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세계 병자의 날) - 마르코 7,14-23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2,4ㄴ-9.15-17
4 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5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6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4-2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살면서 가장 많이 뱉어 내는 것은 말입니다. 말로써 남을 더럽히고 자신도 더럽히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합니다. 그러기에 가끔은 침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침묵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말을 하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문을 잠그고 방 안에 숨어 지내는 것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도 악에 물들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식 자체에 윤리적 잣대를 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먹어서 ‘죄 되는 음식’도 없고 ‘선이 되는 음식’도 없다는 선언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아직도 ‘음식 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는 것이 ‘힘 자체’는 아닙니다. 아는 것을 실천할 때 힘이 됩니다. 어쭙잖게 알아서 남에게 피해 주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요?
모든 음식은 약입니다.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가끔은 음식을 먹는 자세도 돌아봐야 합니다. 급히 먹기에, 홧김에 먹기에, 분노하면서 먹기에 우리의 언어가 급해지고 분노로 얼룩지는 것은 아닌지요? 건강한 삶은 언제나 절제와 함께합니다.
어제, 그제의 창세기 말씀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시고 당신 뜻대로 된 모든 것을 보시고 좋다 하셨다고 얘기합니다.
오늘 창세기 말씀은 주 하느님께서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니 세상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좋도록 만드셨고 하느님 뜻대로 된 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그것을 나쁘다고 보는 것이고 나쁜 것으로 만듭니다.
술이 나쁘다고 합니다. 술이 악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애초에 하느님께서 빚은 술은 좋은 것, 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느님 뜻에 맞게 먹는 사람에게는 선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술은 선한 선입니다.
그러나 건강이 안 좋은 사람에게 술은 나쁩니다. 술을 고약하게 먹는 사람에게도 술은 나쁩니다. 이런 사람에게 술은 선한 악입니다.
그러나 정작 마시는 그 사람은 좋다고 합니다. 좋아 하니 그렇게 퍼 마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건강에 안 좋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도 그 사람은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술은 악한 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고 하십니다.
불교에서 내려오는 말에 소는 물을 먹어서 젖을 만들어내고 뱀은 물을 먹어서 독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물인데, 소는 그것을 가지고 이로운 젖으로 만들어내고 뱀은 그것을 가지고 해로운 독으로 만들어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좋은 것입니다.
그것을 잘 받아들이면 그 사람을 살리고 그것을 잘 살면 다른 사람도 살립니다.
그러나 그 하느님을 말씀을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국에는 자기도 죽고 남도 죽게 합니다.
연중 5주간 수요일 - 감기는 초기에
요즘 또 환절기라 그런지 주위에 감기에 걸린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데 바이러스가 있다고 해서 항상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코나 몸 어디든지 감기 바이러스는 항상 존재한다고 합니다. 보통 때는 사람이 감기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지만 스트레스나 과로로 체력이 떨어지면 그 때 감기 균이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감기에 걸리는 것이라 합니다. 감기에 걸렸더라도 초기감기 때 잡아야지 일단 심하게 들어버리면 장시간 고생하게 되어있습니다. 마치 불이 일단 번지게 되면 스스로 꺼지기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처럼 끌 수 있을 때 끄지 못하면 큰 재난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 인생에서의 오랜 시험을 마감하는 의미로 함께 공부하는 사제들과 술을 한 잔 마셨습니다. ‘먹고 죽자~!’라고 외치며 열심히 마시다보니 이제 그만 마셔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동료 신부가 술을 계속 시켰습니다. 뭐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계속 마시고 집에 들어오니 이미 정상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도 역시 술이 깨지 않았습니다. 오전 내내 입에서 술 냄새가 났고 그래서 기분도 안 좋고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담부턴 다음 날까지 지장 있도록 마셔대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마시기 전부터 그런 결심으로 마셨다면 절제가 되었겠지만 중간에 그만 마셔야겠다고 해 봐야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예 초기부터 마음을 다잡아야 무엇이든 커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를 짓는 순간이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뱀을 바라보며 이야기할 때부터였습니다. 그들이 선악과를 먹을 때는 죄가 완성되는 때이지 그 때가 딱 죄를 짓는 순간은 아닙니다. 제방이 무너질 때 아주 작은 구멍에서부터 물이 새어나와 결국 큰 제방이 무너지는 것처럼 큰 죄를 갑자기 짓는 경우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삶을 반성할 때 일어난 일만 가지고 반성하는 것은 잡초를 뽑되 뿌리는 남기고 보이는 것만 잘라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런 죄는 또 짓게 되어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빙산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것처럼 눈에 보이는 죄가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우리도 고해보기 전에 죄를 성찰할 때 그런 죄들이 무엇 때문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 뿌리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손과 그릇을 씻는 전통을 강조하는 것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안으로 들어오는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은 결국 뒤로 다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자신 안에서 나오는 나쁜 경향들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외적인 죄들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의도들’이 사람을 벌써 더럽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음탕한 마음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것도 이미 간음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실제로 간음을 하지 않아도 마음 안에서 이미 그 음탕한 의도가 그 사람을 더럽혔다는 의미입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겉보다도 우리 마음에서 어떤 생각들이 나오고 있는지 항상 살펴보아야합니다.
