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1일 월요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12,13-21)
제1독서<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습니다.>(에페2,1-10)
형제 여러분,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화답송>시편100,1-2.3.4.5(◎ 3ㄴ) ◎ 주님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이라네.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 감사하며 그분 문으로 들어가라. 찬양하며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복음<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12,13-21)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제1독서(에페2,1~10)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2)
이 구절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속받기 전에는 모두 이 세상의 풍조 및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를 따라 사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풍조'에 해당하는 '아이오나'(aiona)는 문자적으로는 '시대'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시대'라는 말은 어색하다.
그래서 원문의 '톤 아이오나 투 코스무'(ton aiona tu kosmu)를 '이 세상의 행로'(the course of this world) 혹은 '이 세상의 길'(the ways of this world)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오나'의 원형 '아이온'(aion)은 시간적 의미가 포함된 단어로서 '이 세상(시대)'를 가리킨다(1코린 2,6; 갈라1,4).
반면에 이 구절에서 '세상'으로 번역된 '코스무'의 원형 '코스모스'(kosmos)는 공간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본문의 '아이오나'는 시간적 배경을 강조하고, '코스무'는 공간적 배경을 강조할 뿐, 두 단어는 모두 하느님의 다스림을 벗어난 인간들이 형성한 이 세계를 가리킨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 세상 풍조를 따랐다는 말은 타락한 인간이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단절된 상태, 즉 하느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상태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갈라티아서 5장 19~21절이 드러내주는 불륜, 우상 숭배, 분쟁, 분파 등 온갖 죄악을 행하였다.
또한 조직적으로는 하느님 나라와 대조되는 세속의 통용되는 가치관에 따라 정치적 억압이나 경제적 탈취 등의 문제를 야기시켰다.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공중'에 해당하는 '아에로스'(aeros)는 문자적으로 땅과 하늘 사이의 공간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히브리인들의 하늘 개념인 삼층천의 개념이 반영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 구절의 공중은 하느님께 대항함으로써, 하느님께서 계시는 삼층의 하늘로부터 쫓겨난 사탄이 사람들이 사는 땅에 연속되는 1층의 하늘이 아니라 2층의 하늘에서 자신의 권세를 행사하기 위해 머무는 공간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신화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본문의 문맥에서는 공간적인 장소의 의미보다는 영적인 지배력을 더 강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즉 이것은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의식 세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에서 '지배자'로 번역된 '아르콘타'(archonta)는 '통치자'(ruler; prince)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는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의의식 세계를 통치하고 있는 자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불신자의 의식 세계를 주관하고 있는 사탄은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2코린11,14)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서 둘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단절시키며,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복음의 빛이 비치지 못하게 한다(2코린4,3.4).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순종하지 않는 자들'(불순종의 아들들)이란 어구는 히브리적 표현이다.
구약 성경에서는 '고통받는 모든 이'(잠언31,5),'불의한 자들'(2사무7,10)이란 표현들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 아들'이란 표현은 어떤 특정한 사실이나 상황의 강력한 지배를 받는 사람의 형편을 의인화하여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불순종은 복음과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앙의 상태를 가리킨다(히브4,6).
결국 여기서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신앙으로 일관하는 자들에게 권한을 행사하는 사탄이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한편 '작용하는'에 해당하는 '에네르군토스'(energuntos)가 여기서는 사탄의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지만, 에페소서 1장 20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역사를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이처럼 하느님의 능력 행사를 나타내는 단어가 사탄에게도 사용되었다는 것은 사탄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이것을 통해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영향력 아래 있든지, 아니면 사탄의 영향력 아래 있든지 둘 중의 하나에 속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루카22,3; 요한 13,2; 사도 5,4).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느님을 떠난 인간에게는또 다른 선(善)이나 진리(眞理) 또는 구원(救援)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지배를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것인지, 사탄의 지배를 받아 영원한 죽음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인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매일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세상에 ‘돈’보다 더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요?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돈 문제만큼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사실 오늘 복음 말씀도 가족 간에 벌어진 재산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지는 돈의 마력을 우리 모두 경험합니다.
그저 돈 많이 버는 직업을, 돈 많이 주는 직장을 최고로 칩니다.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이나 큰 이익을 거두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으로 칭송받습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분하고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루기도 합니다.
루카 복음은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부(富)와 재산(財産)에 대한 탐욕(貪慾)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은 산상 설교에서 행복에 대한 선언들만 쭉 나열하고 있다면(5,3-12 참조),
루카 복음은 부자들을 향한 불행 선언들도 함께 소개합니다(6,24-26 참조).
우리가 잘 아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이야기도 루카 복음에만 나옵니다(16,19-31 참조).
그리고 오늘 복음 말씀도 그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이어지는 비유에 등장하는 부유한 사람은 자기가 거두어들인 많은 소출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쌓아 놓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합니다.
그저 모아 둘 생각만 하는 그의 고민은, 기존의 곳간을 허물고 더 큰 곳간을 짓겠다는 결심으로 끝나 버립니다.
혹시 우리에게도 비슷한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가진 재산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모으고 보자는 마음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데만 급급하여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통장에 찍힌 잔고에 흐뭇해하기보다, 그것을 어떻게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해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될 것인지를 더 고민해야 합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복음(루카12,13~21)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5)
원문에는 '탐욕'(貪慾) 혹은 '탐심'(貪心)이라는 단어가 '플레오넥시아'(plleoneksias)이다.
기본형은 '플레오넥시아'(plleoneksia)인데, '더 많은'이라는 뜻의 '플레이온'(plleion)과 '가지다'는 뜻의 동사 '에코'(echo)에서 파생된 '엑시아'(eksia)의 합성어이다.
