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7. 대림 제3주간 목요일]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 1,1-17)

2015. 12. 16. 오후 6: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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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7. 대림 제3주간 목요일]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태 1,1-17)

오늘부터 성탄을 한 주 앞둔 대림의 두 번째 시기가 시작되고, 예수님의 탄생과 직접 연관되는 독서를 묵상한다. 창세기에서 야곱은 임종 전에 열두 아들을 하나씩 축복한다. 그 가운데 유다에게는, 다윗에게서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왕권이 약속된다(창세기 49,1-2.8-10)
그 무렵 1 야곱이 아들들을 불러 말하였다. “너희는 모여들 오너라. 뒷날 너희가 겪을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2 야곱의 아들들아, 모여 와 들어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어라.
8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9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10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마태오 복음의 첫 장은 그 약속의 성취를 보여 주는 예수님의 족보이다. 믿기 어려웠던 약속이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일컬어지신다(마태 1,1-17)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7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창세49,1-2.8-10)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7년을 일하며,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얻고 싶었지만, 라반의 속임수로 큰딸(맏딸) 레아 함께 잔다. 이에 분개한 야곱에게, 다시 7년 동안 일해주면, 작은 딸 라헬도 주겠다고 라반은 약속한다. 그리하여 야곱 라헬 얻기 위해 14년을 일한 셈이다. 

주님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열어주어 르우벤, 시메온, 레위라는 세 아들을 낳는다. 레아는 '이렇게 아들을 셋이나 낳아 주었으니, 남편이 나에게 매이겠지.' 했는데,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이제야 말로 내가 주님을 찬송하리라." 하면서, 아기 이름을 '유다'라 하였다. '유다'란 이름은 '찬송하다'라는 뜻이다.(창세 29,15-35 참조) 

창세기 38장에 유다 형제들과 떨어져 살면서 수아라는 가나안 사람의 딸을 만나 아내로 삼고, 에르, 오난, 셀라 라는 아들을을 가진다. 유다는 맏아들 에르에게 타마르라는 아내를 주었는데, 주님 보시기에 에르가 악하여 자식없이 죽게 된다. 

타마르는 수혼제에 의해 시동생 오난을 통해 자손을 얻으려 했지만,  오난은 형수와의 관계에서 나온 자손이 자기 자손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자손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오난 죽게 된다. 

그리하여 타마르 친정으로 돌아가, 막내 셀라가 클 때까지 기다리며 사는데, 셀라가 다 컸는데도, 자신을 그의 아내로 데려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타마르는 시아버지 유다가 양들의 털을 깎으러 팀나로 올라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팀나로 가는 길가에 있는 에나임 어귀에 앉아 창녀 행세를 하며, 시아버지 유다에 의해 관계를 갖게 되고, 쌍둥이 페레츠 제라 탄생한다.(창세 38장:46,12 참조)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창세35,33-26)은 야곱이 총애하는 늘그막에 얻은 아들 요셉 대한 질투로, 요셉을 이집트에 팔아 넘긴 후, 온 땅에 기근이 들어, 양식이 있는 이집트로 양식을 구하러 가서 재상이 된 요셉을 만나게 된다. 요셉은 막내 벤야민(창세35,16-20)을 통한 아버지 야곱과의 상봉을 위해, 벤야민의 자루에 자신의 은잔을 넣어, 종으로 만드는 계략을 꾸민다.

그때 유다가 등장한다. 창세기 44장 14-16절에서 유다와 그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러 보니, 그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그들이 그 앞에서 엎드리자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찌하여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  유다 대답하였다. "저희가 나리께 무어라 아뢰겠습니까?~ 이제 저희는 나리의 종입니다.  저희도, 잔이 나온 아이도 그러합니다." 

그러면서 창세기 44장 18절에서, 유다는 갈 때 까지 간 야곱의 아들들의 대표내지는 대변자처럼, 총대를 메고 요셉 앞에 서서 이실직고 한다. 그는 그 동안의 이집트의 재상 요셉과 아버지 야곱 사이의 오고 간 스토리를 요약해서 전한다. 

