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2월 20일 목요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일 (마르8,27-33)
제1독서<무지개가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창세9,1-13)
1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2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것이다. 이것들이 너희의 손에 주어졌다.
3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풀을 주었듯이, 이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준다.
4 다만 생명 곧 피가 들어 있는 살코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5 나는 너희 각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짐승에게나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6 사람의 피를 흘린 자, 그자도 사람에 의해서 피를 흘려야 하리라.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7 너희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땅에 우글거리고 그곳에서 번성하여라.”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11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화답송>시편102,16-18.19-21.29와 22-23(◎20ㄴ) ◎ 주님은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시리라.
○ 민족들이 주님 이름을, 세상 모든 임금이 당신 영광을 경외하리이다. 주님은 시온을 세우시고, 영광 속에 나타나시어, 헐벗은 이들의 기도를 굽어 들어주시고, 그들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리라. ◎
○ 오는 세대를 위하여 글로 남기리니, 새로 창조될 백성이 주님을 찬양하리라. 주님이 드높은 성소에서 내려다보시고, 하늘에서 땅을 굽어보시리니, 포로의 신음을 들으시고, 죽음에 붙여진 이들을 풀어 주시리라. ◎
○ “당신 종들의 자손은 편안히 살아가고, 그 후손은 당신 앞에 굳게 서 있으리이다.” 주님이 시온에서 당신 이름을, 예루살렘에서 당신 찬양을 전하시리라. 그때에 백성들과 나라들이, 주님을 섬기러 모여들리라. ◎
복음<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마르8,27-33)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창세 9,1-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13)
본문에 언급된 계약은 홍수 이전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너와는 내 계약을 세우겠다. 너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가거라.'(창세6,18) 이제 그 약속이 현실이 되어 체결되고 있는 것이다(창세9,9).
이처럼 신실하신 하느님께서는 대홍수 심판 가운데서 노아와 그와 함께 한 가족들을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황폐해진 세상의 모습에서부터 다시 살아가야 할 앞날을 우려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재차 찾아 오셔서 장래를 보장해주는 계약을 맺으신 것이다.
창세기 9장12절에 보면,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라는 말이 나온다.
'표징'으로 번역된 '오트'(oth)는 '징조', '기호', '증거'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어떤 물증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는 계약을 맺으시되, 의심많고 변덕스러운 인간이라도 이 계약을 굳게 신뢰할 수 있도록 너무나 뚜렷한 증거물로서 무지개를 세우셨다.
그러나 '계약'(berit) 그 자체는 계약을 보증하는 '표징'(오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따라서 계약은 그 증거물에 의해 보증된다기 보다는 그 자체로서 절대적 권위를 지닌다.
'무지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쉐트'(qesheth)는 일차적으로 '활'(1사무2,4)이란 뜻도 있다.
활의 모양이 무지개와 비슷하기 때문에 동일한 단어가 활에도 사용된 것인지, 아니면 활의 모양을 본따서 동일한 이름을 무지개에 적용했는지 그 순서는 확실치 않다.
어쨌든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도구의 이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무지개가 활로 비유된 사례는 고대 근동 지방의 신화에도 나온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 신화에는 무지개가 쿠자(kuzah)神이 사용한 무기였으며, 싸움이 끝난 뒤에 이를 구름 사이에 걸어 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바빌론 신화에서도 무지개는 므로닥(Marduk; 예레50,2)신(神)이 악한 신(神) 티아맛(Tiamat)을 물리치는 활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이 신화들은 무지개, 즉 활을 하늘에 걸어 둔 것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이 세상을 다시는 홍수로 심판치 않겠다는 하느님께서 주신 평화의 선언을 확증하는 증거로서 무지개를 하늘에 두셨다는 성경 말씀이 다소 와전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구름'에 해당하는 '아난'(anan)과 '모아 들이다'(덮다)에 해당하는 '아난'(anan)은 동일한 어근이며, 다만 '구름'의 모음이 장모음이란 점만 다르다.
본문에서 '모아들이다'(덮다)로 변역된 '아난'(anan)의 어원적인 의미는 '드러내다', '나타나다'이며, 특별히 '장애물로서 개입하다'라는 뜻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동사의 주어가 '하느님'이란 사실로서 자연현상의 배후를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분이 창조주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본문을 '하느님께서 하늘을 가리우기 위해 구름을 나타나게 하실 때'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구름을 고난과 위험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에도 여러번 사용되었다(에제30,3.18; 32,7; 34,12).
하지만, 먹구름 속에서도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평화의 무지개를 준비해 주신 것을 기억하는 신앙인은,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짙게 하늘을 덮은 구름 속에도 찬란한 무지개가 감추어져 있음을 믿으며, 난관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무지개란 표징을 주신 이유가 계약에 대한 하느님 자신의 기억을 위한 것이란 사실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기억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절대 불변하시는 하느님의 기억에 그 계약의 바탕을 둠으로써, 결단코 계약의 파기나 망각이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만천하가 다 알수 있도록 확실하게 해 준 것이다.
