는 오직 양 떼를 맡기신 하느님께서 힘을 주시는 대로 그분의 뜻에 순종하여 기쁨으로 양 떼를 돌본다.
결론적으로 베드로 전서 5장 2절을 통해서 강조하는 것은 양 떼를 돌보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 양이 비록 자신에게 맡겨진 양일지라도 자신의 임의대로 혹은 자신의 힘을 사용해서 돌보는 것이 아니라 그 양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분명히 깨닫고 오로지 맡기신 분의 뜻을 따라서 그분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3)
하느님의 양 떼를 치는 목자에게 요구되는 세번째 자세는 '위에서 지배하려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이다. 여기서 '맡겨진 이들을'로 번역된 '톤 클레론'(ton klleron)에서 '클레론'(klleron)의 원형 '클레로스'(klleros)는 '제비', '몫', '분깃', '유산', '기업'등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마태오 복음 27장 35절, 요한 복음 19장 24절에서는 '제비'로, 사도행전 26장 18절과 콜로새서 1장 12절에서는 '상속 재산'(상속의 몫)으로 각각 번역했다.
이것은 원로들에게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양 떼를 의미한다. 여기서 베드로 사도가 '클레로스'(klleros)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드러내기를 원했던 것은 하느님께서 원로들에게 양 떼를 돌보는 임무를 맡기셨지만, 그들에게 그 양에 대한 소유권까지 이전해 주신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들이 분배받은 몫의 주인은 여전히 하느님이시기에 원로들은 하느님의 소유인 양 떼들을 청지기(관리인)적 자세로 잘 보호하고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양 떼를 맡은 원로들은 양 떼를 위에서 지배하려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된다.
여기서 '위에서 지배하려 하지'와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가 대조되고 있다.
'위에서 지배하려 하지'로 번역된 '카타퀴리유온테스'(katakyrieuontes)는 '복종시키다','주(인)가 되다'(마르10,42; 마태20,25)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카타퀴리유오'(katakyrieuo)의 명령적 의미를 지닌 현재분사이다.
이 단어는 원로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교회안의 사람들에게 주인 행세를 하려는 행동을 묘사한다.
이러한 행동이 금지 부정어 '메드'(med; '말고')와 함께 쓰여 양 떼를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은 베드로 전서 5장 2절의 연장선상에서 금지되고 있는 행동임을 알게 해준다. 또한 여기서 '모범'에 해당하는 '튀포이'(typoi)의 원형 '튀포스'(typos)는 '모방해야 할 표본'이라는 의미이다. 즉 원로들 모두가 양떼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이런 것들을 통해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주권이 철저히 하느님께 있음을 밝히면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할 일은 겸손과 신실한 마음으로 모범을 보이며 하느님의 뜻대로 맡은 양떼들을 잘 돌보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요한 신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지내는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에게 부여된 권한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아람 말 ‘케파’를 그리스 말로 옮긴 ‘베드로’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바위’(반석)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름을 따로 부여하시면서 그를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토대로 삼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반석(베드로) 위에 세워진 이 교회는 죽음의 세력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단단한 기반을 지닌 건물로 묘사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하시며, 그 열쇠로 매고 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십니다.
그가 지상에서 매고 푸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법에 따라 다스리는 교도권, 특히 어떤 사안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행사되는 베드로의 권한이 하늘에서도 존중받게 될 것임을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부여된 이 권한은 그의 후계자들을 거쳐 프란치스코 교황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의 역사 속에서도 이 단단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는 계속해서 흔들림 없이 구원의 여정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께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에게 주어진 막중한 권한만큼 무거운 책임감까지도 함께 짊어지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그 직분이 개인에게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정일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마주한 다양한 위기와 어려움을 헤쳐 나가고자 늘 애쓰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 자주 우리에게 부탁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하늘과 땅을 푸는 열쇄다.
(마태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요한1,17)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 대속으로 얻는 구원이 은총, 진리이다.