"~이렇게 아버지의 목숨이 그 애의 목숨에 달려 있는데, 이제 그 아이없이 제가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에게 돌아갔을 때, 그 아이가 없는 것을 보게 되면,나리의 종인, 백발이 성성한 저희 아버지를, 애통해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입니다. 나리의 이 종은 제 아버지에게, 그 아이를 맡겠다고 하면서, '제가 만일 그 아이를 아버지께 도로 데려가지 못한다면, 제가 아버지 앞에서 그 죄를 평생 짊어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 종이 저 아이 대신 나리의 종으로 여기에 머무르고, 저 아이는 형들과 함께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 아이없이 제가 어떻게 아버지께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저의 아버지가 겪게 될 그 비통함을 저는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창세 44,30-34 참조) 

여기서 보면, 유다는 야곱의 12아들 중에 맏아들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야곱 집안 가족 공동체와 그 구성원 하나 하나를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야곱 집안의 잘못된 일들에 대해, 가족 공동체를 대표해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벌을 받겠다는,  이타적이고 대속적인  정신과 자세가 충만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오늘 독서의 말씀은 야곱이 죽기 전에 12 아들들을 불러놓고, 장차 이스라엘 가문에 일어날 일을 일러주며, 축복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창세기 49장 8-12절 그것이다.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오늘 복음 마태오 1장1-17절의 예수님의 족보에서, "아브라함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야곱을 낳았으며 야곱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타마르에게서 페레츠제라를 낳고 페레츠헤츠론을 낳았으며~" 라고 되어 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인간적 계보안에, 야곱 12아들 중에서 다른 아들들을 다 제쳐놓고, 유다의 이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오늘 독서의 창세기 49장 8-10절(12절)은 유다 지파에서 영원히 왕홀과 지휘봉을 든 메시아가 나온다는 것을 미리 예언한 것이다. 

시편 2장 9절에도 "너는 그들을 쇠 지팡이로 쳐부수고 옹기장이 그릇처럼 바수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요한 묵시록 12장 5절에도 "~그 사내 아이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이십니다." 라는 말씀으로 연결된다. 

오늘부터 성탄절 본격적인 준비가 영적으로 시작된다. 교회는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께 대한 예언의 말씀들을 다 찾아내어, 예수 성탄 대축일에 탄생하시는 예수님께 촛점을 맞추고, 예수님 안에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실현되고, 성취되고, 완성되었음을 밝힌다.

인간적인 부족함과 허물과 죄악이 많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계보를 통해서,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며,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느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하느님의, 나와 죄인들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묵상하면서, 무조건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과 흠숭을 드리자.



대림 제3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1,1-17)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16~18)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가 복음에는 두 군데 나온다. 루카복음에는 3장 23~38절에 예수님으로부터 아담에 이르기까지 77(=7x11)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마태오복음에는 1장 1~17절까지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까지 42(=14x3)대를 내려가며 기록한다.

두 족보 모두 객관적으로 조상들의 계보를 밝히기보다는 주관적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밝힌다.

루카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예요, 하느님의 후예임을 강조하며(3,38), 마태오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예요, 다윗의 후예인 메시아 이심 강조한다(1,1).

B.C.1750 년경,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족속들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으리라."(창세12,3; 22,18)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저 축복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시다. 

또한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B.C.1010~970년경 통일 국가 이스라엘의 2대 임금으로  재위한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위대한 성군 메시아(희랍어로 'Christus')가 탄생하리라고 기대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다윗의 아들','그리스도'이시다.

족보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말고 다른 부인 4명이 등장한다.

ㄱ) 타마르(3절) ㄴ) 라합(5절) 위 두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가나안 원주민이다. ㄷ) 룻(5절)~모압 출신 여자 ㄹ) 바쎄바(6절)~우리야의 아내; 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는 다윗의 아내가 되기 전에 본디 이방인 동네 히티트 출신 군인 우리야의 아내였다. 

그러니까 네 부인은 자신이 이방인이거나 남편이 이방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마태오 복음사가가 일부러 이런 부인만 골라서 올렸는지도 모른다. 

네 부인들의 또 한가지 공통점은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닌, 매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다는 사실이다. 타마르자식없이 남편과 사별한 다음에 기상천외하게도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한다.  

