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람-사랑>- 마태오 5,43-48

2009. 3. 7. 오전 7:35:48

글자

 

3월 7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 마태오 5,43-48

 

 

너희는 너희 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26,16-1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6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17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다.
18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곧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19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시편 119(118),1-2.4-5.7-8(◎ 1ㄴ)
◎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은 행복하여라.
○ 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 행복하여라, 주님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는 이들! ◎
○ 주님께서는 규정을 내리시어, 열심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아, 주님의 법령을 지킬 수 있도록, 저의 길이 굳건하였으면! ◎
○ 제가 의로운 법규를 배울 때에, 주님을 올곧은 마음으로 찬송하오리다. 주님의 규범을 지키오리다. 저를 아주 버리지 마소서. ◎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묵상 

 

 

사랑의 에너지는 감동입니다. 감동을 주고받을 때 사랑은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가능한 일일는지요?
원수는 원한이 맺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 이들은 많습니다. 삶의 의욕을 앗아 가는 이들입니다. 원인이 나에게 있든 그들에게 있든 그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큰 감동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담고 있는 언행과 몸짓입니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때로는 용감하게 투자해야 합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붙잡고 있다면 지금 당장 건너뛰어야 합니다. 그것이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자신에게 감동을 주고 상대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장애물 없는 길은 없습니다. 고통 없는 인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과 장애라고 느껴진다면 넘을 수 있는 힘을 청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감동을 주면 되돌아옵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라도 이 사실을 기억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사랑받는 어린이가 행복하게 자란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순 1주 토요일-완전한 사랑의 단계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 때 저를 매우 헷갈리고 곤혹스럽게 했던 말씀입니다. 10대, 20대 때는 생각하곤 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인 내가 하느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저는 이 말씀대로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담과 하와처럼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욕심에 무결점의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나중에야 이 말씀은 결점이 없는 초능력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어서 하느님처럼 되라는, 완전한 사랑을 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사랑”
수도생활 쇄신과 적응에 관한 교령,  “Perfectae Caritatis(완전한 사랑)"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을 이루는 것, 이것을 수도생활의 목적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 수도자만의 것이겠습니까?

그러면 무엇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입니까?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의로운 이나 불의한 이나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처럼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올해 한 해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인사이동 후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면서 구체적인 사랑의 목표를 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모 형제를 사랑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형제는 저의 기도가 제일 많이 필요한 형제는 아닙니다.
이 형제는 제가 사랑하기 힘들어 하는, 그래서 제가 극복해야 할 사랑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면 저는 사랑에 있어서 한 단계 올라가는 것입니다.

건물의 가장 꼭대기까지 가는데 계단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에 이르는데도 단계가 있습니다.  저의 일을 적극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가장 낮은 단계입니다.
저의 일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저의 일을 그저 흐뭇이 봐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저의 일을 좋게 보진 않지만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저의 일을 반대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저의 일을 훼방놓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저의 일을 완전히 망쳐놓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일이 아니라 저를 망가뜨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사랑의 단계들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단계를 밟아 올라가 마침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원수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저는 완전한 사랑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높은 계단일수록 그만큼 오르기 더 힘든 것처럼 제가 사랑하기 힘든 형제일수록 저를 사랑의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게 할 고마운 형제인 것입니다.

제가 한꺼번에 사랑의 정상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하여 저는 성녀 소화 데레사처럼 사랑에 있어서도 가난하고 겸손하게 작은 사랑부터 차츰 차츰 큰 사랑으로 낮은 사랑부터 차츰 차츰 높은 사랑으로 올라가고자 합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 형제회)-
 

사순 1주간 토요일 - 원수를 사랑하라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어린 소녀 순교자 마리아 고레띠 이야기를 한 번 더 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원수를 사랑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성녀만큼 이 말씀을 잘 실천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고레띠는 1890년 10월 16일, 이탈리아 앙코나 부근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마리아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가정 일을 도와야했습니다. 네뚜노라는 동네로 이사를 하였을 때 아버지가 과로로 돌아가셨고 마리아는 어머니까지 위로하면서 더 많은 일을 해 내야했습니다.  마리아는 거짓말을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으며 어머니께 겸손하게 순종하였고 매일 저녁 가족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성모신심이 강해지면서 정결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묵주기도를 바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마리아는 10개월이 넘게 첫영성체 교리를 틈틈이 받아 그리스도의 몸을 영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마리아가 일해 주는 가정에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지닌 20살 난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단순한 욕정으로 마리아를 탐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더는 기회를 노려 마리아가 혼자 남게 되자 그녀를 껴안았고 마리아는 강하게 뿌리쳤습니다. 어머니에게 말하면 모두 죽여 버린다고 무섭게 협박하고 그 날은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날,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은 못하고 어머니께 함께 있어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지만 어머니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결국 마리아를 집에 혼자 남겨놓습니다. 이미 알렉산더는 이번에도 자신을 거부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칼을 들고 마리아를 주방으로 끌고 갔습니다.

