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17주간 수요일] 보물 (마태13,44-46)
모두 자신을 저주한다고 하소연하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주님께서는, 그와 함께 계시며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시겠다고 하신다. (예레 15,10.16-21)
10 아, 불행한 이 몸! 어머니, 어쩌자고 날 낳으셨나요? 온 세상을 상대로 시비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사람을. 빚을 놓은 적도 없고 빚을 얻은 적도 없는데 모두 나를 저주합니다.
16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17 저는 웃고 떠드는 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
18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까?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19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
20 그러므로 이 백성에게 맞서 내가 너를 요새의 청동 벽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움을 걸겠지만 너를 이겨 내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고 건져 낼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21 내가 너를 악한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고 무도한 자들의 손아귀에서 구출해 내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고,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고 하신다. (마태13,44-46)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제1독서(예레15,10.16~21)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16.18~19)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 (16)
예레미야서 15장 16절이하 18절에서는 악한 시대의 고독한 예언자로서 영육간에
고갈을 호소하는 내용이 소개된다.
"Thy words were found, and I did eat them ;
and thy word was unto me the joy and rejoicing of mine heart ;
for I am called by thy name , O LORD GOD of hosts !"
원문따라 문자적으로 풀어본 영역본의 하나를 소개했다.
여기서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로 번역된 '니므체우 데바레카'(nimtseu debareka)에서
'발견하고'에 해당하는 '니므체우'는 '찾다'(1열왕21,20), '드러내다','발견하다'
(신명24,1)란 뜻을 지닌 동사 '마차'(matsa)의 수동형 3인칭 복수형으로서
그 주어는 '데바레카'(debareka) 곧 '당신의 말씀'이다.
따라서 이것은 '당신의 말씀이 발견되었다'는 의미이고, 이 표현은
곧 주 하느님의 말씀이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마치 음식을 먹듯이 그 말씀을 '내가 받아먹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주님의 말씀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말씀은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참된 기쁨이 되었다.
그는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제게 기쁨'이란 표현과
'제 마음에 즐거움'이란 표현을 중복하여 사용하였다.
이것은 자신이 이름 뿐인 예언자가 아닌,진실로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사모하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참된 예언자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어서 하느님의 말씀이 기쁨이 되는 그 이유를 자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의 원문의 문두에 나오는
접속사 '키'(ki)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의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로서
주님의 말씀이 어떻게 예언자 예레미야의 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는가를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위탁받아 그대로 전하는 예언자가 됨으로써
어떤 부나 명예가 따라와서가 아니라 주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직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진정한 기쁨이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순수하고 진실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그분의 말씀을 대변했는가를 드러내는
일종의 변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끝으로 예레미야는 '주 만군의 하느님'이란 감탄의 부르짖음으로
주 하느님의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순수성과 진실함에 대한 고백을 마무리한다.
이러한 본절 전반의 표현은 15절('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아십니다.
저를 기억하시고 찾아 주소서. 저를 뒤쫓는 자들에게 복수하여 주소서.
당신 분노를 늦추시다가 저를 잃지 마시고, 당신 때문에 제가 수모를
당하는 줄 알아주소서.')에서 그가 호소했듯이, 자신이 당하는 박해와 치욕은
온전히 주님의 예언자로서 주님을 위해 일하였기 때문이며, 주님의 말씀을
기뻐하며 그대로 전하였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토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알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하여 제 고통은 끝이 없고, 제 상처는 치유를 마다하고 깊어만 갑니다.'(18ㄱ)
'어찌하여'라는 뜻의 의문사 '람마'(lamma)로 시작되는 본절은
앞서 15~17절에서 피력했듯이 예레미야가 오직 주 하느님만을 위하여
주님의 예언자로서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싸웠고, 또 그로 인해
고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자신의 처지가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는가를 하소연하고 있는 내용이다.