따라서 무지개를 볼 떄마다 인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도 잊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계약을 신실히 지켜 가시는 하느님의 모습이며, 그 약속에 따라 새 하늘과 새 땅까지 우리를 인도해 가실 그분의 강력한 의지인 것이다(2베드 3,13).
마지막으로 우리가 본문을 통해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국지적인 홍수는 발생할 수 있지만, 바로 노아 홍수와 같은 이 세상 전체를 멸하는 그러한 홍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대한 심판 자체가 없을 것이란 의미는 절대 아니다.
성경은 이 세상 마지막 날 사람들이 노아의 시대와 같이 먹고 마시며 향락에 젖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불현듯 재림하셔서 홍수 심판보다도 훨씬 두려운 불의 심판으로써 모든 죄악된 것을 징벌하실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마태24,38.39; 2베드3,6.7).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항상 깨어서 그 날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24,44)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도 변함없이 우리를 믿음의 여정으로 이끕니다.
이를 위하여 복음서는 매우 강한 대비의 구조를 두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깨닫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하느님의 계획에 반대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시며 사람들 손에 죽임 당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는 노아가 모든 것이 파괴된 땅에서 이제 막 드러난 마른땅과 마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라.’는 약속과 축복의 말씀을 해 주신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계약을 맺으시며 사람의 피가 땅에 흘러 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의 계획에 순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며 하느님 말씀 안에서 모든 순간을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가 말하는 고통 받는 주님의 종과 아벨의 피와 형제들에게 버림받아 구덩이에 버려진 요셉과
구약의 많은 예언자처럼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살아간 의인들의 죽음을 보셨고,
외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히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느님께 빛을 받아 옳게 시작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만
어느 순간 인간적인 생각과 마음의 충동에 따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시는 하느님만 찾지 말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삶을 살아갑시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 5,7).
(정용진 요셉 신부)
영원할 하늘, 없어질 땅입니다.
(마르 8,27-33)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 예수님은 나병 환자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하시고~ 또 죽었던 회당장의 딸을 살리신 후에도 사람들에게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육의 치유자로 잘못 알려져~ 죄들의 용서,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라 분명하게 고백했는데 왜, 그리스도인 당신에게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것도 엄중히 말씀하셨을까요?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많은 죄인들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치러 오신 그리스도 이십니다.(마르10,45)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 이십니다.(1요한2,2)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뜻을 위해 이땅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하늘의 의로움, 진리이신 그리스도 이십니다.(요한3,16. 14,6)
그래서 많은 죄인들에게 그 대속의 십자가로 하늘의 생명을 박데 해 주신 그리스도이십니다.(요한1,4)
오늘 죄인들을 위한 그 당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구원의 복음 그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주심입니다.
그동안 주님께서 하셨던 치유와 기적의 모든일이 용서의 기적 이였음을, 감추어져 있었던 하늘의 신비 였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골로1, 20.26-27)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 그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강조해 알려 주십니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합니다. 직역하면 ‘꾸짖다. 야단치다.’ 랍니다.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랐던 그의 속셈이 드러남 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뜻을 이루기위해 주님을 따랐습니다.
육의 욕망을 위한 그리스도로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뜻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믿고 따랐던 그 기적의 스승께서 죽으신다 하시니 기가 막혔던 것이지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감이 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순간, 이성을 잃고 반박으로 예수님을 야단 쳤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모르고, 오해로 착각하고 따랐던 베드로입니다. 그 그리스도로는 절대 말하지 말라 엄중히, 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그런 오해와 착각으로 헛된 신앙을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하십니다. (루가18,8 필리3,18참조)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 육을 위한- 재물, 명예, 건강, 신앙까지~ 사람을 위한 그 일을 하는 것, 사탄입니다.
(루가4,5-6) 5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 사탄은 죄인들의 죗값을 위한 십자가를 믿지 못하도록~ 그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깨닫지 못하도록~ 그래서 그 십자가의 예수님과 한 몸이 되지 못하도록 그 대속으로 받은 용서, 하늘의 생명,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세상의 영광, 명예, 재물에 취하게 합니다.
하늘의 생명, 평화 그 복을 주러오셨는데 땅의 목숨, 평화 그 복을 위해 신앙하게 합니다.