마리아는 “안돼, 안돼! 하느님이 원치 않아요, 그렇게 하면 지옥에 가요!” 하고 외쳤고 화가 치민 알렉산더는 거부하며 쳐든 손바닥을 시작으로 마리아의 온 몸에 십 수 번을 찔렀습니다. 마리아는 20시간 동안의 큰 임종 고통을 겪으면서도 어머니를 위로하고 가족을 걱정했습니다.  종부성사를 주시는 신부님은 고레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강도에게 하듯이 너도 살인자를 용서하겠느냐?”

“예, 신부님 그를 용서합니다. 하늘나라에서 그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겠어요. 그 사람도 저와 같이 낙원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 아름다운 부인이 서계신 것이 보여요.”하고 말했습니다.

알렉산더는 30년 형을 받고 감옥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완강하게 저항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고레띠는 그의 꿈에 나타나 그에게 백합꽃을 전해 주었고 그 환시를 본 후 알렉산더도 회개하고 모범적으로 살다가 풀려나와서는 고레띠의 어머니 아쑨따를 찾아가 무릎을 꿇게 사죄를 청했습니다.  어머니는 “마리아 고레띠가 너를 용서했으니 나도 너를 용서한다.”라고 하며 함께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알렉산더는 이후 카푸친 수도원에 들어가 정원사로 나머지 생을 보속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그릇된 길을 가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청합니다. 나처럼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게으름에서 도망치십시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원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원수까지도 성인으로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어쩌면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나에게 작은 잘못을 하는 사람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마리아 고레띠 성녀는 아주 구체적으로 무엇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인가를 가르쳐줍니다.   바로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 사람도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이웃은 우리 자신들의 거울입니다. 상대가 미워지는 이유는 결국 내 자신이 미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과 성모님은 누구도 미워하실 수 없었고 당신들을 박해하는 이들의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것이 내가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의 행복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합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극복되어야 할 ‘끼리끼리’ 문화>


   잠시라도 집단적인 따돌림을 당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공동체로부터 배척받고 울며 돌아선 적이 있으십니까? 그도 아니라면 어떤 장소에 갔었는데, 군중속의 철저한 고독을 맛본 적은 없으십니까? 그곳에 있는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가운데, 그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상황에서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탓에 저는 그런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마음 느긋하게 먹어보지만, 참으로 잊고 싶은 기억들입니다.


   사실 인간사회에서 ‘끼리끼리’ 문화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친분이 있는 사람, 안면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 만만하고 격의 없는 사람과 같은 식탁에 앉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라야지 지나치면 꼴불견이 되고 맙니다. 최근까지 학교 안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 현상’ 그것처럼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일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몇몇 청소년들과 자녀들 못지않은 충격으로 괴로워하시는 부모님들을 만나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평생 가슴에 안고 가게 될 그 쓰라림, 그 악몽 같던 순간의 느낌, 그 상처가 떠올라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보다 폭넓은 사랑, 큰 사랑, 관대한 마음을 지닐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늘 열린 마음으로, 깨어있는 자세로, 큰마음으로 주변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혹시라도 우리 가운데 그 누군가가 철저한 소외감에 피 눈물 흘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 그 누군가가 아무하고도 못 어울리고 혼자서 그 서먹서먹함을 힘겨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기 위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을 발견할 줄 아는 눈을 지닌 사람입니다. 기꺼이 그런 사람에게 다가설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제 겨우 16세의 나이에 노인들이 주로 걸리는 루게릭병(근육이 서서히 마비되어가는)에 걸려 절망 속에 살아가던 한 소년과 그를 끔찍이도 챙기는 천사 같은 친구의 아름다운 사연을 읽었습니다.


   천사 같은 친구는 루게릭병으로 움직임이 불편한 친구의 손발이 되어주기 위해 학년 초만 되면 교무실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합니다. 제발 친구와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고. 정말 착한 친구이지요. 피보다 진한 우정에 감동된 선생님들께서는 흔쾌히 청을 들어주어 둘은 3년간 단짝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고 하는군요. 3년 내내 화장실 출입은 물론 급식, 수업준비 등 모든 것을 도와준 친구의 모습에서 예수님 사랑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하느님, 때로 너무 멀리 계신 듯 여겨지지만, 의외로 가까이 자리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장 가까운 이웃들 안에 계십니다. 특히 배우자 안에, 자녀들 안에, 친구들 안에 계십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사람들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고 계십니다. 매 순간 처리해야할 지긋지긋한 일상의 일들 안에, 별 일도 아닌데 견디기 힘든 굴욕감을 주는 사소한 사건 안에, 원치도 않은 병치레 안에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세상만사 안에, 가장 가까운 이웃들안에 현존해계시는 우리의 하느님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오늘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17번 / 지극한 근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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