결국 내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나쁜 경향들이 나 자신을 더럽힌다는 것은 내 안에 이미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들이 활동을 하지 못하게 자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양식을 매일매일 충분히 먹어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혹 안 좋은 마음들이 일어나더라도 그것들을 초기에 잡아야합니다. 안 그러면 나쁜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안 좋은 생각들을 계속 하지 말고 항상 조심하며 초기에 뿌리를 뽑는 습관을 기르도록 합시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루르드 성지-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사노라면 언젠가 반드시>
오늘 세계 병자의 날이자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예기치 않은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이웃들, 오랜 세월 동안 불치병과 싸우고 있는 형제자매들이 오늘 다시 한 번 성모님의 도움과 위로로 힘과 용기를 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모든 환우들이 병고를 기꺼이 이겨내셔서 보다 크게 한걸음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축복의 나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지독한 병고와 신체장애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형제의 말씀이 오늘 하루 모든 환우들 삶의 양식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면 이 고통이 언제 어떻게 축복으로 돌변할까 기대합니다. 어쩌면 시련은 축복을 만들어 가는 소중한 재료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마음 크게 먹고 바라보면 고통도, 신체장애도 제게는 또 다른 축복인 것입니다.”
병고로 인해 고통 받고 계시는 분들, 다시 한 번 힘내시기 바랍니다.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힘드시겠지만 병고를 통해 우리는 보다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올려다볼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면 두려울 것도, 슬퍼할 것도 없게 된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복자(福者) 가운데 지난 2002년 시복되신 자티 수사님이 계십니다. 건강이 약해 사제가 될 수 없었던 그는 간호사와 약사로 일하게 됩니다. 한평생을 아르헨티나 비에드마에 있는 병원에서 가장 가난한 환우들의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삶을 보냅니다.
자티 수사님의 병원은 서울 영등포 역 옆에 위치한 무료자선병원인 요셉의원과 흡사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거부당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의료계의 이방인들인 극빈자들이었습니다. 더럽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3세계에서 온 외국인이란 이유로, 의료보험카드가 없다는 이유로, 신용불량자란 이유로 다른 병원에서 진료가 거부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자티 수사님의 병원은 다른 병원과 반대였습니다. 가난할수록, 더럽고 냄새날수록 더 우선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특히 다른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 시간낭비다,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중병의 환우들도 자티 수사님의 병원에서는 가장 A급 고객으로 관리되었습니다. 자티 수사님에게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손님이었습니다.
자티 수사님은 돈도 없으면서 까탈스럽고, 지독한 중병의 환우가 찾아오면 기쁜 얼굴로 병원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 병원을 축복해주러 오신 착한 목자님께 내어드릴 방이 있나요?”
자티 수사님은 또한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극빈 환우들을 위해 “우리 구세주께 드릴 코트나 바지가 있나요?”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모두 다 받아들이면 병원이 얼마가지 않아 망할 것이라는 직원들에게 자티 수사님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받아달라고 청하는 환자들이 예수님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그들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면 어찌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있겠습니까? 환자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가장 큰 축복의 선물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환우들이 끝도 없이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런 나머지 이제 그만 이쯤에서 포기하겠노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분들이 절망 속에서도 다시 한번 힘을 낼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드리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이 극심한 고통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 사노라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날, 아름다운 세상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겠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도록 기도해드리고 격려해드리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고통이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사랑은 그 고통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티 수사님 같은 천사들이 좀 더 많아지길 기원합니다.
반드시 지금의 고통은 끝이 있고, 이 고통을 잘 넘기면 상상도 못할 하느님의 위로와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다정한 목소리로 알려주는 자티 수사님 같은 천사들의 몫을 우리가 이제 대신해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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