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제자를 파견) 마르코 6,7-13

2009. 2. 5. 오전 9:30:59

글자
 
2월 5일 목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 마르코 6,7-13
 
아가타 성녀는 이탈리아 남쪽의 시칠리아 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할 것을 결심하며 평생을 동정으로 살았다. 그녀는 박해자들에게 붙잡혀 여러 번 혹독한 심문을 받았지만 끝끝내 신앙을 증언하다가 순교하였다. 성녀에 대한 신심은 초기 교회 때부터 널리 전파되어 있었다. 성녀의 이름인 ‘아가타’는 ‘선하다, 착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2,18-19.21-24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만져 볼 수 있고 불이 타오르고 짙은 어둠과 폭풍이 일며 19 또 나팔이 울리고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 말소리를 들은 이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이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21 그 광경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모세는 “나는 두렵다.” 하며 몸을 떨었습니다.
22 그러나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23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24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뿌리신 피, 곧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그분의 피가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묵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맨몸으로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제자들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기도했고 스승님의 능력에 기대를 걸었을 것입니다. 없으면 매달리지만, 많으면 쉽게 방심합니다. 계속 있을 것이라 착각하게 됩니다.
재물만이 아닙니다. 지식도 능력도 ‘주변의 사람’도 풍족하면 마음을 풀어 버립니다. 영원히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만에 빠지는 것이지요. 애절한 마음이 사라지면 영적 에너지 역시 빠져나갑니다. 하느님의 기운이 떠나면 ‘어둠의 기운’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삶이 밝지 않습니다. 마음도 얼굴도, 생각마저 어두워집니다. 쉬운 것만 원하고 재미있는 것만 찾게 됩니다. 일에서 짜증을 느끼고 ‘좋은 소리’만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에 스승님께서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가난’을 주문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미 주어져 있는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의 가난은 무소유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것’은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글자 그대로 ‘자유로운 삶’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지요? 아니, 무엇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는지요? 오늘 복음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연중 4주간 목요일 - ‘가난’이 가장 쉽다는데  

한 신학생이 저에게 해 준 이야기입니다. 그 신학생의 본당 신부님은 매우 짠돌이라고 합니다. 신학생들에게 모처럼 마음먹고 사 준 가장 좋은 식사가 자장면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신부님이 은퇴 신부님을 찾아뵙는다고 가시는데 함께 따라갔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방에서 은퇴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 신학생은 문틈으로 살짝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본당 신부님은 수백만 원은 될 듯한 두터운 돈 봉투를 은퇴 신부님에게 주시고 계셨습니다. 그 신부님은 사실 자신이 절약한 것으로 많은 분들을 돕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 보내시면서 사도들에게 가장 강조하시는 것이 바로 ‘가난’입니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가난을 강조한 이유는 여라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주님의 일을 하는데 돈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러니 부족한 것이 있으면 주님께서 알아서 다 채워 줄 것이니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성적으로 가난을 우선적으로 강조하신 것에는 더 큰 뜻이 들어있습니다.

죄의 뿌리는 세 가지입니다. 삼구(三仇), 즉 ‘세 가지 원수’라고 하는데 마귀, 육신, 세상입니다.

 마귀는 곧 교만으로 뱀의 모양으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이 교만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뿌리내리고 있어서 죽기까지 온전히 제거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한 번 뛰어내려보라고 한 것도 바로 예수님께 교만함의 죄를 짓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마귀는 성경에 천사들이 와서 발을 받쳐 준다고 쓰여 있느니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 안에는 하느님의 아들임을 자랑해보고 하느님을 시험해보라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느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예수님을 의심하여 물에 가라앉았던 것처럼 믿음을 깨뜨리는 가장 큰 적이 교만입니다. 베드로는 밀려오는 큰 파도를 보면서 예수님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더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에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시며 하느님을 의심하여 시험하지도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이 교만을 이기는 것이 순명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겸손해지지 않으면 순명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지만 똑같은 신적 위치를 보존하려하지 않으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십니다. 이로써 첫 조상의 교만의 죄를 기워 갚으신 것입니다.

 두 번째 원수는 육신, 즉 성욕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자신들의 성적인 부위를 가리게 됩니다. 이는 참 사랑을 하지 못하고 이제 성욕이 생겨 자신을 주는 사랑이 아닌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랑으로 변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탄이 예수님께 돌로 빵을 만들어보라고 한 것은 기적을 통하여 육체를 만족시켜보라는 뜻이었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뉴스에서도 수 없이 그 결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만족시키면서 결국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예수님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시며 육체가 아니라 영적인 것을 우선으로 추구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육체적 욕망을 죽여 가는 것이 정결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통제할 수 없으면 육체의 노예가 되고 스스로 자신의 영을 죽이게 됩니다.

 세 번째 죄의 뿌리는 세상, 즉 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자식이 카인과 아벨이었습니다. 이미 사회가 형성 된 것입니다. 사회가 형성되다보니 서로를 비교하게 되고 자신에 비해서 너무 잘 살게 되는 동생이 싫어졌습니다. 결국 카인은 아벨을 죽이고 맙니다.