(로마3,21)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 의로움은 하느님께만 있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대속의 속죄 제물로 내 주셨다.
(루가24,46)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다.
(히브1,3) 3 예수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하느님의 아들로 능력과 기적과 치유의 예수님이 아닌(귀신의 믿음이다. 마르3,11), 세상의 모든 죄를 품으시고 저주의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1데살5,9) 9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보이는 예수님 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내 생명의 주인으로 믿고 의탁하는 삶이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 믿음, 깨달음은 하느님께서 주셔야 한다. 창조주의 뜻을 피조물이 어떻게 믿고 깨달을 수 있겠는가? 다만 알고자하는 갈망, 그 음이 있을 때 성령께서 찾아가셔서 깨닫게 하신다.
(1요한2,27) 27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성령)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잠언10,3) 3 주님께서는 의인의 갈망은 *채워 주시고 악인의 욕망은 물리치신다.
(지혜6,11) 11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갈망하고 *갈구하면 가르침을 얻을 것이다.
(1베드2,2) 2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 베드로(페트로스)- 반석(페트라), 교회(敎會)를 베드로의 고백인 반석(盤石)이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그 말씀 위에 세우신다는 것이다.
(1고린3,11) 11 아무도 이미 놓인* 기초 외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페2,20-21)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말씀)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 인간의 뜻, 욕망의 머리가 잘리고(自己否認), 하느님의 뜻,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야 저승의 세력이 이기지 못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길, 뜻으로 받으면 저승의 세력이 미친다. 구원, 희망을 빼앗고 저승, 절망으로 끌고 간다.
(마르4,15)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앞에서 묵상했듯이 능력과 기적과 치유의 예수님으로 섬기면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매인다.(루가10,38-42 참조) 그러나 십자나무에 달리시어 우리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으면 땅과 하늘에서 풀린다. 또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지혜로 보고 깨달으면 땅에서도 매이고 하늘에서도 매인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의 지혜, 진리로 깨닫게 되면 땅에서도 풀리고 하늘에서도 풀린다.
(1고린2,4-6. 10)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세상(땅)의 모든 만물을 보이는 대로 보면,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매인다. 땅에는 하느님의 모든 것이 숨겨져 있다. 땅은 하늘의 모형인 것이다. 곧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땅과 하늘을 푸는(여는) 열쇄다.
(로마1,20) 20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造物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히브11,3) 3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입당송을 보면~ (루가22,32) ‘주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배반한 후 돌아와 구원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보이는 것을 찾느라(구하느라) 예수님의 뜻을 배반하고 있는 우리를 위해 오늘도 돌아오기를 기도하신다.
(로마8,26)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천주의 성령님! 나약한 저희를 위해 기도하시니 감사드리며 의탁합니다. ~아멘.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복음 (마태16,13-19)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5~16)
마태오 복음 16장 15절에서 한글 새 성경에는 번역이 생략되었지만, 원문에는 '그들에게'에 해당하는 '아우토이스'(autois; to them)이 나온다.
그리고 '물으시자'에 해당하는 '레게이'(legei; he asked)는 '말하다'는 뜻을 가진 '레고'(lego)의 현재 능동태 직설법 3인칭 단수이다. 희랍어의 현재형은 단순히 현재 뿐만 아니라 현재의 계속적 동작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따라서 이것은 예수님의 질문이 모든 세대의 믿는 이들에게 계속되고 있는 물음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에서 '그러면'에 해당하는 접속사 '데'(de; but)는 이 질문이 앞의 대답과 대조됨을 나타낸다.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기대와 욕구에 따라 그들에게 현세적 부귀영화를 가져다 주고, 그들을 구원할 정치적 메시야로만 보지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일반 사람들보다는 더 나은 대답을 기대하고 계시는 것으로서, 사랑하는 당신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소망이 엿보이는 질문이다.
