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있는 가르침>-마르코 1,21ㄴ-28

2009. 1. 13. 오전 6:12:15

글자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마르코 1,21ㄴ-28
 
 
<하느님께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2,5-12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곧 앞으로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 두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가 어디에선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를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  천사들보다 잠깐 낮추셨다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만물을 그의 지배 아래 두시면서, 그 아래 들지 않는 것은 하나도 남겨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기에는 만물이 아직도 그의 지배 아래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ㄴ-28
〔카파르나움 마을에서〕,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疸시니,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는 세상을 예수님께 맡기셨다. 그러기에 그분께서는 죽음을 통해 구원하신다. 그분의 은총을 입지 않는 만물은 없다. 모든 존재는 그분의 힘으로 살아간다. 그런 분께서 사람을 형제라고 부르신다. 한없는 사랑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이를 낫게 하신다. 하느님의 권능으로 몰아내신 것이다. 그들을 제압하는 힘이 당신에게 있음을 드러내신 것이다. 사람들은 놀란다. 그러고는 예수님의 소문을 사방에 퍼뜨렸다. 영들도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고백한다(복음).  설교하는 예수님 앞에 마귀 들린 사람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예수님의 꾸중에 악령은 소리를 지르고 나갑니다. 물론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였습니다. 스승님의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대답은 물론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셨기에 악령이 저절로 물러간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드님답게 사셨기에 악령이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존재 자체를 악의 세력은 겁내지 않습니다. 그 존재가 능력을 발휘할 때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행을 베풀고 성사 생활을 해야만 ‘악의 세력’이 물러갑니다. 우리의 운명을 감싸고 있던 ‘어둠’은 세례와 함께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때 비로소 ‘어둠의 힘’을 잃고 ‘세력마저’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답게 사셨기에 힘이 있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역시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갈 때 ‘힘’을 지닙니다. 악의 세력이 두려워하는 힘입니다. 어둠의 세력을 몰아냈던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이 ‘힘’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연중 1 주간 화요일 - 권위 있는 가르침

 고대 그리이스의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가 이집트를 정복하였을 때입니다. 그는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를 보며 그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이 곳에 내 이름을 딴 도시를 하나 건설하여라.”그렇게 해서 건설되었던 도시가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후에도 로마,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와 함께 가장 위대하고 문화적으로도 강력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말의 위력이 바로 이것입니다. ‘권위가 있는 말’은 그 말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감탄한 이들이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와는 달리 가르침에 권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저 말이 내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켜서만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은 회당에서 마귀 들린 사람을 만납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압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말씀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음을 압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랬더니 기리기리 날뛰던 마귀는 그 사람에게서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갑니다. 이것을 보던 사람들은 모두 놀랍니다. 예수님의 한 마디면 마귀도 저항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 말씀에 그런 권위를 지니시게 된 것일까요? 말씀에 권위를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 말씀에도 하느님의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인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는 그 행실로 드러납니다.

 제가 신학생 때 함께 공부하던 어떤 신학생은 매우 무질서하게 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에게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꼈습니다. 물론 스트레스 때문에 그랬겠지만 하루 열 시간 이상 자고 삶도 매우 정돈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가 저보다 동생이라 저는 좀 타일러보려 했습니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하루에 6시간도 안자는 사람이 많다. 너는 사제가 될 사람인데 그렇게 무질서하게 산다면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니?”“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산다는 걸 알까요? 강론 대에서 좋은 말만 해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그럼 네 삶과 반대되게 가르치겠다는 거야?”“네!” 저의 간섭이 싫어서 일부러 그렇게 대답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강론 대에서 위선적으로라도 감동적인 강론을 해 주면 신자들의 삶이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도 변화시킬 수 없는 말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힘이 있을까요? 자기 자신이 말하는 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 말에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기적이 일어나게 할 힘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율법학자들과 달랐던 점은 그 분은 먼저 다른 이들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당신 자신이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는 말은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들이 매일 싸우면서 자녀들에게는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한다면 그 말이 자녀들에게 전혀 먹히지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말만 하면 그것으로 상대가 변화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 말 하는 대로 나 먼저 살고 있는지 반성해 봅시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말하기 전에 그 말이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킬 수 있는 권위 있는 가르침이 되게 해야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새’란 노래를 잘 알고 계시지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가사 몇 구절이 계속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픈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생각할수록 일리가 있는 말 같습니다.


   제 안을 들여다보면 어찌 그리도 많은 또 다른 내 모습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릅니다.


   수만 가지의 모습의 제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때로 저도 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선량하지만 때로는 악랄합니다. 때로 순수하고 감성적이지만 때로 그렇게 교활할 수 가 없습니다. 때로 천사의 얼굴로 살았습니다만, 때로는 보기만 해도 흉한 악령의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언제라도 천국으로 직행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영혼을 지니고 살았는가 하면, 지옥 불에 떨어져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죄 중에도 살았습니다. 그 수만 가지 모습 때문에 방황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며 그렇게 살아온 제 인생인 듯합니다. 그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참으로 딱한 한 인간을 만나십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인간이었습니다. 보통 악령이 아니라 지독한 악령이었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고 스스로를 한번 통제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모든 일이 다 허사였습니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도 악령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거의 초죽음 상태가 되고 맙니다. 악령의 활동이 잠시 중지될 때 제 정신으로 돌아오지요.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은 죽음보다 더한 괴로움이었습니다.


   자신이 악령에 사로잡혀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 스스로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죽고만 싶었을 것입니다. 본인이 느꼈던 스트레스도 컸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옆에서 느끼는 고통도 이만 저만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무서웠습니다. 그러다보니 가족들도 포기하고 떠나갔습니다. 도움을 주던 친구들도 떠나갔습니다. 이제 혼자가 되어 정처 없이 전국산천을 떠돌아다니는 부랑자 신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가련하고 불쌍한 영혼이 오늘 주님을 만납니다. 자신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존재로 인해 고통당하는 영혼,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영혼, 하루 온종일 악령에 시달리는 가련한 영혼 앞에 주님의 발걸음이 멈춥니다.


   우리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 안에 분명히 악에로 기우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악으로 인도하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 세력이야말로 이 시대 악령입니다. 성령에 반대되는 악령, 불결한 영, 사악한 영입니다.


   그 악령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우리를 괴롭힐까요?


   악령은 타락한 하느님의 영입니다. 겉은 그럴 듯합니다. 머릿속에는 천사의 지식도 지니고 있습니다. 마음속에는 하느님을 알아보는 식별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령의 최종적인 목표는 인간을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입니다. 인간의 시선을 흐리게 만듭니다. 자기중심을 잃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 금하고 계시는 행위를 하도록 자극합니다.


   이런 악령이 오늘 예수님을 만나 이렇게 외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악령의 이 말은 예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 아니라 자기방어의 수단으로서 나온 말입니다. 비록 타락한 영이지만, 하느님을 거스른 영이지만,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영이지만,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악령이 하느님 앞에 서 있자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예수님의 찬란한 성덕 앞에 격분한 악령은 아직 세상에 드러내서는 안 될 예수님의 신원을 재빨리 폭로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좌절케 하려고 기를 씁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 각자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악령을 멸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천사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할지라도, 지속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악의 세력은 순식간에 우리 인생을 점령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머릿속이 하느님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흘러넘친다 하더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다면, 성령으로 채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새 악령의 지배를 받고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시나무새 - 조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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