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간 월요일] 벙어리, 귀머거리 치유 (마르9,14-29)

2025. 2. 23. 오후 3: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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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4일 월요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벙어리, 귀머거리 치유 (마르9,14-29)


   


1독서<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다.>(집회1,1-10)

1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

2 누가 바다의 모래와 빗방울과 영원의 날들을 셀 수 있으랴?

3 누가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넓이를, 심연과 지혜를 헤아릴 수 있으랴?

4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고 명철한 지각도 영원으로부터 창조되었다.

5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다.

6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계시되었으며 지혜의 놀라운 업적을 누가 알았느냐?

7 지혜의 슬기가 누구에게 나타났으며 지혜의 풍부한 경험을 누가 이해하였느냐?

8 지극히 경외해야 할 지혜로운 이 한 분 계시니 당신의 옥좌에 앉으신 분이시다.

9 주님께서는 지혜를 만드시고 알아보며 헤아리실 뿐 아니라 그것을 당신의 모든 일에,

10 모든 피조물에게 후한 마음으로 쏟아부으셨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주님의 사랑은 영광스러운 지혜이며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 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화답송>시편93,1ㄱㄴ.1-2.5(1)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은 임금님, 위엄을 입으셨네. 주님이 차려입고 권능의 띠를 두르셨네.

누리는 정녕 굳게 세워져 흔들리지 않네. 예로부터 주님 어좌는 굳게 세워지고, 영원으로부터 주님은 계시네.

당신 법은 실로 참되며, 당신 집에는 거룩함이 서리나이다. 주님, 길이길이 그러하리이다.

 

복음<주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9,14-29)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집회서1,1~10)

 

집회서는 유다 지혜 문학의 총결산이라 한다. 이 책의 원문은 히브리어로 쓰였는데(BC180년경), 원 저자의 손자가 이를 그리스어로 옮겼고(BC130년경), 이 그리스어 본문이 현존하고 있다.

 

그리스어 본문의 필사본들은 대부분 이 책의 제목을 '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라 한다. 불가타(Vulgata; 라틴어 성경)에서는 '에클레시아스티쿠스'(Ecclesiasticus)라고 하였고,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리베르 에클레시아스티쿠스'(Liber Ecclesiasticus; 교회의 책)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치프리아누스 시대 이후 서방 그리스도교에서 새로 입교할 사람들을 교육할 때에 이 책의 가르침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우리말 '집회서(集會書)'도 이 불가타와 서방 교회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집회서 제1부(1,1-16,23)에서 저자는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임을 천명한다.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므로 주님을 제대로 알아 모시지 않으면 그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집회서는 저자 자신이 수집해 온 이스라엘의 지혜 전승을 깊이 묵상하여 정리해 놓은 것이므로, 일종의 '선집'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집'의 특성상 논리적 연관성이나 구성의 체계성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책의 처음과 마지막은 지혜에 대한 관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1,1; 50,27~29).

 

집회서는 머리글과 부록을 제외하고 크게 전반부(2~23장)와 후반부(25~50장)로 나눌 수 있다.

특별한 점은 '지혜에 대한 찬미'가 머리글~(1장)~전반부~(24장)~후반부~(51장)~부록 사이에 1장과 24장과 51장으로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머리글과 집회서 1장 1~21절 집회서 전체의 서문뿐 아니라 바로 이어지는 전반부(2~23장)의 서문 역할을 한다.

 

집회서 2~23장은 지혜에 관한 첫 번째 모음집으로 지혜로운 인간의 덕목들, 인생의 가치, 사회적 삶에서의 지혜 추구, 종교와 교리가 세 편의 '지혜 찬미'(4장 11~19절; 6장 18~37절; 14장 20절~15장 10절)와 서로 교차되면서 배열되고 있다.

 

집회서는 총 51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제2경전 중 가장 긴 책이다.  분량이 긴 만큼 제시하는 내용도 다양해서 일일히 거론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별히 집회서는 이스라엘의 전통적 지혜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잠언의 신학적 사상을 더욱 심화한다.

