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시키러 왔다.”-- 루카 5,27-32

2009. 2. 28. 오전 6:10:26

글자
 

2월 28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 루카 5,27-32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시편 86(85),1-2.3-4.5-6(◎ 11ㄱ)
◎ 주님, 제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소서. 제가 주님의 진실 안에 걸으오리다.
○ 주님, 귀를 기울이시어 제게 응답하소서. 가련하고 불쌍한 이 몸이옵니다. 제 영혼을 지켜 주소서. 주님께 충실한 이 몸이옵니다. 주님은 저의 하느님, 주님을 신뢰하 는 이 종을 구해 주소서. ◎
○ 주님께 온종일 부르짖사오니,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께 제 영혼을 들어 올리오니, 주님, 주님 종의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
○ 주님, 주님은 어지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 주님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자애가 크시나이다. 주님, 제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제 애원하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 서.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32
그때에 27 예수님께서는 밖에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오늘의 묵상
 
 
복음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해합니다. 세리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투덜거립니다. 그것이 왜 불평의 이유가 되는지요? 부정한 사람과 어울리면 함께 부정해진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세리를 죄인으로 간주했습니다. 로마에 빌붙어 동족을 배신하는 이들로 치부했습니다. 그들과 어울리는 행위 자체를 죄악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진 자들’이 율법대로 사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안 만나면 되고, 죄인과는 어울리지 않으면 됩니다. 그러기에 바리사이들은 자기들끼리 함께 살았습니다. ‘바리사이’라는 말 자체가 ‘분리와 격리’를 뜻합니다. 민중과 구분되어 산다는 의미입니다.
진정으로 ‘가진 사람’은 남을 배려합니다.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일수록 감싸 줍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세리들과 어울리심으로써 상처 받던 그들의 편에 서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실력 있는 지도자는 혼자 나타납니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자신 있기’ 때문입니다. 실력 없는 지도자들이 여러 사람을 데리고 등장합니다. 그러고는 법을 따지고 권위를 내세웁니다. 능력이 모자란다는 표시입니다.
 
 
 
 사랑하면 자신이 보인다

제가 일반대학교에 다닐 때 웬만한 여자라면 저를 다 좋아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실제로 여자들이 저를 다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나들까지 저를 좋아하여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야, 내가 조금만 어렸어도 너랑 결혼하는 건데!”    그 누나는 그러나 저의 친구가 좋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누난 다른 사람 좋아하잖아요.”   “그건 그냥 하는 이야기고”  “내가 뭐가 좋은데요?”   “신앙심 있지, 성격 좋지, 잘 생겼지, 머리 좋지, 잘 놀지...”

이것을 읽으시는 분들은 제가 좀 이상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하실 지도 모르지만 사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왕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손을 내밀면 여자들이 다 좋아해 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니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갖출 것은 다 갖춘 일등 신랑감이라 자만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내 자신에 대한 불만이 늘어났습니다.   사실 저는 키가 작은 편입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한 자매는 키가 저보다 컸습니다. 키가 작은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그 사람과 함께 걷다보니 “넌 왜 이렇게 작냐?”라고 자신에게 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성격, 그것도 사람과 관계를 하다 보니 좋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신앙심, 능력 등 모든 것들이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되는 것은 비로소 사랑하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냥 지나쳐버릴 단점도 크게 보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스스로 ‘성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모든 법들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잘 지키는 사람들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 스스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아직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났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사랑하게 되었다면 자신들이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 눈에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은 심기가 불편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예수님 앞에서 스스로 죄인이라 느끼는 사람들이 진정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부족한 죄인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을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죄인이라 느끼는 것은 바로 하느님 앞에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을 믿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하고 다니건 크게 죄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저희 아버지는 결혼 전에 담배를 태우셔서 길 가에 침을 뱉는 버릇이 있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께서 침을 뱉는 것을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결혼하시기 전에 그 버릇 좀 고치라고 하셨고 그래서 바로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전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사랑하면 단점으로 드러나게 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바로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순절이 바로 이 작업을 하는 기간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어 주님을 죄송스럽게 해 드리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집중적으로 고쳐나가는 시간입니다. 이번 사순절에 특별히 자신의 잘못된 점 무엇 하나도 고치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아직은 주님을 덜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다급한 나머지 최후의 수단으로 본당이나 수도원으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상습적인 분들, 지능적인 분들도 계시기에 잘 봐야 합니다. 저는 그런 경우를 하루에도 몇 번씩 겪어봐서 그런지 관상만 봐도 딱 알아차립니다.

