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18-21
18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에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그런데도 세월이 가면 잊고 맙니다. 잊지 않으려 애쓰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정이 엷어지고 맙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아시면서 사랑해 주십니다. 그러니 한 해를 보내는 오늘, 우리가 할 일은 감사드리는 일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총으로 도와주셨음에 감사드리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의 주제는 예수님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입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성체를 모셨고 그때마다 빛이신 그분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어둠이 느껴지고 있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요? ‘빛의 생활’을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빛의 생활은 ‘밝은 기운’을 드러내는 행동입니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말과 행동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가능합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실천하면 금방 손에 잡히는 ‘힘과 에너지’로 바뀌는 일입니다.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 - 빛
저는 아일랜드에 세 번 갔었습니다. 한 번은 겨울에, 두 번은 여름에 갔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의 겨울과 여름의 느낌은 천국과 지옥처럼 달랐습니다. 겨울은 춥고 비오고 바람 불고 항상 어둡습니다. 그래서 우울증과 정신질환 환자가 많다고 합니다. 반면에 여름은 밤 11시까지 환하고 날씨는 시원하고 겨울에 비해선 맑은 날이 많습니다. 겨울엔 ‘저주받은 곳이다.’라는 말을 하고 떠나왔고 여름엔 ‘살기 참 좋다.’라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날씨가 이렇다보니 정신질환자들도 많고 그 치료방법도 매우 발달되어 있어서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도 더블린에서 치료를 받고 갔다고 합니다. 그 치료 방법 중 하나를 텔레비전에서 잠깐 보았습니다. 특별히 북유럽은 날이 흐리고 비가 많이 와서 우울증 환자가 많다고 합니다. 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는 환자들이 있는 방에 평소보다 몇 배나 밝게 전등을 켜 놓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낮의 길이를 늘려주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이 많이 치료된다고 합니다. 저는 빛이 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도 어두움을 몰아내고 밝음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오늘 복음에 요한은 예수님께서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내고 기쁨과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빛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빛은 당신의 백성에게 배척을 당합니다.
저는 군 생활을 동해바다가 보이는 전방에서 했습니다. 금강산 바로 밑자락이었습니다. 오징어잡이 철에 밤에 바다를 보면 커다란 도시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빛이 바다에 가득합니다. 오징어잡이 배들인데 한 배가 밝히는 빛이 한 도시를 환하게 할 수 있을 만큼 밝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 빛을 보고 대부분의 물고기는 그 빛이 싫어 더 깊숙한 어둠으로 들어가지만 오징어는 그 빛을 보고 빛을 향해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징어는 빛을 좋아하는 덕분에 그물에 걸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도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사람과 그 빛을 싫어할 사람으로 이미 나뉘어져 있는 것일까요? 성경은 빛을 보내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 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즉, 빛은 세상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실이 악한 사람은 자신들의 악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빛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빛을 받아들임은 무엇일까요? 바로 ‘진리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사실 ‘빛’이 ‘진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을 사람만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아일랜드에서 평생 본 것보다 훨씬 자주, 그리고 훨씬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무지개’입니다. 구름사이로 비치는 빛은 물방울을 통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물방울에 불과합니다.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빛을 받아들이면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게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빛을 통한 구원이 아닐까요? 빛이 우리를 비추도록 우리를 열어드립시다.
그런데 왜 돌아봅니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는데, 앞만 보고 가기도 바쁜데 왜 돌아봅니까?
잘한 것은 무엇이고 잘못한 것은 무엇인지 살피기 위해서 돌아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한 해의 잘못을 후회하고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지난 한 해의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미워하는 것으로 끝나는 과거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즉 잘못한 것은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잘한 것은 계속 잘하기 위해섭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풀 것은 풀기위해서 되돌아봅니다.