그리고 '하느냐?'에 해당하는 '레게테'(legete; say)는 '말하다'는 뜻을 가진 '레고'(lego)의 복수2인칭으로 '너희는 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본문은 여기에 '너희는'에 해당하는 인칭 대명사 주격 2인칭 복수형인 '휘메이스'(hymeis; you)를 첨가하여 '너희'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궁금하셔서 하신 질문이 아니라 당신의 메시야적 정체성(Identity)의 명백한 고백을 제자들로부터 도출시키기 위한 질문이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앞의 마태오 복음 16장 13절의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는 질문은 마태오 복음 16장 15절의 질문을 이끌어 오기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군중들의 생각과 관심보다는, 당신의 가르침을 직접 받던 제자들의 생각과 고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질문은 동시에 오늘날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스승님'으로 번역된 '쉬'(Sy; You)는 인칭 대명사 주격 2인칭 단수형으로 '당신'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십니다'에 해당하는 '에이'(ei; are)은 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하는 '에이미'(eimi) 동사의 2인칭 단수형으로, '당신은 ~ 이십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스승님'으로 번역된 '쉬'(Sy)는 강조형으로 고백의 대상이 되는 '당신', 즉 예수님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또한 원문에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크리스토스'(christos; Christ) 앞에 정관사 주격 남성 단수인 '호'(ho; the)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당신은, 그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오실 메시야로 예언된 바로 그분이심을 뜻한다.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비로서 여기서 처음으로 베드로의 입을 통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살아계신'에 해당하는 '존토스'(zontos; living)는 '살다'는 뜻을 가진 '자오'(zao)의 현재 능동태 분사이다.
이것은 이방의 죽은 신들과 대조되는 표현으로서, 하느님께서 스스로 영원토록 자존(自存)하시는 '영원자존자'(永遠自存者)이시며, 또한 생명을 부여하시는 생명의 근원되신 분이시고, 그리고 과거와 더불어 지금과 미래에도 살아 역사(役事)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낸다.
또한 원문에는 '아드님'에 해당하는 '휘오스'(hyos; son)앞에 정관사 '호'(ho; the)가 기록되어 있어, 직역하면 '살아계신 하느님의 그 아들'(the son of the living God)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표현으로서, 예수님께서 영원자존 자이신 하느님의 독생성자 되심을 나타낸다(요한1,14.15; 3,18; 1요한4,9).
2024년 02월 22일 목요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교회는 오늘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을 기념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고,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와, 무엇이든 묶고 푸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 뒤 베드로의 계승자들은 하느님 백성 전체에 대한 특별한 봉사직을 수행합니다.
가톨릭 공동체 안에서 로마 주교의 수위권의 역할은 이미 2세기부터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와 리옹의 이레네오 같은 교부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교회의 친교 안에는 고유한 전통을 지니는 개별 교회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베드로 교좌의 수위권은 온전히 보존된다.
사랑의 모든 공동체를 다스리는 베드로 교좌는 정당한 다양성을 보호하고 또 동시에 개별 요소들이 일치에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일치에 이바지하도록 감독한다”(교회 헌장 13항).
베드로 사도좌는 단순히 인간적 관점에서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도록 만들어진 직무가 아니라, 그 안에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치의 표지이자 목자의 구실을 하는 베드로좌는 당신 교회를 하나로 모아 구원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느님의 목자적 사랑을 보여 주는 특전적 표지입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를 돌보아야 하는 교황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전망을 제시하고, 하느님의 백성이 그 길을 담대히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끌고 독려하여야 하는 교황의 직무가 한 인간이 맡기에 얼마나 크고 버거운 것인지 묵상하게 됩니다.
세상의 풍파와 도전에도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굳건한 반석의 구실을 하는 교황께 주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2월 22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하늘나라(天國)의 열쇄?
