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2일 화요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깨어 있는 종 (루카12,35-38)

제1독서<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2,12-22)
형제 여러분,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18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화답송>시편85,9ㄱㄴㄷ과 10.11-12.13-14 (◎9ㄴㄷ) ◎ 주님은 당신 백성에게 평화를 말씀하신다.
○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 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 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 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 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 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
복음<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12,35-3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제1독서(에페2,12~22)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어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19~20)
에페소서의 주제는 교회 일치의 당위성이다.
에페소서 2장 19~22절은 교회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된 절대 유일한 하나의 구원 공동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원받기 이전의 이방인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였으나(11~12)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더불어 수평적 평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13~15) 구원받은 성도들 모두가 하느님과 수직적 평화를 이루었다는(16~18) 사실에 근거를 두고 에페소서 2장 19절 이하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 2장 11~18절에서 갓 교회에 속하게 된 이방인 출신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 공동체인 교회가 어떻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자기들 이방인들까지 포함시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에페소서 2장 19~22절 단락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통하여 구원을 얻은 자들을 대상으로 교회가 오직 그리스도만을 머리로 하여 형성된 단일 공동체라는 중요한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우케티'(uketi)는 '더 이상 ~이 아니다'(no more)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강조 부정어이다.
'크세노이'(ksenoi)와 '파로이코이'(pharoikoi)는 '외국인' 혹은 '이방인' (나그네)이라는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처럼 사도 바오로는 강조 부정어와 더불어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명사를 반복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하느님께 나아감을 얻는 특권을 받았으므로, 이제부터 이방 성도들 역시 더 이상 천국의 시민권과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본절에서 영어의 'not ~ but'의 용법과 동일하게 앞선 부분의 부정을 통하여 뒷부분의 내용을 더욱 강조하는 '우케티~ 알라'(uketi ~alla) 용법을 사용하여 이방 성도들이 '외국인'과 '이방인'이 아니며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고 '하느님의 한 가족' 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갖는 신분의 변화는 첫째,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성도'에 해당하는 '하기온'(haghion)은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사용되던 구약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이다(다니7,18).
사도 바오로도 본문에서 성도를 구약적 개념으로서 사용하였다.
즉 유대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적, 지리적으로는 비록 외국인이지만, 한 성령 안에서 완전히 성도와 동일한 시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은 '하느님의 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된다.
여기서 '가족'에 해당하는 '오이케이오이'(oikeioi)의 원형 '오이케이오스' (oikeios)는 '가족','식구','권속'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한 가족'이라는 표현은 과거에 자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간택받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임을 자랑하며 유대인들이 자주 사용하던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혈통을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이 말이 적용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한 가족'은 하느님을 가장으로 모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 말은 더 이상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어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0)
에페소서 2장 20~22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교회를 건물에 비유하고 있다.
단순히 건물이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을 자기 육체로 허무신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세우신 성전이다.
이 성전 건물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터)위에 세워졌고 그 모퉁잇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에페2,20~21), 건물의 재료는 그로 말미암아 새로 난(거듭 난) 성도들이다 (에페2,22; 1코린3,9).
여기서 '사도들'과 병행하여 쓰인 '예언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신약 교회를 창설한 후에 교회가 이 땅에 뿌리 내리던 초대 교회시대에만 있었던 신약 교회의 예언자들을 가리킨다(1코린12,10.28.29; 에페4,11).
한편,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란 표현은 다음의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코린토 1서 3장 11절에서는 성전 건물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으며, 바로 그 전절인 코린토 1서 3장 10절을 보면 사도 바오로 자신이 그 기초를 놓았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본문의 기초 역시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라고 보고, 그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교회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복음 전파에 의하여 확장되어 간다는 의미가 된다.