라합은 예리고의 소문난 창녀로서 살몬과 관계하고, 은 보릿가리 옆에서 잠든 보아즈를 유혹하여 결혼하고, 바쎄바는 자신을 범하고 자기 남편을 전사케 한 다윗과 결혼한다. 이렇게 네 여인들은 제각기 기이한 인연으로 아들들을 낳았던 것이다. 오늘날의 독자들은 윤리적, 도덕적 관점에서 이 여인들의 불륜을 나무랄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 율사들은 그런 일들을 달리 풀이 했다. 곧 다윗의 가계, 메시아의 가계가 바야흐로 끊어지려는 순간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가계를 이어 가셨다고 풀이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인들은 하느님께서 극적으로 개입하신  순간순간의 유용한 도구들인 셈이다. 마침내 불가사의의 극치로,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에수님을 잉태하고 낳는다 (마태1,18~25).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 가문의 부도덕을 정당화, 합리화, 미화하시고 계시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악과 실수, 허물로 가득찬 인간사(세속사)를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말하자면, 악에서도 선을 끌어내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인간이 되어 오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예수님 조상들의 혈통, 족보, 계보도 그리 개끗하지도, 산뜻하지도, 거룩하지도 못한 구석들이 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피가 더러우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러한 부족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인간의 역사도 내치지 않으시고, 구원의 역사로, 하느님의 역사로 만들어 나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한번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어가시고, 신실하게 지켜 나가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1장 16절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요셉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가 아니고,'~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부의 자연 생산력이 아닌, 출산전(前)도 출산시(時)도 출산후(後)도 동정녀(평생)이신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수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모님은 이런 의미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 가문의 후예이시다.  

우리도 성모 어머니의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의 축복 누릴 수 있다. 마니피캇에  나오는 데로, '이제로부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하신 성모님의 말씀은  우리가 매일 바치는 묵주의 기도의 '성모송'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우리도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상대방을 자꾸 칭찬하고 격려하고 좋은 점만 자꾸 이야기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자신에게도 좋게 복으로 돌아오는 피드백을 알고 있다.

무한히 선하시고 완전하시고 지엄하시고 거룩하신 성삼위의 내적 영광부족함이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성삼위 하느님이 지니고 계신 지극히 존귀하심, 엄위하심, 거룩함과 진실함, 권능과 권세 등등을 하느님의 자녀들과 천사들이 자꾸 밖으로 드러내어 기릴 때, 하느님의 외적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끊임없이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통해서 그리고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라고 하면서 찬양과 감사와 흠숭을 드릴 때, 하느님께서도 기뻐하시며 축복해 주신다. 이것이 인간에게 축복으로 돌아오는 원리이다.

어떤 처지에서도 나부터 주님 대전에, 주님 뜻대로 잘 살고 거룩하게 걸으면 된다. 그러면 나를 통해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전해진다. 창세기의 이집트의 재상이 된 요셉처럼 말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여기서 '남편'으로 번역된 '안드라'(andra)는 원형 '아네르'(aner)의 목적격 단수로서 정관사 '톤'(ton)과 함께 '톤 이오세프'(ton Ioseph)동격으로 쓰였다. '아네르'(aner)는 여성과 구별된 '남성', 아내와 구별된 '남편', 그리고 미성년자와 구별된 '어른'이라는 명사인데, 여기서는 '남편'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요셉'에 해당하는 '이오세프'(Ioseph)'더하다'(to add)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 인명 '요쎄프'(yoseph)에 대한 희랍어 음역이며, 족보상 예수님의 아버지지만, 혈통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마태1,18)에게서 출생했기 때문이다(마태1,18~25).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마태오 복음 1장 2절부터 16절 상반절까지는 모두 남자가 그 아들을 낳는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본문에 이르러서는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족보상으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시지만, 육체적으로는 그들과 관계없이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의 후손이라는 사실 하느님께서 하와에게 하신 예언('여자의 후손'; 창세3,15)이사야가 한 예언('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사7,14)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지금까지 '낳다'라는 표현인 '에겐네센'(egennesen)능동형이었는데, 본문에서는 '태어나셨다'에 해당하는 '에겐네테'(egennethe)수동형이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마리아는 자의적으로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된 메시야를 육체적으로 낳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처럼 마태오 복음사가는 단어 하나의 선택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이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느님의 역사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서'로 번역된 '엑스 헤스'(eks hes; of whom)에서 '엑스'(eks; of) '(공간적으로)안에서 밖으로'라는 의미로서 분리와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이며, '헤스'(hes; whom)관계대명사 '호스' (hos)의 여성 소유격 단수로서 본절 상반절의 '마리아스'(Marias)를 받고 있다. 따라서 '엑스 헤스'(eks hes)는 문자적으로 '그녀로부터'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불리는'으로 번역된 '레고메노스'(legomenos; is called) '말하다'(to say)는 의미를 지닌 동사 '레고'(lego)현재 수동태 분사 남성 단수 주격으로서 앞에 있는 정관사 '호'(ho)와 함께 형용사적 용법으로 쓰였다. 