즉 예언자 예레미야는 영육간의 극도의 피곤함과 고갈됨을 경험하고,
이것을 하느님께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극한의 고난과 곤경, 고독 속에 자신이 처하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움조차 베풀지 않으시는 듯한 하느님을 향하여
도대체 언제까지 자신이 상처와 고통에 붙들려 살아야 하는지,
또 어째서 이처럼 고통스러운 일들이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는지를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느님께 버림받은 듯한 상황속에 처하여 곤경과 핍박을 호소하는 본문의 표현은
메시아의 버림받음과 대속적 수난을 예언적으로 노래한 시편 22장 2절과 3절을 연상시킨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처럼 되었습니다'(18ㄴ)
'믿을 수 없는'으로 번역된 '로 네에마누'(lo neemanu)에서
'로'(lo)는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의미를 지닌 부정어이며,
'네에마누'는 '참되다', '진실하다'(창세42,20),'믿다'(탈출4,8), '참되다', '확실하다'(시편93,5),
'믿음직하다','견고하다'(1사무2,35),'성실하다', '충성되다'(2사무20,19) 등을 뜻하는
동사 '아만'(aman)의 수동 완료형 3인칭 복수형이다.
따라서 '로 네에마누'는 '(물이) 확실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우기에는 물이 풍부하게 흐르지만, 건기에는 물이 말라버리는
팔레스티나 지역의 기후적 특색과 간헐천(wadi)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예레미야는 주 하느님 지체를 물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물을
얻을 수 없게 되버린 '가짜 시냇물'(속이는 시내)에 빗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는 '생수의 원천인 나'(예레2,13), 곧 주 하느님을
의지하여 그 구원하심을 믿어 왔던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만일 끝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다면, 주님은 곧 '가짜 시냇물'과 같은 존재가
되지 않겠느냐는 예레미야의 절박한 반어법적인 호소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 내가 주님의 구원을 믿고 찾아 왔는데,
만일 그 생수를 얻을 수 없다면, 당신은 가짜 시냇물이 되시렵니까?
정녕 그리하실 것입니까?' 라고 예언자는 간절히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례미야의 간절한 표현과 더불어 다소 과격해 보이는 표현은
단순히 하느님을 향한 불신과 원망의 표현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같은 본문의 표현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생수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자신의 갈급하고 고통스런 상황을 굽어 살피시고 도우시는 은혜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미, 곧 예언자의 하느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와 구원의 간구가 함축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네가 돌아 오려고만 하면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 내 앞에 설 수 있게 하리라.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19)
'네가 돌아오려고만 하면'에 해당하는 '타슈브'(tashub)는 '돌아오다',
'돌이키다'란 뜻을 지닌 '슈브'(shub)의 능동 미완료 2인칭 단수형이다.
'나도 너를 돌아오게 하여'에 해당하는 '와아쉬베카'(waashibeka) 역시
동일한 '슈브'동사의 사역형 미완료 3인칭 단수형에 접속사 '와우'(wau)와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를 결합시킨 형태로서 문자적으로는
'그러면 내가 너를 돌이킬 것이다.'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전자의 '타슈브'는 예레미야가 하느님께로 돌아옴, 즉 현재의 고통으로
인한 불신앙적 절망이나 회의에 빠지지 말고, 처음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언자적 소명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말이다.
후자의 '와아쉬베카'는 만일 그러한 불신앙적 흔들림을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지금의 고통스런 상황에서 돌이켜 회복시키길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본문은 동사 '슈브'의 상호 교차적인 사용으로
하느님과 예언자 양자의 역학 관계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동사는 하느님과 예언자와 그 백성
삼자의 역학 관계를 묘사하기에 이른다.
본절 후반부에서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네가 그들에게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언자가 나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는 '슈부'동사를 거듭 사용하셔서 현실적인 고통과 절망이 아무리 클지라도
결코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고 백성들과 같은 길에 빠져서는 안되고,
백성들이 약함을 본받거나 그들의 약함에 유혹 당해서는 안되며,
더 나아가 오직 백성을 그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예언자가 가야할 길임을 각인시키고 계신 것이다.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 값진 말을 하면, 너는 나의 대변인이 되리라.'