둘째로, 본문의 '기초'를 건물의 '기초'라고 보지 않고, '시작'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지어진 새 성전에 놓인 최초의 돌로서 그 위에 계속해서 다른 성도들이 돌이 되어 교회라는 건물이 세워질 수 있는 '시작'이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기초'로 번역된 '테멜리오'(themelio)가 '기초','토대','터' 뿐만 아니라 '시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두 견해가 모두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따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의 복음을 깨달은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깨달은 복음을 전함으로써 교회의 '기초'를 닦았고, 또한 친히 교회 구성원의 구심점이 되어 다른 모든 성도들이 그들을 따라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모퉁잇돌'에 해당하는 '아크로고니아이우'(akrogoniaiu)의 원형 '아크로고니아이오스'(akrogoniaios)는 '끝'(마태24,31), '머리'(히브11,21)를 의미하는 '아크론'(akron)과 '모퉁이'(마태21,42), '구석'(사도26,26)을 의미하는 '고니아'(gonia)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모퉁잇돌' (the chief corner stone), '구석머리'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는 건물의 벽과 벽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서 건물의 기초로 삼을 뿐 아니라, 벽과 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기초들을 말한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건물을 세우는 자가 자신의 이름을 바로 이 모퉁잇돌에 새겨 건물이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였다.
본문은 이사야서 28장 16절의 말씀의 성취라고 볼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초이실 뿐 아니라, 교회가 그분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모퉁잇돌이심을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친히 자신이 직접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시온에 돌을 놓는다. 품질이 입증된 돌, 튼튼한 기초로 쓰일 값진 모퉁잇돌이다. 믿는 이는 물러서지 않는다."(이사28,16)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2,35~38)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5~36)
루카 복음 12장 35절에서부터 38절까지는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인데, 12장 35절에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와 관련해서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모습이다.
'페리에조스메나이'(periezosmenai; girded about)는 '띠를 매다'는 뜻의 동사 '페리존뉘미'(perizonnymi)의 완료 수동태로서 '이미 허리에 띠가 매여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허리띠를 지금 당장 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맬 것도 아니며, 이미 허리띠를 맨 상태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겉옷은 길고, 그 통이 넓은 것이었다.
따라서 일을 할 때나 여행을 하거나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겉옷을 허리띠로 졸라 매야만 했다.
본문에서 종들이 허리에 띠를 맨 이유는 문맥상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느님의 백성들도 혹시라도 나태해져 방심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준비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등불을 켜 놓은 상태로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켜 놓고'로 번역된 '카이오메노이'(kaiomenoi; burnning)는 '불을 켜다'는 뜻의 동사 '카이오'(kaio)의 현재 분사 수동태로서 '계속적으로 불이 켜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불을 켜 놓고 있는 목적은 어두워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며 기다리던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다(마태25,1~13).
따라서 본문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항상 깨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있어라'에 해당하는 '에스토산'(estosan; let be)은 '에이미'(eimi; be)동사의 현재 명령형 3인칭 단수로서 '계속적으로 있어라'는 뜻이다.
여기서 '에이미'(eimi)동사는 '있다' 또는 '존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동사가 여기서 현재형으로 사용된 것은 이러한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혼인 잔치'로 번역된 '가몬'(gamon; wedding banquet)의 기본형 '가모스'(gamos)는 혼인 잔치 자체를 가리킨다.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주로 밤중에 이루어졌기에, 그 주인이 혼인 잔치로부터 돌아올 때는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이 되므로, 그 종들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라는 교훈을 주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배경 설정의 이유만이 아니라, '혼인 잔치'는 천상에서의 기쁨과 영광의 혼인 잔치를(묵시19,9), '그 주인'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혼인 잔치의 집'은 하늘 옥좌를 암시함으로써, 종말론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으로 번역된 '아날뤼세'(analyse; he will return)의 기본형 '아날뤼오'(analyo)는 '풀다'는 뜻에서 발전하여 '떠나기 위해 천막을 걷거나 배의 닻줄을 푼다'는 점에서 '떠나다','출발하다'는 뜻도 갖는다.
여기서는 혼인 잔치 집을 떠난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주님으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옥좌를 떠나 내려오실 것을 상징하고 있다.
행복하여라, 깨어있는 종들!
-반영억라파엘신부-
베드로의 편지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5,8-9).
우리가 살아가면서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안 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몫이 있는데 그 몫에 충실하지 않으면 생각지도 않은 어둠이 우리를 지배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이만하면 됐다’는 안일함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이 다하여 하느님 안에 편히 쉬기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 자체가 깨어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깨어 있는 사람은 미래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인을 충실히 기다리는 종에게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종이 주인처럼 대접 받으며 주인이 그의 종처럼 처신합니다. 결국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축복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그러면서도 내일 당장 떠날 것처럼’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음이 행복입니다.
