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월요일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 마르코 9,14-29
▥ 집회서의 시작입니다. 1,1-10
1 모든 지혜는 주님에게서 오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다.
2 누가 바다의 모래와 빗방울과 영원의 날들을 셀 수 있으랴? 3 누가 하늘의 높이와 땅의 넓이를, 심연과 지혜를 헤아릴 수 있으랴?
4 지혜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창조되었고, 명철한 지각도 영원으로부터 창조되었다. 5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다.
6 지혜의 뿌리가 누구에게 계시되었으며, 지혜의 놀라운 업적을 누가 알았느냐? 7 지혜의 슬기가 누구에게 나타났으며, 지혜의 풍부한 경험을 누가 이해하였느냐?
8 지극히 경외해야 할 지혜로운 이 한 분 계시니, 당신의 옥좌에 앉으신 분이시다.
9 주님께서는 지혜를 만드시고, 알아보며 헤아리실 뿐 아니라, 그것을 당신의 모든 일에, 10 모든 피조물에게 후한 마음으로 쏟아부으셨으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주님의 사랑은 영광스러운 지혜이며, 그분께서는 당신을 보여 주실 이들에게 지혜를 베푸시어, 당신을 알아보게 하신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29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굽니다. 몇 년째 보아 온 일입니다. 아버지는 또다시 답답한 가슴이 됩니다. 하지만 곧 잔잔해졌습니다. 처음 느끼는 경험입니다. ‘어쩌면 이분은 내 아들을 살려 주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아버지는 애절하게 말합니다.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시고는 말씀하십니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너에게 명령한다. 이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들어가지 마라.”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씀인지요? 아버지는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께서 아이를 붙잡고 있던 ‘악한 기운’을 없애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사로잡고 있던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 주신 것입니다.
어둠이 아홉이고 빛이 하나뿐인 사람일지라도 그 ‘하나’를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결국은 밝은 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아홉이고 불행은 하나뿐인데도 ‘하나인 아픔’을 붙잡고 살면 불행한 인생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아버지는 희망 ‘하나’를 붙잡고 살았기에 예수님을 만났고, 아들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은 긍정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우선 가능성에 대해 긍정을 하는 것입니다.
믿는 대로 될 거라는 긍정입니다.
될 거라고 긍정을 해야 시작을 하고,
시작한 것에 힘을 다 쏟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능성에 대해 믿는 것만큼 힘을 다 쏟을 것이고
그 때 가능성은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더 분명합니다.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믿음은 능력에 대해 긍정하는 것입니다.
가능성에 대한 긍정과 마찬가지로
능력, 힘이 있다고 긍정해야 엄두를 내겠지요.
그리고 능력에 대해 긍정을 할 때 힘을 다 발휘하고,
힘을 다 발휘할 때 원하는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 능력에 대해서 믿지 못합니다.
나 자신을 보면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능력에 대해 긍정한다는 것은
능력을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긍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쁜 영에 사로잡힌 아이의 아버지는
하실 수 있다면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청하였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습니다.
주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자 믿는다고 답하지만
이내 믿음이 없는 자기를 도와 달라 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없는 믿음을 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달라고 하는 것도 기도이지만
기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 우리의 기도는 능력의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기와 다른 인간의 능력을 보았기에 믿지 못했는데
이제 인간을 보지 않고
시선을 끊임없이 능력의 하느님께 돌림으로써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쁜 영을 쫓아낼 수 없었는지 묻는 제자들에게
기도하지 않고서는 쫓아낼 수 없다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기도로 능력의 하느님을 보며
능력의 하느님에 힘입어 무엇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연중 7주간 월요일 - 믿음과 기도
제가 신학생 때 본당 신부님과 식사를 하는데 신부님께서 교포 사목을 하실 때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신자들이 갑자기 달려와서는 마귀 들린 사람이 있다고 신부님께서 좀 오셔서 마귀를 쫓아내달라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그런 것에 대한 경험도 없고 쫓아낼 자신도 없고 겁도 났지만 사제이기에 얼른 성수와 구마경이 있는 준성사 예식서와 십자가 등을 챙기고 그들을 따라나섰습니다. 정말 한 집에 들어가 보니 마귀 들린 사람이 무섭게 변한 얼굴과 목소리, 눈초리로 온갖 욕설을 사람들에게 퍼붓고 있더랍니다. 신부님은 십자가를 들어 보이고 구마경을 읽고 성수를 뿌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마귀는 오히려 비웃기만 하고 큰 효과는 없더랍니다. 오히려 신부님을 욕하면서 자신을 쫓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신부님은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당황해하시다가 어디서 생각이 나셨는지 갑자기 신자들을 마귀 들린 사람 주위에 둥그렇게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묵주를 꺼내라고 하시고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묵주기도를 시작하니 그렇게 떠들던 마귀는 겁을 집어먹은 듯싶었고 2, 3단을 넘어갈 때는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신부님과 신자들은 계속 묵주를 돌렸고 4단이 되자 마귀는 신음소리와 기어 나오는 목소리로 마지막 발악을 하였습니다. 5단이 되자 마귀는 그 사람에게서 떠나갔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벙어리 들린 영을 예수님께서 쫓아내십니다. 