하느님의 생각 그 길을 사람의 생각 그 길과 같다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계명을 인간들의 계명으로 만들어 버리게 합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용서, 구원을 위한 대속의 십자나무입니다.(탈출15,25)
그러나 인간들의 계명은 죄의식을 주는 선악의 법입니다. 그 인간들의 계명은 진리를 저버린 죄입니다.(티도1,14참조)
그 인간들의 계명으로 하늘의 진리를 거스리는 잘못, 그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세 번 가르치시고(예고) 그 죽음으로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기 위해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당신의 대속- 용서로 우리를 하늘의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서~
(이사5,8.12) 8 불행하여라, 빈 터 하나 남지 않을 때까지 집에 집을 더해 가고 밭에 밭을 늘려 가는 자들! 너희만 이 땅 한가운데에서 살려 하는구나. 12 그들은 비파와 수금, 손북과 피리 소리와 더불어 술을 마셔 대면서 주님의 업적에는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주님의 손이 이루신 일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로마8,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 오늘 마음이 하늘을 향하게 합시다. 그러면 지금부터 하늘로, 하늘의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 아멘 -*^ㅇ^*-
연중 제6주간 목요일 복음(마르8,27~33)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33)
마르코 복음 8장 32절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고 나온다. 베드로는 마르코 복음 8장 31절의 주님의 수난 예고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로 믿고 있던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시고 죽임을 당하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며, '그리스도'이신 주님을 통해 얻을 것으로 고대했던 모든 영광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르코 복음 8장 21절의 '반박하기 시작하였다'에서 '반박하다'에 해당하는 '에피티만'(epitiman; to rebuke)의 원형 '에피티마오'(epitimao)는 '경고하다', '경계하다', '책망하다', '꾸짖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르코 복음 8장 33절에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라고 하시며 엄중히 꾸짖으시는 것을 감안할 때, 이미 어두움의 세력에 붙잡힌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매우 거칠게 대들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구속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서, 잘못된 메시아관을 가진 채 예수님을 향한 그릇된 열심과 애정으로 불타고 있는 베드로의 마음을 이용했던 것이다.
마르코 복음 8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막아서는 베드로를 향해 '사탄'이라고 하신다. '사탄아'에 해당하는 '사타나'(satana; satan)은 '적대자'를 뜻하는 '사타나스'(satanas)의 호격이다.
신약 성경의 36회 용례 중에서 34회가 모두 그리스도와 하느님 자체, 또는 그분의 일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영적 세력인 '사탄'을 일컫는 말로 쓰였고, 나머지 2회는 여기와 그 병행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23절의 '베드로'에 대해 쓰였다.
베드로도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서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로 쓰임을 받았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주님의 적대자였다고 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위대한 신앙 고백을 했던 자가 너무나 쉽게 주님의 적대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최종목적인 아버지의 인류 구원 사업을 위해서 반드시 걸어가야 하는, 고난의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거칠게 대드는 사탄의 조정을 받고 있는 베드로의 기운에 조금도 눌리지 않으시고, 무서울 정도로 단호하고 담대하게 그를 뿌리쳐 버리신다.
그리고 '내게서 물러가라'에 해당하는 '휘파게 오피소 무'(hypage opiso mu; get behind me)에서 '물러가라'로 번역된 '휘파게'(hypage)는 '휘파고'(hypag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너는 지금 당장 내 뒤로 가라'는 뜻이며, 사탄의 도구가 된 베드로에게 상징적으로 스승이신 예수님 당신을 따라야 하는 제자로서의 본분과 위치를 지키라는 뜻이다.
즉 제자란 예수님 당신을 따르는 존재이지,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며, 제자가 스승이신 예수님의 사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권한이 없음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이다.
한편,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23절에는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라는 말이 더 첨부되어 있다.
이에 해당하는 '스칸달론 에이 에무'(skandalon ei emu; you are an obstacle to me; you are stumbling block to me)에서 '걸림돌' 혹은 '넘어지게 하는 자'에 해당하는 희랍어 '스칸달론'(skandalon; an offence)은 '올무', '함정'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모케쉬'(moqesh)와 '걸리다', '거치다', '장애물'이란 뜻을 가진 히브리어 '미크숄'(mikshol)에 대한 70인역(LXX)의 역어로 '길에 놓여 걸려 넘어지게 하는 어떤 장애물'(걸림돌) 혹은 '다른 이를 범죄하도록 유도하는 일을 행하는 것'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본문에서의 베드로의 행위가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셔야 할 구원의 길을 방해하는 걸림돌로서 하느님의 뜻을 어기도록 유도하는 범죄의 행위가 됨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을 수 없다며 극구 만류하는 베드로의 말과 행위는 예수님의 공생활초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탄의 유혹의 목적과 같이 예수님의 구속 사업을 방해하는 것이다.
끝으로 '너는 ~생각지 ~ 하고'에 해당하는 '프로네이스'(phroneis; you do have in mind)의 원형 '프로네오'(phroneo)는 '마음에 두다', '중히 여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단지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바로 이것에 집착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고, 예수님께서 고난을 겪으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일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하느님의 일임을 나타낸다.
