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간 월요일] 성령 모독 (마르 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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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는데,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세력이 점점 커졌다. (2사무 5,1-7.10)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4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5 그는 헤브론에서 일곱 해 여섯 달 동안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6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7 그러나 다윗은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
10 다윗은 세력이 점점 커졌다.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마르 3,22-30)
그때에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25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26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27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29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30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연중 제3주간 월요일 제1독서 (2사무5,1-7.10)
"다윗은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마흔 해 동안 다스렸다." (4)
사무엘서 하권 5장 4절과 5절은 다윗의 통치 기간을 약술하고 있다. 다윗은 B.C.1040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이며, 15세 정도가 되는 B.C.1025년 쯤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고(1사무16,6-13), 30세가 되는 B.C.1010년 경에 헤브론에서 유다 임금이 되었으며(2사무2,1-4) B.C.970년 경이 되는 70세에 죽어 다윗 성에 묻혔다(1열왕2,1-11).
다윗이 임금이 된 '삼십 세'라는 나이는 요셉이 이집트의 파라오 앞에서서 총리가 되었을 때의 나이와(창세41,46)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셨을 때의 나이와 일치한다(루카3,23). 또한 만남의 천막에서 레위인들이 일할 수 있는 나이도 삼십 세부터였다(민수4,3.23.30.35.39).
이런 것들을 보면 다윗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고 값있는 나이에 임금이 되었다. 또한 다윗은 사무엘서 상권 5장 5절에 보면 '헤브론에서 일곱해
여섯달 동안 남부 유다를 다스린 다음, 예루살렘에서 서른 세 해동안 온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를 다스린 것'으로 보아 거의 '사십 년'간을 통치했는데, 이것은 사울의 통치 기간(사도13,21)과 솔로몬의 통치 기간과 일치한다(1열왕11,42).
'사십 년'의 세월은 완전한 한 세대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윗은 완전한 한 세대의 기간 동안 임금으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것이다.
또한 시편 90장 10절에서 모세가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은면 팔십년' 이라고 한 것을 생각할 때, 다윗은 임금으로서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삼십 세에 임금이 되어 인생의 기력이 다하는 칠십 세까지 왕위에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상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임금이 되어'와 '다스렸다'로 표현된 '뻬몰르코'(bemollko)와 '말라크'(mallak)의 원형은 모두 '다스리다'라는 뜻의 '말라크'(mallak) 동사이다.
'뻬몰르코'(bemollko)는 '~한 때'라는 뜻의 전치사 '뻬'(be)와 '말라크'(mallak)의 부정사형 및 다윗을 지칭하는 3인칭 남성 단수 어미가 결합된 형태이며, '말라크'(mallak)는 동사의 완료형이므로, 각각 번역하면 '그가 다스리기 시작할 때에'와 '그가 다스렸다'이다.
사무엘서 하권 저자는 다윗의 칠십 년 인생을 삼십 세의 '다스림'에서 시작하여 칠십 년의 '다스림'으로 마감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숫자의 제시는 다윗의 통치를 앞으로 올 이상적인 임금의 통치에 대한 하나의 예표로 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죽을 죄를 짓고 죽음을 맞는 불행은 없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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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율법학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3,28-29) 신성모독죄와 성령모독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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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베엘제불>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마르 3,22).”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한으로(하느님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는 것을
율법학자들이 인정하지 않으면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으로 쫓아내는 것이라고 비방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싫어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고,
자기들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서 공격을 한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다.
마귀들을 쫓아내려면 마귀들보다 더 센 존재의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하느님의 힘이거나 마귀 우두머리의 힘이다.
안식일도 안 지키는 예수가 하느님의 힘을 받았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다.”가
율법 학자들의 논리입니다.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 라는 말은,
“그는 마귀 우두머리인 베엘제불의 하수인이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 학자들이 ‘논리’로 공격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논리’로 반박하십니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마르 3,23-26).”
마귀 우두머리가 마귀들을 쫓아내라고 자신의 힘을 예수님께 빌려주는 것은
자기 세력을 약화시키는 일이고, 결국 자멸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마귀 우두머리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하느님의 힘으로 하신 일입니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마르 3,27).”
이 말씀에서 ‘힘센 자’는 사탄이고, ‘더 힘센 자’는 예수님입니다.
힘센 자의 재물은 ‘마귀 들린 사람들’입니다.
더 힘센 자가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서 빼앗은 재물은
예수님께서 사탄의 힘에서 해방시켜 주신 사람들입니다.
마귀 우두머리, 즉 사탄보다 더 힘이 센 분이신 예수님께서
사탄(베엘제불)의 힘을 빌릴 이유가 없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7-38).”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은 분명히 ‘하느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이라도,
그 일이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분은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나는 메시아다.”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메시아로서 하시는 일들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 3,28-29).”
이 말씀은, ‘하느님의 일’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자들에게
엄하게 경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메시아라는 것을 부정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신성을 모독하는 죄’와 ‘성령을 모독하는 죄’가 어떻게 다른지,
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좀 애매모호하긴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신성을 모독하는 죄”는,
잘 몰라서,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믿기가 어려워서 예수님을 못 믿는 죄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누가 보아도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이 명백한데도,
자기 자신의 독단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그 일이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을 부정하고(안 믿고) 모독하는 죄로,
단순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못 믿는 것과 안 믿는 것은 다릅니다.)
또 한 가지,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라는 말씀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지은 사람은 회개해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뜻일까?
(회개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해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여기서 “용서를 받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신다.” 라는 뜻이 아니라,
죄인 자신이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부정함으로써,
즉 용서받기를 거부함으로써 용서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죄,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죄,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는 ‘회개하기 전까지는’으로 좁혀서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셨지만,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용서도 구원도 받는 쪽에서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완성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회개하기 전에는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엄격한(보수적인)
바리사이였고, 예수님을 반대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하게 반대한
사람이었고, 가장 악랄한 박해자였습니다(사도 26,5.9-11).
그러나 회개한 뒤에는 가장 열성적인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 면전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곧바로 회개했고, 예수님에게 돌아왔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나 배반자 유다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면서도 회개하지 않았고,
자살해 버렸습니다(마태 27,3-5).
그래서 그는 용서받기를 거부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만일에 유다가 회개하고 예수님께 용서를 청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유다 사회의 지도층으로 군림하던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시는 기적을 곱게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을 업신여기고, 군중 앞에서 공공연하게 비판하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고, 마귀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거짓 예언자로 예수님을 몰아세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율법 학자들의 논리는 스스로 모순임을 예수님께서 밝혀내십니다. 예수님의 기적 행위에는 악이 아닌 선이, 죽음이 아닌 생명이 자리 잡고 있기에,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 보아야 남는 것은 사탄의 악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지은 모든 죄는 용서받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고 선언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하느님의 영의 자유와 해방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죄, 곧 하느님을 인간의 잣대로 함부로 재거나, 스스로 하느님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죄짓게 하는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통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고, 성령 안에 머무는 사람은 무엇이 하느님의 진리에 속하고, 무엇이 사탄의 거짓인지를 식별해 내는 본능을 얻습니다. 우리가 ‘신앙 감각’이라고 부르는 이 영적 식별 능력은 교회 안팎에서 일고 있는 거짓 영을 식별하고, 내 안에서 사탄의 유혹을 끊어 내는 믿음의 덕을 쌓게 해 줍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명성과 치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 충실하며 옳고 그른 것을 잘 식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윗과 함께 머무신 하느님께서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서도 머무르시도록 끊임없이 청하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