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간 금요일]열두 사도 (마르 3,13-19)

2018. 1. 19. 오전 6: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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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간 금요일]열두 사도 (마르 3,13-19)

 


자신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 살려 준 다윗에게 사울은, 이제야 다윗이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1사무 24,3-21)
그 무렵 3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4 그는 길 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5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6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7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시냐?”
8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9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1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12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3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5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16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17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18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19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20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셔서,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어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신다. (마르 3,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연중 제2주간 금요일 (1사무 24,3-21)


사울은 다윗을 아홉 차례나 죽이려고 시도했고, 청부 살인도 세 차례나 시도했으나

하느님께서 막으셨기에 다 실패했다.

오히려 다윗을 죽이려 추격하는 과정에서 두 번이나 다윗에게 죽을 뻔했다.

다윗은 사울을 결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두 차례 가지지만,

사울도 자신처럼 주님께로부터 몸소 기름부음을 받은 이이기 때문에,주님을 보아서 살려둔다.

 

오늘 말씀은 두 차례 사울을 결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기회에 살려준 이야기중에 하나이다.(1사무24장,26장)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나선다.

요새말로 하면, 특공대, 정예부대, 청부살인을 맡은 칼잡이들을 뽑은 셈이다.

 

그런데 마침 사울은 '들염소 바위'쪽 동굴 안에서 뒤를 보게 되었다.

임금이 갑자기 생긴 생리작용때문에 볼일을 봐야 하는데, 품위 때문에 신하들 앞에서

그리고 길바닥에서 볼 수 없으니,동굴 안을 화장실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그 동굴 안에는 다윗과 그 부하들이 사울 일행을 피해 숨어 있었다.

말하자면, 저절로 호박이 덩굴채 굴러 들어온 것이다.

 

다윗의 부하들은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라고 말한다. (24,5ㄴ)

다윗은 뒤를 보느라 꼼짝달싹 못하는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자른다. (5ㄷ)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임금이기에,

사울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겉옷자락을 잘라 보여주며,

자신도 사울을 살려 주었으니, 이제 그만 자신을 제거하는 일을 포기해 줄 것을

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것이 마음에 걸렸다.(6)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 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 이가 아니시냐?" (7)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하들중에 상관에 대한 충성심과 '욱'하는 성격에 사울을 칠 수 있는 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울이 굴에서 볼일을 다보고 나가자, 다윗도 굴밖으로 나와 사울 뒤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엎드려 절하고 주님께서 기름부음하신 이에 대한 예의를 표한다.

그리고 사울 임금에게 어떤 죄도 짓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죽이려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는 그 억울함에 대해,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까지 하고,

겉옷자락을 보여 주며, 사울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를 쓴다.(9-16)

 

이에 대해 사울은 소리높여 울며, 원수같은 자신을 죽임에서 살려준

다윗의 은공을 치하하고, 주님의 축복까지 빌어주며, 예언적인 말까지 한다.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날 것이다." (21)

 

그러나 이것은  죽음의 위기를 모면한 사울의 순간적인 말일 뿐,

사울은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 추적한다.

1사무 26장에 보면, 다윗은 자신과 일행을 죽이기 위해 추적하다가,

진을 치고 자고 있는 사울과 그 부하들을 발견한다.

또 한번 죽일 수 있었지만, 다윗과 그의 부하 아비사이는

사울의 창과 물병만을 가지고 그곳을 빠져 나온다.

 

다윗은 매사에 전쟁을 치를 때에도 그렇고,

항상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1사무 23,1이하)

 

하지만,사울은 자신의 인간 본성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니 주님께서 허락하신 악령이 들락날락한다.

주님께서는 사울이 처음에는 겸손했지만,

임금이 된 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군사력과 권력으로 인한 교만때문에,

주님 앞에 순수성을 잃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그를 좋게 보지 않으신다.

 

말하자면, 주님께서는 그의 속을, 죄질이 나쁜 사람으로 보고,

가만히 놓아 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악령을 허락하신다.