본당신부를 할 때에 가끔 예고 없는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마태24,44).는 예수님의 말씀을 핑계로 말입니다. 그러면 행복해 하는 분도 있지만 당황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집안정리를 잘 해 놓으신 분은 더없이 기뻐했고 그렇지 못한 분은 신부에게 자기 속을 다 보인 것 같아서 무안해 했습니다. 그러나 소위 ‘열심 하다’는 분의 가정에서 그 모습을 보면 제가 오히려 미안하고 죄송스러웠습니다.
물론 집안 정리가 잘 되었다고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것도 마음이 맑은 것도 아닙니다만 열심한만큼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도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늘 준비된 모습이 가정 안에 화목함과 평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실 집안 정리를 못해서 부끄러운 건 그래도 다행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 서있는 우리의 마음이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따라서 잠시라도 악에게 틈을 주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깨어있어 행복한 오늘입니다. 항상 깨어 안 밖으로 정리 정돈을 하며 주인을 잘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종은 그 신분상 겸손할 수밖에 없고 순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에게는 참으로 겸손하고 순종적이면서 바로 이웃에겐 그토록 교만하고 억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우리는 위선자입니다." 깨어있는 종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2024년 10월 22일 화요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피와 십자가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희생양은 필요한가?』(부제: 성경에 나타난 폭력과 구원)라는 책 제목이 떠오릅니다.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의 줄거리를 말한다면 그 출발점은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폭력성을 분출시킬 대상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 흔히는 어떤 약함이 있고 자신을 함부로 하여도 저항할 수 없는 이들이 희생양이 됩니다.
구약에서는 제사 때에 바치는 양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은 타자를, 나의 밖에 있는 무엇을 그 대상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몸소 희생양이 되시고, 그래서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는 이 사슬을 끊으십니다.
밖에서 희생양을 찾으시지 않고 스스로 희생양이 되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몸으로 받으시어 멈추게 하십니다.
이 정도가 제가 기억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고, 잔인하지 않은 방식으로 평화가 이루어졌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부질없는 일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셨을 때 하느님께서는 이미 다른 방법들을 다 써 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예언자들도 죽이고 그들의 말을 없애 버리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느님께서는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에페 2,16).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가 되셨으니,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안에서 희생양을 찾고 미움을 쏟아 내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안소근 실비아 수녀)
2024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하느님, 예수님, 성령만이 진리(眞理)다.
복음(루카12,35-38)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 허리(삶의 중심), 띠(진리), 등불(교회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을 뜻한다) 그러니까 내 삶의 모든 것을 성령께 의탁하라는 말씀이다.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 혼인잔치- 완성된 하느님 나라다. (마태22,2참조) 곧 우리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하느님의 오른편(진리)에 앉으신 그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 곧 재림을 뜻한다. 당신 신부를 데리고 혼인잔치에,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오심이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등(교회)에 기름(성령)을 간직한 처녀들이 신랑(예수님)을 마나 혼인 잔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갔고, 그것이 ‘깨어있음’임을 알려 주셨다. 곧 오늘 말씀은 교회의 불, 등불인 성령을 준비하고(깨닫고) 의탁 하여 기다리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재림 하시는 예수님을 곧바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 시간, 때를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씀 안에 숨겨진 진리, 하늘의 대속, 그 진리를 곧바로 깨닫고 믿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 주인이신 주님이 종(노예)에게 시중을 드신다. 이 모습,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미리 보여 주셨다.
(요한13,3-5)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 예수님의 옷, 곧 당신의 권위를 벗으시고 수건(띠), 진리를 두르시고 곧 진리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 예수님은 세상 나라의 것을 붙들고 있는 당신의 신부를 혼인 잔치,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데리고 들어가시기 위해 그 세상 것을 부수시는, 뺏어 버리는 자기 부인, 버림을 시키시는 그 밤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말씀이다.
그때 그 예수님을 받아 들이는 이는 행복하다. 영원한 빛, 영원한 복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 보호자 천주의 성령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흙인 나, 우리)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