 

그분들, 대체로 이렇게 운을 떼십니다. “이제 다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차비가 없습니다. 한번만 도와주시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당장 오늘 하루 잘 곳이 없어서 그런데 찜질방가게 돈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지방에서 올라왔다가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그래도 양반입니다.


방이라도 하나 얻게 큰 걸로 ‘한 장’만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좋은 시설로 소개를 해드리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모른 채 하고 묵주기도를 드리는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외칩니다. “당신들 말이야 많이 긁어모았으면 나같이 어려운 사람에게 내놓을 줄 알아야지? 당신들, 후원회 만들어서 뭐해? 바로 나 같은 사람 도와줘야지!”

 

밤새 떠들면 주변 사람들에게 큰 폐가 될 것 같아 겨우 달래 가까운 식당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행색이 특별한 그분과 그에 못지않은 제가 식당으로 들어가니, 식사를 하시던 분들,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더군요. 주인집 아주머니는 난처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죄송한데요, 지금 밥이 떨어져서.” 그 순간 우리 아저씨, 또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죄 없는 아주머니에게 던집니다. “야, 이 #$%&#@!”

 

몇몇 손님들은 심상찮은 분위기에 식사를 하다 말고 일어서 나가시더군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막가는 사람’,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한 식탁에 앉는다는 것, 정말 괴로운 일입니다. 차라리 일어서는 편이 더 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리 레위(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고, 레위가 마련한 잔치에 참석하십니다. 그 잔치는 오랜 세월 몸담았던 세리직을 그만두고 떠나가는 레위를 위한 송별잔치 성격이 강했습니다. 마지막 잔치인 만큼 ‘걸게’ 잘 차렸습니다. 참석한 사람들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면면을 보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세리였던 레위였기에 초대받아 온 사람들은 다들 동료 세리들이었겠지요. 아니면 공금횡령과 관련된 거래처 직원들, 그렇고 그런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바리사이들의 표현에 따르면 ‘죄인’)이었습니다.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는 표현을 봐서 아마 그 잔치는 세리들,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 조폭들, 깍두기들, 똘마니들, 창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잔치석상에서 오가는 대화들도 충분히 예상이 됩니다. 누가 떼먹고 날랐느니, 누가 들통 나서 감방에 갔느니, 누가 칼침 맞았느니, 험한 말, 욕지거리들을 섞어가며 그렇고 그런 대화들이 오고 갔을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아무리 강심장이라 할지라도 편안하게 식사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불편할 것입니다. 밥맛도 떨어질 것입니다. 소화도 제대로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특별한’ 분위기에 전혀 개의치 않으십니다. 평상시보다 더욱 흥겨운 얼굴로 만찬을 즐기십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류인생’들과의 어울리십니다.

 

세리들이 차린 음식에 젓가락조차 대지 않고 있던 바리사이들이 투덜거립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이 순간 예수님께서 던진 말씀은 오늘 우리 죄인들에게도 정말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귀가 번쩍 뜨이는 말씀입니다. 너무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말씀입니다.

 

그 말씀 안에는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정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께 부여하신 사명의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부여되는 사명이기에 마음에 꼭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이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이 부끄러운 죄인을 질책하지 않으시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저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 편에 서셔서 용기를 주시고, 제 등을 두드려주시는 주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24번 / 은혜로운 회개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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