요새말로 하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음악치료, 비파를 손에 들고 타 주어야,

악령이 물러가고 회복되어 편안해지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1사무16,23)

 

반면에 다윗은 사울처럼 인간 본성이 아니고,

사람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주님을 따라 움직인다.

 

사울과 다윗은 인본(人本)과 신본(神本)의 차이이다.

누가 축복 받는가?


  연중 제2주간 금요일 복음(마르3,13~19)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4~15)

 

마르코 복음 3장 14절'세우시고'에 해당하는 '에포이에센'(epoiesen;

he appointed; he ordained)원형 '포이에오'(poieo)사람의

행위와 관련될 경우에는 어떤 물건의 외형을 '짓다', '만들다'(마태17,4)

또는 '일하다', '노동하다'(마태20,12)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께 적용되면 무에서 유를 '만들다','창조하다'

(마태19,4)는 의미가 된다.

 

열두 제자를 세우신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마르3,11), 제자들 역시 인위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고 신적 권능에 의해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단어가 계약적 관점에서는 '추종자를 지명하다'는 뜻으로

'어떤 것을 다른 성질의 것으로 만들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모나고 고집스럽고 우직한 갈릴래아 출신 어부나 탐욕스러운 세리 등을

당신의 제자로 새롭게 변화시키셔서 복음 전파와 선교라는 막중한 사명을

맡기셨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단어가 구약적 관점에서는 왕이나 사제에게 직책을 부여하는 표현도 되므로,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의 대사로 지명하여 세우신 것이 된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본문 이하 본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본문의 '함께 지내는 것'과 본문 이후에 나오는

'복음 선포''구마 행위'를 추가하여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하지만,

원문에는 '~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 '히나'(hina; that ~may)

두 번 사용된 사실을 감안하면, 우선 '예수님 당신과 함께 지내는 것'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하는 것'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 옳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제자 선택의 첫번째 목적

당신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참된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자야 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그분의 사상, 정신, 마음, 인품,

삶의 가치관과 방식, 고난을 비롯한 인생 문제를 다루는 방식,

나아가서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것들을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이 제자됨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선택의 두번 째 목적'파견'

'복음 선포를 위해 보내는 것'이다.

 

'그들을 파견하시어' 앞에도 '~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히나'(hina) 접속사가 또 사용되었다.

 

그리고 '파견하시어' 다음에 나오는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케륏세인'(keryssein; to preach)'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에 해당하는 '에케인'(echein; to have)는 모두 부정사

현재형으로서 '파견' 이유를 나타낸다.

 

즉 이것은 파견된 제자의 사명으로서 '복음 선포' '구마'를 명령하시고

지적하신 것이다.

 

여기서 '파견하시어'에 해당하는 '아포스텔레'(apostelle; he might send ~out)

'사도'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동사형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제자''예수님께서 전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 안에서 선포하는 자들'

이며, 세상으로 보내어지지 않고 교회 안에서 머물기만 하는 자들은

주님의 참된 제자라고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케륏세인'(keryssein;

to preach)은 특히 진리와 구원을 '선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므로,

주님의 제자된 자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이제 파견된 제자들의 두번 째 사명'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는 것'

대한 말씀이 마르코 복음 3장 15절에 나온다.

 

이 구절은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0장 1절, 1장 21~28절, 32절, 3장 10~12절

참고하면, 병을 고치는 치유 행위와 관련되거나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 3장 15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가 단순히 관념적 구원을

강조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질적 변화까지 가져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통해 한 가지 더 강조되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나라의

확장이란 사탄의 세력의 축소라는 사실이다(에페6,12).

 

여기서 '마귀들'로 번역된 '타 다이모니아'(ta daimonia; devils;

demons)명사 복수형으로서 '사탄'의 졸개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은 타락한 천사로서의 마귀들의 존재를 부정해서도

두려워해서도 안되는데, 그것은 복음의 능력을 소유한 자는

그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열두 사도를 뽑으시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3-15).”


