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자 없는 양들 *- 마르코 6,30-34

2009. 2. 7. 오전 6: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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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연중 제4주간 토요일 - 마르코 6,30-34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도 그분께 바치는 훌륭한 제물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행을 베풀고 나눔을 실천한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제물이 된다. 이런 것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제물이다. 평화의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신다(제1독서). 사도들은 예수님께 돌아와 자신들이 행한 일을 보고한다. 모두가 기적 이야기였다. 병자를 낫게 하고 마귀를 몰아냈다는 보고였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조용히 쉬게 하신다. 휴식을 통해 하느님의 능력을 묵상하게 하신 것이다(복음).
 
<위대한 목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5-17.20-21
형제 여러분, 15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16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17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하느님께 셈을 해 드려야 하는 이들로서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식하는 일 없이 기쁘게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탄식은 여러분에게 손해가 됩니다.
20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21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시편 23(22),1-3ㄱ.3ㄴ-4.5.6(◎ 1)
◎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도다. ◎
○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주님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주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옵니 다. 주님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주나이다. ◎
○ 주님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하나이다. ◎
○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 ◎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0-34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오늘의 묵상 
제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보고합니다. 모두가 놀라운 일입니다.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들을 낫게 했으며,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기쁨을 준 일입니다. 이 모든 행동은 ‘하느님의 능력’을 지녔기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쉬게 하십니다. ‘주님의 능력’에 대해 감사할 시간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면 누구나 교만해집니다. 본인은 평상시처럼 행동해도 사람들은 금방 느낍니다. 감사와 겸손한 자세만이 그분의 능력 안에 계속 머물게 합니다.
봉사자에게서 주님의 능력이 빠져나가면 자신의 능력만으로 일하려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자연히 역정을 내고 강압적이 됩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서로가 지칩니다. 교회 봉사자들이 가끔씩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이유입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스승님의 넓고 따뜻한 배려입니다.
신앙인 역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도 ‘당신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겸손과 감사와 열정을 지니면 마음속에서 움직이는 ‘그분의 능력’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연중 4주간 토요일 - 기도를 넘어서 

며칠 전에 작년 제가 추천서를 써준 수녀원 입회한 자매가 휴가를 나왔습니다. 저의 첫 딸이니만큼 잊지 않고 기도해주고 있지만 결국 자신의 길은 자신이 가는 것이기에 수녀원 들어가서 어떻게 살라고 이것저것 말을 많이 해 주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기도에 맛을 들여라.’였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잘 배워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는 시간인 기도가 휴식과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와 일이 되어버린다면 정말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녀원에서 의무로 해야 하는 성체조배 시간이 한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점심 설거지를 하고 잠깐 혼자 성체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함께 성체조배 하는 시간보다 더 좋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애인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나는 것보다는 단 둘이 만나는 것이 더 행복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복음전파를 마치고 예수님께로 다시 모여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와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라고 하시며 배를 타고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함께 떠나십니다. 사막의 교부 안토니오 성인은 사막에서 은수생활을 하다가도 도시에 나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막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도시에 머물지 않고 왜 자꾸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으로 돌아가느냐고 사람들이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지요.”

성인에게는 사막이 바로 물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친밀히 만나는 것은 힘들어집니다. 정신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외딴곳으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데려가신 이유는 번잡한 세상을 떠나서 사도들이 당신과만 머물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다시 힘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치에만 있는 것을 보고 언니 마르타는 예수님께 동생도 좀 일을 하라고 말씀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너무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참으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교회를 위해 외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머물 줄 아는 영성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배가 떠나는 것을 보고는 육로를 통하여 배가 도착할 곳에 먼저 가서 기다립니다. 좀 쉬려고 했던 사도들은 실망을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아서 당신이 직접 많은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외딴곳으로 가서 사도들과만 함께 머물며 그들에게 휴식을 주시지 않고 다시 일을 시작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기도로 힘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들이 원하면 그 기도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보다 더 큰 것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저도 본당에서 힘들게 일하다 잠깐 시간 내어 혼자 조용히 기도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와서 면담이나 고해성사를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나가기 싫습니다.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 좋은 것을 알면서도 조금 짜증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박차고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기도보다는 항상 사랑의 실천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는 자신의 수도원에서 성체 앞에만 앉아있는 수녀님이 있었는데 그 수녀가 성당에만 앉아있는 것을 보면 불러서 일부러 다른 일을 시키곤 하였습니다. 휴식에만 푹 빠져있어 일을 하려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영적 게으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선 시간 있을 때면 외딴곳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는 것을 휴식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하는 것, 그리고 그 다음은, 기도 중에 혹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그 달콤한 기도도 포기할 줄 알아야한다는 것입니다.

