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마음을 찢어라> - 마태오 6,1-6, 16-18

2009. 2. 25. 오전 6:44:37

글자
 
 

2월 25일 재의 수요일 - 마태오 6,1-6, 16-18

 
 
사순 시기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 목요일’의 주님 만찬 미사 전까지이다. ‘사순’은 ‘40일’을 뜻하는 말이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며 참회와 보속, 그리고 희생의 정신으로 살 것을 권고한다. 사순 시기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과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주님 수난 성 금요일’에는 금식재(만 18세부터 60세까지)와 금육재(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를 함께 지킨다. 그리고 제의 색깔은 회개와 속죄의 상징인 자주색으로 바뀌며, 전례에서 ‘알렐루야’와 ‘대영광송’은 생략된다.
사순 시기의 정신은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다. 3세기까지는 부활 대축일을 중심으로 한 ‘파스카 삼일’만 지냈다. 사순 시기가 40일로 정착된 것은 니케아 공의회(325년)의 결정이며, ‘재의 수요일’부터 지키기 시작한 것은 6세기 말 그레고리오 1세 교황 때부터였다. 특별히 이 시기는 예비 신자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마지막 기간이었으므로 더욱 경건하게 지냈다.
‘40일’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한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 동안 재를 지켰고, 엘리야 예언자도 호렙 산에 갈 때 40일을 걸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며 기도하신 뒤 공생활을 시작하셨다.
사순 시기 동안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신자들은 이 기간 동안 지난날의 잘못을 돌아보며 계명에 충실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 극기와 절제의 생활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특별히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자신의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자신의 십자가를 묵상하게 된다.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 요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2,12-18
12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1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14 그가 다시 후회하여 그 뒤에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 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16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원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들까지 모아라. 신랑은 신방에서 나오고,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17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를 우셋거리로,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넘기지 마십시오. 민족들이 서로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18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시편 51(50),3-4.5-6ㄱ.12-13.14와 17(◎ 3ㄱ 참조)
◎ 주님, 주님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주 하느님, 주님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
○ 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나이다. 주님께, 오로지 주님께 잘못을 저지르고, 주님 눈에 악한 짓을 제가 하였나이다. ◎
○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제게 만들어 주시고, 굳건한 영을 제 안에 새롭게 하소서. 주님의 면전에서 저를 내치지 마시고, 주님의 거룩한 영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 ◎
○ 주님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 제 입이 주님의 찬양을 널리 전하오리다. ◎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20─6,2
형제 여러분, 20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오늘의 묵상 
 
 
 
올바른 자선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올바른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주님만이 보시는 곳’에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올바른 단식 역시 머릿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단식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고 단식하고 자선을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남의 이목은 생각하지 말고, 돌아올 이득도 계산하지 않으며, 거저 주고 잊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순 시기를 살라는 당부입니다.
해마다 사순 시기가 시작되면 나누고 베풀자는 외침을 듣게 됩니다. 먼저 가족을 떠올려야 합니다. 자주 만나는 이웃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들에게 베풀지 않으면 ‘달라는 삶’으로 바뀌어 가기 때문입니다. 얻어먹는 사람을 거지라 하지만 진짜 거지는 얻어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달라는 사람입니다. 주지 않는다고 늘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베풀어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베풀어야 합니다.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물질이든 시간이든 애정이든 그렇게 주고 잊어야 합니다. 늘 만나는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늘 만나는 주님과도 올바른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재의 수요일 - 새로 태어나기 위하여

매미의 알에서 나온 유충은 3년에서 어떤 것은 17년이 넘는 세월을 땅 속에서 지냅니다. 그러다가 성충, 즉 매미로 우화한 후에도 1달 이상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매미들은 보통 7년 정도 땅에 있다가 매미가 되어서는 10일 정도 지내다 죽습니다.  따라서 그 오랜 세월을 기다려 드디어 맞게 된 짧은 며칠은 그들의 모든 삶의 에너지가 집결되는 때입니다. 생물들의 가장 중요한 일은 종족보존입니다. 매미는 그 짧은 시기에 짝을 짓고 알을 낳는 것입니다.

