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간 금요일]요셉 (마태 1,18-24)

2015. 12. 17. 오후 7: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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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간 금요일]요셉 (마태 1,18-24)

다윗 왕조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예레미야는 먼 훗날 하느님께서 다윗에게서 새싹이 돋아나게 하시리라고 예언한다.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신 그분이 바빌론 유배에서도 그들을 구해 주실 것이며, 그들에게 메시아를 보내 주실 것이다.(예레미야 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의 신앙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했을 때, 천사가 요셉에게 그 아기에 대해 알려 준다. 그 아기는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으로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오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요셉과마리아

<요셉의 응답>  송영진 모세 신부


아마도 마리아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요셉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마태 1,18)." 라는 말은 "요셉은 마리아의 말을 듣고 성령 잉태를 알게 되었다." 라는 뜻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많이 고민하고 괴로워하다가
천사를 만난 뒤에 그 고민과 괴로움에서 해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실제로 그랬을까?
천사를 만난 뒤에 고민이 더 깊어진 것은 아닐까?
처음에는 마리아의 말을 믿을 것인지, 안 믿을 것인지만 고민했겠지만,
천사를 만난 뒤에는
천사의 말을 믿을 것인지, 안 믿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을 것입니다.
(꿈에 본 천사를 정말로 천사로 믿을 것인지, 까지도 고민했을 것이고...)


만일에 요셉이 천사의 말을 듣고 바로 괴로움에서 해방되었다면,
또 천사가 하는 명령이니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바로 복종했다면,
이야기가 아주 단순해집니다.
(왜 좀 더 빨리 나타나서 말해 주지 않았느냐고 천사에게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천사를 천사로 알아본다는 것,
천사가 하는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아듣는다는 것,
그리고 그 말을 믿고 순종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즈카르야는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였고,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도(루카 1,6) 천사의 말을 못 믿었습니다.


복음서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지만,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고 나서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이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천사가 나타나기 전에도 많이 기도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천사가 나타난 것은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일 것입니다.)
요셉이 고민하고 기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기도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알고 나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는 말은(마태 1,19),
요셉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나타냅니다.


요셉이 감추려고 한 것은 마리아의 잉태가 아니고 파혼입니다.
(잉태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일입니다.)
요셉이 작정한 대로 남모르게 파혼했다면,
세상 사람들은(가족들도) 태어난 아기를 요셉의 아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직 동거는 하지 않았지만 이미 법적으로 부부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마리아를 의심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 한,
사람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아기를 낳고 기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이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한 일은,
전적으로 자기만 희생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결정한 일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
또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지를 잘 나타냅니다.
마리아의 명예를 지켜 주기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는...
그리고 그 일은 당시 상황에서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 되기 때문에,
요셉의 결정은 그가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를 선택하셨는데(루카 1,27),
이 말은 요셉을 마리아와 함께 선택하셨음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셉이 항상 기도하고, 의롭고,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그를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 요셉 한 사람뿐이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분명히 다윗 가문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을 텐데,
요셉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유일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왜 요셉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럴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가 정답입니다.
하느님께서 요셉을 선택하신 일은,
일방적으로 아무렇게나 막 하신 일이 아니고,
같은 조건의 여러 사람들 가운데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막 선택하신 일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사람, '요셉'을 선택하셨습니다.


요셉의 응답과 순종에 대해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니까 그냥 복종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셉은 분명히 자유의지로 응답했습니다.
그에게는 싫다고 거절할 자유와 권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싫다고 거절하는 것을 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에 거절할 자유와 권리가 없었다면,
요셉의 응답과 순종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립니다.


신학적으로는,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그가 자유의지로 응답할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를 선택하셨다고 생각하지만,
요셉이 하느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요셉에게는 자신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갑자기 닥친 상황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느냐? 가 중요해집니다.


요셉은 평소에도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간에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실행하는(마태 7,21)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응답하고 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기도를 하는 상황을 만나더라도
누구나 요셉처럼 응답하고 순종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은총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받는 법입니다.