 

저자는 지혜에 대한 강조를 '주님께 대한 경외'로 수렴한다. 하느님께 대한 경외야말로 지혜의 시작이요 완성이며 토대(1,11~21; 2,1~18; 10,22; 34,14~20; 40,26~27; 50,27~29)이다.

그러므로 지혜서가 말하는 가장 지혜로운 삶은 하느님을 자신의 삶 속에 가장 중심에 두는 삶이다(2,15~18).

 

"옹기장이가 제 손에 있는 진흙을 제 마음대로 빚듯  인간은 자신을 만드신 분의 손안에 있고  그분께서는 당신 결정에 따라 인간에게 되갚으신다."(집회33,13)

 

인간은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경외하여 그분께 자신의 삶을 의탁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집회서 24장의 지혜 찬미 집회서의 신학 사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저자에게 지혜는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재해석하는 원리이다.

마지막 부분(집회44~50장)은 이스라엘의 역사안에 하느님의 지혜가 계시되었음을 증언한다.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다.(1,14)

 

여기서 '경외함'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라 어른을 삼가 공경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를 말한다.

실제로 저자는 먼저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언급한 데(1-2장) 이어서 곧바로 부모에 대한 의무를 가르친다(3장).

 

오늘 독서 집회서 1장 1~10절을 읽으면서 '지혜'라는 말 대신에 '말씀' 혹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넣어 읽으면 더 감동적으로 지혜의 의미가 다가온다.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하느님의 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인 내가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했을 때 내 자신에 대한 깨달음(생각 혹은 인식, 지혜)가 생긴다.

그러나 이 깨달음(생각 혹은 인식, 지혜)는 불완전한 인간의 것이기에 바람처럼 휙 지나가는 지성(지능)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무한히 완전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신에 대해 생각을 하셨다고 가정하자. 그럴 때 이 생각(깨달음 혹은 인식, 지혜)은 너무나도 완전하여 성부 하느님과 똑같은 위격(persona)을 갖게 된다.

완전하고 충실한 표현일수록 그 본형(원형)에 가깝듯이 또 하나의 위격을 갖게 된다.

 

위격(persona; personality)이란 지성과 (자유)의지가 있는 실존으로서 자기 행위에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행위의 주체(subject)말한다. 그러니까 위격은 사람(인격)이상 마귀, 천사, 하느님께만 해당되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깨달음 혹은 인식, 지혜)는 내적인 언어이다. 생각한 것이 말로써 밖으로 표현된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생각(깨달음 혹은 인식, 지혜)은 하느님의 말씀이 된다.

그래서 구약에서 천주 성자는 하느님의 '지혜' 혹은 '말씀'으로 표현되고 계시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혜' 대신 '예수(그리스도)'를 넣어 묵상해도 좋은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 홍해와 요르단 강 같은 바다가 앞에 가로막혀 있고, 예리고성과 같은 난공불락의 성벽이 앞에 버티고 있어도 시간의 주재자이신 주님, 인간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고 봉헌을 하면서 맡기면, 문제가 해결되는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된다.

여기서 지혜는 그렇게 고대하던 기쁨의 기도의 응답이요, 문제 해결의 마스터 키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다.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이를 괴롭히던 악령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악령의 힘이 그들의 능력보다 컸기 때문입니다.

악령 때문에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구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과도, 우리 자신의 모습과도 같아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 말씀에 귀 기울여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 대적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그에 맞설 두 가지 좋은 수단을 가르쳐 주십니다. 믿음과 기도입니다.

사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제자들이 기도하였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아이에게서 악령을 쫓아낼 수 없었던 충분한 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믿음이 없음을 고백하며 예수님께 아이를 낫게 해 달라고 청하는

오늘 복음의 아이 아버지는 제자들을 위한, 곧 우리를 위한 믿음과 기도의 본보기로 제시됩니다.