마귀는 예수님께도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보여주며 자신에게 절만하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부귀영화가 자신의 손아귀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돈으로 얼마나 사람들을 휘두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이 아닌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며 마귀를 물리칩니다. 이는 하느님께 가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의 집착을 끊는 것이 가난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난을 우선적으로 살라고 하시는 이유는 가난하지 못하면 다른 정결이나 순명은 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세 가지 원수, 즉 교만, 성욕, 돈 중에서 가장 이기기 쉬운 것이 돈입니다. 왜냐하면 성욕이나 교만은 인간의 내면 더 깊숙한 곳까지 뿌리박혀 있는 것이지만 소유욕은 더 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유욕을 이기지 못하면 성욕이나 또 더 나아가 교만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외적으로 드러나는 가난조차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분의 정결이나 겸손은 더 증거하기 힘든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것보다도 가장 구체적인 가난한 삶에서부터 그리스도를 닮도록 노력해야하겠습니다. ‘자신, 자신의 가정, 내가 먼저 잘 살아야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증거할 어떤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나눌 줄 아는 삶, 이것이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시작입니다.

 + 전삼용 (요셉) 신부 +

 
 
연중 4주 목요일-천국과 지옥의 차이
 
천국과 지옥의 차이에 대한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묘사가 있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이나 똑 같이 진수성찬이 차려져있고  그것을 먹기 위한 젓가락도 길이가 똑 같습니다.
그러나 그 젓가락은 너무 길어서 음식을 자기 입으로는 집어넣을 수가 없고  상대의 입에만 넣어줄 수 있는데  천국에서는 서로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기에  갖가지 산해진미를 같이 즐길 수 있고 그래서 행복한데  지옥에서는 서로 자기만 먹으려고 하기에  온갖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고 그래서 불행합니다.
처한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똑 같은 환경이지만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가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는 비유지요.

오늘 히브리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도성에는 우선 살아계시고 심판자이신 하느님이 계시고  중개자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무수한 천사들이 있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천국에 등록된 사람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하느님의 도성이 아닌 곳에는 하느님도 아니 계시고  예수님도 아니 계시고  천사도 없고  이웃도 없어서  아무런 집회도 모임도 없습니다.
단지 불이 삼킬 듯이 활활 타오르고 있고  짙은 어둠이 옴짝 할 수 없게 감싸고 있을 뿐이며  나팔 소리와 말소리가 으스스하게 들릴 뿐입니다.
관계와 모임이 전혀 없이 으스스한 적막강산에 혼자 있는 것, 이것이 지옥인 것 같습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 형제회)-
 
 
 



 

<빨갛게 달군 쇠로>


   아가타는 데치우스 황제의 박해 시절,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 카타니아 지방에서 순교한 성녀로 체칠리아, 루치아, 아녜스와 더불어 로마 교회의 네 동정순교자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아가타는 시칠리아 섬의 명망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다방면에 출중했던 아가타는 당시 총독의 눈에 띄게 됩니다. 아가타에 완전히 빠져 제 정신을 못 차리게 된 총독은 아가타가 싫다는데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청혼을 거듭합니다. 그럴 때 마다 단호하게 청혼을 거부하자 심기가 완전히 불편해진 총독은 아가타가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알고 법정으로 넘깁니다.

재판정에서 아가타는 갖은 잔혹한 형벌을 다 받지만 꿋꿋하게 견뎌냅니다.

 

한 차례 끔찍한 고문을 잘 견뎌낸 아가타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다시 옥으로 돌아갈 때 마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만면에 희색을 띤 채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갔으며, 고문으로 인한 처절한 고통을 기도로써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고통을 주님께 봉헌하였습니다.

 

다음날 다시 재판정으로 끌려나온 아가타의 태도는 더욱 의연했었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형리들은 빨갛게 달군 쇠로 아가타의 가슴을 도려내었지만 그 끔찍한 고통 중에서도 아가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정결에 대한 사랑으로 이와 같은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내 구세주 하느님, 이 고통을 잘 참아 이기도록 도와주소서."

 

   다시 감방으로 돌아온 다음 날 베드로 사도가 치료약을 가지고 나타나자 아가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세상의 약으로 제 육신을 고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아가타의 의연한 모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총독은 날카로운 유리 파편과 불타고 있는 석탄 위에 아가타를 뒹굴게 했다고 합니다.

 

   전신에 화상을 입고 숨을 거두어가던 아가타는 이윽고 마지막 순간이 오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착한 스승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은 제가 박해자의 고통을 이기게 하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주님, 제가 당신 불멸의 영광에 도달하게 하소서."

 

   진정한 신앙인은 아가타처럼 외부로부터 오는 고통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아가타처럼 세상이 아닌, 오직 하느님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자유로운 인간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아가타처럼 하느님이 빚어낸 사람,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기에 진실로 자유롭습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6번 / 찬미노래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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