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파타!’= ‘열려라!’ *-마르코 7장 31-37절

2009. 2. 13. 오전 5:57:00

글자
 

2월 13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마르코 7장 31-37절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3,1-8
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8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시편 32(31),1-2.5.6.7(◎ 1ㄱ)
◎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행복하여라!
○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이 덮여진 이!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얼에 거짓이 없는 사람! ◎
○ 제 잘못을 주님께 자백하며, 제 허물을 감추지 않고 말씀드렸나이다. “주님께 저의 죄를 고백하나이다.” 그러자 제 허물과 잘못을 주님께서 용서하여 주셨나이다. ◎
○ 주님께 충실한 이들이 모두 곤경의 때에 기도드리나이다. 큰물이 닥친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
○ 주님은 저의 피신처. 곤경에서 저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환호로 저를 에워싸시나이다. ◎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오늘의 묵상 
복음 말씀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십니다. 그러시고는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한마디 말씀만으로도 얼마든지 고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시던가요?
한 어린아이가 물고기를 키웠습니다. 어느 날 물고기가 죽자 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 울지 마라! 또 물고기 사 줄게.” 이것은 돈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물고기와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슬픔에 먼저 동참해야 합니다.
“물고기가 죽어 우는구나. 그래 참 안됐다. 엄마랑 함께 묻어 주자.” 이러한 말에 아이는 위로받습니다. 아픈 감정의 치유를 배우는 것이지요. 슬픔이 없으면 인간은 쉽게 교만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아픔을 같이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행동을 취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넓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에파타!’는 ‘열려라!’라는 뜻이라고 성경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말씀 한마디에 그 사람은 입이 열리고 귀가 뚫렸습니다. 제자들은 너무 놀랐던 것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발음 그대로’ 적어 놓은 것입니다.
 
 

연중 5주간 금요일 - 귀를 막아야 들린다

저는 일반 대학교를 다니다가 신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친한 대학 친구들도 몇몇이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 결혼하여 직장들을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신학교를 가겠다고 하니까 다들 매우 놀랐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항상 몰려다니며 술도 마시고 재밌게 놀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신학교 들어간 이후에 만났을 때는 서로 이야기하는 소재들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여자와 주식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어 만날 때 그들은 저를 단란주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한 친구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갔는데 그들은 함께 술을 마실 도우미들을 능숙하게 골랐습니다. 마치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이 여자들이 줄지어 들어와서 서 있으면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팀이 지나갔고 거기 자주 오던 한 친구는 마담을 부르더니 숨겨 논 에이스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런 모습을 보며 더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친구가 도착하여 저는 그 친구와 인사만 하고 바쁜 일이 있는 것처럼 그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젠 저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즐길 소재거리도 공통되는 게 없구나!’  그리고는 연락이 점점 단절되고 지금은 거의 연락을 못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서로 각자 접하며 사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할 이야기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제가 가정생활이나 주식에 관해 할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그들도 하느님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귀머거리-벙어리를 고쳐주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 벙어리가 되는 것이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알고 놀랐었습니다.  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듣지 못해서구나!’ 예수님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당신 침을 바른 손가락을 벙어리 혀에 대십니다. 이 행위는 벙어리가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의 성령님을 혀에 넣어주시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나오는 물은 항상 생명수, 즉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하는 말들은 가치 있는 말들이고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영적인 힘과 가치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요나가 사십일이 지나면 그 큰 니느웨가 잿더미가 된다고 말하자 이방인들이고 이스라엘 적국의 수도였던 니느웨 사람들 모두가 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같은 말이라도 영적인 말은 큰 힘과 가치가 있지만 영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 말은 아무 가치도 없고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상처까지도 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하시는 말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하는 말의 차이는 바로 그 영적인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은 말들을 하고 살지만 주님께서 기뻐하실 말을 과연 하루에 몇 마디나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어쩌면 하루 동안 한 말 중에 가치 있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 벙어리의 모습입니다. 말만 많이 한다고 해서 벙어리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벙어리는 영적인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세상에 살며 세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자신의 이야기들만 한다면 결국 영적인 벙어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영적이고 가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그 혀를 풀어주시기 위해 먼저 하신 것이 그 사람을 사람들로부터 떨어뜨려놓고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는 일이었습니다. 어제 ‘왜 귀와 입을 열어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귀를 막는 행동을 하셨을까?’를 차를 타고 가며 묵상하다가 제 손으로 저의 귀를 막아보았습니다.  갑자기 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안 들리며 고요해졌고 더 크게 들리는 것은 내 자신의 목소리였습니다. 아주 작게 이야기해도 내 귀를 막고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은 안 들려도 자신에겐 크게 들립니다.