 재의 수요일 미사에선 신부님께서 머리에 재를 얹으시며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라고 합니다.  본래 인간이 흙에서 났지만 흙으로 돌아갈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첫 조상이 죄를 짓고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벌이 바로 땅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썩는 이유는 바로 그 몸에 죄가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로 성모님은 원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땅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이 승천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물론 예수님의 몸도 성모님으로부터 받은 원죄 없이 깨끗한 육체였지만 인간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셨기 때문에 그 죗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라고 합니다.  하늘은 하느님께서 사시는 곳이고 땅은 인간의 죄로 저주받은 곳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으로서 땅에 묻히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 즉 저승(지옥)에까지 내려가셨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 나뭇가지로 물장난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뭇가지를 물에 던지면 당연히 물에 뜹니다. 어린 마음에 손으로 그 나뭇가지를 물 더 깊숙이 집어넣으면 나뭇가지는 물 위로 더 높게 치솟습니다. 물 바닥까지 닿았던 나뭇가지는 물 위로 올라가려는 에너지가 극대화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까지 내려가 바닥을 쳤지만 다시 솟아오르려는 에너지가 극대화 된 상태가 성 토요일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받을 세례가 따로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례란 바로 지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솟아올라 하늘까지 다다르심을 의미합니다. 세례란 옛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나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사순은 바로 이 신비를 몸소 체험하는 때입니다. 마치 매미의 유충이 매미로 태어나기 위해 땅 속에서 몇 년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또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서 실을 뽑아 누에고치가 되어 어둠 속에서 죽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도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을 죽이는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선 사순절에 행해야 할 그 유명한 세 가지 권고사항이 나옵니다. 바로 기도, 단식, 자선입니다. 인간이 죽여야 할 것은 세 가지 죄의 뿌리, 즉 교만, 성욕, 돈입니다. 즉, 기도는 겸손의 표지이고 단식은 육체를 이기기 위한 것이며 자선은 돈의 욕심을 이기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기도 할 수 없고 육적인 사람이 단식을 좋아할 이유가 없으며 욕심 많은 사람이 자선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의 나쁜 경향을 죽이기 위해서 조금 더 기도하고,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에 묻히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행한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온전히 죽었을 때에야 새로 태어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순은 단순히 극기하고 기도하고 자선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다시 태어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죽여나감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즉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자신을 죽여 땅에 묻지 않으면 부활이 오더라도 어떤 부활의 기쁨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체험하지 않는 죽음과 부활의 신비는 항상 남의 것으로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순절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머리에 재만 얹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정말 우리 자신을 땅에 묻어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재의 수요일-은총의 때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까지의 저를 보면  사순 시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늘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사순시기를 기꺼이 잘 맞이하지만 어떤 때는 사순 시기가 다가온 것이 영 부담스럽습니다.
사순 시기를 거룩히 지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들하고 노는 것이 너무도 재미있는데 그 지루하고 긴 미사와 교리 공부를 하러 가야 하는 그 어린이 마음입니다.
미사를 드려도 괴롭고  미사를 드리지 않으면 더 괴롭습니다. 결국 미사를 드리지만 은총의 시간이 되지 못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은총을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저의 외할머니는 산기슭에서 평생 수도자처럼 혼자 사셨습니다.  사시는 곳이 지대가 높아 물이 솟지 않았습니다.  하여 비가 오면 그 빗물을 받아 아껴 써야 하는데  비가 와도 항아리를 비워놓지도 않고 뚜껑을 열어놓지도 않으면  그 귀한 비를 그냥 흘려보내고 맙니다.
이번 사순절 그렇게 될까봐  저는 어저께 서둘러 고백성사를 봤습니다.
지금까지와 똑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이 구원의 때, 은총의 때가 되기 위해  지금 나는 회개를 해야 하는데  이 회개를 미루려는 저의 마음을 족치고 죄기 위해  준비가 덜 되었는데도 서둘러 고백성사를 본 것입니다.