또한 이 구절은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 현재의 진행중인 동작을 나타내고 있기에,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순간까지도 베드로의 마음이 오로지 인간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나타낸다.
2025년 02월 20일 목요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살아가면서 우리가 때때로 되새겨야 하는 물음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르 8,29 참조)일 것입니다.
베드로가 내놓은 답은 모든 이에게 공통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교리상의 정답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체험과 고백이 담긴 답을 요구하실 것 같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베드로는 출제자가 바라는 정답을 맞히고도 칭찬 대신 말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아마도 그가 “그리스도”(8,29)의 의미까지는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예수님께서는 그가 당신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섣불리 알리기를 바라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과연 시험을 멋지게 통과한 바로 다음 순간 베드로는 스승에게서 “사탄”(8,33)이라는 극단적인 꾸지람을 듣습니다.
“내게서 물러가라.”(8,33)라는 말씀은 그리스 말 원문을 볼 때 “내 뒤로 가거라.”입니다.
스승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으로 스승의 앞을 가로막은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자리로 곧 스승의 뒤로 가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할 때 사탄을 따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분을 닮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뿐만 아니라 진짜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순교를 향하여 가는 길에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인이도록” 교우들의 기도를 청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삶으로 증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02월 20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그리스도는 우리의 운명(運命, 사랑)이다.
복음<(마르8,27-33)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 그리스도- 구원자, 곧 죄인(짐승)들의 양식으로 오신 영혼의 구원자시다.(루가2,11-12참조) 죽음의 법인 율법(제사, 윤리)을 대속으로 완성하신 구원의 진리시다.(요한1,17) 우리의 생명, 참 빛이시다)요한1,9) 영원한 생명이시다.(요한17,3 로마8,10)
당신의 피(대속)로 우리를 깨끗하게, 거룩하게, 거저 의롭게 하실 분이시다.(로마3,24 히브10,10) 하느님과 함께 평화를 살게 하실 분이시다(로마5,1) 더라운 죄의 우리를 새 것,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실 분이시다.(2코린5,17)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우리가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실 분이시다.(2코린5,21) 창조이전부터 이미 예비되셨던 구워ᅟᅩᆫ자시다(에페1,4 1베드1,20 히브4,3참조) 우리의 자각으로는 알 수 없는 사랑이시다(에페3,19) 하느님의 지혜, 지식, 곧 보물이시다(골로2,3) 우리의 대사제로 오셔서 대속으로 죽으시고 세우신 새 계약이시다.(히브9,11-15)
흙, 없음인 우리를 있음의 하늘이 되게하실, 곧 우리와 혼인하실 우리의 신랑이시다(마태22,2 25.1) 그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대속으로 “다 이루어졌다” 하실 그리스도시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은 그 영의 신랑, 구원자 그리스도를 육의 구원자, 곧 자신들의 뜻, 소원을 들어주시는 그리스도로 알았기에 말하지 말라 엄중히 경고하신 것이다.
31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 새 계약의 구원자 그리스도로, 우리의 죄로 죽으셨다가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부활하신 것이다.(로마4,25)
(골로2,12)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로마7,4) 4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 덕분에 율법과 관련해서는 죽음으로써, 다른 분 곧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분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꾸짖기)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 반박 했다.- 앞에서 확인 했듯이 베드로는 자신의 소원을 채워줄 능력의 예수가 필요했지, 영을 구해주실 그리스도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을 반박한 것이다.
생각(프레시스-애정과 관심), 사탄은 세상의 일, 사람의 일에 애정과 관심을 갖게 한다. 곧 하늘의 구원에는 애정과 관심이 없고 땅의 내 뜻, 소원을 위한 신앙으로 애정과 관심을 갖게 한다.
영의 구원자, 그리스도가 아닌 육을 위한 예수께 애정과 관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능력의 예수를 열심히 따르도록 가르친다.(마태24,24) 또 선악의 도덕과 윤리로 착하게 살아야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으로 생각하게 한다.
율법을 열심히 지킨 그 사람의 의로움을 진리라고 거짓된 가르침을 준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피의 새 계약, 그 하늘의 의로움으로 받는 용서, 구원을 믿지 못하게 한다. 구원의 약속, 그 하느님의 말씀을 잘라 버리게 한다. 사탄의 거짓 유혹을 먹은 이들이 자신의 구원자 예수님을 반박한다.
(1요한4,5) 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로마1,3-4.6)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코린3,23. 12,27) 3,23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12,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히브3,5-6) 5 모세는 하느님께서 장차 말씀하시려는 것을 증언하려고, “종”으로서 “그분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었습니다.” 6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집안을 맡은 아드님으로서 충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집안입니다. 우리의 *희망에 대하여 확신과 긍지를 굳게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우리의 운명,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분을 더욱 애정과 관심으로 함께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