예수님께서 혀를 풀어주시기 이전에 하신 일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을 먼저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소리는 물론 내면에서 오는 하느님의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밖에서 오는 온갖 소음 때문에 사실은 하느님의 소리와 내 양심의 소리까지도 듣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영적인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듣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들어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와 눈을 계속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혹은 사람들과의 우스갯소리들로만 채운다면 입에서 나오는 말들도 결국 그것들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하루에 다만 몇 분이라도 세상 것에 귀를 막고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그러면 저절로 혀가 풀려 힘 있고 가치 있고 그래서 영원히 남을 말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전삼용 (요셉) 신부 +

 

연중 5주 금요일-열린 사람, 막힌 사람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오직 나만>


    돈보스코 성인의 예방교육 방법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아무래도 ‘교육 대상의 개별화’ ‘1대 1 맞춤형 교육’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대 다수, 1대 그룹이 아니라 ‘나와 너’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가는 친밀한 우정관계 안에서 돈보스코 예방교육은 활짝 꽃피어나게 됩니다.

돈보스코와 생활했던 대다수의 아이들은 어떤 의미로 그의 독특한 교육 방식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돈보스코는 단 한명도 빼놓지 않고 모든 아이들에게 골고루 듬뿍듬뿍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대부분은 ‘돈보스코는 나만 각별히 사랑하고 계시는 것이 분명해. 돈보스코의 마음 안에는 온통 나밖에 없을 거야!’라고 착각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고루 다 사랑하시만, 또 다른 한편으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접근하십니다. 내게 다가오시는 모습이 얼마나 다정다감하신지, 나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대하시는지, 마치 이 세상에서 나만 사랑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는 오늘 복음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한 사람을 치유하시는데,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치유하십니다.

 

이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환자의 치유에만 전념하겠다는 예수님 의지의 표현입니다. 비록 지나가다 만난 한 사람이지만 지금은 오직 이 사람과만 개별적으로 만나겠다, 이 사람에게만 정성을 기울이겠다는 예수님 마음입니다. 환자를 위한 참으로 각별한 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련의 치유과정도 동일한 맥락에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말씀 한 마디면 모든 것이 치유되는 능력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치십니다. 당신 손가락을 환자의 두 귀에 넣으십니다.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 숨까지 내쉬십니다. 이윽고 “에파타!”하고 외치십니다.

 

비록 간단한 접촉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과분한 은총입니다. 비참한 한 인생길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그 크신 하느님께서 직접 당신 손을 펼치시어 작고 부당한 한 인간의 신체에 접촉하십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 가까이 다가오시려는 하느님, 어떻게 해서든 우리와 접촉하시려는 하느님의 애틋한 사랑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이 환자를 치유시킵니다. 결국 하느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한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결국 하느님의 다정다감한 마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치유과정’은 우리가 봉헌하는 매일 미사 때 마다 다시금 반복됩니다.

말씀의 전례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친히 당신 손가락을 우리 귀에 넣으시어 말씀 안에서 당신을 알아 뵙게 하십니다. 성찬의 전례 가운데 예수님의 몸과 피는 친히 우리의 오장육부 깊숙한 곳까지 찾아오십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미사는 치유의 성사입니다. 우리가 매일 봉헌하는 미사는 기적의 성사입니다. 우리가 매일 거행하는 미사는 사랑의 성사입니다. 이 미사를 통해 매일 우리는 치유의 기적을 계속해나갈 수 있습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75번 / 아보다 더 큰 은혜와

 

 

 

 

저희 수도원에서 하는 농담 중의 하나가 “영어가 너 때문에 참 고생이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살 때 저 때문에 영어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고 끙끙대는 저이니  영어가 제 혀와 입을 열고 나오는데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영어가 나 때문에 고생이 많구먼 하고  이렇게 바꿔 말하면서 허허 웃을 수 있었다면 재미도 있고  비록 말을 못해도 여유를 잃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그 당시 저는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형제들이 “Leonard, you are so serious."  레오나르도 너는 너무 심각해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누가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다름 아닌 바보이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아무 말 못해 답답한 것은 물론 해야 할 말도 못하니 공동체 안에서  아무 힘도 없는 불쌍한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미국 가기 전에는 그래도 제가 공동체 원장이요 양성의 책임자였는데  말을 못하니 이곳에 있으면 내가 가르칠 학생들한테도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한심한 처지였습니다.
그러니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답답한 고통 이상의 사회적 약자로 살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 아닌 한 자존감을 상실한 채 관계적 장애인으로 살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 귀머거리요 벙어리인 사람의 귀를 주님께서 열어주시고 입을 열어주심은 막히고 끊긴 관계를 열어주고 이어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복음을 묵상하는 저는 물리적인 귀와 혀는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에 안심하고 이 복음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멀쩡한 귀를 가지고도 듣지 못하고 멀쩡한 입을 가지고도 말을 하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두고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저 사람은 꽉 막힌 사람이야!  저 사람 참 열려 있어!
꽉 막힌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꽉 차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꽉 차 있으면 다행이지만 자기 주장으로 꽉 차 있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여백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주장으로 꽉 차 있어 다른 주장을 받아들일 여백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으로 꽉 차 있어  다른 좋은 생각을 받아들일 여백이 없습니다.

어떤 때 저를 보며 놀랄 때가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지나고 나서 보니 별 거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저를 보면 저는 저를 사랑하지 않았고  저의 삶을 사랑하지도 않았으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당연히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열린 사람은 자기를 버리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자기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小我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大我를 사랑하고 凡我와 하나 되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 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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