한 해 동안 우리는 혼자 산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무엇을 혼자 해낸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산 것이고 더불어 무엇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성공에 대해서 이웃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성공에 아무런 기여를 한 것 같이 보이지 않아도 심지어 나에게 짐만 되었던 것 같이 보여도 내 옆에 같이 있어준 이웃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일과 성공의 관점에서 감사를 하는데 그럴 경우 성공에 일조를 한 사람은 고마운 사람이 되지만 성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고마움도 없거나 실패에 일조를 한 사람은 심지어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내 옆에 살아 있어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차원에서 감사도 하고 화해도 해야 합니다.
큰 수술을 한 우리 형제가 건강을 회복하고 우리와 같이 산 것만으로도 말썽꾸러기 우리 형제가 수도원을 떠나지 않고 같이 산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신원을 돌아보기 위해서 한 해를 돌아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복음은 “한 처음”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이왕 한 해를 돌아보면 한 처음도 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용들은 “하느님께서 하셨다.” “하느님께서 보내셨다.” “하느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한 모든 것은 이런 하느님의 업적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프란치스코가 일생을 돌아보며 유언을 쓸 때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하셨고, 주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셨고,
주님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고, 주님께서 나에게 할 것을 알려 주셨다고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언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것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주님께서 올 한 해도 늘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것이
올 한 해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가 제일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에도 내가 가장 외로웠을 때에도
내가 정말 막막했을 때에도 내가 혼자 감당했을 때에도
주님은 성공과 기쁨의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오늘은 이런 믿음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
고은 시인의 ‘하루’란 시를 읽으며 떠나가는 한해를 뒤돌아봅니다.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루가 저물어 떠나간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오 하잘 것 없는 이별이 구원일 줄이야
저녁 어둑발 자옥한데
떠나갔던 사람 이미 왔고
이제부터 신(神)이 오리라
저벅저벅 발소리 없이
신이란 그 모습도 소리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그 누군가가 이 세상에 와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그것 또한 고통일 것입니다. 한번 만개한 꽃이 계속해서 시들지 않는 것도 무척 어색한 일일 것입니다. 우리네 사랑에 이별이 있고,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다는 것, 한해의 끝자락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입니다. 인생에도 저무는 황혼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황혼 속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착해지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결론을 내릴 무렵에야 하느님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시 우리는 한해의 끝자락에 매달려있군요. 다들 우여곡절의 한해를 보내고 나서 지난 날을 뒤돌아보니 만감이 교차하겠지요.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마음이 많이들 흔들리겠지요.
이런 날은 석양 무렵에 맞춰, 엄청난 새떼가 군무를 추는 철새도래지라도 다녀오면 제격이지요. 그도 아니라면 낙조를 구경하러 가까운 서해안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날입니다.
어르신들께는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한해의 끝에 서니 희망보다는 회한이, 가슴 두근거림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이게 나이를 먹어가는 징조겠지요. 요란스럽게도 이 곳 저 곳에 잡다한 흔적만 많이 남겨놓았지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본 지난 한해 주님의 자비 안에 행복했던 날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큰 부족함을 끝까지 참아주셨으니 말입니다. 감사하다고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그 숱한 죄와 과오, 부끄러움을 끝까지 인내하셨으니 말입니다. 찬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까지 제게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셨으니 말입니다. 아직 이렇게 살아서 두 발로 서있으니 말입니다.
돌아보니 정녕 우리는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에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 한해의 끝에 선 우리가 결국 해야 할 일은 감사하는 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정녕 은총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묵은 것이 새것과 화해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절망이 희망과 다시금 손을 잡는 날입니다. 오늘은 고통이 축복으로 변화되는 날입니다. 결국 올 한해의 결론은 감사입니다.
은총의 주님께서는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진 지난 우리의 한해를 봉헌물로 받으시는군요. 그리고 은혜롭게도 우리 앞에 또 다시 빈 들판 같은 희망만으로 가득 찬 새로운 한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면서, 찬미하면서, 다시 한 번 힘차게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입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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