영어로는 'greed','avarice','covetousness'로 번역되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분수에 넘치도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심'을 가리킨다.
그런데 복음은 '모든'('파세스'; 'pases'; all) 탐욕을 경계하라고 했으므로, 단순히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도히 욕심을 부리게 되는 세상에 속한 모든 것(금전, 부, 권력, 지식,명성, 쾌락 등등)을 그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하여라'라는 원문의 단어는 '호라테'(horate)로서 특별히 경계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용법으로 쓰였는데, '삼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경계하여라'라는 원문의 단어는 '퓔라세스테'(phyllassesthe)로서 원형 '퓔랏소'(phyllasso)의 현재 중간태 명령형이다.
여기서 중간태란 그 결과가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나타낸다.
영어로는 'beware','watch out','be on your guard'로 번역될 수 있다.
모든 탐욕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것을 명령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원문은 수시로 마음속에 들어오는 탐욕(탐심)을 물리치는 데 급급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한 것이 애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굳게 막아 지킬 것을 명하고 있다.
말하자면, 세상 것들의 한계, 예를 들어 물질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물질이며, 그것을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와 이웃의 선익과 공동선을 위해 올바로 쓰지 못하고 그것의 노예가 되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느님도 영원한 생명(구원)도 잃어버린다는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아예 애당초 자신의 분수를 벗어난 헛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한편, 여기서 '생명'으로 번역된 단어는 '죠에'(zoe)인데, 이 '죠에'는 '죽음'과 대조된 육체적 생명(1코린3,22)과 하느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초자연적 생명'(요한3,15)으로 구분된다.
루카 복음 12장 15절의 '생명'은 당연히 후자의 의미이다.
이 세상의 소유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everlasting life)을 말한다.
이 생명의 속성은 '영원성'(eternity)인데,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영생을 얻을 수 없고 영원한 평화와 기쁨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이야기 하신다.
이 비유는 하느님의 계산법과 인간의 계산법은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데에 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탐욕을 부려 더 깊은 지옥에 떨어질 것 같으면, 한마디로, 영원한 생명(구원)을 받기에 삯이 노랄 것 같으면, 그 어리석은 부자가 가진 것을 다 거두어 가버리신다는 말씀이다.
'맑은 가난'의 의미를 지닌 '청빈'(淸貧; poverty)과 '탐욕'(貪慾)의 글자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청빈'의 '빈'(貧)은 '조개 패'(貝)에 '나눌 분'(分)이지만, '탐욕'의 '탐'(貪)은 '조개 패'(貝)에 '지금(이제) 금'(今)자이다.
옛날에는 조개 껍질이 화폐의 구실을 했으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진정한 가난(청빈)이며,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더 가지려고, 아니면 더 이상 빼앗기지 않으려고 꼭 움켜잡는(grasp; grip; take hold of; seize)것이 탐욕인 것이다.
2024년 10월 21일 월요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오늘 복음에서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루카 복음서 12장의 본문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부자는 곳간을 크게 짓고 재산을 쌓아 두면 안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고, 쌓아 둔 재물은 그를 죽음에서 구하여 주지 못합니다.
죽음을 걱정하거나 스스로 노력한다고 해서 죽음을 미루고 자기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12,25 참조).
복음을 약간 뒤집어서 읽는다면, 오늘 들에 서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니 수명을 늘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12,31 참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아버지께서 알고 계시고 아버지께서 돌보십니다.
오늘 밤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그것이 하느님께서 모르시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나라를 찾을 따름입니다.
그러면 재물은 어떻게 할까요? 같은 장에서,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푸는 것이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2,33 참조).
곳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선으로 베푸는 것이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고, 그렇게 쌓아 둔 재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12,34).
자선을 베풀어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이미 하늘에 있습니다.
그는 지금 죽어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10월 21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모든 탐욕(貪慾)을 경계하여라.
복음(루카12,13-15)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닌 창조주와 피조물인 사람 사이의 중개자 이시다. 세상 인간사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도록 주신 것이기에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밀씀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1티모2,5) 5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히브9,15) 15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대속),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12,22-24) 22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가 씻겨 거저 거룩한 자로 들어가는 새 계약의 나라다. 그래서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을 잘 지킨 인간의 행위, 인간의 의로는 갈 수도 없지만, 간다 하더라도 살 수 없는 곳이 하느님 나라다. 진심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많은 수고와 노력으로 가는 곳이라면 진심의 감사와 찬송이 나오겠는가?, 그리스도의 피(血)로 모든 죄가 씻겨 가는 곳이기 진심에서 나오는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로마14,17)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 자신의 죄가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 인지를 아는 만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주신 하늘의 의, 평화의 소중함을 알아 기쁨 또한 큰 것이다.
그러므로 땅의 것, 사람들 사이의 것을 주의하라 하신 것이다.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탐욕(에삐두미아) - 에삐(강) 두미아(희생제사), 곧 사람의 뜻, 욕망을 위해 열심히 제사 드리는 행위가 탐욕이다.
모두가 그 탐욕으로 살지 않는가? 모두가 죽음의 길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새 계약의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독서(에페2,1-10)
1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2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4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십자가의 대속)으로, 5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6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 반드시 옛 계약의 나를 버리고, 부인하고,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함이다.
7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 하느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선행?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죄인들이 살아나는, 곧 옛 것은 지나가고 새 창조로, 새 것이 하늘이 되게 하신(2코린5,19) 그 하느님의 선행을 믿고 전하는 것, 준비된 우리의 선행(善行)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 )
☨ 하느님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말씀대로 저희에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