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사순 제 1주간 목요일 - 마태오 7,7-12
▥ 에스테르기의 말씀입니다. 4,17(12).17(14)-17(16).17(23)-17(25)
그 무렵 17(12) 에스테르 왕비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구하였다. 17(14)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의 주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17(15) 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17(16) 저는 날 때부터 저의 가문에서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조상들 가운데에서 저희 선조들을, 영원한 재산으로 받아들이시고 약속하신 바를 채워 주셨음을 들었습니다. 17(23)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신들의 임금님, 모든 권세의 지배자시여! 17(24)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이 끝장나게 하소서. 17(25)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 주님, 제가 부르짖던 날, 주님께서는 제게 응답하셨나이다.
○ 제 마음 다하여 주님을 찬송하나이다. 신들 앞에서 주님께 찬미 노래 부르나이다. 주님의 거룩한 궁전을 향해 엎드리나이다. ◎
○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나이다. 주님의 자애와 진실 때문이옵니다. 제가 부르짖던 날 제게 응답하시고, 저를 당당하게 만드시어 제 영혼에 힘이 솟았나이다. ◎
○ 주님의 오른손으로 저를 구하시나이다. 주님께서는 저를 위하여 이루어 주시나이다. 주님,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나이다. 주님의 손이 빚으신 것들을 저버리지 마 소서. ◎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7-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돈을 주며, 아버지께는 ‘일해서 번 돈’이라고 말하게 합니다. 며칠 후 아들이 나타납니다. “아버지, 제가 일해서 번 돈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말없이 화로 속에 던져 버립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깜짝 놀랐지만 말을 못합니다.
얼마 뒤 아들은 어머니의 돈으로 또다시 말합니다. “제가 일해서 번 돈입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불 속에 던져 버립니다. 그제야 어머니는 남편을 이해하고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다. 네 힘으로 돈을 벌어 오너라. 미안하구나.”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아들은 정신을 차립니다. 그러고는 험한 일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아들은 어렵게 번 돈을 아버지 앞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또다시 화로 속에 던져 버립니다. 아들은 깜짝 놀라며 뜨거운 화로 속에 손을 넣어 돈을 꺼냅니다. “아버지 너무하십니다. 이 돈을 버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아들의 눈물에 아버지는 손을 잡고 말합니다. “이번에야말로 진정 내 아들을 찾은 것 같구나!” 주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격을 갖추면 반드시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니 언제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사순 1주간 목요일 - 기도의 응답 이전에 오는 위로
얼마 전에 제가 아는 한 분이 진로 문제로 걱정하는 말을 했습니다. 물론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이 없는 것도 알지만 저절로 걱정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보내온 메일에 “주님의 이름으로 믿고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는 키아라 루빅의 묵상을 읽고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걱정하는 것보다는 기도하는 편이 낫습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있기 이전에 벌써 좋은 효과를 얻습니다. 그 이유는 청하면서 이미 주님께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하면서 이미 혼자가 아님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불가능한 것까지 청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주소서.” 예수님은 이 기도가 안 들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창조 이전부터 계획된 주님의 뜻을 실현하려 세상에 오셨고 바로 그 순간이 그 일의 종지부를 찍기 직전인데 하느님께서 그 계획을 변경하실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잔을 마셔야 하고 마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기도를 하시는 이유는 그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 이미 위로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아버지께 청하셨습니다. 비록 기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 기도를 드림으로써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불가능한 것까지 청할 수 있는 관계임을 스스로 느끼며 위로를 받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원하는 것을 마구 청할 수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것 하나 청하기가 꺼려집니다.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청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래서 청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청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을까, 맞지 않을까?’ 이것은 주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그저 청하고 주시면 받고 안 주시면 안 주시는 편이 낫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이라고 위로하며 넘기면 됩니다.