  + 전삼용 (요셉) 신부 +

 

 
 
 연중 4주 토요일-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되도록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오늘의 히브리서는 히브리서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마지막 당부를 하며 축복을 빌어주는 부분입니다.

먼저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도 하느님께 찬양 제사를 바치라고 당부하는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 제사는 다른 것이 아니고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라고 애기합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너희 서로 우애하며 사는 것이라고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많은 가정이 제사 때 모이기만 하면 싸움박질하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같이 기리고 나누지 않고  부모의 재산을 더 가지려 시비를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결국 사랑은 남기지 못하고 재산만 남긴 셈이고  부모의 일생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처럼 당신을 바치심으로써 대사제와 착한 목자의 모범을 보여주셨는데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도 실패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어서 축복을 빌어줍니다. 축복은 바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당부가 상대에 대한 바람을 상대에게 직접 표현하는 것이라면 축복은 상대에 대한 바람을 하느님께 표현하면서 다른 한 편 상대에게는 합당한 축복의 수혜자가 되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먼저 축복을 주신 하느님을 얘기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위대한 목자를 양들인 우리에게 주셨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끌어올리심으로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음을 얘기합니다.
그런 다음 과거 이렇게 해주신 분이 앞으로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기를.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세 가지를 청하지만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련해달라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두 가지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두 가지도 아니고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되는, 그런 우리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우리에게는 내가 원하는 것과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이 다릅니다.
바오로 사도가 한탄하듯 하느님 뜻대로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할 때 또 다른 내가 내 원하는 대로 하고 맙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서 해주시지 않으면 나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나이지만 그러할 수 있는 내가 되지 못하면 하느님 뜻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축복의 기도를 합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의로우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당신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불쌍한 우리로 하여금 실천케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항상 원하게 하시어, 내적으로 깨끗해지고
내적으로 빛을 받고 성령에 불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아멘”
 
                                  - 김찬선 레오나르도 형제 (작은 형제회)-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예수님께서 꿈꾸셨던 교회의 모습>


   고된 전도여행을 마친 사도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사도들은 신나게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했습니다. 제자들의 성공담을 듣고 계시던 예수님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화기애애한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람된 일을 성취한 끝에 오는 흐뭇함과 만족감, 기쁨과 생명력이 충만한 모습이 바로 오늘 복음 장면입니다.


   오랜, 그리고 강도 높은 전도여행이었기에 제자들의 심신은 그야말로 파김치처럼 지쳤겠지요. 과로와 격무로 쓰러지기 직전인 제자들이었기에 예수님께서 ‘휴식’을 선포하십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제자들은 장사진을 치고 있는 군중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작은 배를 한척 구합니다. 몰래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으로 옮겨갑니다. 오랜만의 맛보는 달콤한 휴식이었기에, 행복에 겨웠던 제자들은 희희낙락해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오랜만에 다리 쭉 뻗고 좀 쉬겠구나!”


   그러나 웬걸 호수 건너편에는 육로를 통해 ‘죽어라고’ 달려온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있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고 멋쩍은 얼굴로 제자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복음 선포와 병자 치유에 식음조차 잊고 매진하던 예수님과 사도들, 수도 없이 몰려들던 사람들, 피곤에 지쳐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기를 원하지만,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던 백성들… 참으로 부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몰려드는 백성들 틈에 파묻힌 예수님과 제자들!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높게 쳐진 교회의 담, 적막함만이 맴도는 성당, 자신의 영역 확보나 취미활동, 관심사에만 몰두할 뿐, 백성들의 고통과는 별개인 사목자, 떠나가는 양떼들… 교회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상처와 고통에 시달린 백성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달려올 수 있도록 활짝 문을 개방한 교회, 주님을 위해, 병고로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쉴 틈도 없는 교회, 각 층의 대상자들에게 맞춤형 서비스가 활발히 진행되는 섬김과 봉사의 교회야말로 예수님께서 꿈꾸셨던 교회이자 건설하셨던 교회였음이 분명합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55번 / 착하신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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