처음엔 예수님의 제자들이 쫓아내려고 하였으나 그 영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그 영이 그 아이에게 붙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병도 시간이 지나면서 깊어지고 결국엔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처럼 악한 영도 사람 안에 오래 있으면 그만큼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이미 악한 영을 쫓아내는 권한을 주셨는데 워낙 영이 그 사람과 한 몸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의 힘으로는 그 영을 쫓아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를 먼저 야단치십니다.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 아이의 부모도 아이의 상태가 너무 심각한 것을 알기에 이렇게 청합니다.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하느님께는 너무 늦은 때도 없고 불가능한 일도 없습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는 영을 쫓아내십니다. 영이 소리를 지르고 떠나자 아이는 마치 죽은 것처럼 땅에 쓰러졌고 사람들도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하였습니다. 이 의미는 아이의 생명력이 온전히 나쁜 영에 의해 빼앗겨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다시 새로운 생명의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악령의 무기력한 힘이 아니라 성령의 생명의 힘이 새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왜 자신들은 그 영을 쫓아낼 수 없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이 세대를 꾸짖으시는 것은 약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 약한 믿음의 증거는 기도의 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는 절대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으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기도하면서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기도는 하지 않고 쫓아내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영성만을 비판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영성보다도 함께 기도할 때 나오는 힘이 더 클 수 있음을 믿지 못한다면 예수님도 지금의 우리들에게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라는 꾸중을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면 불가능한 것이 없음을 절대 의심하지 말아야하겠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슬픈 광대처럼>
이런 말들을 자주 사용합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정말 마음에 새겨들을 일입니다. 병에 걸리면 컨디션 관리나 영양보충에 더욱 신경을 쓸 뿐만 아니라,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병원엘 가야지요.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 따른 제대로 된 치료를 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는 당연히 해야지요. 안수도 받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안 좋은 사람 끌고 이곳저곳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굿을 벌인다, 기(氣)치료를 한다, 심령치료를 한다며 여러 군데 다니다가 병세를 더욱 악화시킨 사람들을 봅니다.
성장기에 있는 아이가 반항기가 많고,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를 치면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분명히 심리적, 정서적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치료적 접근이 필요하지요. 아이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보다 집중적인 사랑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에게 영적인 문제가 있다고 며칠씩 감금시킵니다. 밥도 주지 않고 며칠이고 굶깁니다. 악령을 쫓아낸다며 구타를 서슴지 않습니다.
정말 위험한 모습들이지요. 병이나 크나큰 시련이나 감당하기 힘든 문제 앞에서 우리 인간 측의 과실이나 실수인지, 아니면 정말 악의 세력에 의한 것인지 잘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끔씩 우연의 일치로 선무당도, 돌팔이도, 용감 무식한 사람도 제대로 맞출 수가 있습니다. 한건 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럴 그런 사람들 더욱 무섭지요. 기고만장해집니다. 사기충천합니다. 메시아라도 된 듯합니다. 뭐든 다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제자들이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셔서, 개인적 능력 발휘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겸손하게 사용하라고 주신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셔서 몇 번 치유의 능력을 발휘한 후 제자들은 잔뜩 겉멋이 들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치유활동하시는 것을 어깨너머로 봐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잔뜩 목에 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인간적인 마음으로 치유를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어, 이상한데, 분명히 잘 됐는데, 이게 아닌데…’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둘러선 사람들이 의혹에 찬 시선으로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들 사이비 아냐?’하는 수군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마치 묘기부리다 떨어진 슬픈 광대들처럼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제자들이 갑자기 이토록 당혹한 현실 앞에 직면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대로 지적하신 것처럼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결국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 하나는 이것입니다. 기도가 배경이 되지 않는 사목이나 치유활동은 헛것입니다. 사이비 무당이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도가 선행되지 않는 봉사나 사도직 활동은 자기과시일 뿐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당부하십니다.
“항상 기도하십시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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