아이 아버지가 바친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하고,

우리도 주님께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끊임없이 청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복음 안으로 좀 더 들어가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 과정을 보면

우리의 기도가 무엇을 지향(指向)해야 하는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악령에게 말씀하시자 악령이 떠나가며 아이가 “죽은 것처럼” 되었고,

그것을 지켜본 사람들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고 말하였음을 전합니다.

아이의 치유가 일종의 ‘죽음’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를 가두어 온 악령의 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죽음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우리의 ‘경련’을 낫게 하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고 단념하는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요?

올곧은 믿음과 열렬한 기도 없이는 결코 이루지 못할 이 은총을 주님께 간절히 청합시다.

 

(정용진 요셉 신부)

 




  

 자신을 믿는 삶은 짐이지만 대속의 주님을 믿는 삶이 희망입니다

 

(마르 9,20-29) 

20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빛이신 예수님을 보자 어둠인 벙어리영이 곧바로 반응합니다더러운 거짓영입니다하느님의 말슴계명을 사람의 뜻사람의 일로 듣고 말하게 하는 거짓영입니다.

앞 7장과 8장에서 귀먹고 말더듬는 이와 눈먼 이는 처음에 반응이 없었습니다오늘 벙어리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발작으로 반응을 합니다앞 7장과 8장에서 귀먹고 말더듬는 이는 귀가 열리어 말씀을 진리로 듣고 그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으로 열린후 나타나는 반응임을본 9장에서 성경은 의도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올바른 하느님의 뜻으로 보고 들으면 죄 성이 드러나는 그 반응은 용서(치유)를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그 죄 성이 드러나야 십자가의 대속으로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어려서부터 사람의 욕망을 위한 신앙으로 잘못 가르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하느님의 물곧 죄의 대속 그 죄의 덮으심의 말씀()은 용서 희망으로 생명을 주지만 땅의 물불 선악의 그 사람의 말은 죄의식에 시달리게 하는 죽음입니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 하셨음을 믿는 그 주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주님에 대한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다 이루어졌다하신 그 주님의 믿음을 청합니다.

 

25ㄱ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을 포함한 믿음이 없는 모든 사람들 그 군중입니다.

 

25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귀머거리 영아내가 너에게 명령한다그 아이에게서 나가라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그들 모두를 포함한 구마의 말씀입니다이 시간 우리에게도~아멘.

우리 주위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욕망그 사람의 뜻을 위한 일로 듣도록 하는 거짓 예언자들(가르침)이 너무 많다 하십니다.(1요한4,14참조그래서 다시 들어가지 마라다시 유혹에 빠지지 마라 하시는 것입니다.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땅에서 죄의식이라는 그 죽음에서 일어남입니다창조의 손이또 그를 위해 못 박히실 손이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땅에서 하늘의 존재로 하느님의 지혜진리의 말씀(물 불)으로 재창조되는 위로부터 태어남입니다.

 

(요한3,3) 3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오늘날 제자(교회)인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십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6,10) 라고 기도하면 아버지의 뜻인 땅의 구원이땅인 그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당연히 그 거짓영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프로쉬콤마이는 흘려주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그 하느님의 뜻 대속의 십자가를 진리로 올바로 흘려주어야 용서(치유)가 일어납니다그러나 사람의 뜻을 위한 일로 율의 치유만을 위해 제자들이 기도했기에 그 거짓영이 나가질 않았던 것이지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지말라 하셨던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하는 용서(구원)가 없는 빈말헛된 기도인 것입니다.(마태6,7)

그래서 하느님의 뜻인 땅의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 일그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말씀이~30절에 이어집니다.

진리를 똑바로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그 내 죄를 위한 용서(치유)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1코린15,19) 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코린7,10)  10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그러나 현세적 슬픔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

아멘!

 

 

 

 


<저희에게 굳센 정신을 심어주소서>

가끔 어느 기도원에서 치매 걸린 환자를 고친다고 강제로 단식을 시키거나 기도하는 중에 환자를 때려 죽였다는 어처구니없는 광신적인 사건을 접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마침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섣부른 제자들의 모습이 그러한 사건을 연상시키지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과 타볼산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체험하고 있는 동안에 산 아래 남아 있던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이 오늘 복음 내용입니다.