'쓸모없는 말을 삼가고'에 해당하는 '밋졸렐'(mizzollel)은 동사 '잘랄'(zallal)의
분사형에 '분리, 이탈, 구별' 등의 의미를 지닌 전치사 '민'(min)이 결합된 형태로서
'헛된 것들로부터'(쓸모없는 것들로부터)란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헛된 것들로부터' '귀한 것(값진 것)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금속 제련의 과정을 연상케 한다.
이 과정에서 순수한 금속은 불순물로부터 분리되어 만들어진다.
여기서는 현재의 고통으로 인하여 파생되는 불만이나 불평, 혹은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모든 불신앙적 요소들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순수한 신앙으로
하느님의 말씀만을 선포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예레미야는 '너는 나의 입' 곧 진정으로
주 하느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연중 제17주간 수요일복음(마태13,44~46)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44~46)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좋은 진주의 비유는 천국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숨겨진'으로 번역된 '케크림메노'(kekrymmeno)는 '감추다', '숨기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크립토'(krypto; hid)의 수동태 완료 분사로서,
과거 어느 시점에 보물의 주인이 밭을 깊숙이 파고
그것을 숨겨 두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외세의 침략이 잦았던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그것도 은행이 없었던 시절에
값비싼 보물을 땅속에 숨겨 두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잠언 2장 4절에는 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 '네가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물을 찾듯 그것을 찾는다면'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세속 민담에도 종종 나타난다.
천국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실체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사도 아깝지 않을 만큼 큰 것이다.
말하자면,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보물이 숨겨진 밭을 산 것처럼, 천국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비유에서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 보물이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거기에 묻혀 있는 밭 주인의 소유라는 사회 규약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밭을 살 때까지 그 보물을 땅 속에 그대로 묻어 두고는, 집으로 돌아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보물이 묻혀 있는 밭을 사 버린다.
원문에 나오는 '(그가) 가진'에 해당하는 '에케이'(echei), '팔아'에 해당하는
'폴레이'(polei), 그리고 '산다'에 해당하는 '아고라제이'(agorazei)라는
세 개의 동사의 시제가 모두 현재이다.
동사의 시제가 속담이나 일반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현재라는 것은, 여기에 나타난 행위가
역사적으로 실제로 일어났던 과거의 어떤 특정한 일을 예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경우가 발생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진 것을 다 팔아'에 해당하는 '판타 호사 에케이'(panta hosa echei;
all that he had)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의 모두'를 말한다.
즉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 그 밭을 샀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가진 전 재산보다도 그 보물이 숨겨져 있는 밭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역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마태10,37; 마르코10,29).
한편, 두번째로 나오는 좋은 진주의 비유도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천국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하나의 비유로 끝나지 않고 유사한 내용의 비유를 더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천국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강조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상인'에 해당하는 '안트로포 엠포로'(anthropo emporo; a merchant)에서
'안트로포'(anthropo)는 사람이란 뜻이며, '엠포로'(emporo)는 상업을 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도매 상인'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안트로포 엠포로'는 '도매상을 하는 상인'이라는 말이다.
이 사람은 지금 좋은 진주를 구하기 위해 각처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찾는'으로 번역된 '제툰티'(zetunti; looking for; seeking)는
'얻으려고 애쓰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제테오'(zeteo)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좋은 진주를 얻으려고 사방 팔방으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에서 '발견하자'로 번역된 '휴론'(heuron)은
마태오 복음 13장 44절의 '발견한'으로 번역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로서,
'발견하다'는 뜻의 동사 '휴리스코'(heurisko)의 부정(不定) 과거 분사이며
그 뜻은 '발견했을 때'이다.
애쓰며 돌아다니던 상인은 좋은 진주를 얻고자 노력한 결과 아주 값진
진주를 발견했다는 사실만 다를 뿐, 두 사람의 상황은 동일하다.
