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엔 계산이 없다 ]-마르코 6장 34-44절

2009. 1. 6. 오전 6:45:56

글자

1월 6일 주님 공현 후 화요일-마르코 6장 34-44절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7-10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로 나타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4-44
그때에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5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37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3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40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41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42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오늘의 묵상 

제자들은 걱정합니다. 군중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먹을 것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현실적인 고민입니다. 그들은 스승님께 빨리 이들을 파견하시라고 합니다. 먹을 것을 해결하도록 지시하시라는 것이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입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너무나 뜻밖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화들짝 놀라 반문합니다. ‘저희가 무슨 돈으로 그토록 엄청난 빵을 사 올 수 있단 말입니까?’ 스승님의 명령에 거절하고 반박할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들을 놀라게 하시려 그랬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당신께서 계심을 잊었냐는 ‘질책’입니다. 수없이 기적을 보았으면서도 걱정하느냐는 ‘꾸중’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스승님의 능력을 잠시나마 망각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의 기적은 이렇게 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지요? 어려움이 닥치면 무엇을 먼저 걱정하는지요? 복음의 내용은 동화 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청하고 기다리면 주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루어 주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그동안의 기도와 선행을 잊어선 안 됩니다. 가르침을 거부하려는 이유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물리칩니다.

공현 후 화요일 - 믿음엔 계산이 없다 

한 번은 연세 있으신 신부님을 옆에 태우고 어디를 가던 중이었습니다. 저는 운전병 출신이고 제대 후에 아르바이트로 기사생활도 조금 해 본 경력이 있어서 어느 정도 운전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앞을 보니 주차되어있던 차가 뒤로 후진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속도를 더 내어 그 차가 뒤로 더 빠지기 전에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타 있던 신부님께서 차가 부딪히는 줄 알고 ‘으악!’하며 소리를 지르며 몸을 운전자 쪽으로 움츠렸습니다.  저는 좀 더 안전하게 차를 몰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조수석에 탄 사람은 운전하는 사람보다 더 겁을 많이 먹기 때문입니다. 저도 남들이 운전하는 차에 타면 겁이 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끔은 옆에서 놀라는 소리 때문에 더 놀라는 경우를 자주 겪게 됩니다. 나는 안전하게 운전한다고 생각을 하는데도 상대는 그렇게 비명까지 지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무래도 운전자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이 가엾어 보여 시간이 늦도록 많은 것을 가르치며 일깨워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걱정이 점점 깊어집니다. 왜냐하면 더 늦어지면 남자만도 5천명이나 되는 이들이 모두 쫄쫄 굶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급기야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저는 이 말씀이 이렇게 들립니다.   ‘그런 것은 너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내가 다 알아서 할 것인데 너희가 그런 것에 신경을 쓰니, 그렇다면 너희들이 한 번 알아서 해 보아라.’  제자들은 계속 세속적인 계산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 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제자들은 이미 그 인원을 먹이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 다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의 계산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도 세상의 계산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일이 있은 얼마 후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자 제자들은 “우리가 빵을 가져오지 않았구나!”하며 서로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 번 빵의 기적의 의미를 설명해 주셔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 눈치를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빵이 없다고 걱정들을 하다니, 너희는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아직도 모르겠느냐?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나 먹이고도 남아서 거두어들인 것이 몇 바구니나 되었느냐?” (마태 16,8-9)

  결국 우리들이 세상 걱정을 하는 것은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완벽한 운전수입니다. 옆에 타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 자신들의 실력으로 하느님을 판단하기 때문에 위기를 느끼고 걱정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입니다.     지금 경제가 매우 어려울 때입니다. 아마 그래서 봉헌이나 십일조를 하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우리가 하느님보다는 우리의 계산을 더 믿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예수님을 오롯이 믿기 보다는 자신들의 계산을 더 믿는 오늘 복음의 제자들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보아야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결승선을 통과하며>


   한때 저도 ‘체력 빼면 시체’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폐기능이 탁월했습니다. 거기다 심장박동도 아주 느렸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마라톤에 꽤 적합한 조건을 갖췄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단축마라톤대회에 참석을 했었지요. 제 짧은 경험상, 정식마라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단축마라톤에서는 초반승부가 중요합니다. 치밀한 작전이니, 페이스 조절이니 하지만, 레이스 초반부터 뒤쳐지면 나중에 따라잡기는 정말 힘듭니다. 초반부터 무조건 선두그룹에 끼는 것이 가장 큰 관건입니다.

 

   저는 시작을 알리는 총포소리가 들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냅다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10분정도 달리다보니 다른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 달리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2위권 그룹들은 까마득한 뒤쪽에서 무리를 지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3, 400미터 이상 거리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됐다, 하는 마음과 동시에, 이제부터는 다른 방법이 없다, 포기하지만 말고, 지금 페이스대로만 밀고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웬걸, 반환점을 돌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의 무리가 즉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급격한 체력저하와 동시에 두통, 복통, 호흡곤란 증세가 동시다발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길가에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머릿속에는 또 다른 이미지가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처럼 멋지게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 결승선에 서있는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우승한 사람에게 주어질 커다란 트로피, 꽤 거금이 걸린 우승상금...

 

   고지가 바로 저긴데,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다시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마라톤 코스를 달려가는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매 순간이 얼마나 힘겨운지 모릅니다.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을 가로막는 암초나 장애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열심히 뛰려는 우리에게 맵디매운 고춧가루를 뿌려대는 사람들도 한두 명이 아닙니다. 주저앉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다 집어 치우고 되는대로 살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그럴 때 마다 ‘결승선’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 그 결승선은 다름 아닌 하느님 나라입니다.


   오늘 소개되고 있는 복음구절은 하느님 나라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다들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거기서는 더 이상 굶주림도 없습니다. 고통도 없습니다. 슬픔도 없습니다. 눈물도 없습니다. 죽음도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존재인 나약한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만이 흘러넘칩니다. 죄인인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절절한 측은지심만이 가득합니다.

 

   그곳은 우리의 작은 선행, 우리의 작은 봉헌, 우리의 작은 나눔, 우리의 작은 사랑의 실천이 몇 천배, 몇 만 배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짊어지고 있었던 고통과 십자가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곳입니다. 그곳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숱한 죄악과 배신도 말끔히 씻어지는 곳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너무나 힘겨워 그만 모든 것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단 한발자국도 전진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사방이 온통 꽉 막혔다는 느낌이 들 때... 꼭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견딘 사람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릴 곳을 다 달린 사람들에게 주어질 하느님의 상급은 클 것입니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신발 끈을 고쳐 묶은 사람들에게 주어질 하느님의 선물은 풍요로울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16번 / 십자가에 제헌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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