간질병을 심하게 앓는 자녀를 둔 아버지가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안 계시자 말 그대로 꿩 대신 닭이라고 남아 있던 제자들한테 치유를 청하였지요.

고쳐 달라고 간절히 매달리자 으쓱해진 제자들이 고쳐 주겠다고 나섰지만 잘 안 되었던 모양이고 그래서 무리를 했던 것 같습니다. 별의별 수를 다 썼는지 율법 학자들과 다툼이 일어나고 또 군중에 둘러 쌓여서 진땀을 빼야하는 형국이 되었지요. 마침 그 때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와 그들 사이로 오시지요.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마르9,16) 예수님께서 물으시자 아이의 아버지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마르 9,17-18)

실망에 빠진 아버지는 자초지정을 이야기하면서 부탁합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마르9,22) 믿음이 반쯤 식어버린 그의 말에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지요.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9,23)

그러자 아이 아버지는 정신이 바짝 들어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하고 다시 간절히 매달립니다.

예수님께서 악령을 쫓아내시자 아이는 성해져서 벌떡 일어났지요. 가까스로 수습을 하고 기가 죽은 제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는 거처로 돌아오셨는데 이때 힘이 빠진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마르 9,28)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이렇게 예수님의 실전을 통한 제자들의 가르침이 오늘 복음 내용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지 않으면 치유할 수 없다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의 능력이나 어떤 광신적인 광기로는 기적을 일으킬 수 없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제자들을 서서히 가르쳐 가시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자들은 점점 나아집니다.

실제로 루카 복음 10장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받고 실천하면서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3-5)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72명의 제자들을 파견하시는데 예수님 말씀대로 복음을 전하고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님께 있었던 일들을 기쁨에 차서 보고하지요.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루카10,17-19)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완전히 하느님만을 믿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능력을 제자들이 그대로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 사도 역시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 앉은뱅이를 고쳐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사도 3,6-8)

이러한 기적의 능력들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지요. 지금도 온전히 믿고 간절히 하느님께 청하는 사람들 안에서 기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치유나 기적은 무당 같은 인간의 능력이나 광신적인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올리는 간절한 기도와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간질병을 앓던 아이를 고쳐 주시며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지금도 믿고 기도하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 시대에, 그리고 사도행전 시대에 일어났던 기적들이 곳곳에서 계속 되고 있습니다. 초기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능력과 지식, 또 광적인 믿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모든 놀라운 은총의 체험은 하느님을 향한 기도와 믿음 안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에도 우리는 역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나 사건들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하느님께 기도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 사건을 대할 때 생각할 수 없는 인내가 생기고 풍요로운 열매가 맺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한결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주간 사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열매를 맺는 기도>

어느 날 신자 한분이 “신부님은 기도를 많이 하십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얼른 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실은 기도를 소홀히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는 기도하라고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기도를 소홀히 하였으니 속을 보인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실은 누가 기도를 부탁하면 “예, 기도해 드리죠.” 하고 대답하고는 잊어버린 때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죄송한 마음으로 그 잊었던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왕 기도할 바에야 효과 있는 기도, 응답 받는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저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11,2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응답 받지 못하였다는 것은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면서도 하느님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고 그저 반신반의 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요한 사도는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1요한5,15).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에 온 마음을 기울여 기도에 집중하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인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기웃거리거나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성 치쁘리아노) 따라서 기도를 하려거든 믿음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믿고 바라고, 믿고 감사하고, 믿고 기뻐하고, 믿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그분께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8-29)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힘은 바로 기도에서 나오는데 기도란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능력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을 보면 복음에 바탕을 둔 믿음이 아니라 기복적인 믿음, 또는 신심 위주, 활동중심의 믿음에 끌려 다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믿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힘과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소홀히 하기 시작하면 하느님을 멀리하게 되고, 그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며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게 되고 내 멋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하느님의 능력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이르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잘못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기도하기를 그쳐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힘은 꾸준히 계속되는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예수의 성녀 데레사)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끝맺음 하는 가운데 기쁨을 차지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성공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기도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무던히 참아주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며 다시 그분에께로 돌아서야 하겠습니다.  '저의 불신을 이기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20250224일 월요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황홀하고 경이로운 체험을 하고 타볼산에서 막 내려온 예수님과 세 제자가 마주한 현실은 일상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 삶의 전형적인 그늘입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를 향한 예수님의 탄식은 그분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토록 믿음을 가르쳐도 딱히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답답하실 법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귀머거리 영을 쫓아내심으로써 더러운 영에 붙들려 자신을 잃어버렸던 아이를 본연의 자기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 앞에서 발악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고 그 아이의 몸속에 있는 더러운 영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살아가면서 죄와 악으로 그 모습이 더럽혀질 위협을 당합니다.