그들은 자기들의 기대치 이상으로 훨씬 좋은 것을 발견한 것이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보물을 발견했고, '좋은'
('칼루스'; kalous; fine; goodly) 진주를 찾으로 다니던 상인도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값진'('플뤼티몬'; polytimon; of great value;
of great price) 진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처럼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발견된 천국의 실체도 자신이 상상조차 못했거나
기대한 것 이상으로 훨씬 영광스럽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우리에게 이루어질 천국의 영광이 너무나 큰 것이기에
천국과 관계되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은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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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아무리 값진 보물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의 눈에는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값진 진주를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찾아 다녀야 얻을 수 있습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이 보물을 발견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보물이고 따라서 보물을 알아 볼 수 있는 안목과 그 보물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처분할 수 있는 희생과 헌신이 요구됩니다(마태13,46).
새 옷을 장만하면 전에 입던 옷을 정리하게 됩니다. 더 좋은 것을 얻으면 하나는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다른 모든 것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한다면 결코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진 것을 과감하게 처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천국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요?
오늘 기억하는 성 알퐁소는 말합니다. “당신이 저에게 바라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시오, 저는 저의 뜻을 버리고 당신의 뜻에 저의 뜻을 맞추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신자들에게 말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7-9).
마태복음 19장 이하의 부자청년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온 젊은이에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주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의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양다리 걸치기나 어중간은 없는 법입니다. 젊은이는 결국 주님을 차지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와 무엇이 참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하느님을 잃어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흩으러뜨리지 말며 무엇 때문에도 놀라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차지한 자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결국 하느님을 얻으면 모두를 얻은 것이요, 모든 것을 얻어도 하느님을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나라를 성인들이나 가는 곳으로 어렵게만 생각한다면 아무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마태6,33)을 구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러 오지 않으시고 오히려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 안에서도 실망과 좌절보다는 하느님의 자비를 갈망해야 합니다.
보물은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있고 세상의 어떤 것도 다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지 말고’(루가9,62) 내 삶의 자리에서 참 보물을 찾아야 합니다.“주님, 정녕 당신은 저의 등불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어둠을 밝혀 주십니다”(2사무22,29). 이제 당신 이 밝혀 주시는 보물을 차지해야 하겠습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내 인생의 밭에서 주님을 찾는 노력 ♣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보물과 진주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자세를 요구합니다. 두 가지 강조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장 귀중한 보물과 좋은 진주는 하느님 나라이며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자 목숨을 바쳐 하느님의 자비와 생명을 전해주신 예수님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보물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좋은 진주는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희생을 요구하기보다는 거저 기쁨을 안겨줍니다.
이 귀한 보물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일상, 다른 이들과의 만남, 나의 행동과 말, 수많이 사건이 일어나는 세상과 내 마음이 바로 보물이 묻혀 있는 밭입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미소, 순수한 배려, 고통을 겪을 때 다가와 건네는 손길, 평화를 느끼게 해주는 풍경, 절망의 순간에 그래도 살 가치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위로의 말 등이 바로 숨겨진 보물입니다. 참 행복을 누리려면 이런 성사적인 보물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나눌 줄 알아야겠지요.
또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분명히 가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중요시하는지는 그가 어디에 시간과 돈을 더 많이 쓰고 있는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주말에 영성강의를 듣기 위해 땀 흘려 달려오는 사람,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하는 이들,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들은 분명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다른 핵심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팔고 처분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찾아야 할 보물과 진주가 그리스도라면 그분을 따르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르 10,21).
하느님 나라야말로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과 더불어 그것을 지니기 위한 구체적인 결단과 노력이 중요합니다. 거저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기에 가진 것을 다 팔고 처분하여야 합니다(마태 13,44-46). 주님이 현존하시고 그분의 선물이 묻힌 밭과 진주를 지니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려면 현세적인 가치들을 포기하고,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는 결단이 요청됩니다(필리 3,8). 나아가 그 밭에 묻힌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몸과 마음과 영혼, 재물과 능력 모두를 쏟아 부어야 합니다. 이런 선택에는 또 다른 포기와 희생이 뒤따르겠지만 그것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지나가버릴 덧없는 현세가 아니라 천상적인 것들을 갈망하고 그것을 위해 나의 정성과 마음, 능력과 재물 등 모든 것을 기꺼이 쏟아 붓는 결단을 하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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