복음(마태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 살과 피, 육(肉) 그 인간의 지혜(知慧)로는 깨달을 수 없는 하느님께서 알려 주셔야만 들을 수 있고, 고백(告白)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1코린2,10)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 베드로 위에 세운 것이 아니라 ‘이 반석(磐石)’ 즉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이 구원(救援), 생명(生命)의 말씀 위에 세우신 교회(敎會)다. (베드로는 하늘의 열쇄를 받았다) 반석(磐石)은 생명의 물이 나오는 바위다.
(1코린10,4) 4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시편18,3) 3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이십니다.
= 그러니까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란 우리의 피난처, 방패, 구원(생명)의 뿔(강한 힘) 이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다 없애시고 ㄹ하늘의 용서, 의, 거룩을 주셨기 때문이다.(골로2,14)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다.
그 그리스도의 피로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하게 씻겼기에 저승의 세력, 곧 절망, 죄의 심판, 죽음이 건드리지 못한다.
(히브11,28) 28 믿음으로써, 모세는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피를 뿌려, 맏아들과 맏배의 파괴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히브12,22-24)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 이 모습이 우리 교회(敎會)의 실체(實體)이며 교회의 주인(主人)이신 예수님의 실체이며 이미 들어온, 그리고 앞으로 들어 갈 하느님나라다.
그러니까 율법(律法), 그 옛 계약이 아닌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열쇄‘이다.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이십니다.” 이 말에 다 함축(含蓄)되어 있는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성경(聖經)은 물론 하늘과 땅의 ‘모든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풀면 된다.’는 말씀이다. 곧 율법, 옛 계약인 제사와 도덕(道德)과 윤리의 열성(熱誠), 열심인 사람의 의로움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땅에서 매이고 하늘에서도 매어’ 땅에서 고난, 절망의 삶을 살다가 영원한 땅속에 갇히게 되고, 영원한 희망, 생명인 하늘나라 에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땅에 숨겨진 하늘을 봐야, 깨달아야 하늘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로마1,19-20참조) 하느님 나라는 하늘의 진리, 의로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만 들어갈 수가 있다.(요한14,6참조)
*인간의 도리(道理)인 인간의 의로움을 구원의 길(道) 이라 생각하고 행(行)하는 것이, 구원의 진리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하늘의 의로움을 덮는, 죽이는 불법, 불의(不義)다.
(2코린3,15-16) 15 사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16 그러나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 율법(律法 제사, 윤리), 그 옛 계약, 법은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으로 없어졌기 때문이다.(히브8,13)
(2코린1,19) 19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는 늘 “예!” 만 있을 따름입니다.
(2코린5,17-18)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18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 우리는 화해(和解)의 직분(職分),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의 새 계약을 전(傳)해야하는 하늘의 일꾼이다.(2코린3,6) 그러므로 하늘의 영원한 용서(容恕), 자유(自由), 생명(生命)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을 이웃에게 전해 이웃을 살리는 잘 돌봄을 해야 한다.
독서(1베드5,1-4)
1 나는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2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人間)의 의로움을 위한 말로도 주지 말고 또한 자신의 ‘의(義)’를 위한 실천으로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챙기지 말라는 것이다.
3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4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성경의 말씀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하느님의 신성인 사랑으로 이루어졌음을 보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말씀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소서. 그 말씀이 저의 반석, 산성, 방패, 피난처, 구원의 뿔임을 믿게 하소서. 이 어둠의 땅에서부터 하늘의 빛을 평화, 자유, 안식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5년 02월 22일 토요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사랑하시던 제자도, 첫눈에 거짓 없다고 칭찬하시던 제자도, 독립운동에 투신하던 제자도 아닌 어부 출신의 단순하고 우직하며 열정적인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십니다.
오늘 복음은 그 이유를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뚜렷하고 분명한 신앙 고백에서 찾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신앙이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직무 수행에는 지식이나 인간적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 이끌리는 신앙이 무엇보다 먼저 요구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에는 사목의 큰 책임을 맡는 사람에게 먼저 신앙 고백을 요구하는 전통이 이어져 옵니다.