마르코복음에는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만 언급되어 있는데,

루카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도 주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루카 9,1).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주신 것은,

‘마귀들을 쫓아내는 임무’를 맡기신 것입니다.

또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신 것은,

‘병자들을 고쳐 주는 임무’를 맡기신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임무를 맡기시면서

그 임무 수행에 필요한 권한과 힘도 함께 주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받은 권한과 힘으로

자기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마르 6,12-13).”

(배반자 유다도 그 권한과 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배반자가 되기 전까지는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1) 하느님(예수님)은 일을 시키기만 하시고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좋은 예가 ‘모세’의 경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10).”

그런데 모세는 그 임무를 거부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하였고, 주님께서 이 종에게 말씀하시는 지금도 그러합니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 4,10).”

모세의 말은 ‘겸손’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감이 없어서 한 말입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할 때 내가 너를 도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겠다(탈출 4,12).”

그래도 모세가 계속 자신 없어 하면서 거부하자, 하느님께서는 화를 내셨고,

모세의 형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워 주셨습니다(탈출 4,14-17).


하느님(예수님)께서는 예언자들이나 사도들을 부르실 때만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즉 모든 신앙인은

자신의 힘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도움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 7,7-8).”

우리는 어떤 특별한 직책을 수행할 때에나 평소에 신앙생활을 할 때에나

언제나 항상 주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 사도들이 받은 권한과 힘은 그들 자신들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필요한 일에 쓰라고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 권한과 힘의 소유자가 아니라 사용자입니다.)

따라서 항상 기도해야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만 그 권한과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코복음 9장을 보면, 사도들이 실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는 동안에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제자들에게 어떤 아이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자기 아이를 사로잡고 있는 악령을 쫓아내 달라고 청했는데,

제자들은 그 악령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마르 9,14-18).

이미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과 힘을 받았고,

그 권한과 힘으로 많은 마귀들을 쫓아냈던 제자들이었는데도 실패한 것입니다.

나중에 제자들은 그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마르 9,28).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마르 9,29).”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이 실패했다는 것은,

자기들이 받은 권한과 힘을 자신들의 것으로 착각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지 않고,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쫓아내려고 했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주신 권한과 힘은 예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남용하거나 오용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항상 예수님의 뜻에 합당하게만 사용해야 합니다.

좋은 예가 루카복음 9장에 나옵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루카 9,51-56).”

아마도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의 심부름꾼들을 박해하고 모욕했던 것 같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그 심부름꾼들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몹시 화가 난 두 사도는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서

그 마을을 불살라 버리고 싶어 했습니다.

즉 그 마을에 천벌을 내리고 싶어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두 사도에게 실제로 그런 능력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두 사도는 자기들이 받은 권한과 힘을 과신했던 것 같은데,

그 권한과 힘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려고 한 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사도를 꾸짖으신 것은 당연합니다.

죄인들을 하나라도 더 회개시켜서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남을 저주하는 기도를 하면 안 됩니다.

그런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죄를 짓는 일이 될 뿐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10.01.22(마르 3, 13-19) 파견에 앞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흩어진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어 그들을 ‘사도’라고 이름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몇 가지 특권을 주십니다.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입니다. 당대의 최고 예언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예수님께서 뽑으신 제자들이라면,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은 물론,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 정도는 가져야 예수님의 제자라는 자부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목격했으며, 그분께서 가르쳐 주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 속에 살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거부한 유다 이스카리옷을 제외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 그분과 함께 머물렀고, 약속된 협조자 성령 안에 머물면서 수많은 복음의 열매들을 맺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시기한 사울의 미움과 분노에 지혜롭게 대처합니다. 그리고 복수의 기회를 화해와 신뢰로 바꾸어 냅니다. 그것은 다윗이 사울을 하느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임금으로 인정하고, 그의 곁에 머물면서 의로움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윗의 의로운 모습에 사울이 감동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칭송받을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을 경외하며 정의와 인정을 동시에 지닌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의로운 예수님의 제자로 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나는 하루에 얼마나 자주 예수님 곁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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