믿음과 기도, 이 두 가지가 더러운 영의 공격 앞에서 우리 안의 하느님 모습을 지켜 낼 수 있게 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아버지에게는 믿음이, 제자들에게는 기도가 부족하였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의 아버지와 제자들에게는 두 가지가 다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겸손한 기도로 믿음을 얻고 해방된 아이를 되찾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우리는 믿기 위하여 기도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믿는다고 말하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믿고 기도하게 하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하자고 초대합니다.

믿음은 기도를 샘솟게 하고 샘솟는 기도는 믿음을 튼튼하게 해 줍니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2025년 02월 24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우리가 믿음과 상관없는 벙어리 신앙을 살고 있음을 보라.

 

복음(마르9,14-29)

14 예수님의 변모를 본 제자들(3)이 산에서 내려와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그 제자들(9)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숫자 9(12-3=9)는 하나(1), 곧 진리가 빠진 부족함을 뜻한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 벙어리 영 - 하느님의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곧 하늘의 대속, 그 새 계약의 말씀을 진리로 듣지 못하게 해 구원 받았음을 깨닫지도, 믿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하는 더러운 영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들이 그분의 뜻과 상관없는 육이 원하는 세상 논리, 풍조에 따라 살게 한다. 두 마음을 품은 양다리 신앙으로 영을 죽이는 삶을 살게 한다.

 

18ㄱ 그래서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 세상에 묶여 끌려 다니는 고난의 삶이다.

 

18ㄴ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 쫓아낼 권한이 있는데 왜?(마르3,15) 육(肉)의 욕망에 흔들려 빼앗긴 것이다. 곧 믿지 않았던 것이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야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 예수님 앞에, 곧 빛이 비추면 드러나는 더러움의 반응이다. -약을 먹으면 나타나는 호전반응과 같다.-

더러움(어둠)이 드러나 쫓겨나고 빛이 들어가 빛으로 빛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 어릴 적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구원의 진리로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곧 그의 아비(교회)가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 말씀을 진리로 깨닫지 못하면, 곧 말씀을 문자로, 세상의 말 그대로 보면, 구원으로 이끄는 불과 물이 오히려 죽이는 불과 물이 된다.

 

(탈출13,21) 21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낮에는 *구름(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루가1,35.37)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 자신의 믿음은 진리를 믿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벙어리, 헛된 믿음이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믿음을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귀머거리 영아내가 너에게 명령한다그 아이에게서 나가라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 말씀이 구마하신 것이다. 곧 창조의 말씀이 새 사람으로, 새 창조로 다시 낳으신 것이다.(2코린5,17 야고1,18참조)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 하느님의 뜻, 구원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증언하신 ‘성령을 청하고 구하면 열린다’는 것이다. 곧 진리의 성령께 의탁하면 자유하게 된다는 말씀이다.(요한8,3132 루가11,9-13 참조)

 

(야고4,2-5) 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4 절개 없는 자들이여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5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

 

(에페2,1-5)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어둠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빛을 보며 빛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그 빛을 자유와 희망을 선택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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