 아기예수&요셉과 마리아 이미지~색칠하기 포함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결혼 관습에 따르면 보통으로 세 단계를 거쳐 정식으로 부부가 됩니다.
우선 어렸을 때 부모는 자기 자녀를 다른 가정의 자녀와 약혼을 시킵니다. 결혼은 성스럽고 진지한 것이기에 인간적인 감정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결혼 당사자가 아니라 양쪽 부모가 약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정혼 단계입니다. 어렸을 때 약혼한 사이라도 여자 측에서 결혼을 원하지 않으면 파혼할 수 있으나, 결혼 의사를 밝히면 정혼이 성립되는데, 일 년 동안 이 기간이 지속됩니다. 서로 남편과 아내라고 부르지만, 아직 부부 생활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며, 여자는 시집이 아니라 친정에서 삽니다. 마지막으로 결혼 단계로서, 남녀가 부부로 같은 집에서 동거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 단계에 있었는데,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물론 간음죄가 성립되어 돌로 쳐 죽일 수도 있지만, 요셉은 남모르게 조용히 파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마리아의 잉태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려 주자, 그는 지체하지 않고 기꺼운 마음으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신비스러운 일들이 적지 않는데, 이러한 일들이 아주 사소한 것에 의해서 풀려 나가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접하면서, 요셉처럼 우리에게도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믿음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셉은 아무 말 없이 하느님의 뜻, 자기의 몫을 받아들입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요셉을 부르고 계시겠지요. 나자렛의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었듯이 두려움 속에서도 성모님과 예수님을, 아내와 어린 아들을 감싸는 요셉! 예수님께서는 그런 요셉의 족보를 통하여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대림 제3주간 금요일 복음(마태오1,18-24)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19) 

마태오 복음 1장 19절'의로운 사람'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dikaios; a righteous man; a just man) '의로운', '정직한, '하느님과 인간의 법률을 준수하는'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이것은 요셉이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율법을 쫓아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과 부정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접하고는 혼외관계로 인해서 잉태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녀와의 정혼 관계를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율법대로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마리아를 향한 그의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며, 그의 성품 자체가 온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me; not)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 부사이며, '텔론'(thelon; willing)'자발적으로 ~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텔로'(thelo) 능동태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싶지 않았으므로'로 번역된 '메 텔론'(me thelon)은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고, 요셉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그녀의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의 일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 '아우토스'(autos) 여성형 목적격 단수이므로 '그녀를'(her)이라는 뜻이다. 

즉 원문으로 볼 때, 요셉은 혼외 임신이라는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엄청난 일을 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리아에 관심을 두었음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드러내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데이그마티사이'(deigmatisai; to make a public example)원형 '데이그마티죠'(deigmatizo)부정사형인데, '데이그마티조'  (deigmatizo)'본보기'(an example), 특히 '경고의 의미에서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본보기를 만들어 앞에 내놓다', 또는 '공적으로 불명예를 주기 위해 폭로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은 요셉이 하느님의 율법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임을 소개하며, 자기가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마리아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초자연적인 일을 경험한 일이 없음으로 인해 마리아의 임신을 혼외 관계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얼마나 상심하며 고민했을지를 엿보게 한다.

결국 고민끝에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지만, 마리아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 까닭에, 당시 그런 죄목이라면 마리아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모욕을 주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강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여기서 '마리아와'로 번역된 '아우텐'(auten)'그녀를'이라는 목적격 인칭 대명사이다. 그리고 '남모르게'로 번역된 '라트라'(lathra; privily; quietly)'비밀히'(secretly)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로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처리하기로 한 요셉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파혼하기로'로 번역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ebulethe ~apolysai; had in mind to divorce)에서 '에불레테'(ebulethe)소원하고 바라는 것,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주어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동사 '불로마이'(bulomai)의 직설법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는 '불로마이'(bulomai)가 수동이 아닌 능동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아폴뤼사이'(apolysai)원형 '아폴뤼오'(apolyo)의 부정사 부정 과거 능동태형인데, '아폴뤼오'(apolyo)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 죄인 등 구속된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이런 의미로 쓰였으며, 그 외 모임을 해산하거나,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아내를 버리는 것, 즉 이혼하는 것 등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이혼, 즉 정혼 상태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파혼하여 떠나 보낼 것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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