자녀가 둘이 있는데 둘이 장난치다가 귀한 것을 깼습니다. 한 자녀는 부모에게 용서해달라고 달려들고 한 자녀는 용서를 청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귀한 것이 깨진 것보다 자녀가 용서를 청하지 않는 것에 더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또 그 자녀가 계속 부모에게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고 혼자 다 해결하며 살아가려고 한다면 그것만큼 부모에게 속상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남으로 살자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부담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참으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많이 청하는 사람이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의 응답이 없더라도 꾸준히 청하고 다른 것까지 청합니다. 좋은 것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도 이렇게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우리가 주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청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주님께서도 부모에게 아무것도 청하지 않는 자녀를 두신 것처럼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무엇이든지 청하도록 합시다. 많이 청하는 사람이 많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믿고 청하면서부터 응답에 관계없이 이미 우리에게 사랑과 위로가 오게 됩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사순 1주 목요일-너의 간절한 만큼
폐병쟁이들이 온다고 첫날부터 시작된 동네 사람들의 시위는 얼마 지나면 가라앉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더 심해져갔습니다.
강에서 경운기로 돌을 실어 날라 학교 둘레에 쌓아놓고는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돌로 쳐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였습니다.
감옥살이, 겨우 식수밖에 없는 물 부족 상황, 환우들의 동요 등 그야말로 內憂外患의 그 어려운 상황에서의 기도는 이전의 그 어느 기도보다도 절실하여 전에는 지나치던 시편의 탄원하는 한 구절, 한 구절이 그대로 저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이때의 저의 체험은 아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청원의 내용이 그토록 진실하였던 적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그토록 진실하게 주님을 마주한 적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주인은 뒷전이고 주인 손에 들려있는 고기만 보던 개가 차츰 고기와 상관없이 주인을 따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청원이 가납되기를 바라는 절실함에서 시작된 기도가 이제 청원의 가납은 뒷전이 되어버리고 하느님과 진실하게 대면하는 기도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절실함이 진실함을 낳고 진실함이 성실함을 낳고 성실함이 주님의 성실함과 자애로움에 대한 믿음을 낳았습니다.
외로운 에스테르 왕비가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과 독대할 때도 바로 이러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간절히 청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청하는 만큼 주실 뿐 아니라 더 많이 주시고 청하는 것을 주실 뿐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세상의 아비보다 더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카 복음에서는 오늘 마태오 복음과는 달리 성령을 주실 것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다급해지다보니>
요즘 한 며칠 아이들을 위해 집중적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사는 게 기도지", 그게 아니면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 기도지"하면서 기도를 소홀히 했었는데, 다급해지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가장 원시적인 청원기도를 하게 됩니다.
"꼭 돌아오게 해주세요.", "하느님 이 부탁은 꼭 들어주셔야만 하겠습니다." 등등 어린애가 떼를 쓰듯이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 참으로 묘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건강을 위한 기도, 제 성취를 위한 기도,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기도는 제대로 먹혀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는데, 타인을 위한 기도, 특히 방황하는 아이들이나 절박한 이웃을 위한 기도는 거의 90% 이상 OK되는 특별한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세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청 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늘 흔들리는 우리에게 참 으로 큰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기에 앞서서 무엇을 구할 것인가를 식별하는 일은 기도에 못지않게 더 중요한 일인 듯싶습니다.
적어도 너무 터무니없는 청원기도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로또 복권을 한 장 샀으면 그저 한번 추첨시간의 그 짜릿함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야지, 꼭 1등에 당첨되도록 기도하기 위해서 산다면 너무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겠지요.
하느님을 마치 무당 대하듯이 대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어느 쪽 땅이 빨리 그린벨트가 풀릴 것인지 하느님, 족집게로 집듯이 알려 주십시오"와 같은 기도를 드린다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처신하기 곤란하시겠습니까? 하느님은 누구 말은 들어주고 누구 말은 외면하는 편애의 하느님이 절대로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느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보다 보편적인 기도, 보다 이타적인 기도, 보다 폭넓은 기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의 유익이나 내 가족의 안녕도 중요한 기도거리겠지만, 중동의 평화를 위한 기도, 아프리카의 난민들을 위한 기도, 이 땅의 모든 고통 받는 청소년들을 위한 기도, 아직도 사망여부조차 확인 받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 대구 참사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기도 등, 세상과의 연대를 위한 기도에도 게을리 하지 않는 우리의 기도이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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