이미 초세기 교부들이 인정하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언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확인한 교황의 수위권은 하느님 백성의 ‘친교’인 교회 일치의 중심이자 주교단의 머리로서 가지는 권한입니다.
교황께서 국제 사회에서 바티칸 시국의 수반이시기는 하지만 베드로에게서 이어받은 직무는 행정이나 조직 운영, 또는 정치를 위한 것이 아니며 본질적으로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일 곧 사목을 위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당신을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의 본당 사제요 로마의 주교라고 즐겨 부르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자신을 바로 그러한 목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사람으로 소개하고, 다른 목자들에게 자진해서, 열성으로, 모범으로 양 떼를 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돌보는 임무를 맡은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특히 교황님을 위하여 오늘 더 기도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2월 22일 토요일 [베드로사도좌 축일]
하늘과 땅, 어느 열쇄를 갖고 있나요?
(마태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사람들과 제자의 고백이 달라야 합니다. 그러나 말만 다르면 안 됩니다.
지난 목요일 베드로의 오늘 고백이 사람들과 똑같은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한 사람의 일~ 그 사람의 길로 따랐던 잘못을 봤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더 하십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살과 피- 자신(육)이 깨달은 것이 아닌, 하느님의 은총- 선물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성경속 인물들의 말속에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음을 놓치면 안 되는 것이지요.
例) 예수님을 죽이려 모인 율법학자들~
요한11,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 하느님은 악인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말씀하십니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 시몬이었던 베드로입니다. 물이 나오지 않았던 조약돌(시몬)이 물이 나오는 반석(베드로)이 된 것입니다. 그 물(水)- 생명의 말씀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루가1,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 죄(어둠)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그 죄에서 해방시키시어 자유, 하늘의 쉼 평화를 주시려 오신 빛이십니다.
그 죄에서의 해방~십자가의 대속입니다.
골로2,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로마8,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로마6, 23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기쁜 소식-복음, 그 하느님의 약속- 죄의 대속, 그 말씀위에 세워진 교회가 저승의 세력- 죄 의식과 죽음을 왜 두려워해야 합니까?
우리는 성당에 다니면서도 죄에서의 자유, 쉼이 없습니다. 오히려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두려워서 다닙니다. 그래서 온갖 열심한 행위의 신앙생활, 그 행위로 때우려 더 열심을 부리며 만족하려 합니다.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십자가의 사랑을 구원의 진리로 갖지 못했기(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하늘 문을 여는 열쇄입니다.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요한14,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십자가라는 것을 믿고 의탁하는 삶을 사는 것, 하늘의 열쇄를 이미 받은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뜻- 말씀, 복음을~ 사람의 뜻(일), 곧 땅의 것을 위한 말씀으로 받으면 ~ 땅에서부터 하늘이 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사람)의 존재를 하늘의 존재 하느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한, 그 사람의 죄를 덮으시기 위한 대속, 그 하느님의 복음으로 풀려 믿으면(받으면) 땅에서부터 하늘이 풀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마태27, 50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대속의 죽음) 51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하늘의 성전이 찢어짐.하늘이 열림)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
= 성도- 믿는 자들의 무덤이 열리는 것입니다.
묵시1, 17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
= 내 죄를 위한 대속, 그 주님의 십자가가 내 십자기 였음을 믿음으로 가지고 가야(죽어야) 그 무덤(죽음)이 열립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희망으로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이 끝이 아니라 천국 삶의 시작이니까요. 사람의 열성 그 어떤 행위로 열 수 있는 무덤이 아닙니다.
묵시3, 7 “필라델피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거룩한 이, 진실한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 사람의 어떤 열성으로도 열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진리임을 믿는 그 믿음만이 열 수 있습니다.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꼭이요~~!!!!
♡ 아멘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