'호 레고메노스 크리스토스'(ho legomenos Christos)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스도라고 말해지는 (일컬어지는)'이라는 의미이다. 

이 시점은 예수님께서 출생하던 당시가 아닌, 마태오 복음사가가  복음을 기록하던 초대 교회 시대인 것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과 선교사들은 나자렛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그토록 대망해 오던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며 선교했으며 (사도 5,42; 17,3; 18,5.28), 자연히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했던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감곡매괴성모성당 반영억라파엘 신부님 /AK프라자 크리스마스 트리 등 4장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송영진 모세 신부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6)."


마태오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족보는, 인간적인 혈통만 생각하면 예수님의 족보가 아니라 요셉의 족보입니다. 인간의 혈통은 요셉에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말은, 동정녀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셨다는 뜻이고, 예수님은 요셉의 혈통을 물려받으신 분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고 태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는 요셉의 족보를 빌려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족보에서 세례자 요한의 말이 연상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마태 3,9)." 이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이, 또는 아브라함의 가문이라는 것이 대단히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내세우면서 잘난 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돌들로도' 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 자체는, 또는 아브라함 가문의 족보 자체는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가문은 특별합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셨기 때문이고, 그 가문을 통해서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메시아의 가문으로 선택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는 것인데, 만일에 메시아와 아무 상관없는 가문이었다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까? 그 당시에 아브라함이 선택을 받을 만한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정을 자세히는 모릅니다. 어떻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계약을 맺으셨고, 여러 가지 약속을 하셨는데, 가장 중요한 약속은 아브라함 가문이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3)." 이 말씀을, 그의 가문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에서 왜 유다 지파가 선택되었을까? 창세기를 보면, 아버지인 야곱의 입장에서는 열두 아들 가운데에서 유다가 가장 믿을 만한 아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창세 44장).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유다가 가장 적임자였을 것입니다.)
야곱은 온 세상을 다스릴 왕이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는데(창세 49,10), 이 '왕'은 메시아로 해석됩니다. 아마도 분명히 야곱의 예언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서 한 예언일 것입니다.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1사무 17,12). 하느님께서 왜 그 아들들 가운데 막내아들인 다윗을 선택하셨는지, 구약성경에는 자세한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골리앗과 싸워서 이기는 장면에서, 하느님에 대한 다윗의 믿음을 보면 그는 충분히 선택받을 만한 인물이었다고 생각됩니다(1사무 17장).


사실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을 인간의 눈으로 보면, 몇 명 외에는, 이 족보는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족보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신앙인의 족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고 자기의 신앙을 아들에게 물려준 사람들의 족보.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계획하시고, 또 계획하신 대로 끌고 가신 하느님만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 응답하고 협력한 인간의 역사.


그렇다고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이 전부 다 본받을 만한 신앙인이었다는 것은 아니고,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습도 사람마다 많은 차이가 있긴 합니다. 그래서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이 죄를 짓는 모습만 보면, 세례자 요한이 말한 것처럼 '돌들만큼의 가치도 없는' 족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 섭리의 작용 덕분에,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에게서 아주 떠나지는 않은, 즉 회개한(또는 회개하려고 노력한) 인간들의 족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님에서 끝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서 새로운 족보가 시작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요한 1,12-13)."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이라는 말을 '예수님의 족보에 자기의 이름을 올리는 권한'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새로운 족보는 곧 '나의 족보'입니다.


이 새로운 족보를 묵시록에 나오는 생명의 책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부정한 것은 그 무엇도, 역겨운 짓과 거짓을 일삼는 자는 그 누구도 도성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묵시 21,27)." 그런데 '생명의 책'은 한 번 이름이 기록되면 끝나는 책이 아니라, 언제든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 책입니다(묵시 3,5).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예수님의 족보에 자기 이름을 올리는 일이고, 죄를 짓고 하느님과 예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족보에서 자기 이름을 자기가 스스로 지우는 일입니다. 지금 내 이름은 그 족보에(생명의 책에) 잘 기록되어 있을까?

예수님 족보(1) ☞ 마태복음1장의 족보는 영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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