주님, 회개생활을 잘 시작하게 하시고  이 사순절 은총의 때가 되게 하소서!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 형제회)-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가장 좋은 피정>


   제게 있어 듣기 섬뜩한 단어, 그래서 머릿속에 떠올리기 조차 꺼려지는 단어 중에 하나가 ‘화장터’입니다. 화장터에 가보신 적이 있으시겠지요? 얼마 전에 저도 장례식이 끝난 후에 화장터까지 따라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을씨년스럽고 음산해보이던 예전의 화장터 분위기와는 전혀 딴 판이더군요. 화장 시스템도 많이 자동화, 현대화가 되어 있었고, 절차도 아주 간단했고, 무엇보다도 신속 정확했습니다.

 

화장절차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정말 황망하더군요. 순식간에 작업이 마무리되어 조그마한 작은 상자가 유족들에게 인도되었습니다.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진하게 체험했습니다. 참으로 서글프더군요. 그리고 공평했습니다. 천지를 호령하던 사람들, 그리도 떵떵거리며 살던 사람들,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 기골이 장대하던 사람들, 그리도 미모를 뽐내던 사람들...그 누구든 상관없이 순식간에 한 줌 재로 변하고 맙니다.

 

마지막 남은 초라한 삶의 자취를 안치하러 납골당에 갔을 때도 분위기는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작은 공간 안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삶의 여운들, 한때 치열했던 삶의 흔적들이 미소 띤 얼굴로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장례미사를 주례할 때 마다, 장지에 따라갈 때 마다, 화장장에 서 있을 때 마다 저는 그 어떤 피정보다 훌륭한 피정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토록 날리던 인생, 그리도 찬란하던 인생도 결국은 한 줌 재더군요.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육신, 끔찍이도 챙기던 목숨이었는데, 숨 한번 끊어지니 그만이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직 젊기에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아직 내게는 멀었으려니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소리도 없이 우리 곁에 내려앉습니다. 나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순서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순식간에 우리의 생애는 아침이슬 사라지듯 사라져 갈 것입니다. 그저 한 줌 재가 되어 강물에 뿌려지고, 바람에 흩날려 자취도 없이 사라져갈 것입니다.

 

스스로를 생각할 때 어떠십니까? 중환자실을 방문할 때 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유약한 존재입니다. 정녕 미미한 존재입니다. ‘나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 쓰러지지 않는다’,‘내 사전에 내리막길이란 없다’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세상에서 가장 약한 모습으로 그렇게 누워들 계십니다. 눈을 부릅뜬 채 이제 마지막 관문만을 남겨두고 계시더군요.

 

오늘 또 다시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의 예식 중에 사제는 신자들의 머리 위에 재를 얹어주며 당부합니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또 다시 맞이한 사순절,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첫 번째 과제는 회개입니다.

 

제대로 된 회개를 위해서는 일련의 절차가 필요합니다.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너무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시편 작가들의 표현처럼 살지 죽을지 모르는 갓 태어난 핏 덩어리 같은 존재들입니다. 단 하루를 예측할 수 없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들입니다. 여기서 홀대받고, 저기서 야단맞는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들입니다. 주님의 은총, 주님의 보살핌이 아니라면 단 하루도 생을 보장받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회개란 이토록 부족한 우리들이기에 결국 풍요로운 주님 자비에 우리의 전 존재를 맡기는 일입니다. 마치도 갓 부화된 어린 참새 같은 우리들의 인생이기에 주님의 따뜻한 둥지에 머무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말마디 그대로 마음을 바꿔먹는 일이겠지요. 개과천선하는 일이겠습니다. 세상의 길, 죄와 타락의 길, 우리의 길을 버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것도 회개의 한 표시입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를 위해서 그보다 훨씬 중요한 하나의 과정을 거치셔야 하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따뜻한 분이신지? 사랑이 지극한 분이신지? 그분을 떠나서 사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 분이신지?


우리를 향한 그분의 크신 자비를 알았기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해서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그분께로 돌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런 회개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124번 / 은혜로운 회개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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